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특등급 미끼 (3)
납치 계획을 세우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행복한 햄스터네’였다. 장사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허름한 햄스터 전문 펫샵. 그곳에 도하민이 있었다.
알고 보니 흥신소는 부업이고 본업은 펫샵이란다. 부업으로 번 돈을 본업이 죄다 잡아먹고 있었지만. 겉보기와 달리 내부는 햄스터 위주로 깔끔하게 꾸며 놓은 가게에서 도하민을 붙잡았다.
‘난 그냥 사람 찾는 거 좀 도와줬을 뿐이야!’
라고 소리치는 그를 구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생을 덜 해서인지 내가 알고 있던 도하민보다 훨씬 말랑말랑하니 겁 많은 성격인 덕이었다.
‘너, 이미 너무 많이 알려졌어. 이대로 가면 머잖아 목숨 걱정해야 할걸.’
회귀 전 도하민이 내게 말해 줬던 수난들을 바탕으로 그를 노리게 될 몇 명을 들먹거리자 녀석의 안색이 금방 창백해졌다. 내 밑으로 들어오면 보호는 물론이고 월급도 만족할 만큼 챙겨주겠다는 말에 도하민은 길게 고민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빌딩에 펫샵 내게 해 주면.’
일반인은 드나들기 힘들다고 했지만 인터넷 거래가 주니까 상관없단다. 햄스터 용품을 노마진에 가깝게 판매하고 있다나. 그 뒤 완전히 마음 놓은 도하민으로부터 다양한 햄스터의 매력에 대한 열변을 한참 동안 들어야 한 건 고역이었지만, 별 어려움 없이 그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것 좀 드실래요?”
도하민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있겠지. 명우가 면회 오면서 가져다준 도시락 통을 가리키며 묻는 말에 송태원이 덤덤히 대답했다.
“사양하겠습니다.”
“맛있는데.”
저녁이야 이미 먹었고 남은 건 주전부리뿐이다. 그마저도 반쯤 비웠지만. 명우가 만들어 준 거야 다 맛있지만 특히 약과가 끝내줬다. 송태원 입에 물려 주면 저 돌처럼 굳은 얼굴도 조금쯤은 녹아내리지 않을까.
“과하게 마음 편해 보이는군요. 한유진 씨 자체가 목적이라 직접적인 위해를 가해 올 일은 없다 해도 긴장을 늦추진 마십시오.”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저한테 유감 좀 쌓이셨을 텐데, 친절하시네요.”
“유감 같은 건 없습니다. 제 직책상 한유진 씨의 신변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목석같은 대답이다. 취조실에서의 대화 이후로 어째 나한테 더 딱딱하게 구는 것 같았다. 송태원은 정중하고도 사무적인 태도로 조심하라는 인사를 남긴 뒤 자리를 떠나갔다.
마지막 남은 약과를 입에 넣으며 십자말풀이를 하고 있을 때, 닫혀 있던 문이 다시 열렸다. 말속에 뼈가 있다, 이게 뭐였더라.
“한유진 헌터, 외부 사정상 다른 구치소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수용실 안으로 들어선 남자가 말했다. 복장은 구치소 소속 헌터 정복이다.
“슬슬 이 방과 정들 참이었는데 아쉽군요. 그런데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일하시는 겁니까?”
“사건사고에는 낮밤이 없으니까요.”
“그것 참 수고가 많으십니다.”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내게 수갑을 내밀어 왔다. 순순히 양손을 내어주며 입을 열었다.
“제 동생, 해연 길드장 한유현 말이에요. AB형입니다. 전 B형이고요. 그쪽은 혈액형이 뭡니까?”
남자가 웬 실없는 소리냐는 표정을 짓고, 이어 저주 저항이 발동되는 게 느껴졌다. 한유현의 혈액형을 남에게 알려 주지 말 것. 작성한 계약서들 중 첫 번째 것의 조건이었다.
1번 계약서 파기의 뜻은 ‘납치범들이 찾아왔다’.
저주 저항을 바탕으로 한 통신 수단으로 계약서를 이용한 것이었다. 전화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언제든지 내 상태를 유현이에게 알릴 수 있도록. 혹 잊어먹을세라 계약서 목록을 적은 쪽지도 인벤토리에 넣어 놓았다. 저주 저항 덕에 인벤토리 봉인도 안 통하니까.
‘평생 쓸 계약서를 다 쓴 기분이었지…….’
대가가 중첩되어선 안 되기에 별의별 걸 다 걸었다.
“가시죠.”
밖으로 나가는 도중에 다른 헌터와도 마주쳤지만 하나같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헌터용 구치소 특성상 경비 수가 적긴 했지만 그래도 죄다 무반응이라니. 내가 옮겨가게 되었다고 거짓 통보를 받은 걸까, 아니면 다 한통속인 걸까.
