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물의 지배자 (2)
“그런데 이거 주위 사람들에게도 안전한 겁니까?”
1회용 신화급 스킬 아이템. 물의 지배자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가지고 있으니 사용 시 영향력이 장난 아닐 것이다. 예림이야 아이템 사용자니 괜찮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문제다. 잘못 휘말리면 뼈도 못 추릴 거 같은데. 은혜로도 십여 분밖에 못 버티지 싶고.
[사용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겠죠. 순간적으로 힘에 취해 버릴 수는 있으니 허니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겐 주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내가 예림이에게 잘못한 게 있던가. 딱히 없는 거 같다. 유현이는 혹 모르니까 내가 몸으로라도 막아 주고 성현제는 알아서 잘 살아남겠지.
“두 세력과 던전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말해도 될까요. 던전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것 정도는 알려도 되겠죠.”
지난 3년간만 봐도 초기보다 상급 던전의 수가 더 늘어나긴 했으니까.
[우리와 효도중독자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 않는 게 좋아요.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된다 하더라도 최대한 둘러 표현하세요. 많이 알게 될수록 허니의 세계가 가지는 반발력이 약해져 개입하기 쉬워지거든요. 경계심이 많아 낯선 사람을 절대 집에 들이지 않지만 TV에서 자주 보는 연예인이면 분명한 남인데도 반기고 마는, 그런 것이라고 할까요.]“그럼 도마뱀 주인은 왜 입단속을 한 겁니까? 알릴수록 좋을 거 같은데.”
[간단해요. 그들은 우리보다 약합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지 않았다면 이미 깨끗이 정리했을 거예요. 서로의 개입 가능한 힘이 강해지면 갇힌 채로도 디아르마 정도는 붙잡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대신 그땐 허니의 세계도 부서지고 말겠죠. 효도중독자들은 그들의 보신을 위해, 우리들은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서로 몸을 사리는 거랍니다.]즉, 둘 모두 우리 세계에서의 영향력이 커지면 둘 다 망해 버리니 서로 조심하는 거라고 볼 수 있겠군.
하지만 이미 회귀에 더해 디아르마가 저지른 짓도 있어 이전보다는 개입 가능한 힘이 커졌다고 인어여왕이 말했다. 그러니 날 위한 던전도 만들 수 있었던 거겠지. 좀비 놈도 제법 큰 선물 따위를 남기고 갔고.
던전과 앞으로의 일을 간략히 주위에 알리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대답한 뒤 인어여왕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신입이 통통 튀며 말했다. 궁금한 거라.
“아까 성현제, 저기 저 남자에게 아는 척하던데 회귀 전의 일 맞지?”
배구공에 그려진 얼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
[잘은 몰라요. 체인과 접촉한 건 초승달이었는데 잠들어 버렸거든요.]성현제는 체인이냐. 그런데 왜 나는 허니야. 나랑 꿀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물방울이나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 건가.”
[네. 그때는 아직 허니 세상의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기 힘들었거든요. 초승달이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체인이 도마뱀 주인과의 계약을 끊는 데 도움을 준 건 확실해요. 그 밖의 거래도 있었을 거 같지만 체인은 허니의 회귀에 휘말렸고 초승달은 자고 있으니 알 수 없어요.]대체 회귀 전에 뭔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저 인간. 도마뱀 새끼와 관계 끊은 거 보면 나름 세상을 구하려고라도 했… 음, 너무 안 어울린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겠지. 그냥 단순히 지겨워졌다거나 뭐 그런.
“별로 도움이 안 되네. 대신 너도 뭔갈 내놔.”
[네?]“뭐든 도움이 될 만한 걸 내놓으라고. 스킬이든 아이템이든. 화 속성 없냐? 아니면 치유계도 좋고. 아무튼 내놔.”
배구공을 잡고 탈탈 흔들었다. 죄책감을 덜든 뭘 하든 애들 줄 거 내놔라.
“네가 준 거 아니잖아. 너도 내놓고 잠이나 자러 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하니 나무 빼고 사슴과 늑대도 털어야지.
[저까지 잠들면 시스템 관리하기 힘들어져요!]“…그걸 깜박했네. 그럼 다른 식으로라도 어떻게든 도움을 줘.”
[두꺼비 잡았을 때 맞춤형 아이템 줬잖아요. 앞으로도 허니랑 있을 땐 아이템이나 스킬 맞춰서 줄게요. 그 정도는 가능해요.]“나와 있을 때만?”
[연결된 건 허니뿐이니까요. 기본적으론 자동으로 주어져요. 시스템이 알아서 돌아가고 우리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만 하는 거죠. 하지만 허니가 있는 던전은 상대적으로 개입하기 쉬워서 보상 아이템 정도는 골라 줄 수 있거든요.]그럼 앞으로 S급 던전 공략 때마다 따라가야 하나. …그러기엔 애들 키우기도 바쁘니 S급 신규 던전 공략 정도에나 따라가자. 아니다, S급 상급 던전은 한 번 돌까. 전부 다 데리고 빠르게 공략하면 각자에게 맞는 S급 이상 템이나 스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맞춤형 템 스킬 잊지 말라고 한 번 더 확인받은 뒤 배구공을 놓아주었다. 신입이 으앙거리며 통통 튀어 도망쳤다.
