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이끌리는 (2)
마수는 바위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이 부근에는 마땅한 먹이가 없었다. 뜨거운 피와 살보다는 마석에만 이끌렸기에 놈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잠에 빠져드는 것을 택했다.
그러기를 수개월, 드디어 먹을 만한 것들이 나타났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허기를 채울 정도는 되었기에 마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굳은 몸이 느리게 활기를 되찾아가는 그때.
– 그르르르.
무언가를 느낀 놈이 만족스런 목울림 소리를 내었다. 새로운 먹잇감이 감지된 것이었다. 그것도 주위에 널려 있는 자잘한 먹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짙은 마력이 농축된 마석이었다. 보통 그 정도 마석을 품은 상대라면 되레 이쪽이 먹이로 전락하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먹음직스러우면서도 터무니없이 약한 먹잇감이다.
마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를 드러냈다.
* * *
던전 브레이크는 단계별로 이어진다. 몬스터가 한 번에 쏟아져 나오진 않고 층별, 종류별로 나뉘어 차례로 등장했다. 다만 순서는 랜덤이라 마지막 층이나 보스 몬스터가 먼저 나오기도 했다.
주택가는 조용했다. 모든 불이 꺼졌다. 대피는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몬스터를 자극하는 소리나 빛은 없었다. 대신.
펑, 퍼엉!
바리케이드가 둘러쳐진 안쪽으로 폭음과 빛이 연신 터져 나왔다. 어느 헌터가 득시글대는 몬스터 속으로 들어간 건진 모르겠지만 무사하길 바란다. 운 좋게 근처에 있었던 A급쯤 되기를.
“붉은 픽스 벌, A~B 사이로 B급의 비율이 더 높은 듯합니다.”
외곽에 흩어져 있던 커다란 늑대만 한 벌 몇 마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꽁무니의 창과 같은 침을 앞세우며 순식간에 덮쳐들었지만,
콰득.
송태원의 손이 벌침을 잡고 그대로 꺾어 부러뜨려 버렸다. 거의 동시에 다른 쪽 손이 날개를 찢으며 마디진 몸뚱이를 비틀어 내던진다.
퍽!
강하게 던져진 벌이 접근하던 동료와 부딪혀 둘이 함께 터져 나갔다. 이어 부러진 벌침 또한 쏘듯이 날아가 또 다른 벌을 꿰뚫었다. 별다른 스킬이나 무기를 쓰지도 않고 순식간에 세 마리를 땅으로 추락시켰다.
하체는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다. 하급 헌터쯤은 단숨에 두 동강 내고 찔러 녹여 버릴 괴물을 장난처럼 가볍게 처리해 버린다.
“일반 몬스터 등급만 보면 A급 던전 브레이크가 맞는 듯한데.”
구름처럼 모여 있는 벌떼를 가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숫자상 최소 중위에서 어쩌면 상위 급까지 되겠군요. 1층인지 2층인지는 모르겠지만 보스는 여왕벌일 겁니다. 수벌 여럿과 등장할 테고요. 꿀과 벌집이 주 수익원인 던전이었겠죠. 비싼 재료거든요. 역추적해 보면 던전 소유자를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물량이 그리 많이 나오진 않았을 터다. 꽤 귀한 걸 터뜨리셨네. 무사히 수습해서 터진 게이트 되돌려 놓으면 금방 피해보상액 채울 가치의 던전이다.
“그럼 스킬을—”
[상대방이 거부하였습니다.]또 보네, 이 메시지. 송태원이 스킬을 공유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치 않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느 상급 헌터라면, 그냥 일반인이라 해도 제 힘을 강하게 해 준다 하면 호기심에서라도 받아들였을 텐데. 자신의 스킬이 얼마나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지 궁금할… 리 없겠지, 이 사람은.
“그래도 이건 받아들이세요. 비행 스킬 없으시잖습니까.”
비행 스킬 걸어 줄 헌터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선생님 스킬을 노아와 송태원에게 걸었다. 동시에 송태원으로부터 약간의 반발이 느껴졌다. 성현제에 비해 존재감은 적었지만, 부담은 되레 더 크게 느껴졌다. 감각 공유를 받아들이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의식중에 거부감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노아 씨, 부탁할게요.”
