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360
358화 새끼 수룡 (2)
– 퓩!
물에서 튀어나온 동물이 물을 픽 뱉었다. 마치 돌고래가 장난치듯 입 물총을 여기저기 쏴 대더니 다시 물속으로 스르륵 들어간다. 반투명한 지느러미가 수면을 가르며 사라졌다.
“저건.”
“수룡이다.”
군인이 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2급 수룡종 물의 비늘 아세르나. S급 던전 마지막 층 보스로 S급 헌터라 해도 속성을 맞춰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공략 불가능할 정도의 몬스터지.”
꽤나 자랑스러운 어조였다. 배알이 살짝 꼬였지만 2급 용종이라니 그럴 법했다. 용종은 보통 같은 급수의 다른 몬스터에 비해 강하다. A~S급으로 성장 가능한 코메트, 가시날개암룡이 3급 비룡종이었으니 2급인 저 수룡은 S급 확정일 가능성이 높았다. 몬스터도 S급 확정을 태생 S급이라고 하나? 그렇다기엔 바바르 같은 놈은 각성 가능 스탯이 S~SS급이었으니 몬스터는 예외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첨벙, 물소리를 내며 수룡이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옅은 푸른 비늘로 뒤덮인 머리에는 한 쌍의 귀와 아직 덜 자란, 역시나 한 쌍의 뿔이 달려 있었다. 유체라서인지 동글동글한 느낌의 생김새가 제법 귀여웠다.
“성체 자료는 없습니까? 그림이라도요.”
아세르나라는 수룡은 회귀 전에도 본 적이 없었다. 던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터진 후 수습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던전 브레이크 후 쏟아져 나온 몬스터를 3분의 2 이상 잡지 못하면 던전은 터진 그대로 남아 버리니까. 보통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빠르게 처리하지만 수중형 몬스터는 바다 깊이 들어가면 답이 없다. 홍콩의 크라켄처럼.
사육에 도움이 될 거라는 내 말에 군인 중 하나가 태블릿 PC를 가지고 와 수룡 공략 자료를 보여 주었다.
“육지에서는 활동성이 약하겠군요.”
한 쌍이던 뿔은 두 쌍으로 늘어나 있었다. 한 쌍은 길고 날카롭고, 다른 한 쌍은 3분의 1정도로 작다. 두 귀 사이에서부터 등지느러미가 길게 이어지고, 앞발 대신 커다란 지느러미 한 쌍을 가지고 있다. 뒷발을 대신하는 지느러미는 상대적으로 작았고, 두 쌍의 꼬리지느러미에는 화려한 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우아하면서도 전통적인 수룡의 생김새였다.
‘비행이 가능하다면 좋을 텐데.’
어떻게 못 하나. 문득 체인질링이 자신은 내가 바라는 대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양육자 스킬이 성장 형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새끼 몬스터에게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행 스킬을 가지게 된다거나 등지느러미가 날개로 변한다거나.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예림이 기승수로 딱인데.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예림이한테 필요한 기승수고.’
예림이가 물속에서 행동이 자유롭다지만 그래도 수중 특화 몬스터에 비하면 움직임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순간 이동을 연속으로 쓰는 건 부담스럽고. 게다가 수중 전투는 팀원의 보조를 받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었다. 예림이처럼 수중 전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헌터는 드물어 해연에는 아직 없었다.
그러니 기승수라도 있으면 훨씬 든든하겠지.
“저거 전화도 됩니까?”
벽에 붙은 통신기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된다.”
“그럼 한 통만 쓸게요~.”
목발 짚으며 통신기기 쪽으로 다가가는 나를 군인이 붙잡았다.
“무슨 헛소리냐!”
“헛소리라니, 어차피 추적도 막아 놨을 것 아닙니까. 전화 한 통 하는 게 뭐 어때서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문제되겠다 싶으면 끊든가. 반대로 좋은 정보를 낚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렇지만, 멋대로 외부와 연락하겠다니. 될 리가 없잖아!”
