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36
434화 결과 (1)
“피스야, 잠깐만, 잠깐만!”
달려들지 마라, 지금은 안 돼! 다급한 내 외침에 피스가 뛰어오다 말고 멈춰 섰다. 끼앙, 하고 고개를 갸웃 기울인다. 그래, 네 눈에는 이상할 거 없겠지. 하지만 말이다.
…진짜 다 없어졌어. 부츠만 남았다. 그 외엔 이어링이랑 은혜랑. …이러니 더 기분 이상하잖아. 코트로 몸을 최대한 꽁꽁 싸맸다. 길이는 길었지만 끝까지 여며지는 게 아니라 아래쪽에 자꾸만 틈이 생겼다.
이게 무슨 꼴이야 정말. 인벤토리를 뒤져 보아도 남아 있는 옷이라곤 재킷과 털실세트뿐이었다. 하의가 없어, 하의가. 아래가 제일 중요한데.
“형!”
유현이가 나를 불렀다. 설마 싶어 고개를 돌리자 다들 멀쩡하게 옷 잘 차려입은 모습이 보였다. 송 실장님만 제외하고. 송 실장님도 나와는 다르게 하의는 무사한 채로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이템도 아닌 셔츠에 보상치를 투자하기는 싫으셨던 모양이었다. 바지까지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아무튼 다른 사람들은 신입이 챙겨 줬나 보구나. 그래, 나 빼고 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쪽팔려 죽겠네.
“형, 혹시 옷─”
“어, 응. 예림이 넌 오지 마!”
“잘 싸매서 안 보여요~”
“그래도 안 돼!”
내 외침 사이로 도깨비들의 수군거림이 섞여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김서방 왜 저래, 강아지 작아졌어! 대왕님이다! 등등.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일단, 일단! 우리 사라지고 얼마나 지났어? 시간 말이야.”
“한 시간!”
“아냐, 다섯 시간!”
“백아흔아홉 시간! 정확해!”
“김서방 나 배고파!”
“난 졸려!”
…어쨌든 하루는 안 지난 듯했다. 날도 밝지 않았고. 달의 위치를 보니 서너 시간쯤 흘렀으려나. 새벽이 머잖은 것 같았다.
“내 옷이라도 벗어 줄까?”
“넌 어쩌려고. 어차피 안 맞아.”
동생의 마음은 고맙지만 웃기지도 않는 꼴이 되겠지.
“털실이 남아 있는데 속옷─”
“됐거든요! 사양합니다!”
핫핑크 털팬티라니 제정신이냐. 그놈의 털실은 왜 끝도 없이 나와.
“줄 거면 차라리 댁 걸 벗어 주든가.”
“실레키아로도 모자라 마지막 한 장까지 내놓으라 하다니. 내 파트너는 욕심도 많지.”
성현제가 그것까지 주기엔 자신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며 헛소리를 했다. 솔직히 대낮에 알몸으로도 뻔뻔하게 잘 돌아다닐 거 같은데. 한 발 떼기 무섭게 송 실장님이 체포하겠지만.
송 실장님도 무어라 말하려는 기색이라 얼른 고개를 저어 사양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요.
“유현아, 돌아서서 나 좀 가려 줘. 성현제 씨, 쳐다보지 마시죠.”
일단 롱가디건을 꺼내 아랫도리에 둘렀다. 하반신이 완전히 감싸지니 마음의 평화가 조금쯤 찾아왔다.
아, 진짜. 뭔가 나와서 할 말도 할 일도 많았는데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어.
“빠진 도깨비 없지! 다 모였어?”
윤윤이 도깨비들을 확인하며 크게 소리쳤다.
“여기 오기로 한 도깨비는 다 있어요!”
“새끼 몬스터들이랑 같이 있는 도깨비들은 없어요!”
도깨비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며 대답했다. 참, 새끼 몬스터들도 챙겨야지. 다들 데리고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데.
“한유진 씨를 무사히 구해 냈으니 최우선적으로 귀국해야 합니다.”
더는 허튼짓할 생각 말라는 듯 송 실장님이 딱딱하게 말했다. 그래, 집에 가야지.
‘박하율은 아직 괜찮은 것 같고.’
섬은 박살 나고 행방도 몰라서인가 다행히 그 녀석을 찾으러 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나 여기 있소, 하면 연락을 해오든가 말든가 하겠지. 이대로 중국에 미적거리는 것보다야 귀국하는 편이 서로에게 나을 것이다.
“근처 공항은 멀쩡한 곳이 없으니 일단 육로로 이동해야겠죠.”
– 끼앙!
내 발치를 맴돌던 피스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몸집을 키웠다. 어, 근데 내가 지금 널 타기가…….
– 그르릉.
“고맙긴 한데, 피스야. 음, 옆으로 다리를 모아서… 너무 불안정한가.”
벌리고 탈 수는 없잖아. 속옷이 필요해. 이왕이면 바지도.
“제가 애들 찾아올까요?”
예림이가 둥실 떠오르며 말했다.
“혼자는 안 돼!”