– 네. 독을 쓰면 빠를 텐데.
그야 그렇지만 하필 독충에 비행형이라 독에 당한 채 즉사하지 않고 민가로 도망치기라도 하면 대참사다. 진짜 위험할 때 아니면 절대 쓰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
외곽을 돌던 노아가 몸을 틀었다. 송태원이 단검을 꺼내 들며 활시위 당기듯 팔을 젖혔다. 팔의 근육에 단단히 힘이 들어간다. 옷을 찢기라도 할 듯 도드라졌다가, 단검을 벌떼를 향해 던진다.
콰즈즉—
희미한 푸른빛을 휘감은 단검이 수십 마리의 벌을 일직선으로 휩쓸었다. 마치 SF영화의 레이저 광선이라도 발사한 것 같다. 벌을 꿰뚫고 찢으며 나아간 단검이 날카로운 곤충의 턱을 부숴 박히며 멈추었다.
후드득, 약 맞은 모기떼처럼 시체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사이 노아가 벌떼 가까이 다다랐다.
– 우우웅.
합창과 같은 웅웅거림이 귀를 때린다. 순식간에 몰려드는 벌떼를 바라보며 송태원이 무릎을 가볍게 굽혔다.
“가겠습니다.”
그리고 터엉, 노아의 등판을 강하게 박차며 벌떼 속으로 파고든다. 단순한 몸의 부딪침만으로도 태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산산이 조각나는 벌들. 조금 전도 지금도, 일반인의 눈에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광경일 것이다.
– 유진 씨, 제가 잡을게요!
노아가 몸을 빙글 회전시켰다. 버티려 들지 않고 그대로 떨어져 나온 나를 비늘 돋친 두 팔이 소중히 감싸 잡아든다. 이어 날개를 빳빳이 펼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벌 무리를 가로질렀다.
콰직, 쿠드득.
노아의 날개에 걸릴 때마다 얼룩덜룩한 붉은 몸뚱이가 동강 난다. 턱으로 물고 침으로 찔러 들려고 시도하지만 A~B급, 그것도 등급에 비해 물리력 약한 독충종이 S급 용의 비늘을 뚫는 건 불가능했다.
노아도 송태원도 몸뚱이만으로도 훌륭한 무기다. 가냘프게 마저 보이는 벌떼들이 우수수 끊임없이 떨어져 내린다.
금색 날개가 급격히 꺾어지며 방향을 틀었다. 아래로 하강하다가 치솟은 용의 등 위로 송태원이 정확히 내려섰다. 그리고 다시 뛰어오른다. 벌을 짓밟아 터뜨리고 솟구쳐, 잔뜩 약 올라 뭉친 벌떼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간 그의 주위로 둥근 파동선이 그려지고.
구그그극—
묵직한 울림과 함께 반경 십여 미터 내의 벌들이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발 디딜 곳을 잃은 송태원에게로 또다시 노아가 재빠르게 날아간다. 선생님 스킬 덕분에 손발이 척척 맞는다.
‘…죽겠네.’
그리고 나는 멀미 중이었다. 피해 무효화 아이템이 고속 이동으로 인한 중력 부하는 막아 주는데 멀미는 못 막아 주는구나. 당연하겠지만.
– 괜찮으세요, 유진 씨?
“…저녁 먹기 전이라 괜찮습니다.”
헛구역질해 봤자 위액밖에 안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지. 다음에는 미리 멀미약을 먹어야겠다. …독 저항 때문에 안 되나. 독 저항이 효과 발휘 못 하는 멀미약 개발해 주세요.
그러는 사이에도 시커멓게 몰려 있던 벌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어 갔다. 비행형이다 보니 바리케이드 너머로 도망칠 것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무리를 빠져나가는 놈은 보이지 않았다. 동료의식이 진한 건가.
– 벌들이 자꾸 절 따라오는 거 같아요.
꼬리를 휘둘러 벌을 박살 내며 노아가 말했다. 그런가, 우윽.