“윗선에 허가받든가요. 고작 전화 한 통 가지고 더럽게 치사하게 구네. 몬스터 사육 관련으로 확인할 게 있다고요.”
진짜 중요한 거라는 내 말에 군인이 통신기를 통해 어디론가 연락했다. 잠시 뒤 전화 사용 허가가 떨어졌다. 전화선이 연결된 수화기는 정말 오랜만이네.
[여보세요.]곧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림아!”
[어? 아저씨? 어떻게─.]“감청되고 있으니까 말은 최대한 아껴.”
괜히 한국 쪽 정보를 줄 필요 없다.
[감청? 거기서 듣고 있다는 거죠? 아저씬 괜찮아요?]“응, 괜찮아.”
다친 다리를 힐끔 내려다보며 말했다. 예림이가 별 반응 없는 걸로 보아 유현이 손등은 무사한 듯했다. 다행히 다리 부러진 것 가지고는 치명상 취급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생명에 지장 있는 부상은 아니니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걱정되었는데.
…애들 만나기 전에 어떻게, 치료 못 하나.
“다름이 아니라, 이름 하나 지어 줄래?”
[이름이요?]“응. 여기 네 기승수로 딱인 몬스터가 있어서 내가 빼돌─.”
탁, 소리와 함께 옆에 서 있던 군인이 수화기를 빼앗았다. 대뜸 그를 노려보았다.
“뭡니까?”
“빼돌리겠다고?”
“어. 내가 데려갈 거다, 왜.”
뻔뻔한 내 대답에 중국 군인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히─.”
“감히는 무슨 감히야. 야, 네놈들은 사람도 납치했잖아. 너네만 납치 할 줄 아냐? 나도 할 줄 안다. 원래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거라고, 납치했으면 납치당할 수도 있는 법이지. 세상이 원래 그래.”
돌고 도는 거지. 지구도 돈다.
“그, 저 수룡은 군부의 귀중한 재산이다!”
“귀하니까 빼돌리지, 흔한 걸 뭐 하러 빼돌리냐? 나 돈 많아. 아무거나 막 주워 담을 만큼 안 궁해. S급 미만 취급 안 해요.”
“하지만 안 되는─.”
“네, 네. 누가 안 되는 줄 모르냐. 납치 불법이야. 근데 네놈들이 나한테 할 소린 아니지. 지금 당장 집에 고이 돌려보내 줄 것 아니면 내가 뭔 소리를 하든 그냥 내버려 두세요. 하여간 납치범들이 말이 많아. 나 같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다.”
몬스터보다야 사람 인권을 더 쳐 주는 세상 아니냐. 최소한 겉으로만이라도. 똥칠 범벅해 가지고 겨 좀 묻혀 볼까 간 보는 사람한테 더럽다고 지랄이야. 양심이 없어.
군인을 향해 손을 내밀어 팔랑였다.
“내놔. 내가 수룡 빼돌리려는 게 맘에 안 들면 더더욱 통화하게 만들어 놓고 잘 들어 두라고. 혹시 아냐, 대화 중에 실수로 계획을 흘려 버릴지.”
내 말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군인이 떨떠름하게 수화기를 돌려주었다. 어차피 이거 정보부나 통신 팀 같은 데서 감청 관리 중일 거고, 그쪽에서 알아서 판단할 거라 투덜대며 통화를 이었다.
“어, 예림─.”
[형!]유현이가 나를 간절하게 불렀다. 둘이 같이 있었나.
[야, 한유현! 저리 가!] [형, 괜찮아? 정말로 아무 일 없는 것 맞아?] [내 폰! 피스야, 물어!]“괜찮아, 괜찮아. 밥 잘 챙겨 먹고, 잠은 잘 잤어?”
