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26
한다.
“쳐라!”
당풍준은 홍태곤의 마음을 읽었는지 급히 공격 명령을 내렸다.
“한치도 물러서지…억!”
마주 일성을 토해 내던 홍태곤은 지하 광장을 가득 덮는 은빛
광망에 경악스러웠다. 당문칠병 중하나인 투골망, 사십여 명이
드잡이질 하기에는 좁은 광장, 피할 곳은…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을 빨랐다.
재빨리 칠성둔형(七星遁形)을 펼쳐 뒤로 주르륵 물러섰다. 한
데,
툭!
등뒤에 와닿는 감촉은? 분명 수하중 한명의 몸뚱이리라.
쐐에엑!
은빛 광망이 머리를 덮는 순간 따끔한 감촉이 느껴졌다. 사금
이 살을 파고드는 감촉, 그 감촉은 이루 말할수 없는 고통을
불러 왔다.
“으아아악…!”
독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용출거독 홍태곤은 전신을 산산이 으
깨는 은사에 마지막 비명을 처절히 내질렀다. 독수리에 채인
독사처럼 천적을 만난 독인이 당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죽음
이었다.
허병현(許炳賢)은 비명 소리가 점점 잦아들자 추스르던 문서들
을 팽개치고 이미 쌓아두었던 문서에 기름을 뿌렸다. 모든 자
료를 없앨 수 있으면 더없이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우선 쌓아논 문서라도 태워 없애야했
다.
‘총관이 일 각을 버티지 못하고 당하다니…’
장문이 원망스러웠다. 완성 직전에 있던 충생비록(蟲生秘錄)을
가지고 사라지지만 않았던들 오늘과 같은 치욕을 당할까.
아니, 대붕파가 지하로 숨어들 이유도 없었으리라. 천적이 없
는 독충들은 무림 십 개 거파마저 휩쓸어 버렸을 텐데…
만약 대붕파에서 충생비록을 잃었다는 소문이 강호에 퍼진다면
그 동안 원한관계에 있던 많은 무림인 앞에 오체분시(五體分
屍)가 되고 말았겠지. 이제 간신히 전과같은 독물들을 만들어
냈는데…
기름을 다 붓자 품에서 화섭자를 꺼냈다. 순간,
“구유만리(九幽萬里) 허병현! 대붕파의 일호법이라면 그 자료
가 얼마나 소중한건지 잘 알 텐데…”
문득 등뒤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허병현의 손길이 부들부들 떨
렸다.
맞는 말이다. 대붕파 칠십여 명이 이십 년간 쏟아 부은 피와
땀이 배인 문서들이다. 이 문서가 당문에게 넘어간다면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욱 화려한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 그러나…그러
나 자신들을 해한 원수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 줘야 한단 말인
가.
‘안돼! 비록 사장(死藏)되는 한이 있더라도…’
허병현은 마음을 굳히고 화섭자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치익!
짧은 불꽃이 일었지만 불이 켜지지는 않았다.
“멍청한 짓!”
퍼억!
일갈과 동시에 가슴을 뚫고 나오는 묵빛 죽대 투골망의 사정
거리는 삼 장 하지만 은사만 신경 썼지 튀어나오는 죽대의 힘
이 이 정도일 줄이야.
“꺼억!”
허병현은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화섭자를 켜려 했지만 결국 켜
지 못하고 말았다. 그의 손에서 굴러 떨어진 화섭자가 무심하
게 주인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허병현, 죽지 않을수도 있었는데…”
당풍준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 허병현을 지켜보았다.
방향성식물(芳香性植物)인 하고초(夏枯草)와 밀원식물(密源植
物)로 사용하는 능소화(凌宵花)를 교배시켜 만든 석창초(石菖
草)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대붕파를 건드리지는 못했으리
라 그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제일실 만채실장 만초신의 당중화
야 말로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대붕파가 사용하는 독 성분을 어떻게 손금 보듯 알 수 있
었을까? 그런 사람이 그들 은거지에 대해서는 너무 몰랐다는
것도 이상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쳐버릴 수 있는 곳이
대붕파였는데…
석장초의 훈기가 독물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 밝혔졌음에도
정리된 자료를 가져 오라는 의도는 무엇일까? 당문십절 가운데
한사람을 보낼 정도라면 필시 중차대한 문제일 텐데.
