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mains of the Poison King RAW novel - chapter 79
왜 단비하를 내버려 두고 있을까? 후위대주까지 죽인 대적
을…
“걱정하지 마. 당기룡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
를 죽일 생각이 없는 것만은 확실해. 청성파는 어차피 당문과
자웅을 결해야 될 거야. 내가 전면에 나서 준다면 훨씬 수월하
겠지, 서로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어.”
“연락이 언제 올것 같아?”
“오늘 안으로.”
단비하는 무쇠 가마솥에 물두꺼비를 넣고 기름올 뽑아 내는 중
이었다. 언뜻 보면 개구리로 오인하기 쉽지만 우툴두툴한 흑갈
색의 등가죽에 있는 독액은 사람을 일 각 안에 죽일 정도로 독
성이 강했다.
당잠청과의 싸움에서 대조독을 다 써버려 새로 제조하는 것이
다.
“자신있어?”
“…!”
단비하는 무슨 소리냐는 듯 의문스런 눈길을 보냈다.
“싸움에서 이길 자신이 있냐 말이야?”
“나는 또 무슨 소리라고…싸움이야 해봐야 아는 것 아냐? 칠
은방도들은 전에 겨뤄 봤으니 대충 실력을 짐작하겠고…참 이
상하지. 청성파는 두렵지 않은데 당문은 어렵게 느껴져 영원히
부술 수 없는 벽처럼…왜 그런지 모르겠어.”
‘바보야 그건 네가 당문에서 자랐기 때문이야. 인간 이하의 취
급을 받으면서 살아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주눅이 든 거야. 하
지만 나는 믿어 너는 꼭 이길 거야.’
단비하를 쳐다보는 눈길이 애처롭게 변했다. 마치 자신이 불합
리한 경우를 당한 것 같아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데 당한 당사
자의 마음은 어떨까? 갈홍아는 입술을 꼭 깨물면서 모종의 결
심을 굳혔다,
전서는 단비하의 예측대로 삼절 진인이 떠난 그날저녁 무렵에
날아왔다.
“수고 많았다.”
단비하는 짤막한 한마디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환자 시중을 든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싸울때는 몰랐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상태가 나빴다.
당연히 대소변은 요강에 봐야 했고…갈홍아는 싫단 말 한마디
않고 모든 시중을 들었다.
그것만 해도 고맙기 이를 데 없는데,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한지에 적힌 대로 독충과 약재들을 채집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십 리를 걸어야 약재 하나를 구할 수 있는
힘든 일이었다.
갈홍아는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언제 출발할 거야?”
“지금.”
“정말 나도 가면 안돼?”
“약속했잖아.”
“휴우! 그래…”
약속했다. 보급로를 차단하는 일은 하루이틀만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단비하는 그 기간을 한 달로 잡았다. 그 동안 갈
홍아는 무산을 다녀와야 한다. 무산파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
혔으면 도움을 청할 계획이었다. 갈홍아 역시 당철휘와의 원한
이 있기에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비하를 떠나기 싫은
마음은…
“오늘은 어두워졌으니까 내일 아침에 떠나. 저놈들도 필요없으
니까 잡아 먹어야지.”
꼬고고고곡…!
마당 한쪽에는 갈홍아가 기르는 암닭 세 마리, 수낡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여자들이란 정말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종종 한다. 영구히 안
주할 집도 아니고 잠시 머무르는 곳에 무슨 애착을 그리 쏟는
지. 단비하는 닭이나 잡아먹고 떠나라는 만류를 뿌리치지 못했
다.
“누구냐!”
단비하는 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삶은 닭을 안주삼아 마신 죽엽청(竹葉淸)에 흠씬 취했던지 세
상 모르게 곯아 떨어졌다.
‘갈홍아는…’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침입자가 가슴을 압박하도록 몰
랐다면 갈홍아 역시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언제나 세심하게
경계를 늦추지 않던 그녀였으니 침입자가 들어오도록 가만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퍼뜩 스쳐 갔다.
“나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무슨 일…”
말을 하던 단비하는 몸을 흠칫거렸다. 부드러운 손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왔다. 갈홍아 그녀는 자신의 결에 누워 숨소리조차
죽인 채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 빙어처럼 미끈한 몸이 만져
졌다.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가 탄력있게 다가왔다. 고차(袴叉)
조차 입지 않은 알몸.
“너와 자고 싶어.”
음성도 잘게 떨렸다.
단비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언제나 부담없던
여자의 마음속에도 이런 감정이 숨어 있었다니.
“가라.”