[10분 뒤에 원래 던전으로 돌아갑니다!]도망치는 배구공을 몇 발 쫓아가던 예림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눈이 반짝거릴 정도로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뭐예요, 저건? 여긴 또 어디고요? 몬스터도 없고, 일반 던전이 아닌 거 같은데.”
“나도 궁금하군.”
“유현아, 설명 안 해 줬어?”
내 물음에 유현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형에게 해 입히는 거 아니니까 신경 끄, 쓰지 말라고 설명했어.”
설명이 너무 간략하구나. 두 사람에게 여긴 시스템 관리자와 접촉하기 위한 곳이고 도망친 배구공이 시스템 관리자라고 말해 주었다. 효도중독자에 대해 알고 있는 성현제는 짐작하고 있던 눈치고 예림이는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와, 시스템 관리를 배구공이 하고 있었다니!”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이다.”
“역시 세상은 둥그네요!”
…웬 엉뚱한 소리야. 아무튼 시스템 관리자와 이곳에 대해선 최소한의 사람들에게만 말해 줘야 할 것이다. 성현제야 이미 관련이 깊고 예림이는 받은 스킬 때문에라도 설명을 해 줘야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노아와 리에트도 효도중독자에 대해 들었으니 알려 줄까. 일단 좀 더 두고 보자.
“예림아, 이건 담긴 스킬을 딱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야.”
인어여왕이 준 보석을 예림이에게 내밀었다. 자기 귀걸이 보석과 비슷하다며 아이템을 받아 든 예림이가 또다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거! 등급이!”
“지금 쓰진 말고. 잘 들어.”
“어, 근데 창랑의 인어여왕이면 제 귀걸이! 혹시 시스템 관리자세요? 그래서 이런 엄청난 스킬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그래, 맞아. 진정 좀 하고 내 말을—”
“인어여왕님! 귀걸이 잘 쓰고 있어요! 근데 완전 대단하시다! 지금부터 팬 할게요!”
진정해라, 10분도 안 남았다. 와와거리던 예림이가 돌연 창의 창대와 날이 연결된 장식 틈에 보석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야, 그러다 부서질라!”
“제 창 튼튼해요. 여기 넣으면 딱일 거 같은데. 됐다!”
틈에 끼워 넣어진 보석이 예림이 말대로 맞춘 듯 어울리기는 했다. 그래도 명우한테 부탁하지 마구잡이로 넣어 버리냐.
“…이제 내 말 좀 들어 봐.”
“네!”
대답은 잘해요. 몸을 굽혀 예림이와 눈을 맞추고 설명했다.
“예림아, 스킬이란 건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 익힐 수도 있어. 요리나 악기 연주 같은 것처럼.”
“그런 거랑은 다르지 않아요? 요리나 연주는 배우지 않아도 시도는 할 수는 있잖아요. 다 태워 버리거나 이상한 소리가 나겠지만. 하지만 하늘을 나는 건 못 하죠.”
“악기 연주도 악기가 없으면 못 하지. 요리도 불이나 도구가 없으면 못 하고.”
스킬은 마력이라는 기본 도구가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 그것도 지닌 마력의 소질이 해당 스킬에 적합해야 제대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북으로 피리 소리를 내거나 냄비로 고기를 자르는 건 힘드니까.
“네 소질은 이 스킬에 적합해. 물론 그것만으로 스킬을 바로 배워 낼 수는 없어. 하지만 예림아, 넌 이미 비슷한 속성의 스킬을 가지고 있잖아? 물의 지배자. 인어여왕의 능력을 익히고 그 마력의 흐름을 느껴서 네 스킬에 적용하는 거야.”
“…전혀 다른 스킬인데 그게 가능해요?
“가능해. 스킬에, 시스템의 설명창에 묶이지 마. 네가 가진 힘이야. 전혀 다른 거면 뭐 어때. 냄비를 쳐서 소리 낼 수 있고 북채로 고기를 두드려 연하게 만들 수 있잖아. 그에 비하면 넌 피아노를 위한 곡을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차이 정도일 뿐인걸.”
예림이가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내 설명이 제대로 된 건지 모르겠다. 디아르마의 기억에 의존해 주워섬기고는 있는데…….
“시스템은 잠시 잊어. 네가 다루는 능력 그 자체만 바라봐.”
“잘은 모르겠지만 해 볼게요!”
예림이가 힘차게 대답했다.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게 아쉽다. 그래도 아무것도 못 느끼지는 않겠지.
고개를 들자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의 유현이와 성현제가 보였다. 유현이도 정령을 제대로 다루려면 스킬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름은 지어 줬으려나 몰라.