당풍준은 뛰어난 지자(知者)로 알려진 허병현을 죽인 것이 못
내 마음에 걸렸다. 문파를 떠나서 같은 독인으로 인정할 만한
상대였으니까. 그만은 살리고 싶었으니까.
그는 대붕파가 이십 년에 걸쳐 이룩해 놓은 독문서들을 훑어보
았다.
한장 한장에 기울인 심혈이 종이를 타고 전해졌다.
싸움은 이미 끝났는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하다못해 부상자
들의 신음소리도 일절 들리지 않았다.
“출구는 건양하(建陽河)의 수로(水路)와 연결 되었습니다. 모
든 배가 빈틈없이 정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빠져 나간 사람
은 없습니다.”
중위대 부대주 풍마린(風碼璘)이 숨 한올 흐트리지 않은 고요
한 음성으로 보고했다.
“입구와 출구를 철저히 봉쇄해라.”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입구는 청석만 닫으면 귀신도 모르고,
출구는 바위 틈바구니 사이로 조그만 소선만 드나들게 되어 있
습니다. 정말 숨기에는 감탄할 만한 최적지입니다. 안에서 움
츠리고 있다면 백년이 지나도 찾지 못할 요새입니다.”
당풍준은 몇 마디 하려다 그만두었다. 풍마린이 장담했다면 믿
어도 좋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풍가(風家)의 소가주인 풍마린은 명석하다. 지략으로 따진다면
한연지와 엇비슷하고 무공으로 논한다면 자식 당동한과 쌍벽을
이룬다.
문무겸전(文武兼全)에 성취욕(成就慾)까지 가지고 있다.
다행이라면 결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설복에 응한
사가 후인들이 나타내는 전형적인 특성인 충성심과 처지를 알
고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녔으니까.
“문서를…잘 챙겨라. 이곳은 철저히 불태운다. 독물들이 한마
리라도 살아있다면 곧 번식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이미 암동에 기름을 뿌리고 있습니다.”
“그래? 잘 했구나.”
당풍준은 눈을 감지 못한채 숨이 끊어진 허병현의 두눈을 쓸어
내렸다. 그것이 같은 독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무인에게 해줄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한연지와 당철휘는 향계현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면서
대붕파가 멸문했음을 알았다. 기름 태우는 연기는 유황불처럼
매캐한 냄새를 동반하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일행이 전서구를 보낸 지 삼각 만에 방문한 사람, 중위대주(中
衛隊主) 오독일지(五毒一指) 당풍준(唐風俊).
당문 십독 중 다섯 가지를 늘 가지고 다니며 음풍쇄골지(陰風
碎骨指)와 함께 하독하는 절정고수. 음풍쇄골지만으로 놓고 볼
때도 구파일방의 장로들과 견주어 밀리지 않는다고 했으니…
한연지는 당풍준이 들어서자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예상
은 했지만 자신의 꿈이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을 감내할 수
없었다. 하얗게 탈색된 얼굴에서는 심한 절망감이 배어나왔다.
당풍준은 그런 한연지를 힐끔 바라보고는 당철휘에게 다가섰
다.
“전서는 잘 받았다. 너희는 곧바로 일독문을 추적해.”
그 말은 모든 사실을 구체화시켰다.
자신들은 추적자에 불과할 뿐, 더도 덜도 아니었다. 대붕파가
혈반사접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가장 농후하다고 전서를 날렸음
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치기 전에 일독문을 추적하라는 말은
…혈반사접과 관계없이 당문과 견줄 수 있는 독의 명가들을
말살하겠다는 의사(意思)였다.
