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250
248화 진짜와 가짜 (2)
“자잘한 건 전에 들었죠? 내 파트너라고.”
“쓸데없는 정보뿐이었어.”
그건 그랬지.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성현제가 직접 소개시켜 달라고 퀘스트까지 보냈으니 개인정보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일단 S급 각성자입니다.”
“고작?”
…내가 고작 소리 하는 건 괜찮지만 남이 하니 살짝 거슬렸다. 내 동업자라고. 패도 내가 팬다.
“그쪽보다 열 살쯤 많은 어른이죠. 외모는 비슷한데 역시 연륜이란 건 어쩔 수 없다니까요. 시그마 씨는 아직 어리고. 아, 또 삐치려고 든다.”
“그런 적 없어.”
“세성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합니다. 대충 시그마 씨와 비슷한 위치예요. 스킬도 비슷하고 무기도 아마 같은 듯한데, 한번 아이템 설명창 봐도 됩니까?”
시그마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내가 훔쳐 가기라도 할 줄… 많이 훔쳤구나. 의심받을 만하네.
확인만 하겠다며 끝부분 잡고 있어라, 아니면 계약서라도 쓰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시그마가 사슬을 꺼내었다.
[고상한 수색자의 사슬 – 계약자의 등급+1(최대 신화급)초승달의 가장 짙은 달빛으로 벼린 사슬. 금속으로 보이나 본질은 빛이다.]
이전에 본 성현제의 사슬 상태창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진짜 뭐지.
“무기도 완전히 같네요. 이 사슬 어디서 어떻게 얻은 겁니까?”
“질문을 하는 건 이쪽이다.”
“그 정도는 말해 줄 수 있잖아요. 출신지는 어디예요? 진짜 이름도 말해 주면 좋겠는데. 가족은요? 제가 시그마 씨한테 무척이나 관심이 많아서 그러는데 서로 신상명세서 교환하면 어때요? 일단 저한테는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 하나 있고 부모님께서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성현제의 과거는 알 수도 없고 물어 봤자 대답 듣기도 힘들겠지만, 시그마는 잘 달래면 털어놓지 않을까.
“내가 왜 말해 줘야 하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죠. 에이, 인상 찡그리지 말고. 그럼 가족에 대해서라도 이야기해 봐요. 나도 말했는데. 부모님은 혹시 살아 계십니까?”
“성현제는 지금 어디에 있나.”
시그마가 내 질문을 씹고 물었다. 이거 두 번째 질문으로 쳐야 하나. 누구냐는 물음에 위치 정보는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시스템 쪽에 있습니다.”
“…뭐? 분명 S급 각성자라고 했을 텐데.”
“사연이 길어요. 방금 물은 거 두 번째니까 이제 하나 남았습니다. 잘 생각하고 질문하세요. 아니면 그쪽 신상정보랑 바꾸든가. 비싸게 쳐줄게.”
시그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세 번째 질문이라고 확실히 말하기 전에는 대답할 필요 없다.”
그가 뒤늦게나마 제한을 걸었다.
“그리고 성현제에 대한 정보는 부족해.”
“정확히 뭘 알고 싶은 건데요? 키? 몸무게? 그쪽이랑 비슷하지 싶은데. 생일은 8월 30일이고 저번 생일 때 크루즈 부숴먹었고. 저도 자잘한 것밖에 몰라요. 생각할수록 진짜 아는 거 별로 없네. 결혼은 일단 안 한 거 같은데 모를 일이고, 그 얼굴에 그 나이니 연애는 해봤을 거고. 시그마 씨는 사귀는 사람 있어요?”
“없어.”
“얼굴이 아깝다. 그러게 좀 웃고 다니라니까. 스마일~”
시그마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졌다. 참견이 좀 과했나 보다. 그래도 웃으면 훨씬 나을 거 같은데. 보나마나 친구 같은 것도 없겠지. 유현이를 소개시켜 줘 볼까. 아니면 노아 씨나. 셋이 잘 어울리지 않나 싶었다가, 퍼뜩 현실을 떠올렸다.
현아 씨는 이곳이 진짜나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역시…….
그때 차르륵,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을 넘어서 뱀처럼 기어오는 것을 별생각 없이 쳐다보았, 윽.
“이거 계약 위반 아니냐.”
“몸에 상처를 입혔다면 그랬겠지.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다치는 건 내 책임이 아니고.”
시그마가 뻔뻔하게 말했다. 저럴 때는 성현제와 비슷하긴 하단 말이야. 사슬에 묶인 내 몸이 테이블 위로 끌어당겨졌다. 뭐가 거슬린 거지. 혹시.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나를 보면서.”
낮게 억눌린 목소리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속마음이 대놓고 표정에 드러난 건가.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지. 어쩌면 동정 비슷한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건 완전 아웃일 거 같은데.
고개를 들어 시그마의 표정을 살펴보려 했지만 나는 테이블에 엎드리다시피 한 채고 녀석은 일어나 버려서 불가능했다. 다리밖에 안 보여.