“저도 같이 갔다 올게요. 이 주위는 조사를 끝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노아 씨도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두 사람이 애들 데리러 자리를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윤윤 빼고, 상황을 정리했다.
“탈출 루트 없이 오신 건 아니겠지요.”
공항을 다 박살 내기로 했으면 따로 빠져나갈 방법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 설마 그런 계획 하나 없을까.
“형부터 돌려보낼 생각이었어.”
유현이가 나를 들어 피스의 등에 앉혀 주며 말했다. 코트 자락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며 핫핑크 가디건이 드러나는 것이 매우 민망스러웠다. 얼른 다시 코트를 당겨 가렸다. 패션테러리스트가 따로 없다. 심지어 맨다리에, 맨발에 부츠다.
“피스가 있으니까.”
“나머지는 S급이니 알아서들 돌아가고? 서해를 헤엄쳐서?”
“나는 형과 동행했을 거고 박예림과 노아 헌터는 비행 스킬 가지고 있잖아.”
성현제와 송 실장님은 버리는 거냐. 하기야 두 사람, 특히 성현제라면 어디다 던져 놔도 알아서 잘 돌아오겠지만.
“이젠 애들이 너무 많아서 안 돼. 윤윤, 도깨비들이 바다를 건너갈 수 있을까?”
“반도 못 가서 풍덩풍덩 빠질걸!”
역시 비행기든 배든 타고 갈 것이 필요했다.
“이곳에서는 통신 자체가 불가능하니, 우선 허페이로 향하지.”
성현제가 말했다. 이어 송 실장님도 입을 열었다.
“저쪽 호숫가에 군용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습니다. 연식이 오래된 차량은 이모빌라이저 적용이 되어 있지 않겠지요.”
“송 실장님 차량 탈취 좀 해보셨나봐요. 말씀하시는 게 익숙하시네.”
농담 삼아 던졌는데 송 실장님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진짜냐.
“콜롬비아였던가. 이집트?”
성현제가 범인이구나. 송 실장님을 대체 어디까지 끌고 간 거야.
아무튼 허페이로 가서 연락도 취하고 상황도 알아보기로 했다. 이 난리가 난 지 수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용한 것이 수상쩍기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림이와 노아 씨가 돌아왔다.
“아저씨! 애들 다 무사해요!”
예림이가 새끼 페가수스를 안아든 채 소리쳤다. 그 옆으로 물방울 속에 잠겨 있는 새끼 수룡이 보였다. 수룡이 머리를 내밀며 인사하듯 지느러미를 파닥였다.
– 끄르릉!
노아 씨의 품에는 꿈나라를 헤매는 새끼 물소가 안겨 있었다. 잘 자네. 리프닐이 팔랑팔랑 날아오고 새끼 여우와 알은 도깨비들이 데리고 왔다.
– 크르르.
그 광경을 본 피스가 불만스럽게 으르렁거렸다. 내게 다가오려던 리프닐이 그 서슬에 화들짝 놀라며 공중에서 맴을 돌았다.
“너무 그러지 마, 피스야.”
– 끄웅.
“새끼 몬스터가 몇이 더 오든 우리 피스가 최고지.”
보자, 차가 못해도 세 대는 필요하겠구만. 그새 호수가 녹아내렸기에 성현제는 제대로 앉기 힘든 나를 잡아 줄 겸 같이 피스에 탔다. 덕분에 싫은 기색 팍팍 풍기는 피스를 달래 줘야 했다.
유현이야 버들잎이 있었고 송 실장님은 노아 씨가 태워 주었다.
호수 주변 역시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했다. 차를 지키는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다.
“자, 다들 나눠서 타. 도깨비들 조용히 해야 해!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네 명이지요?”
“아저씨, 저도 있어요!”
“예림아, 등급 낮은 도깨비들과 새끼 몬스터들이 있으니 오늘은 참자.”
면허는 있지만 불안했다.
“대신 열쇠구멍에 물 넣어서 맞춰 얼려 볼래? 그런 식으로도 되려나.”
“해볼게요.”
오래된 차면 열쇠 따는 것도 가능하긴 할 텐데.
“핀이 정확한 위치를 누르면 돌려질 거야.”
예림이가 차 문의 열쇠구멍에 미세한 얼음조각들을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컥, 문이 열렸다.
“됐어요! 여기요!”
“잘했어! 물론 평소에는 이런 짓 하면 안 된다. 어차피 요즘 차엔 안 통해.”
“걱정 마세요.”
그렇게 얼음 열쇠가 네 개 만들어졌다. 도깨비들이 작은 불덩이로 변해 우르르 올라타고 우리도 제각각 나누어 차에 탔다. 은신 스킬 등급이 높은 윤윤은 밖에서 주위를 경계하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갈 때까진 나 혼자 두지 마.”
운전 중인 유현이에게 공포 저항 스킬을 끄고 작게 말했다.
“아직 박하율의 스킬이 풀린 게 아니라서 위험해. 공포 저항이 없으면 괜찮지만.”
“찾아서 죽이면 될까?”
“그게 어떻게 될지 불안하니 말이다. 스킬이 풀리면 다행인데, 자칫 이상하게 적용될 수도 있어. 박하율의 복수를 하려 든다거나 기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고.”
