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26
224화 퇴색
아슬아슬했다.
꿰뚫어 보는 눈 스킬 덕분인지 성현제가 나를 만만하게 본 덕분인지, 혹은 둘 다인지. 그가 접근해 오는 움직임은 간신히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마 내게 공격을 가해 올 줄은 몰랐다.
이어링의 방어막 스킬을 쓴 것은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머리로는 예상할 수 없었지만 몸이 감지했다고 해야 할까. 5년간 쌓인 경험에 C급으로 오른 스탯이 더해져 간신히 공격을 맞기 전에 방어막을 쳤다. 하지만.
콰득, 찌르는 듯한 발길질은 가볍게 방어막을 깨부쉈다. 이어 컴뱃 부츠가 내 복부를 강타했다. 억눌린 신음성과 함께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틀림없이 멍이 짙게 들지 싶었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방어막을 쓰지 않았더라면 최소 기절이었겠지만.
그래도 죽일 생각은 없었나 보구만.
‘젠장, 대체 무슨……!’
걷어차이긴 했는데, 머릿속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떠다녔다. 뭐지, 성현제 맞잖아. 아닌가? 하지만 내 눈이 삐었다고 해도 저 얼굴을 잘못 볼 리는 없다. 대체 왜.
“윽!”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보다 먼저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붙잡혔다. 머리가 당기듯 숙여지고 뒷덜미에 시선이 닿았다. 이어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나각인도, 보호각인도 없군.”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다. 하나 동시에 낯설게 느껴졌다. 마나각인은 알지만 보호각인은 또 뭔지. 머리채를 잡은 손을 뿌리쳤다. 그가 순순히 손을 놓아주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성현제로 추정되는 인간을 마주 쳐다보았다.
“…다짜고짜 뭡니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재빠르게 주위를 살펴보고, 다시 눈앞의 남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분명 겉모습은 낯익은데, 그런데 분위기가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하나.
메말랐다. 생기가 없다. 지루해 보인다. 회귀로 인한 반복되는 감각을 느낄 때보다도 더욱더. 마치 세상에 흥미로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듯한, 그런 무감정한 얼굴이었다.
…지겹다 지겹다 노래를 불렀어도 저렇게까지 퇴색되어 보인 적은 없었는데.
“은신에 방어막. 그것도 대략 S급과 B급인가. 스탯은 C급 정도로 보이건만 특이하군.”
그가 나를 평가했다. 관심은 보였지만 아주 희미한 호기심 정도만 느껴졌다. 역시 이상하다. 내가 알던 그 인간이 아닌 듯했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혹시 그쪽 이름이 성현제, 아닙니까.”
“나를 모르는 건가?”
“얼굴은 많이 봤는데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내 목소리 끝이 약간 떨렸다. 저 소린 결국 자기 이름이 성현제가 아니라는 뜻이잖아. 진짜 다른 사람인 건가, 아니면 여기 들어오면서 뒤통수라도 잘못 맞았나.
하지만 그의 태도는 기억을 잃은 사람의 것이 절대 아니었다. 내게 각인이 있는지 확인하는 행동은 이곳에, 이 세계에 익숙한 사람의 것이었다.
“…전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만, 이대로 계속 지나가도 되겠죠? 난데없이 얻어맞은 게 쪼끔 열 받기는 하지만 등급 낮은 쪽이 알아서 기어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그럼 이만.”
“미등록 각성자가 돌아다니기엔 위험한 시간이야.”
한 발, 그가 다가왔다. 느릿하게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지금 내 공포 저항은 S급, 저 새끼 등급은 SS다. 그나마 기본 스탯이, 정신력 스탯이 올라갔으니 실질적인 공포 저항력은 S급보단 약간 더 높겠지만 SS급에는 못 미치는 듯했다.
등골이 저릿해지고 마른침이 삼켜졌다. 내가 제법 잘 버티자 놈이 눈썹 끝을 살짝 올렸다. 동시에 표정에 약간이나마 활기가 깃들었다. 사람 같잖더니 조금은 낫네.
“공포 저항도 있는 건가.”
“그래 봐야 흔해빠진 C급입니다. 관심 거두시죠.”
일이 술술 잘 풀린다고 잠깐 좋아했었는데, 젠장. 함정이었어. 신입이 분명 메시지도 보내 놨다고 했건만 눈앞의 놈은 그런 거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애초에 날 알아보지도 못하잖아.
진짜 다른 사람인 건가. 그렇다면 여기서 튀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목숨 하나 날리긴 아깝고.’
탓, 뒤로 뛰어 물러나며 총을 꺼내 들었다. 자신에게 겨누어지는 총구에 금빛 눈이 가늘어진다.
“좋지 못한 선택이로군. 소용없는 행동이기도 하고.”
“고작 C급이라도 자존심은 있어서요. SS급님께서 한 방 정도는 관대히 맞아 주시지요. 어차피 제 능력으론 간지럽지도 않을 거 아닙니까.”
새하얀 총이 내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성현제 닮은 놈이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저 새끼가 내 파트너와 성격이 비슷하다면, C급의 돌발 행동을 지켜봐 주겠지.
