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스며든 파편 (1)
“B급 헌터 하나 데리고 외출이라니, 이러다 세 번째 납치 사건 벌어지는 거 아닐지 모르겠네요.”
내 머리 위로 정중하게 우산을 씌워 주며 유현이가 웃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김민의 헌터로 보일 것이다.
“허튼 시도를 하는 놈들이 있다면 반갑게 맞이하여 뿌리까지 깨끗이 태워 버리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유진 님.”
“정말 든든하시네요. 제 동생처럼.”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으며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으로 가는 사이사이 헌터들이 걱정의 말을 건네 왔다. B급 헌터로 괜찮겠냐는 소리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김민의 헌터면 충분하죠.”
내 대답에 의아한 시선들이 유현이를 힐끔거렸다. 유용한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보조계 B급에 나와 정식으로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김민의다. 그런데 신뢰를 보내고 있으니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데면데면하게 다니기는 뭣하고. 이참에 민의 학생 주가나 올려놓자. 이래 봬도 내가 요즘 제일 잘나가는 인맥 아니냐.
김민의의 차는 노란색에 귀엽게 생긴 수입 소형차였다. 면허 딴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초보운전 딱지도 캐릭터가 들어간 걸로 붙여 놓았다.
“방향제도 귀엽네.”
디○니 미니 인형도 한쪽에 매달려 있다. 요즘 애들은 이런 거 좋아하나. 살풍경한 유현이 차를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다.
“넌 취미 같은 거 없냐?”
“…취미? 그다지.”
차에 시동을 걸며 유현이가 대답했다.
“뭔가 하고 싶은 거라든지 좋아하는 거 진짜 없어?”
“그런 거 생각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잖아.”
담담한 목소리에 괜히 말 꺼냈나 싶어졌다. 그래도 나중에 그럴 환경이 된다면 동생 녀석도 좀 더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렇다고 성현제나 리에트처럼 되면 안 되는데. 삶의 모범이 되어 줄 만한 태생 S급이 없어. 나머지 둘에게 기대를 해 봐야 하나.
‘찾긴 찾아봐야 하는데. 부디 제대로 된 사람들이기를.’
이미 충분히 힘든 인생입니다. 좀 봐주세요. 리에트 슬슬 나올 때 됐는데 공포 저항 하락한 채로 만나야 하나. 벌써부터 죽겠네.
우선 죽어 버린 휴대폰부터 새로 마련했다. 티브이와 인터넷은 새로운 화제로 뒤덮였지만, 통신사 대리점 밖에서도 안에서도 사람들은 바로바로 나를 알아보았다. 심지어 어떤 할머님께서는 내 손을 붙잡고 고생 많았다 토닥거려 주기까지 하셨다.
민망함 속에 얼른 유심칩 재발급받고 차로 돌아와 친애하는 세성 길드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웬일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바쁜가? 한 번 더 전화해 봐도 감감무소식이라 이번에는 강소영의 번호를 눌렀다.
[안녕하세요, 한유진 님!]“안녕하세요, 소영 씨. 혹시 세성 길드장님 어디 계신지 아십니까?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요.”
[길드장님께선 지금, 음, 공식적으로는 던전 공략 중이라고 되어 있는데요.]“어젯밤에 만났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몇 번이고 내려치는 거 여러 사람이 봤을 텐데 눈 가리고 아웅이냐.
협회 측에서는 공훈을 가져가고 싶을 테니 얼쑤 하고 받아먹었겠지만. 실제로 티브이에서 어제의 던전 브레이크 처리는 송태원을 위시한 한 협회 헌터들이 하였다고 떠들어대었다.
다른 헌터들은 코빼기도 안 보였건만. S급 몬스터 등장을 알렸음에도 섣불리 기어들어 오는 게 더 곤란한 일이라 해도 말이야. 힐러도 없었잖아.
[앗, 그러셨군요. 한유진 님에 대한 이야기는 없어서 몰랐어요. 하긴 요즘 길드장님께서 예정에 없이 움직이시면 99퍼센트 한유진 님과 관련 되어 있었죠.]그 정도냐. 내가 돌발 행동을 좀 많이 하긴 했지만. 원래라면 일정표 쫙 짜서 예정대로 움직이는 게 기본이기도 할 테고.
[급한 용건이시라면 길드로 오시겠어요? 연락해 볼게요.]“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꼬리는 빨리 잡을수록 좋으니. 전화를 끊고 혹시나 싶어 송태원에게도 연락해 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이쪽은 아마도 아직 휴대폰 교체를 하지 못한 게 아닐까. 휴대폰만이 아니라 카드 같은 것도 다 죽었겠지.
“세성으로 가자.”
“우리로선 아직 따라잡기 힘든 건 알지만 그래도 분해. 형이 세성 길드를 찾을 일 없어졌으면 좋겠어.”