단비하 자신도 놀랄 만큼 냉랭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랐는가!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을 토하며 품속으로 기어
들던 갈홍아의 전신이 급격히 굳어졌다.
“내가…내가 더러운…여자라서…?”
“그래.”
“그렇구나. 푸훗! 난 참 멍청한 계집애야, 그렇지?”
“알았으면 돌아가.”
“책임져 달란 소리는 아냐. 좋아서…하룻밤으로 만족할게.”
“후후후! 너 많이 타락했구나. 돌아가.”
갈홍아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러나 곧 자조적인 웃음
을 흘리며 힘없이 말했다.
“꼭 그렇게 말해야 돼? 좋게 말하면 안 돼?”
“네 행동을 먼저 생각해 봐. 무산을 떠나올 때 뭐라고 그랬지?
나와 동행하자. 그러면 살려 주고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 그
런 말을 한것 같은데?”
“맞아, 그랬어.”
“그게 우리의 관계야. 그것 이상도 이하도 없어. 지금 돌아간
다면 예전의 친구 관계를 회복할 수 있어. 하지만 계속 이런다
면 지금 떠나겠다.”
“호호호…! 너는 떠날 수 없어. 마혈을 제압했거든.”
“갈홍아, 예의를…헉! 그만두지 못해!”
갈홍아는 단비하의 옷을 천천히 벗겼다.
‘오늘 일로 인해 독사 보듯 대한다면 할말이 없어. 하지만 너
와 하나라는 일체감을 느끼고 싶어. 당철휘, 그놈에게 더러워
진 몸. 아기조차 가질 수 없는 만신창이 몸이어서 미안해.’
단비하는 눈을 뜨고도 한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어젯밤 일이 악몽처럼 소록소록 생각났다.
연신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을 토해 내던 갈홍아. 그녀는 언제
떠났을까? 얼굴을 마주 대하기가 무서웠는지 모른다. 정갈스럽
게 차려진 아침 밥상만이 그녀가 있었음을 말해 주었다.
‘갈홍아…너는 바보로구나. 그렇게 당하고도 정해(情海)에 빠
지다니. 어쩌자고 나 같은 놈에게 정을 준단 말이냐?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바보…휴우! 그래. 네 말
대로 어제 일은 어제로 잊어라.’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강한 여자니까 그런
일로 흔들릴 리는 없겠지만 당철휘에게 받은 상처와 버금가는
상처를 받았을 게다.
단비하는 갈홍아가 곱게 개어 놓은 하얀 무복을 입었다. 손수
만들었는지 바느질 솜씨가 꼼꼼한…
第 十九 章. 부상(浮上), 떠오르는 의문들
( 一 )
오랜만에 무산은 사람 사는 듯 활기를 띠었다.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무산파를 일으키기 위해서 하나뿐인
손녀가 강호로 나갔음에도 손을 뻗치지 못했다.
설혹 죽는다면 그 아이의 운명…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
어줄 거라는 무산파파의 아집이 대의에 의해 꺾인 것도 큰 변
화였다.
무산파가 직면한 현실은 너무 곤궁했다. 죽어서 선조들을 대한
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한때는 무림의 일각을 지배했던 무
산파, 옛날의 영광을 다시 찾고자 부심하는 사람들을저버리지
못했다.
제갈문이 일으킨 역사는 눈부셨다. 무산파로서는 진정 보배가
굴러 들어온 셈이다. 흩어졌던 문도들이 모이고 새로운 문도가
꾸준히 들어오고…사백여 명에 이르는 문도들이 약재를 채집
하고 독술을 익히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갈홍아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온 것이다.
옛날의 밝은 성격도 되찾았다. 달라진 것이라면 천방지축 동서
구분없이 날뛰던 망나니에서 사고가 깊어졌다는 것뿐. 당철휘
에 대한 복수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언젠가 벌을 받게 되어 있어. 당철휘는 꼭
내가 손대지 않아도 천수를 누리지 못할 거야. 이제 그런 이야
기는 그만해. 그런 인간은 잊어버렸으니까.”
갈홍아는 변해도 너무 변했다. 강호에서 무슨 일을 겪었기에
성품이 저리 변할수 있는지…하지만 바람직한 변화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단비하가 당문을 치려고 해. 도와 줄 방법이 없을까?”
“허허허! 소저가 도와 주라는데 어떻게 거절합니까? 도와줘야
지요. 어차피 사천에서 당문과 공존하려면 그에 걸맞는 실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무림이란 이상한 곳이라서 실
력이 없으면 철저히 무너뜨리지만, 만만치 않다 느끼면 가만히
내버려두죠. 그게 무림의 생리랍니다.”