지금은 누가 뒤를 따르고 있을까? 전위대주와 중위대주가 나타
났으니 후위대주 당잠청일까?
문주는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왜 가만있어도 소멸될 것
같은 독문들을 치는 것일까? 자신이 비록 한가의 최고기재라고
는 하지만 그전에도 자신과 필적할 만한 두뇌는 있었을터, 왜
그들에게 추적을 명하지 않았을까?
한연지는 실타래처럼 복잡한 생각을 정리했다. 당문주 당기룡
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뛰어난 독인이면서 절묘한 지략가
다. 자신보다 한수 위임을 인정해야 된다. 그렇다면…
‘손아귀에서 놀아 주면 된다. 단비하에게 눈길을 돌릴 때까지
천하제일 문파를 만들어 무림을 호령하는 일은 십 년 후라도
늦지 않아.’
한연지는 당철휘에게 요염한 미소를 보냈다. 부처도 성욕(性
慾)이 발동할 만큼 고혹적인 미소였다.
“일독문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것이 있나요?”
“응? 흠!”
당철휘는 멍하니 한연지의 옆 모습을 훔쳐보다가 느닷없이 물
어 오는 질문에 헛기침을 토해 냈다.
“일독문은 한 가지 독만 집중적으로 배양시킨 문파지. 수독(水
毒), 가장 빠른 살상력을 지녔어. 하독 방법도 간단해 옥병 마
개만 열고 뿌리기만 하면 되니까. 무공의 고하는 상관없지 그
래서 일독문의 고수들은 신법에 치중한 점이 특색이야.”
한연지는 당철휘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단비하에게 눈길을
돌렸다.
단비하, 그의 얼굴이 파랗게 물들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목덜
미도…분명 몸 전체가 파랗게 물든 듯 했는데 단비하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 듯 하품만 연신 터뜨렸다.
‘독충들의 몸에 나타나던 현상…아직도 대붕파의 폐장에서 입
은 독상을 제거하지 못했다. 미물에게 독성을 부여하던 독…
그게 무엇이기에…’
당철휘는 자신의 방대한 지식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쉬임없이
주절댔지만 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당문주의 복안을 알수
있는 단서가 잡힌 까닭이었다.
“당 대가. 단비하를 보세요. 눈치채지 않게…”
“응? 왜?…어?”
“왜 저런 증세가 나타나는지 알겠어요?”
“음…! 대붕파의 독!”
“역시…”
한연지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슨 독이 사용되었는지 알수 있겠네요?”
“겉으로 봐서는 알수없지. 만약 꼭 알아 내려면…”
“알아 내려면요?”
“저놈 몸을 갈기갈기 찢어야 할거야. 어떤 독은 살갗뿐만이 아
니라 근육 심하면 내장까지 변색시키거든 정말 독종인데? 저
정도 되면 죽어야하는데 말야. 무엇보다 독성분을 알아내는데
는 겉면보다 오장육부를 헤집는 편이 정확하지.”
“해부를 한다면 어느정도 정확히 알아낼 수 있죠?”
“장문에서라면 십 할이지. 거기는 기구가 많거든…하지만 이
런 야지(野地)에서라면 칠 할? 아니 육할 정도…”
“인체의 일부만 가지고는 안 될까요?”
“한매? 혹시…”
“그래요. 해부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붕파가 사용한 독의 실
체를 알아야해요, 분명히 알아두세요, 독의 실체를 안다면 대
가는 당문의 문주가 되는 거예요. 그 점은 내가 장담할게요.
하지만 단비하를 죽이는 것만은 동의할 수 없어요. 아직은 아
니에요. 제가 죽이라고 할때…아셨죠?”
“대붕파의 독이라…후후훗! 그렇군. 그 독은 반드시 알아야
해.”
당철휘의 눈매가 가늘게 찢어졌다. 그러나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살광은 소름끼치도록 잔인했다.