“관대히 맞아 준다면, 대가는?”
“글쎄요, 순순히 따라가 드리는 걸로 할까요? 제 몸뚱이 멀쩡한 채로 말입니다.”
“그건 지금도 가능한데.”
“제 이빨이 댁 목에는 긁히지도 않겠지만 제 목에는 잘 들이박힙니다.”
날 발로 쳐 날린 상대한테 계속해서 덤벼든다면 내가 먼저 나를 해치겠다, 하는 꼴이라니. 웃기지도 않았지만 성현제 닮은 놈은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았다. …저러는 거 보면 같은 놈인데, 또 꽤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총에 최대한도로 마나를 밀어 넣었다. 급속도로 소모되는 마나에 머리가 지끈거려 왔지만 딱 기절하지 않을 만큼, 바닥나기 직전까지 퍼부었다.
저놈도 전투예지가 있을까. 지금의 내 행동도 예지가 가능한가. 모르겠지만 일단은 질러 봐야지.
“참을성 많은 신사분께 감사를 표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반동을 버티는 대신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권총. 작은 크기만큼이나 보통은 위력도 약하다. 하지만 하얀 총구에서 터져 나온 것은 마력의 폭풍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탄환이라고 말하기 무색한 거대한 에너지가 휘몰아치며 발사되었다. 그 반대편에 선, 반발은커녕 허공에 띄워지기까지 한 내 몸이 말 그대로 날아올랐다. 강하게 쏘아진 화살처럼.
콰과과─!
휘몰아치는 새하얀 빛무리와 부서지고 튀어 오르는 건물 잔해들의 거친 춤사위가 순식간에 눈앞에서 멀어져 갔다. 공중에서 몸을 돌려 방향을 틀자, 저만치 멀리 서 있던 5층짜리 건물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미리 봐뒀던 곳이다.
단검을 꺼내 건물을 향해 던졌다. 콱, 단검이 외벽에 박히고 거의 직후, 튀어나온 손잡이를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카가각, 짓밟는 힘을 못 이긴 단검이 외벽을 길게 긋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어진 단검과 다르게 위로 솟은 내 손이 아슬아슬하게 옥상 난간을 붙잡았다. 몸을 끌어올려 난간을 넘어 옥상 위에 내려섰다.
‘…윽.’
거친 움직임 탓에 걷어차인 복부가 욱신거려 왔다. 이를 악물며 내가 서 있었던, 성현제 짝퉁이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았다.
주위는 거대한 맹수가 할퀴기라도 한 것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성현제는 멀쩡했다. 아니, 한쪽 팔의 옷 일부가 찢겨 나갔다. 상처까지 입었는지는 너덜거리는 옷자락에 가려져 잘 모르겠다.
놈은 태연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거리는 멀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쫓아올 것이다. 그러니 얼른 도망쳐야 하지만.
“이 개새끼야.”
억울하고 분해서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주었다. 여기서도 뜻이 같을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곧장 몸을 돌렸다. 옥상을 가로질러 반대편 난간에 다다라 와이어를 난간 살에 묶고 그대로 밖으로 뛰어내렸다.
탁, 탁─ 와이어를 잡은 채 건물 외벽을 디디며 빠르게 아래로 내려섰다. 늘어진 와이어를 힘주어 당기자 난간 일부를 부러뜨리며 아래로 딸려 내려온다. 얼른 거두어 인벤토리에 챙긴 뒤 마나 포션을 마시며 은신 스킬을 썼다.
바이크 완전 반대편에 세워 뒀는데, 젠장.
‘성현제 이 망할 자식!’
진짠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셋은 있다니까 그냥 우연히 닮은 놈일 수도 있지만.
…시발, 행동 패턴도 비슷하구만 딴 놈 맞긴 한 거냐. 스킬도 같고. 아니면 이 동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고 그러나? 아무튼 딴 놈이라고 해도 성현제가 잘못한 거다.
SS급인 놈한테는 은신 스킬도 별 소용이 없기에 지친 몸을 움직여 억지로 뛰었다. 배는 계속 아프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마나 포션을 먹었다 해도 급격한 마나 소비의 후유증이 바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
‘털끝 하나 안 다치게 보호해 주겠다느니 지껄인 게 얼마나 됐다고! 심지어 발로 걷어차냐!’
제안은 내가 거절하긴 했다만 분통이 절로 터져 나왔다. 망할 놈. 만에 하나 같은 놈이라면 무슨 변명을 대든 내가 진짜… 젠장, 내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더 짜증 나네!
간간이 하급 몬스터가 눈에 띄었지만, 놈들은 날 발견하지 못했다. 길을 따라 한참을 뛰다가 건물 틈새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밖에선 보이지 않을 굽어진 안쪽 구석에서 벽에 등을 기대며 앉았다.
포션을 꺼내며 상의를 올리자 역시나 퍼렇게 멍이 든 것이 보였다. 생명력 포션을 멍 위에 뿌린 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내상을 대비해 약간 마시기도 했다.
“…맛없어.”