제갈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당문에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 미미한 실력이지만 한번쯤
공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당문 십절이
고수들을 이끌고 온다면 멸문은 피할수 없는 일. 그러기 전에
독사는 죽더라도 그냥 죽지 않는다는 점을 일깨워야 한다는 생
각.
무산파파와 무산이괴에게 반대 의견이 있을 수 없었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야지만 그들은 제갈문을 친형제처럼 신뢰했다.
그러나 사망산검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무산파의 일이라 끼여들긴 뭐하지만 그래도 친구니까…현재
무산파의 실력으로 당문을 친다면 벌집을 건드리는 것밖에 안
됩니다. 당문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조금 더 실력을 쌓
는 것이 좋습니다. 단공자는 사리가 분명한 젊은이입니다. 그
런 그가 무턱대고 당문을 치지는 않겠지요.”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애써 벌통을 건드릴 필요가 있는가.
중인들의 눈은 갈홍아에게 향해졌다. 오랜만에 밝은 성격을 찾
았는데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해서 심기를 건드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담고…
“단비하는 우리가 도와 주든 말든 당문을 칠 거야. 정면으로
안 된다면 침입을 해서라도 복수는 할 사람. 그는 어느 길로
가든 당기룡이란 사람을 겨누고 있어. 된다면 좋고 안된다고
해도 할 수 없어.”
갈홍아는 의외로 순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변한 성품이
단비하에 의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었는
데 이경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걱정스런 낯빛을 감추지
않았다.
‘혹시 그가 잘못되는 날에는…’
금방이라도 눈물보가 터질 듯 울먹였다.
단비하가 떠난 후 이경화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무슨 생각
을 했는지 하루 온 종일 태청검법과 사망산검의 수련에 몰두했
다. 마치 무귀(武鬼)가 몸에 달라붙은 듯 밥 먹는 시간에도 손
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 검의 수련이 유일한 낙처럼 비쳐졌다.
그래서 단비하를 잊은 줄 알았는데.
“호호호! 언니는 단비하가 그렇게 좋아? 야아…이제는 아예
내놓고 좋다고 말하는데? 역시 사랑에 눈이 멀면 세상에 보이
는 것이 없다고 하더니만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니까.”
“동생!”
빽 소리를 지르는 이경화의 볼은 능금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낄낄낄!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뭘 숨기냐? ‘낭군
님의 안위가 염려되니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하면 될걸 안그
래?”
“백부(伯父)! 정말 놀리실 거예요?”
독사우공의 짓굿은 농담에 이경화는 엉겁결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사망산검과 독사우공이 의형제를 맺었으니 당연히 백
부가되는 셈이다. 독사우공은 새로 생긴 조카를 갈홍아만큼이
나 사랑했다.
“허허! 경화야, 어른들 계신 곳에서 자중하지 못하고…”
“낄낄낄! 내버려 둬. 자네는 사랑할때 위아래를 구분했나?”
“어허! 내 참…왜 화살을 나한테 돌리시오?”
“자식을 보면 아비를 안다고. 자식이 저 모양일진대 자네는 어
떻겠어? 안봐도 훤하다 훤해.”
“백부, 정말 나빠요.”
이경화는 눈물 머금은 눈으로 독사우공을 흘겨보고는 달음질쳐
나갔다. 하루 온종일 무공을 생활화해 온 그녀의 신법은 경쾌
하기 이를데 없었다.
“엇! 언니의 무공이 놀랍게 발전했네.”
“홍아야. 너도 이 소저를 본받아 부지런히 무공을 연마해라.
손녀라고 장문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야. 심성이 올바르고 무
공이 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문이 될 수 있어.”
“피이! 나는 장문 같은 것 안해. 그냥 이대로가 좋아.”
갈홍아는 혀를 날름거리고 이경화가 뛰어간 방향으로 쫓아나갔
다.
“휴우! 한시름 덜었네.”
무산파파는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기분을 맛봤다.
“낄낄낄! 여보게, 제갈 선생 당문을 치되 벌떼가 움직이지 않
는 방법은 없나?”
“허허허! 왜 없겠습니까? 당문은 지금 청성에 대하여 차도살인
(借刀殺人)을 하고 있습니다. 청성파로서는 당문 짓임을 빤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죠. 똑같은 방법으로
당문을 치는 겁니다. 먼저 구파일방에 사람을 보내 무산이 정
식으로 재기했음을 알려야 합니다. 정도문파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당문이 칠 수 있는 빌미를 없애는 겁니다. 그다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지요.”
“자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한치의 틈도 있어서는 안
되네. 문도들의 희생도 없어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