유현이가 투덜거리며 핸들을 돌렸다. 국내 한정으로 던전 공략 능력이야 이제 예림이까지 S급 팀 짜면 해연도 세성 못지않게 되겠지만 다른 분야는 아직 멀었다. 십 대 청소년이 일군 길드가 이 정도까지 큰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넌 이제 겨우 스무 살이야. 맨손 맨땅에서 시작한 미성년자가 자리 잡은 사회인을 어떻게 단시일에 쫓아가겠냐. 세성 길드장은 각성 전에도 잘나갔다는 말이 있던데.”
“실제로 자금 쪽으로는 문제없었던 것으로 알아.”
“뭐 하고 살았는지 들은 거 있냐?”
성현제한테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만 궁금하다. 진짜 혼혈인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각성 전에도 튀지 않았을 리 없는 인간인데, 관련 정보가 없으니 역시 해외에 있었던 걸까.
“몰라. 내가 알 바도 아니고.”
“그래도 같은 S급 헌터인데 친하게 지내란… 소리는 못 하겠고. 비즈니스적으로는 괜찮은 상대긴 한데 말이야.”
길드장으로서 배울 것도 나름 많긴 하겠지. 어쨌든 잘난 인간이긴 하지만.
“역시 친하게 지내진 마라. 안 좋은 거 배울라.”
“안 친해.”
“그래. 굳이 가깝게 지낼 거면 길드장들 중에선 문현아 씨가 제일 낫지. 친구라면 노아 씨고. 소영 씨도 괜찮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또래끼리 친한 게 제일 좋아. 아저씨는 버려.”
예림이까지 포함해서 애들끼리 모여 있는 광경을 떠올리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이지 싱그럽고 마음 포근해지는 장면이다.
“이번 일 정리되면—”
그때였다. 유현이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긴 칼이 튀어나오며 안전벨트가 끊어지고 내 머리 위쪽으로 빙글 돌아간 칼이 차문을 꿰뚫으며 도로에 박혔다. 그리고.
끼이이익!
바퀴가 땅을 긁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며,
쾅!
무언가가 노란 경차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그와 동시에 유현이의 칼이 충돌의 충격을 흡수하며 들이받아 온 차량을 쳐냈다.
콰과각!
잘려나간 차 문 너머로 대형 트럭이 두 동강 나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한유현은 나를 한 팔로 감싸 안고 너덜거리는 차 문을 완전히 박살 내며 밖으로 뛰어올랐다. 몸체가 사선으로 비스듬히 잘린 채 쓰러진 트럭 위로 내려서자 혼란에 빠진 도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와, 미친.”
아직 얼떨떨했지만 트럭이 불쌍한 경차를 박살 내려 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것도 정확히 조수석을 노렸다. B급 헌터와 나오자마자 이 꼴이냐. 진짜 김민의라면 보조계라 날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겠지. 은혜도 쓰지 않고 있었으니 최소 중상에 운이 나쁘면 즉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기회긴 하지만 행동력 한 번 대단하네.’
계속 노리고 있었던 건가. 공포 저항이 낮아진 탓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트럭 운전사를 살피는 유현이 대신 해연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고 처리와 새 차량을 부탁한 뒤 다시 거리로 눈길을 돌렸다.
“운전사는 죽었어.”
“그래? 유현, 아니 김민의 씨, 저기 차에 갇힌 사람들 있는데 좀 도와주시죠.”
대형 트럭으로 인한 추돌 사고다 보니 미처 피하지 못하고 휘말린 차량이 여럿이었다. 내 말에 유현이가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은혜 쓰고 있겠다는 말에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곤 우산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눈에 잘 들어오도록 여기 얌전히 있어.”
우산을 굳이 펼쳐서 손에 쥐어 주고는 뒤집어진 승용차로 다가간다. 여름인데 비 좀 맞으면 어때서. 시원하구만.
유현이가 나서자 도로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우그러진 차 문을 가볍게 뜯어내고 사람들을 구출했다. 부상자를 함부로 다루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상태가 나쁘다 싶으면 중급 포션을 아낌없이 꺼내 들었다. 길을 막은 차는 한쪽으로 밀어 구급차가 들어올 길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119와 경찰이 도착했다. 구급대원 중에는 하급 각성자도 섞여 있었다. 상급까진 아직 없지만 중급 각성자 소방관은 전국에 십여 명 이상 되었다. 그 대부분이 사고 현장에서 각성하고 헌터가 아닌 소방관 일을 지속하길 택한 사람들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헌터님. 감사합니다.”
구급대원들과 적당히 인사를 나눈 유현이가 내 옆으로 돌아왔다. 우산을 같이 쓰며 나직하게 물었다.
“누굴까. 협회 쪽?”
“경매장 쪽과 관련 있을지도 몰라. 그쪽도 쌓인 게 많긴 할 테니까.”
“둘 다 자업자득인데 너무하네. 그래도 그쪽은 죽이긴 아직 아까워하지 않을까.”