성현제는… 그냥 두기 아깝긴 아까운데, 젠장. 저 인간까지 내가 챙겨 줘야 해? 알아서 잘 강해지지 않을까. 유현이가 두 배쯤 더 강해지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곧 원래의 던전으로 바뀌게 될 겁니다. 대비들 하세요.”
잠시 사용 중단했던 팔찌를 다시 썼다. S급 수준 정도로.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현이와 예림이가 내 팔을 한쪽씩 붙잡았다.
“조심해, 형.”
“물 쏟아지면 떠내려가 버릴지도 몰라요.”
“나는 어딜 잡아야 하나. 목?”
그냥 가만히 계십쇼.
삼 분여쯤 지났을까, 눈 덮인 숲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해 나타난 것은 끝없이 새하얀 공간이었다.
맑은 물이 발목 높이로 찰랑찰랑 차오르고 다양한 크기의 물방울이 공중을 둥둥 떠다닌다. 일반적인 던전과는 다른 이질적인 풍경이었다.
“그럼 아저씨, 묶죠!”
“…응?”
“손목 말이에요. 줄 가지신 분?”
내가 묶겠다곤 했지만 진짜로 묶게? 예림이의 말에 성현제가 대뜸 수색자의 사슬을 꺼내 들었다. 미쳤나.
“튼튼함은 보장하지.”
이어 유현이가 꺼내 든 건 웬 가죽 줄이었다.
“피스용 고삐인데 사이즈 조절 가능해.”
“어느 게 좋아요, 아저씨?”
“둘 다 싫어. 어차피 내가 튀어나가 봤자 한 발짝 내로 붙잡힐 텐데 묶을 필요까지 있냐.”
내 말에 예림이가 아쉬워하며 훌쩍 날아올랐다. 아니 왜 아쉬워해.
“이 물방울들은 뭘까요?”
“함부로 건드리지 마.”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예림이의 손이 사과 알만 한 물방울에 가 닿았다. 물방울이 퐁, 하고 터지고 동시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어, 이거!”
“괜찮아?!”
“아이스크림 내기 이겼을 때 기억… 인데요?”
뭐? 기억? 성현제도 근처에 있던 축구공만 한 물방울을 건드려 보곤 눈썹을 슬쩍 올렸다.
“열네 살 즈음인가. 어릴 때의 기억이군.”
어릴 때라니, 뭔가 상상이 잘 안 간다. 그보다 떠다니는 물방울을 만지면 과거 기억을 볼 수 있는 건가?
“앗, 이건 아저씨 처음 만났을 때다! 이건 봄 소풍!”
“그만 만져, 예림아! 그러다 나쁜… 기억이라도 떠오르면 어쩌려고!”
회귀 전의 기억까지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둥둥 떠내려 오는 물방울을 피하는데, 유현이도 손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니 다들 왜 이래. 그래도 미소 짓는 거 보니 나쁜 기억은 아닌 모양이지만.
‘그 좀비, 확실히 정신계 쪽 능력을 지닌 모양이군.’
거기에 물인가. 인어여왕이 물의 지배자 스킬을 준 거 보면 이 물은 환상이 아닌 진짜겠지.
“아저씨도 만져 봐요!”
“됐거든.”
하지만 제멋대로 떠다니는 물방울을 전부 피하기는 힘들었다. 등 뒤에도 눈이 달린 건 아니다 보니 철벅, 팔꿈치에 닿은 물방울 하나가 터져 나갔다.
이어 눈앞에 떠오르는 풍경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단단히 여민 코트 차림에 귀와 볼이 살짝 발간 동생이 나를 보고 미소 짓는다.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오늘 형 생일이잖아.’
짧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예림이가 자꾸만 물방울을 만져 보는 이유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다! 트리 예뻐!”
…하나만 더 만져 볼까. 좀비 놈, 사람 정말 잘 홀리네. 그래도 별문제 없는 거 같으니까 딱 하나만 더.
손을 뻗어 가까이에 있는 물방울을 터뜨렸다.
그리 넓지 않은 거실이 보였다. 그 가운데 서서 날짜를 확인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동생의 생일이었다. 하지만 집 안은 차갑게 조용하고,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당황하며 눈을 감는 순간, 예림이가 소리쳤다.
“거짓말이야!”
“예림아!”
쏴아아— 한기가 퍼져 나갔다. 떠다니던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얼어붙고 아래로 떨어진다. 예림이가 자신이 얼린 물 위로 힘없이 내려서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여기까지 물이 얼지는 않았기에 얼른 예림이에게 달려가 끌어안았다.
“괜찮아, 그냥 옛날 기억일 뿐이야. 지나간 거야. 생각하지 마.”
예림이의 얼굴은 울 것 같았지만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대신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내 가슴에 머리를 박듯이 기대어 온다.
망할 좀비 새끼, 악질이네. 방심하게 해 놓고서 뒤통수를 치다니.
“네가 받은 스킬로 전부 쓸어버리자. 하나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네.”
예림이를 토닥이며 조용히 이를 갈았다. 도마뱀 새끼에 이어 이번에도 치 떨리게 만들어 주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