[응, 형. 형은─.] [거짓말이래요! 한유현 잠 하나도 못잤, 야! 폰 내놓고 가!]유현이 녀석 왜 또 잠을 못 자. 그래도 둘 다 내 걱정 크게 하진 않는 듯해서 다행이었다. 홍콩 때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동생을 달래 주고 예림이에게 이름 하나 지어 놓으라고 말했다.
“그래, 또 전화할게. 위치 추적도 하지 싶으니까 다음번엔 해연 길드로 전화해서 연결해 달라고 할게. 석 팀장에게 미리 말해 놔.”
[네, 아저씨. 몸조심하세요!] [날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해, 형. 약 챙겨 먹어야 하는데…….]동생의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통화를 끊었다. 하루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한숨을 삼키며 이쪽을 기웃기웃 구경 중인 새끼 수룡을 바라보았다.
“주인의 증표 주시죠.”
내 말에 군인이 벽에 붙은 보관함에서 주인의 증표를 꺼내었다. 초록색 보석이 박힌 둥글넓적한 작은 패에 자물쇠 달린 고리와 가는 줄이 길게 달려 있었다. 그 줄의 끝은 벽과 연결되어 있다. 인벤토리에 넣고 튀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인 모양이었다.
“열쇠 없이 고리를 열려고 하거나 안전 줄에 일정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알람이 울리게 되어 있다. 어차피 스탯 F급은 물론이고 C급이라 해도 단숨에 끊을 순 없어.”
“그건 상관없는데요.”
주인의 증표를 받아 들며 충고했다.
“새끼 몬스터를 길들이는 도중에 다른 사람이 주인의 증표를 사용하면 안 됩니다. 저만 써야 해요. 타인이 끼어들면 애가 혼란에 빠져서 길들이는 데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아예 마수 사육 스킬이 안 먹힐 가능성도 있거든요.”
사실은 그런 것 없지만. 내 거짓말을 군인들이 진지하게 귀담아들었다.
“수룡아, 안녕.”
증표에 달린 줄을 손목에 두어 바퀴 휘감으며 풀장 쪽으로 다가갔다. 새끼 수룡이 귀를 쫑긋거리며 옅은 초록색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귀엽게도 생겼네.
“착하지.”
– 끄르릉
수룡이 목을 울리며 내게 바싹 다가왔다. 들이대 오는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매끄럽고 촉촉하다. 아직 새끼라서인지 비늘이 살짝 말랑거렸다.
“내가 너랑 정말 잘 어울리는 언니, 아니면 누나 소개해 줄게.”
– 꾸륵
“그런데 물속이면 훈련도 물에서, 야, 잠깐만!”
푸른빛 기다란 꼬리가 쑤욱 튀어나오더니 내 다리를 휘감았다. 다행히 멀쩡한 쪽이었다. 그러곤 물에 들어가자는 듯 잡아당긴다.
“수영 잘 못하는데. 물은 별로 안 차갑네.”
재촉하는 걸 못이기는 척 풀장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 새끼 수룡이 퓻 하고 물을 쏘아 올렸다.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인 건가. 풀장 앞부분은 내 허리를 조금 넘는 깊이였다. 부력 덕분에 목발 없이도 움직이기 편했다.
“그래, 그래. 착하다.”
내 주위를 빙그르 맴도는 수룡을 쓰다듬어 주며 자연스럽게 군인들로부터 뒤돌아섰다. 이어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예전에도 한 번 쓴 적 있는 글러토드의 보조 진흙. 하지만 이건 아이템 유지 시간이 짧고 성능까지 복사할 필요는 없으니까. 시간이 길고 모양만 같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도 있을 텐데. 보자…….
오, 있다.
[모형정원의 소형 틀 – D급가로세로 10센티 이하의 아이템을 복제해 주는 틀. 아이템의 능력치는 복제하지 못한다.
1회용.]