그때 일그러진 형태의 게이트가 빛을 발했다. 보스 나오려나 보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거대한 벌이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났다. 곰의 배쯤 되어 보이는 덩치에 갑옷처럼 단단한 껍데기를 지닌 수벌들. 그 사이로 날카로운 독가시를 온몸에 두른 여왕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재빠르게 떡잎 스킬을 썼다. 전부 A급들이다. 그중 여왕벌의 스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군집의 신뢰, S급. 척 봐도 다수 대상 버프 스킬이다.
“여왕벌에게 집단 버프 스킬 있습니다, 먼저 처리하세요! 덧붙여 쟤들은 비행 못 합니다.”
송태원이 몇 남지 않은 벌을 발판 삼아 뛰어올랐다. 여왕벌의 위쪽으로 다다른 그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진다.
콰과광!
독가시도, 붉은 껍데기도 모조리 짓밟아 부수는 폭력 아래 여왕벌의 몸뚱이에 움푹 커다란 구멍이 났다. S급 헌터라 해도 맨몸이라면 독가시에 약간의 타격은 있을 텐데, 스친 상처 하나 없었다.
여왕벌과 부딪치기 전, 희미하게 나타난 검은 그림자에 보호 효과가 있었다. 상대의 스킬을 흡수한다고 해야 하나.
‘피해 무효화류 스킬인가?’
송태원의 스킬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랭킹전에 참가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헌터 관련 프로그램도 공적인 일 외에는 출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투계인 건 확실하지만.
– 구우웅.
순식간에 처참히 찢어발겨진 여왕벌의 모습에 수벌들이 제 몸을 띄우지 못하는 작은 날개를 벌벌 떨어댔다. 거기에 대답한 것은 여왕벌의 독가시였다. 송태원의 발끝이 부서져 바닥에 떨어진 독가시들을 휘익, 걷어올렸다. 공중에 줄줄이 떠오른 가시들을 부드럽게 이어지는 발길질로 차 날린다.
퍽, 콰득—
수 개의 가시를 전신으로 받아 낸 수벌이 쓰러지고 나머지 놈들이 상대적으로 조그만 인간을 향해 덤벼들었다.
송태원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만, 일단 노아도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십여 마리쯤 남은 벌들이 우르르 노아의 뒤를 쫓아왔다.
“진짜 따라오네요?”
왜지. 같은 비행종이라서인가. 나를 내려놓은 노아가 달려드는 벌을 향해 몸을 돌렸다.
–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활짝 펼쳐진 날개가 강하게 홰를 쳤다. 거친 바람에 얄팍한 날개를 지닌 벌들이 제 몸을 주체 못 하고 뒤집어진다. 일으킨 바람을 교묘하게 조종해 벌들을 한곳으로 모은 노아가 차려진 밥상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혹여 내 쪽으로 올까 싶었는지 깔끔히 모아 단번에 처리한다. 드래곤 모습으로 싸우는 것도 정말 많이 능숙해졌구나.
그때 수벌들 중 한 마리가 돌연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노아가 아닌, 정확하게 나를 향해 날카롭게 갈고리 진 앞발을 뻗는다.
– 감히 어딜!
사나운 으르렁거림과 함께 황금색 긴 꼬리가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내 코앞까지 다가왔던 갈고리가 잘리듯 으깨지고 벌의 머리통을 날카로운 발톱이 꿰뚫었다. 철갑보다 두터운 껍데기가 종잇장처럼 찢어진다.
세 개밖에 남지 않은 다리를 벌벌 떠는 수벌을 눌러 밟은 채로 노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 괜찮으세요?
“네, 그런데…….”
왜 여왕벌을 살해한 송태원을 두고 내게 덤벼든 거지. 약하니까 먼저 처리하려고? 수벌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은 노아가 내 옆으로 바싹 붙어 섰다. 옅은 빛을 띤 눈이 안심하라는 듯 둥글게 휘어진다. 한쪽 날개가 보호하듯 펼쳐지는 그때,
카드득!
– 크읏!
피가 튀었다. 돌연 튀어나온 커다란 짐승이 노아의 가슴을 쥐어뜯듯 할퀸 직후, 내 몸뚱이가 단단히 물려 들렸다. 황금색 용이 피를 흩뿌리며 나뒹구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노아 씨! 윽.”