부디 전자이길 바란다. 썩어도 적당히 썩어야지.
* * *
노아 루히르는 소리 없이 밤의 하늘을 가로질렀다. 화려한 황금색 비늘은 어둠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은신 스킬이 있었다. 디오 발쉐시스의 쌍둥이 칭호 스킬 중 하나인 안개 속의 용. 시전자의 모습을 흐릿하게 만들어 줘 A급 헌터의 감각도 속일 수가 있었다.
[지금 막 구치소를 빠져나갔어요.]노아의 귀에 걸린 얇은 헤드셋에서 도하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린 안개를 휘감은 드래곤이 구치소 상공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았다. 그의 눈에 도로로 들어서는 차 한 대가 비춰졌다.
– 발견했습니다.
차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지만 노아는 날개를 가볍게 한 번 흔드는 것만으로 금세 따라잡았다. 번호판을 확인해 알려 준 뒤 계속해서 그 뒤를 쫓았다. 한적한 길가에 차가 멈추고, 대기하고 있던 다른 차로 갈아탄다.
한유진의 모습이 나타나자 노아는 무심코 머리를 작게 움직였다. 얼마든지 낚아챌 수 있건만 눈앞에 두고도 참고만 있으려니 초조함이 비늘을 간지럽혀 왔다.
– 다른 차로 옮겨 탔습니다. 차량번호 ○○우 ○○○○. 다시 출발합니다.
한참을 달리던 차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공항이었다. 후미진 곳에서 멈춰 선 차로 외국인 여자가 다가갔다. 그녀가 한유진의 팔을 잡은 직후,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 순간이동 스킬을 쓴 듯합니다!
[잠시만요, 북동쪽으로 약 300미터. 그리고 다시—]도하민의 지시에 따라 노아가 움직였다. 실내로 들어간 것인지 공중에서는 한유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노아가 다시 두 사람을 발견한 것은 전용 비행기 옆이었다. 노아는 얼른 비행기의 표식을 알려 주었다.
– 출발 준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이대로 따라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한유현의 목소리였다. 금빛 용이 비행기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 * *
범죄 저지르기 좋은 세상이다.
등급 잘 받고 각성하면 힘 강해져, 유용한 스킬도 생겨. 그걸 휘두를 대상인 일반인들도 넘쳐나니 어긋난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법도 했다.
만약 던전 없이 각성자만 나타났더라면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던전이 각성자들의 욕구를 채워줬다고 하여 각성자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순간이동은 구린 짓에 쓰기 참 좋은 스킬이긴 하지.’
공간이동이 최고긴 하지만 이건 도깨비 외엔 가진 사람을 본 적 없다. 순간이동만 되어도 증거 남기지 않고 나쁜 짓 하기 충분하고.
나를 비행기까지 데리고 온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빨리 출국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한국을 뜬다고 해도 해상을 통할 줄 알았지 전용기라니. 준비 많이 해 놓으셨네. 비행기 안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너른 좌석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자 헌터를 바라보았다.
“저기, 어디로 가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홍콩이요.”
그리 멀지는 않구나. 홍콩이면 윤윤의 초장거리 게이트로 한 번에 올 수 있는 거리던가? 노아가 따라오기로 했으니 위급 시엔 그의 도움을 받으면 되긴 하지만.
‘은혜에 귀걸이 방어막 스킬도 있고.’
귀걸이를 빼앗으려는 것을 유사시에 날 지킬 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막아 냈다. 은혜는 인벤토리에 넣어 뒀다가 몸수색 후 슬쩍 꺼내 발목에 차고 옷으로 감추었다.
주눅 든 척 얌전히 앉아 있자니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해외여행이 납치라니.’
여권도 없는 불법 입출국이다. 돈도 한 푼 없고. 계획상으론 3일 정도 납치되어 있기로 했으니 여유 생기면 기념품이라도 사 가고 싶은데. 돈 빌려달라고 해 볼까.
졸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이 비행기가 착륙했다.
홍콩은 던전 브레이크 피해가 큰 곳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도 상급 헌터의 상당수를 중국 본토에 강탈당한 탓이 컸다. 상급 던전 관리가 제대로 안 되니 몇 번 터져 나갔고, 땅덩어리도 작다 보니 그때마다 도심지가 걷잡을 수 없이 파괴되었다.
그런 불안정성 때문에 경제 수준도 급속도로 하락한 상태였다. 반중 감정도 던전이 나타나기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고 들었다. 그럴 만하지.
“어서 오십시오, 한유진 헌터.”
비행기에서 내려서자 인상 좋은 중년 남자가 활짝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뭐지, 이건. 납치 피해자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심지어 수갑도 바로 풀어 주었다. 인벤토리 봉인 팔찌는 채웠지만.