품속에 간직한 폭우빙혼통, 만우당에서 가져 온 풍멸환 거기에
자신조차 감히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던 암동 속에 바글거릴
독충이 가세한다면 무적고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독충을
키워 낼 수 있는 열쇠를 단비하가 가지고 있다. 그의 몸이…
“좀더 가능성을 높여야겠어, 대시진(大市鎭)으로 나갑시다. 몇
가지 약초를 준비해서 연화제(軟化劑)를 만들면…자신있어.”
“그래요? 그럼 흥산성(興山城)으로 가요. 하루면 도착할수 있
을 거예요. 일독문의 근거지였던 모록산(茅鹿山)으로 가는 길
목이니까 의심 받지도 않을테고…”
“그럽시다.”
‘됐어…만우당, 사충전…두 독의 연관성만 찾아 낸다면 당문
주의 의도를 알수 있어.’
한연지는 다시 깊은 생각에 몰입했다.
단순히 혈반사접을 만든 문파를 찾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고 이
미 잠적해 버린 독문들을 찾아 멸문시킨다고 당문의 위상이 높
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무엇인가 다른 것이 또 있는데…
무엇일까?
기대할 수는 없지만 꼬리를 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잡혔다. 그
리고 그것이 단비하의 몸에서 일어나는 증세라면 더욱 간명했
다.
한연지의 눈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단비하는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도 모른 채 길게 하
품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심정은 누구보다도 복잡했다.
파란 물감에 집어넣었다 꺼낸 듯한 양손, 눈이 있으니 보지 않
을 까닭이 있는가. 독에 중독된 증상임은 분명한데 무슨 독에
걸렸는지를 알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독에 대한 지식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있었다. 가문 전래의 의
독(醫毒)을 목숨 걸고 전수받았고, 당문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
든 독을 몸으로 체험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도 자신이 중독당한 독의 정체는 알아낼 수 없었다.
‘대시진으로 가야 한다. 어떤 증세가 이는지 알아내야만 해독
약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자면 독기를 이끌어 내는 유독
제(諭毒劑)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가까운 대시진은 흥산
성…흥산성에는 임(林) 숙부(叔父)가 계신다. 가야하는데…’
서로 다른 심중, 하지만 가는 길은 같았다.
第 七 章. 고뇌(苦惱), 소중한 가치
( 一 )
일독문주(一毒門主) 안태강(安泰剛)은 급박하게 날아오는 전
서구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만우당이 당천우에게 대붕파가 당풍준에게? 흐흐홋! 하룻 강
아지들에게 당했단 말이지.”
“하룻 강아지가 아닙니다. 문주, 대비를 해야 합니다.”
호리호리한 키에 눈매가 날카로운 중년인이 안태강에게 주의를
줬다. 도관(道冠)을 쓰고 태극 문양이 새겨진 도복(道服)을 입
고 있었으나 도인은 아닌 것 같았다.
“흐흐홋! 제갈(諸葛) 선생(先生), 선생은 내가 젖비린내 나는
놈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얘기요?”
안태강은 몹시 기분 나쁜 듯 말투가 거칠었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이 가장 심한 문파를 말하라면 독문과 녹림
(綠林)이다. 관군(官軍)의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는 곳이 녹
림이라면 좀더 강한 독성(毒性)을 찾아 부나피처럼 떠도는 세
계가 독문이다.
천하제일 문파라도 되는 듯 급격히 일어섰다가 누구에게 쓰러
지는 지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다반사인 독문 생리.
그러기에 대를 이어 가며 문파를 물려준다는 것은 장문이 평생
동안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심오한 문제였다.
인재난(人才亂)에도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지혜가 백출하거나
무공이 뛰어난 낭인들이 식객(食客)처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그들의 마음을 잡는 일도 장문이 해야 할 일 중 큰 일이었다.
제갈문(諸葛雯).
삼고구류(三庫九類)의 모든 학문에 정통하다는 호북성의 지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