“친애하는 시그마 씨가 친구도 사귀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거짓말.”
“대답해 줘야 할 의무 없는데. 마지막 남은 질문권을 쓰든가. 추천은 안 하겠지만. 아깝잖아.”
시그마가 몸을 숙였다. 스카프가 풀려나가고, 뒷목에 손가락 끝이 닿았다. 서로의 신체 안전을 보장하는 계약을 했음에도 소름이 살짝 돋았다.
“계약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C급, 넌 내 소유가 된다.”
“김칫국 너무 마시면 짜단다. 아, 김치를 모르겠구나.”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때 각인을 마저 새겼을 텐데.”
“목숨이 수십 수백 개 되는 거 아니거든. 다음번에는 죽어.”
“거짓말. 몇 번 남았지.”
“몇 번은 무슨. 기회는 보통 한 번뿐이라.”
“인체의 주요 마나 흐름은 뒷목만이 아니라 척추 전체로 이어진다.”
뒷목을 가볍게 누른 손끝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인체 모형을 두고 강의라도 하는 듯했다.
“안전상 목 뒤쪽에만 작게 각인을 넣지만 척추 전체에 새기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야.”
허리 위에서 손이 잠깐 멈추었다.
“다만 단 한 명도 버텨내지 못했다고 하더군.”
“인체실험이라니, 최악이네.”
“주요 마나 경로에 모두 각인을 새긴다면, 이론상 인체의 세세한 마나 흐름까지 모두 완벽하게 조작이 가능해진다고 하지. 스스로의 마나를 더없이 섬세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 스킬 효율이 높아지겠지만, 동시에.”
멈췄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설정하기에 따라 타인에게 완벽히 조종당하게 될 수도 있지. 마나로 뇌를 건드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 있더군. 정신계 스킬이 존재하니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야.”
이번에는 시그마의 위압감이 아닌, 내 상상력이 뒷목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론상, 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시그마라면 그 정도 조작이 가능할 듯했다. 전류를 다루는 것만 봐도 컨트롤 능력이 장난 아니었으니.
“네 몸으로 직접 확인하게 해주겠다, C급. 그때는 솔직해질 수밖에 없겠지.”
…20대라는 소리에 내가 저놈을 너무 만만하게 봐 버린 듯했다. 막 나가는 부분은 성현제보다 더한 거 같은데. 친애하는 내 파트너 씨는 각인같이 한 방에 끝내는 방법보다는 툭툭 과하지 않게 건드리면서 조용히 옭아매어 죄이는 편을 더 즐길… 이쪽도 성격 좋지는 않구나.
하긴 전에 날 찍어 누른 적도 있긴 했지. 지금이야 많이 변한 거고. 그래도 내가 인격 없는 아이템으로 여겨진다더라도 저런 소름 돋는 각인을 새길 스타일은 아니지, 성현제는. 역시 젊은 놈이 거칠다.
‘그러고 보니 파트너 씨, 너무 조용한 거 아니냐.’
구경하며 팝콘 씹고 있는 건 아니겠지. 댁 닮은 젊은 놈이 날 핍박하고 있다고.
“미안하지만 난 계약 조건 만족시킬 자신이 있어서. 나 대신 인형이나 끌어안고 있으세요.”
“자신만만하군. 말해.”
“일단 좀 풀지?”
시그마 놈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나도 그쪽 얼굴 보고 말하기 좀 그랬어.
계약 페널티에 유현이가 빠졌으니 그냥 조건 만족시키지 못해도 괜찮지 않을까도 싶었었다. 시그마 소속이 되면 데리고 다니기 오히려 더 편할 듯도 하고, 어차피 이 던전 공략 끝내면 자연스럽게 풀려나게 될 테니까.
하지만 저런 각인은, 안 되지. 당장 해주 아이템을 사기엔 포인트가 약간 모자랐다. 사냥해서 포인트 모으면 되지만 그 전에 바로 끌려가서 각인당해 버리면 곤란하다. 유현이랑 아침에 밖에 나가서 몬스터 사냥 좀 하고 올 걸 그랬나.
한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목숨 하나 쓸 각오도 했다.
“계약 대가인 정보를 말해 주죠. 이 세계는 이미 멸망했습니다.”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지금의 세계는 단순한 기록이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 낸 가짜입니다. 시그마 씨, 당신도 진짜가 아니에요. 그냥… 남은 데이터죠. 여기도 게임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게임 속 등장인물 같은 겁니다. 실재했던 인간의 정보가 그대로 들어가 있어 진짜에 가깝게 움직이고 말하고 생각하는… 뛰어난 가상현실 캐릭터라는 겁니다.”
“가짜라고.”
시그마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네.”
“그럼 C급, 너는.”
“저는 진짜입니다. 게임 속에 직접 들어온 플레이어 같은 거죠. 다른 세상에서 왔고, 언젠가는 나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지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사라질지 멈춰 버릴지.”
“그 성현제도 너와 같은 곳에서 왔겠군.”