“헨리 그렉슨입니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그렉슨 씨가 악수를 청해 왔다. 뭐냐, 진짜.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왕이면 마음 편히 가지십시오.”
“…아, 네.”
마음 편히… 납치범 새끼가 대체 뭔 개소리야.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도 걸리라는 건가. 검문도 없이 공항을 빠져나가자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서비스 정신 가득한 미소와 함께 차 문을 열어 준다.
…관광하고 싶다고 하면 풀코스로 안내해 주다 못해 여비까지 챙겨 줄 분위기인데. 뭐지. 애들 줄 기념품 사야 하나.
“솔직히 상당히 당혹스럽습니다만, 저는 납치된 거고 그렉슨 씨는 납치범… 맞으시지요?”
나와 함께 리무진에 탄 그렉슨 씨가 허허 웃었다. 물론 그 혼자는 아니고 경호원쯤으로 보이는 헌터도 동승했다.
“한유진 헌터가 스탯 C급만 되었어도 그리 온화한 분위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굳이 핍박할 필요는 없지요.”
그러면서 그렉슨은 자신을 각성자 매니저라고 소개했다. 주로 빈곤한 개발도상국에서 쓸 만한 각성자를 찾아 내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냥 인신매매 아닙니까?”
“중개 수수료가 약간 비쌀 뿐이지요. 한유진 헌터의 수수료는 역대 최고가가 되지 싶어 기대가 큽니다.”
할 말은 많은데 할 말이 없네. 정말 대단히 뻔뻔하시군요. 이 새끼 죽이고 집에 가고 싶다. 당장이라도 노아를 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놈에게 물었다.
“그럼 그렉슨 씨가, 절 납치한 주모자입니까?”
“그럴 리가요. 아쉽지만 이번에는 진짜 중개인입니다. 물건을 입수, 배송해 준 사람은 따로 있지요.”
이놈이 아니구나. 역시 협회와 관련된 내국인인 모양이다. 지금쯤 해연과 세성에서 꼬리를 차근차근 밟아 가고 있겠지.
파괴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 거리를 지나, 리무진은 으리으리한 호텔 앞에 멈춰 섰다. 천장도 바닥도 번드르하게 빛나는 로비에 들어서자 더더욱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상상한 건 이런 게 아닌데. 아니 뭐, 살벌한 감옥보다야 5성급 호텔이 더 좋긴 하지만.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푹 쉬십시오.”
혹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 말하라며 노예상 놈이 웃었다. 그럼 통신 가능한 스마트폰을 달라고 해 봤지만 그건 안 된다며 거절했다.
이어 안내된 곳은 뷰가 죽여주는 최고급 스위트룸이었다. 내 첫 5성 호텔 스위트룸이 납치 감금 장소라니. 인생사 정말 앞날을 알 수가 없구나. 유현아, 형은 편하게 잘 지낼 거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머무시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경비는 문 앞에 세워 두겠습니다. 호텔 서비스는 마음껏 이용하십시오. 수영장이나 피트니스클럽, 라운지 등의 시설 이용도 물론 가능합니다.”
“예… 에.”
시발, 감사하다고 말할 뻔했다. 노예상은 재차 편히 쉬라며 말하곤 방을 빠져나갔다. 아니 진짜 혼자 남겨 두는 건가? 물론 나 혼자 힘으론 도망 못 치겠지만 그래도 이게 뭐야.
노아가 근처에 와 있나 싶어 테라스로 나가려 했지만 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다. 몇 번 밀고 당겨 보다 포기하는데 유리문 너머로 종이 한 장이 찰싹 달라붙었다.
[괜찮아요?]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애의 작품처럼 삐뚤빼뚤한 글자였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노아구나.
‘괜찮아요. OK.’
감시카메라 정도는 있지 싶어 입만 벙긋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 여기 있어요.]여기 있다고? 음, 설마 테라스에서 지키고 서 있겠다는 건가. 그냥 자러 가지. 뭐라 말은 못 해 주고 웃어라도 주었다.
소파로 가서 쿠션으로 손을 가린 채 인벤토리에서 틸리라 가지를 꺼내 뚝 부러뜨렸다. 유현이가 준 틸리라 가지를 부러뜨리지 말 것. 다섯 번째 계약서의 조건이다.
저주 저항이 발동되었다. 계약서의 뜻은 나는 잘 있어, 무사해였다.
* * *
다음 날 아침, 비싼 방이니만큼 편하긴 했기에 푹 잘 자고 일어난 내게 손님 하나가 찾아왔다. 여기서 마주칠 줄 몰랐던 낯익은 얼굴이.
“…댁이 왜 여기 있습니까?”
“투숙객이네만.”
세성 길드장님이 말했다. 뭐라는 거야, 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