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45
443화 귀국 (2)
중국 군부 이곳저곳이 좀비 사태로 난리가 났지만, 그럼에도 힘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헌터들은 바빠도 현대무기는 그대로였다. 비행기쯤이야 가볍게 격추할 수 있는 미사일 따위가 말이다.
송 실장님 일행은 군부의 혼란이 극에 달했을 때 재빨리 빠져나갔지만, 하루가 훌쩍 지난 지금은 그럭저럭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다.
“툭하면 어디 잡혀간 꼴로 나오게 되니 민망스럽네.”
중국 옷 곱게 차려입고 생기 있어 보이라고 화장도 살짝 했다. 이미 한국과 연락도 해놓았기에 방송은 곧장 TV로 내보내질 예정이었다. 카메라가 켜지고 환한 미소와 함께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저는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구조팀의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화면 밖의 S급 헌터들은 지금 이곳에 없다. 유현이는 던전 공략 중이며 예림이는 일본에, 세성 길드장은 근신 중이다.
그러니 나를 구해 준 사람들은 실재하지 않는 누군가들이었다.
앞으로도 나를 노릴 자는 많을 것이다. 채터박스가 끌어들인 자들, 그 사이비 종교에서도 분명 접근해 오겠지. 하니 이참에 가상의 구조팀을 만들기로 했다. 나를 구하러 올 정도로 실력 좋은 헌터 팀이 있으며, 정체는 베일에 감싸여 있다.
일종의 허수아비였다. 참새 떼가 어, 생각보다 더 경계가 철저하네 하고 쉽게 덤비지 못하도록 만드는.
“덧붙여 중국 정부의 협조에도 감사를 표하겠습니다. 중국을 거쳐 간 납치범들의 정보를 자세히 전달해 주었기에 너무 늦지 않게 구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서안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고요.”
중국 정부, 셰셰~ 아이템은 정말로 고마웠어요.
“세성 길드의 전용기가 곧 서안 셴양공항에 도착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네요. 동생도 많이 보고 싶고요.”
그리운 한국, 그리운 우리 집. 이렇게 대놓고 중국의 협조하에 무사 귀국합니다~ 방송까지 하는데 비행기를 격추시키진 않을 것이다. 사실 공격해 와도 별문제는 없지만. 비행기 박살 난다고 해도 다칠 사람들이 아니거니와 피스와 노아 씨가 수고 좀 해주면 한국까지 충분히 갈 수 있었다. 심지어 지금 오는 전용기는 기장은 물론 승무원까지 전부 중급 헌터였다. 위험구역용 인력이라나.
그래도 이왕이면 안전하게 가는 편이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호연 선생님 일행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
이렇게 눈길을 끄는 동안 호연 선생님과 그 가족, 그리고 한국으로 망명하고자 하는 몇몇 헌터는 중국을 탈출하고 있었다. 지금 군부의 여력으로는 감시망을 넓게 펼치기 힘드니까. 미끼를 요란하게 흔들어 대면 다른 곳에 신경 쓸 순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같이 움직일까 했는데 비각성자와 등급 낮은 각성자의 수가 예상보다 많았다. 그러니 따로 조용히 빠져나가게 하는 편이 더 안전할 듯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꽁꽁 감춰져 있던 중국 헌터계와의 교류도 활발해졌으면 좋겠네요. 훌륭한 헌터분들이 많더라고요.”
비록 우리 덕분에 여럿 죽어 나갔지만. 그래도 계속 썩어 들어가다가 결국 망하는 것보단 낫잖아. 남의 나라 일! 이라고 모른 척하기에는 던전 브레이크가 문제라. 쌓아 두면 결국 다른 나라가 뒤처리해 주는 수밖에 없다고.
중국 헌터들 칭찬도 나름 길게 해주었다. 초화운 상장님, 잘 계신가요. 신세 참 많이 졌습니다만.
“그리고 기승수 사육소에 보내 주신 관심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슬슬 방송 끝내도 되지 않나. 대충 할 말 다 했는데 시간 더 끌어야 하는 건가.