“나는 함부로 손대면 안 되겠네. 박예림에게도 말해 둬.”
“응. 한국에 가서야 평소에는 공포 저항 없이 지내면 되니까.”
상급 헌터들 만날 일이 있을 때만 켜면 된다. 그때야 나 혼자가 아니니 도망치려 해도 쉽게 잡을 수 있을 거고, 감시를 붙여 둬도 되고.
“그래도 위험요소를 계속 내버려 둘 순 없으니 박하율을 찾기는 찾아야 하는데, 현상수배라도 할까?”
“제대로 된 명분이 없으면 오히려 위험해. 특히 지금 당장 박하율을 공개적으로 찾기 시작하면 형의 납치와 관련되었다고 쉽게 추측할 수 있겠지.”
“물밑에선 대충 다 알지 않겠냐.”
“정신계 스킬이라는 건, 아직 형에게 효과가 남아 있다는 건 모르니까. 당장은 납치 건이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아.”
“하긴 그렇겠다. 나도 한동안은 얌전히 지내야지. 키울 애들도 확 늘었고.”
뒷좌석을 힐끔 돌아보았다. 새끼 마수들이 차의 흔들림 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그사이의 피스가 불만스럽게 나를 마주 쳐다봐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애들을 보호해 주라고 둔 거긴 한데.
“이리 올래? 피스야.”
– 끼우웅.
피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조수석으로 넘어왔다. 그릉거리며 몸 전체를 비벼오는 걸 잔뜩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피스, 기특하기도 하지. 도깨비들도 잘 돌봐줬다며?”
– 갸르릉.
“착하네, 완전 어른이네! 다 컸어 정말!”
– 끄응.
피스가 고개를 홱 돌리며 꼬리를 불만스럽게 탁탁 내리쳤다. 응?
“왜 그래?”
“일부러 유체화까지 하는 녀석이 어른 취급을 좋아할 리 없잖아.”
“그런가? 어리광쟁이라니까.”
귀여운 녀석. 다른 애들은 집에 잘 있을까.
휑한 길을 한참동안 달린 끝에 드디어 도시로 접어들었다. 도로변에 초소가 세워져 있었지만 군용차량이라서인가 바로 통과시켜 주었다. 아직 노산도에서 난리 난 게 전해지지 않은 것일까.
적당히 눈에 띄는 가게로 가 성현제가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사이 유현이가 내가 입을 옷을 사다 주었다. 평범한 옷가지가 이렇게나 반가울 줄은 몰랐다. 역시 사람 사는 데는 의식주가 필수지.
오래지 않아 세성 쪽 사람들이 나타났다. 노산도와 가까운 허페이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안내해 간 곳은 별장 같은 커다란 저택이었다. 중국식과 서양식이 뒤섞이고 높은 담이 둘러쳐진 채였다. 홍콩 때도 이런 곳이 있긴 했지만 말이야, 여긴 이름이 익숙한 동네도 아닌데. 급히 빌리거나 구매한 걸까. 돈 많아서 좋겠다.
“아직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만.”
세성의 정보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중국 각지의 군부 소속 헌터들 중 죽지 않는 자들, 언데드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언데드라면, 설마.
“…섬에서 군인들이 변화한 것과 같은 현상인 걸까요?”
“미리 계약이 된 자들은 노산도 밖에서도 언데드화한 모양일지도.”
“난리 났겠네요.”
초화운을 데리고 간 황림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놈이 주축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설마 애초에 군부를 엎기라도 할 생각이었던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그리고 무림맹 쪽에서 면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지금 말인가.”
“오전에 헬기를 보내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럼 일단 아침까지는 쉴 수 있을 듯했다. 귀국 루트는 상하이에서의 배편과 멀쩡한 공항을 통한 비행기 편이 있다고 하였다. 헬기가 있으니 공항으로 가는 편이 낫겠지.
유현이와 송 실장님은 각각 해연과 각관실로 연락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으윽, 잠이 올지 모르겠네.”
팔을 쭉 뻗어 길게 기지개를 켰다. 시차가 확 달라져 버렸어. 그래도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는 게 좋으려나. 피곤하긴 하니까.
“전 전혀 안 졸려요. 정원에 나가 봐도 돼요?”
“담만 넘지 마.”
“나도 구경할래! 연못 있더라!”
윤윤은 생생하게 예림이를 따라 나갔지만 다른 도깨비들은 모두 곯아떨어졌다.
“노아 씨, 혹시 의대 갈 생각 없어요?”
거실 소파에 늘어진 채 노아 씨에게 말을 걸었다.
“…네?”
“인체에 대해 잘 알면 스킬 쓰기가 더 좋을 거 같아서요. 하긴 의대까지 갈 거 없이 따로 공부해도 되겠지요. 세성 병원 의사에게 부탁할 수도 있을 거고요.”
일반 의사보다 헌터의 신체에 대해 잘 알겠지. 그때 성현제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나를 바라보았다.
“잠깐 시간을 내어주겠나.”
무슨 일이지. 나도 따로 해야 할 말이 많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