“호텔째로 죄다 쓸어버렸잖아. 복수가 목적인 놈도 있을걸.”
그러니 반드시 A급 이상, 가능한 S급 헌터와 동행하라며 단단히 당부를 해 온다.
해연 길드와 헌터 관련 사고 부서에서도 속속 사람들이 도착했다. 단순 추돌 사고라서인지 송태원의 모습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잠깐 말이 오간 끝에 운전사의 시체는 해연 쪽에서 먼저 수거해 가기로 결정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김성한 헌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성한 씨.”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괜찮다는 대답에 김성한은 긴말 않고 돌아서서 운전사 사체를 꺼내었다. 여전히 친근하게 걱정해 오기는 했지만… 어째 전에 비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덤덤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엔 보약이나 다른 선물도 보내지 않았지.’
혹시나 싶어 상태창을 확인했다. 김성한의 이름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태도가 확실히 바뀐 거 같은데.
“김성한 씨.”
유현이의 도움으로 트럭에서 내려서며 그를 불렀다.
“예?”
“혹시 예전에 절 보면 조부님이 떠오른다고 하셨던 거 기억나세요?”
“아… 예. 그랬었죠.”
김성한이 조금 멋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엉뚱한 소리로 당황스럽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니, 그럼 설마.
“이젠 그런 생각 안 드시는 겁니까?”
“예. 비슷한 점이 없진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전혀 다른 분이시죠.”
그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전혀 다른 사람이다, 라.
‘나를 원래의 양육자로 여기게끔 하는 효과에는 기한이 있는 거였나?’
하지만 예림이나 피스, 삐약이 등은 전과 변함없이 나를 대했다. 그들과 김성한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김성한의 경우 내가 그를 소홀히 대하였다는 것이었다. 김성한이 날 일방적으로 챙겨 줬을 뿐 그리 자주 만나지도 않았으니까. 최근에는 얼굴도 거의 마주치지 않았고.
‘키워드 효과는 일시적으로 도움을 줄 뿐, 그 후론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걸까.’
하긴 키워드 빨로 계속해서 일방적인 호감을 받는 건 너무 사기지. L급 칭호라고 해도 말이다.
김성한의 선물이 끊긴 시점을 계산해 보면 대략 두 달 정도 유지된 거 같은데, 다른 애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었으려나. 유현이는… 전이나 지금이나 내 동생이니 확인 불가능하고 예림이가 나오면 물어봐야겠다.
‘현아 씨에게 좀 더 신경 써야겠네.’
키워드 빨 떨어지기 전에 더 친해져야지.
애차를 잃게 된 김민의에게 속으로 사과하며 새 차량으로 세성 길드에 도착했다. 마중 나와 있던 강소영이 유현이, 김민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뵙는 분이시네요.”
“해연의 B급 헌터, 김민의 씨입니다.”
“B급이요? 한유진 님 미치셨, 아니 조심성이 없으세요!”
“제가 믿고 있는 분이십니다. 그보다 세성 길드장님은 어디 계시지요?”
“…이쪽으로 따라와 주세요.”
강소영은 유현이를 미덥지 않게 힐끔거리며 앞서 걸어갔다. 검문을 거치고 인벤토리 봉인 팔찌를 착용하고 나서도 다시 경계가 삼엄한 안쪽으로 들어가, 강소영이 걸음을 멈추었다.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터는 해연의 헌터분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유현이가 대뜸 눈썹을 찌푸렸다. 하지만 강소영도 물러서지 않았다. 평소의 그녀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단호하고도 냉정한 표정으로 재차 관계자 외의 출입은 금해져 있다고 말하였다.
“김민의 씨,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한유진 님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혼자는 아니죠. 강소영 씨도 있고. 그리고 뭐, 다른 것도 있을 수도 있고.”
작은 도마뱀이라거나. 유현이를 달래듯 다가붙으며 손을 살짝 잡았다. 강소영이 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린 틈으로 이린이 스르륵 내 손으로 건너왔다. 이어 어깨 즈음으로 올라가 문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 편히 기다리고 계세요.”
“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만에 하나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열한 번째로 하죠.”
홍콩 납치 건 때 쓰고 남은 계약서를 뜻하는 것 일터다. 열한 번째가 뭐였더라. 메모지 슬쩍 확인해 봐야겠다.
유현이의 어깨를 친근감 있게 두드려 주고 강소영을 따라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오늘 아침에요, 길드장님께서 기분이 좀 좋지 않으신 모양이더라고요.”
둘만 남자 강소영이 말했다.
“꿈자리가 사납기라도 하셨나, 뭔가 다른 생각에 잠기신 거 같기도 하고요. 한유진 님께서 방문 원하신다는 말에 들여보내라고는 하셨지만, 여전히 목소리가 별로였어요.”
그러니 오늘은 좀 조심해 달라며 강소영이 미니포털 키를 꺼내들었다. 성현제도 나처럼 악몽이라도 꿨나,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