음용하는 마나 포션과 달리 생명력 포션은 부상에 직접 바르는 일이 더 많기에 첨가물이 없었다. 마시는 용으로 먹기 좋게 만든 것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질 않았다.
찝찝한 입을 물로 헹구고 말린 과일을 하나 머금었다. 단맛이 느껴지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역시 유현이 먼저 찾아볼걸.’
동생 보고 싶다. 예림이도, 피스도, 노아 씨도, 현아 씨도. 떨어진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부터 그리웠다. 전부 다 잘 있겠지. 내가 아는 성현제 놈은 여기 있긴 한 거냐.
‘…설마 다른 사람들도 저러는 건 아니겠지.’
신입아, 일 처리 제대로 한 거 맞긴 하냐? 메시지 제대로 보낸 거 맞아? 연락할 방법도 없고. 고객센터 만들어 줘. 버그 난 거 같은데 신고 좀 받아라.
등 기대고 앉아 있자니 졸음이 슬금슬금 밀려들었다. 어질하기도 계속 어질해서 눈 감고 눕고 싶다. 바닥은 차갑지만 S급들 우르르 몰고 들어가는 A급짜리 던전이라 하루 만에 나오지 싶어 텐트 같은 것도 안 가지고 왔고.
내내 온천물로 씻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다가 이게 웬 노숙자 신세냐. 던전에서 노숙하는 거야 흔한 일이지만 풍경이 현대와 비슷하다 보니 조금 슬퍼졌다. 회귀 전에도 작게나마 내 집은 있었는데.
심지어 돈도 없잖아. 여기 사람 있어요 퀘스트 보상 더해 봤자 1,000L이다. 설마 천 원은 아니겠지. 만 원이어도 숙박비도 못 된다.
‘…신규 가입자 서비스 같은 것도 없냐. 완전 망게임이네.’
보통 초기 자금 정도는 주잖아. 그사이 서브 퀘스트가 더 생겨났지만 살펴볼 힘도 없어 그냥 눈을 감았다. 잠깐 자고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성현제 이 개새끼야, 진짜.
* * *
그는 낯선 C급이 사라진 옥상을 바라보았다. C급은 흔하다. 다만 저렇게 혼자 돌아다니는 C급은 드물었다. 보통은 가드 소속의 보조 혹은 연료였으니까. C급 각성자가 소속도 없이 혼자 돌아다닌다는 것은 나를 잡아가 주세요, 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C급은 특이했다.
제 스탯보다 등급 높은 스킬들에 역시나 고등급의 무기. 그리고.
‘신인의 대처가 아니었지.’
고등급 은신 스킬은 유용하다. 그렇기에 단숨에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확실하게 기절시킬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을 가하였고 반격은 물론 회피나 방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리라 짐작했다.
하지만 C급은 늦지 않게 방어막을 펼쳤다. 전투예지 스킬을 끈 상태로 방심하고 있었다 해도 고작 C급 상대로 기절시키는 데 실패했다. SS급 가드가.
이어 주눅 들지도 않고 총을 겨누어 오고, 총의 반동을 이용해 도망쳤다.
C급이 저 정도의 행동력을 보이려면 적어도 이삼 년쯤은 가드들 사이에서 굴렀을 것이다. 동시에 입소문을 타지 않았을 리 없건만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요, 스킬이요, 무기였다.
그 모든 것이 특이했지만 그중 유독 의아한 것은.
‘내게 실망… 했나?’
당황하고 놀라는 것이야 당연한 반응이었다. 억울하고 분한 것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실망은 뭘까. 대체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C급이 SS급에게.
“마스터! 5-B 거주구역 정리 끝났습니다. 3-A 역시 조금 전 마무리 지었다고 합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무리 중 가장 앞장 선 남녀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둘 다 S급 가드였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특이한 것과 마주쳤지.”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옆에 선 남자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놀랍지 않냐고 묻는 듯한 표정과 태도였다. 뭐든 쉽게 익히고 질려 하던 사람이 특이한 것을 봤다니. 심지어 드물게도 즐거운 기색이 약간이나마 느껴졌다.
의무적인 몬스터 사냥 외에는 주위 대부분의 것에 흥미를 잃고 하루하루 빛바래 가던 남자가.
“잘되셨네요. 그 특이한 것은 어디 있습니까?”
“도망쳤어.”
“잡아 올까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남녀 중 남자 쪽이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아카테스 시의 알파가 폭주했었다고 합니다. 2번 상업지역이 전부 불타 버렸다더군요. 지금은 진정한 모양이지만 해당 도시 방위청에서 제압 요청 대기를 부탁해 왔습니다.”
“제압은 거절해. 사살이라면 받아들이지.”
“사실상 거절이군요.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시에 피해를 입혔다고 해서 귀한 SS급 가드를 처분하려 들 방위청은 없다. 완전히 미쳐 SS급 몬스터와 다를 바 없어지지 않는 한은.
“상급 몬스터 경보는 이제 더 없으니 들어가시죠.”
“진짜 잡으러 안 가도 됩니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대답 대신 옥상 쪽을 한 번 더 바라보곤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