가격도 저렴하고. 어차피 나 외엔 증표를 못 쓰게 말해 놓았으니 들킬 가능성은 없었다. 설사 들키더라도 내가 빼돌렸다는 증거는 없지.
아직 사용 횟수가 남은 만능열쇠로 주인의 증표를 고리에서 빼낸 뒤 모형정원의 소형 틀로 복제했다. 그러곤 복제품을 고리에 달고 진품은 내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걸로 납치 원한 중 0.1퍼센트는 갚은 걸로 쳐 주마.
“이 풀장은 호수와 연결되어 있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물을 조금 맛보았다. 담수고, 약품 처리 되진 않은 듯했다. 미지근하니 중간에 데우는 과정은 있었겠지만 호수 물을 그대로 끌고 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배수도 아마 호수로 바로 연결되겠지. 그래야 관리하기 편할 테니까. 계단을 꽤 내려오기도 했고, 벽 뚫으면 바로 호수일지도.
‘하율이 녀석 스킬만 어떻게 하면 탈출은 쉬울 텐데.’
수룡 덩치가 아직 작으니까 여기서 나가자마자 끌어안고 은신 스킬 쓰면 된다. 그리고 아마, 노아 씨가 근처에 와 있겠지.
다른 S급 헌터들과 달리 노아는 길드 소속이 아니었다. 갑자기 잠적해도 문제될 것 없거니와 교통수단을 이용할 필요 없이 은신 스킬을 쓰고 바로 날아서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러니 노아를 정찰을 위해 보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 보면 노아 씨는 이런 일에 정말 잘 맞겠구나.’
우리나라야 비교적 평화롭지만 길드 간의 다툼이 심한 동네라면 무척이나 유용한 능력이었다. 다만 노아 씨가 공작 활동 같은 걸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외롭잖아.
“먹이는 뭘 먹습니까. 생선?”
내 말에 군인들이 큼직한 물통을 가져다주었다. 안에는 마석 가루로 범벅된 생선이 가득 차 있었다.
‘던전산일 거고, 싱싱하네.’
아직 아가미를 작게 팔딱이는 물고기도 있었다. 즉, 근처에 호수나 강, 바다 등을 포함한 던전이 있다는 소리다. 해연에도 어업용 던전 하나 마련해야겠네.
“자, 밥 먹자. 아이 잘 먹네. 예뻐라, 어쩜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까. 옳지, 한 마리 더 먹자.”
– 꾸우!
소금기 없는 민물고기. 던전 환경은 생성된 위치의 영향을 받으니까 역시 이 호수 근처의 던전일까. 신입이 던전 연결만 해 준다면 핑계를 대서 개새끼와 함께 던전에…….
“…한국말이다.”
…응?
“맞아, 김 서방이다.”
아주 작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무심코 주위를 두리번거리려는 것을 꾹 참고 눈알만 천천히 굴렸다. 김 서방이라니, 많이 들어 본 호칭인데.
– 뀨르르!
새끼 수룡이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를 앞 지느러미로 툭 쳤다. 희끄무레한 물체 두 개가 물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뭐야, 저게.
“아, 난 수영 못한다니까.”
새끼 수룡이 날 재촉한 것처럼 말하곤 잠수했다. 허연 것들이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듯한 동작을 보였다. 그러니까…….
‘도깨비?’
천천히 입을 벙긋거려 물었다. 한 번 더 반복해 입 모양을 보여 주자 허연 것들이 흔들흔들 춤추듯 움직인다. 윤윤은 아닌 듯하고, 혹시 윤윤이 만들겠다고 한 도깨비 종족들인가? 윤윤이 있으면 여길 빠져나가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인데.
어떻게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 허연 것들이 돌연 사라졌다. 나도 슬슬 숨이 막혀 일단 물 밖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게 그 몬스터 키우는 녀석인가. 쬐끄맣네.”
풀장 바로 옆에 어느새 낯선 남자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 사람 때문에 도깨비들이 도망친 건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쪽이 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