톱니 같은 이빨은 피부는커녕 옷조차 뚫지 못했지만, 그 주둥이로부터 벗어날 방법도 없었다. 정체불명의 짐승이 나를 문 채 크게 도약하여 단숨에 거리를 벌렸다. 눈앞에 떠오르는 공포 저항 메시지를 바라보며 이거 좀 곤란한데 생각한 순간.
– 캥! 캐애앵!
짐승이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입에서 뱉어진 나도 같이 바닥을 뒹굴었다. 아스팔트에 피부가 쓸려 피가 조금 맺혔다. 이 정도 충격은 무효화할 수준이 아니란 건가. 유현이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포션 써야지.
‘소리 없는 비명을 썼구나.’
상대에게 상처의 통증을 두 배로 전달하는 노아의 스킬. 몸을 일으키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짐승, 거대한 늑대를 향해 떡잎을 썼다.
[1급 라이칸스로프 ? 검은 바위의 왕현재 스탯 등급 S
각성 가능 스탯 등급 S
최적화 초기 스킬
흑암모(SS) 획득
절단하는 발톱(S) 획득
거대화(A) 획득]
‘…아니, 이놈이 왜 지금 나와?’
분명 일 년도 더 뒤에 나타났었는데. 이 근처에서 터진 미발견 B급 던전을 처리하는 중에 돌연 난입해 온 몬스터였다. 덕분에 A~B급으로 구성되었던 처리팀이 떼로 몰살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A급 던전 터진 것에 이끌려 나온 건가.’
별명 탐식의 늑대. 워낙 빠르고 튼튼해서 쉽지 않은 공략 대상이지만 상등급 마석만 보면 눈 뒤집고 먹으려 들어 유도하기 쉬운 덕에 민간인 피해는 적었던 S급 몬스터다.
그런데 약한 인간에겐 별 관심 없던 저 새끼가 왜 애꿎은 나를—
– 크르릉!
고통으로 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늑대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시퍼런 눈이 숫제 불타오르는 듯하다. 광견병 걸린 개새끼가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앞발이 다리를 짓누르고 개새끼의 코끝이 가슴에, 정확히는 심장 부근에 와 닿았다.
그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용인종의 마석!’
설마 SS급 마석이 내 가슴에 박혀 있다는 걸 느낀 건가. 망할. 심지어 깨지긴 했지만 최소 L급 이상일 디아르마의 마석도 섞여 있다.
‘SS급 이상 마석을 지닌 F급짜리라니…….’
더럽게 먹음직스러우면서도 입 대기 쉬운 성찬이네. 눈깔 뒤집히는 게 이해가 가는구나, 개새끼야. 벌도 마석을 노리고 쫓아다닌 거였나. 미친,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기억 속에도 없었고. 디아르마 그 새낀 자기보다 약한 마석만 박아 넣었을 테니 이런 일은 당연히 겪지 않았겠지만.
– 그르르.
섬뜩하게 날카로운 송곳니가 가슴을 긁어댔지만 소용없었다. 운 나쁘게 발톱에 걸린 옷이 찢기는 정도였다. 그래도 뜨거운 숨에 떨어지는 침에 깨 먹기 힘든 견과류 보는 시선이라 기분은 무척이나 더러웠지만, 길게 참을 필요 없이 이내.
퍼억!
– 크륵!
거세게 걷어차인 개새끼가 옆으로 밀려났다. 이어 송태원의 손이 내 팔을 붙잡고 단숨에 일으켜 세웠다. 그의 시선이 내 몸을 빠르게 훑어 내린다.
“전 멀쩡합니다. 노아 씨는요?”
“무사합니다. 게이트 쪽을 부탁드렸습니다.”
아직 한 층분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게이트를 막을 사람도 필요했다. 단숨에 터져 나간 벌과 달리 별 타격 없어 보이는 늑대가 송태원을 노려보며 털을 세운다. 검은 털가죽이 경질화되며 둔탁한 빛을 띠었다.
“저거 SS급 스킬이라 웬만해선 못 뚫습니다. 이번엔 거부 마시죠.”
송태원은 대답 대신 내 몸을 단단히 당겨 붙잡았다. 스킬이 공유되고, 식사를 방해받은 늑대가 사납게 포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