“맞아요. 같이 왔죠. 한유현, 알파와 람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히는 알파와 람다의 몸에 우리 쪽 세상 사람이 들어간 겁니다. 형이 없는 알파가 제 형제가 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그마가 어떤 기분일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너는.”
내 목덜미에, 그리고 머리에 손이 닿았다.
“C급 네게 있어 나는 처음부터 가짜였겠군.”
“아니, 나는.”
사슬이 풀어졌다. 몸을 일으켰다. 시그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속내를 짐작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그가 냉정하게 말했다.
“진짜는 성현제고.”
“그렇게 말할 건 없잖아!”
물론 내가 시그마를 성현제로 착각했던 건 사실이다. 짝퉁이라고 여기기도, 했었고.
“애초에 다른 사람이라니까? 성현제는 그냥 성현제고, 넌 너의, 그러니까 너 자신의 흔적 같은 거고…….”
그냥 말하지 말 걸 그랬나. 굳이 이런 사실을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계약의 대가가 될 만한 정보는 이게 가장 확실했다. 시그마와 깊게 관련되어 있고, 그가 알지 못했던 이 세계 자체에 대한 정보.
괜히 죄책감 느끼는 나와 달리 시그마는 겉으로 만큼은 침착해 보였다. 그가 나를 관찰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도 이 세계의 누군가에게 들어온 건가.”
“…아니. 원래 몸입니다. 적어도 나는 온전히 진짜야.”
나는 확실히 진짜다. 무심코 내 뒷목을 매만졌다. 손끝에 걸리는 건 없었지만.
“이것도 그대로 가지고 나가게 되겠지. 그리고 최소한 나한테는. 원래의 시그마가 어떻게 되었든, 나한테 있어서 시그마는 너 하나뿐이야. 진짜는 날 알지도 못했겠지. 나도 그를 모르고.”
말하다 보니 기분이 더욱 이상해졌다. 내가 아는 시그마는 눈앞의 이 녀석뿐인데. 진짜고 가짜고 간에 한 명밖에 모르는데.
문현아의 말도 떠올랐다. 그녀는 이 세계에 진심이고, 그녀에게 있어 이 세계가 진짜라고 했던.
젠장, 가짜랑 진짜가 뭔데. 최소한 나한테 있어서는 지금 이 세계의 지금 이 시그마뿐이다. 진짜고 뭐고 없다. 한 놈뿐이다. 보지도 못한 누군가 따위 알 게 뭐냐.
“시그마.”
금빛 눈을 마주 보았다.
“가짜라는 말 취소할게. 나한테 있어서 넌 한 명밖에 없고, 그러니 당연히 진짜야. 한 명뿐인 사람이 어떻게 가짜가 되겠냐. 내 배 걷어찬 놈도 하나고, 나한테 아이템 창고 털린 놈도 하나고, 여기까지 나 따라온 놈도 하나뿐인데.”
시그마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당연히 나는 진짜다.”
…뭐래.
“야! 너도 네가 가짜랬잖아!”
“C급 네게 있어서, 였다만. 내 입장이 아니라.”
“그래, 잘나셨어. 자존감 넘쳐나서 좋겠네!”
아 정말, 성현제는 물론이고 성현제 비슷한 놈도 걱정 따위 할 필요 없는 건데.
“하지만 성현제라는 놈은 마음에 들지 않아.”
“그건 나랑 상관없고요. 질문 하나 남았으니 물어나 보시지.”
빨리하고 끝내자, 라며 다시 소파에 풀썩 앉는 나를 시그마가 웃음기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뭐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진짜 소리 들어서인가?
“결국 네가 준 정보는 잘못된 거로군.”
“…어?”
“가짜라고 했다가 진짜라고 해버렸으니, 거짓 정보 맞지 않나.”
“뭐, 잠깐, 야!”
그, 그게 그렇게 되나? 아니, 그래도 이 세계가 진짜로부터 남겨진 데이터라는 건 사실인데? 시그마 놈이 더욱 짙게 미소했다.
“인형은, 한유현에게 선물해 줘야겠군. 대신할 것이 필요할 테니.”
“그거 아직 안 버렸냐! 선물은 무슨 선물이야!”
울상을 지으며 급히 계약서를 확인해 보았다. 젠장, 진짜 계약 어겼다는 표시 떴잖아. 계약서 내용이 자동으로 페널티 조건 위주로 바뀌었다.
“각인은 봐줘!”
“내가 왜.”
“안 그러면 해주 아이템 써서 튈 거니까.”
성현제, 보고 있냐. 자잘한 퀘스트 좀 주세요. 딱 3만 포인트만 더 있으면 된다고. 시그마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 키이이익!
돌연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왔다. 소리가 가깝다. 우리 둘 다 반사적으로 거실 창을 바라보았지만, 낮의 도시 풍경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반대쪽인가. 문을 향해 나가려는데 누군가 밖에서 크게 외쳤다.
“마나 홀에서 몬스터가 나타났습니다!”
대낮에, 마나 홀에서. 시그마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기색이었다. 우리는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