“음, 피스 인형 출시 예정일이 지나 많은 문의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귀국 후 이벤트와 함께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기승수 사육소에 새롭게 들어오게 될 새끼 몬스터들도 많이 사랑해 주세요.”
다양한 인형은 물론 각종 콜라보레이션도 준비 중이랍니다. 또 뭐가 있냐.
“또한 조만간 헌터를 대상으로 한 기승수 특별 모임을 가질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귀국 후 발표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더 떠들려면 시청자 전화라도 받아야 할 거 같습니다만. 내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까지 할 순 없잖아. 우리 애들 자랑이라면 몇 시간이고 나불거릴 수 있지만.
다행히 방송 종료 신호가 들어왔다. 재차 여러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고 한국에서 뵙겠다며 인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식을 기다리며 점심도 먹고 느긋이 시간을 보내던 중,
“무사히 출항했으며 추적 또한 없다고 합니다.”
은세선이 다가와 말해 주었다. 잘 빠져나갔구나. 내륙으로 들어온 우리와 반대로 호연 선생님 일행은 항구로 향했다. 시간은 더 오래 걸리지만 배편이 감시도 적고 비행기보다 훨씬 안전했다. 한국에서도 배를 보내 중간부터 호위해 주기로도 하였다.
“그럼 우리도 출발하죠.”
챙길 거 다 챙겼고, 뭐 빼먹은 거 없지.
언데드들 때문에 공항은 텅 비어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던전이 터져 몬스터가 출몰했다는 이유로 외출금지령이 떨어졌다고 했다. 공항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감시가 엄중하지는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군부가 한 소장님을 납치한 것이 아니니까요.”
평범한 일상복 차림의 은세선이 창밖을 살피며 말했다.
“방송까지 나간 이상 대놓고 막을 수도 없을 테고, 군부 내에서도 이번 일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실세는 각성자지만 비율은 하급각성자나 비각성자가 훨씬 더 많기도 하고요.”
게다가 이번 사태로 인해 군부의, 정부의 세력 판도도 비각성자 쪽으로 기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였다. 무림맹 측은 아예 헌터계와 정부가 분리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무협 속의 관과 무림이 상호불가침인 것처럼.
사목월을 처음 봤을 땐 대체 무슨 광대놀음이냐 싶었는데 아예 새로운 헌터계의 체계를 만드는 것보다는 익숙한 문화를 끌어들이는 편이 나은 듯도 했다.
“여기서부터는 한국인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용기가 대기하고 있는 비행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군인들이 앞을 막아섰다. 나를 잡는 건 포기했어도 중국 헌터를 빼내 가는 건 막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긴 A급 힐러가 탈출했다는 소식도 이미 전해졌을 테니까. 중국 내에 있으면 다시 잡을 수 있겠지만 해외로 뜨면 불가능하지.
“민증 놓고 왔는데.”
여권도 없다. 차에서 내려서는 나를 지위 높아 보이는 군인이 찌푸린 얼굴로 쳐다보았다.
“저도 없어요.”
“예림이 넌 애초에 민증 나오지도 않았잖냐.”
“나도 없어.”
“저도 신분증은 없어요. 원래 이런 일 할 땐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은 소지하지 않는 게 기본이라…….”
마지막으로 성현제가 지갑을 꺼내 들었다. 지갑을 열자 나타난 것은 민증은 아니고 헌터증이었다. 제일 안 들고 다닐 것 같은 사람이.
“세성 길드장님도 증명사진은 어쩔 수 없네요.”
잘생기긴 했는데 실물에 비하면 뒤떨어지긴 했다.
“보정 하나도 안 했나 봐요. 그런 것치곤 잘 나왔는데요?”
예림이가 고개를 쑥 빼어 성현제 헌터증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손댈 데는 뭐, 딱히 없긴 하지.
“그 난리 통에 어떻게 지갑이 무사했대요.”
“한유진 군을 만나러 가기 전에 따로 맡겨 놓았지.”
“뭐 귀한 거라도 들었습니까.”
“헌터증을 재발급받을 필요가 없어진다네.”
하긴 그거 귀찮지. 당사자가 직접 가서 신청수령 해야 하는 데다가 B급 이상은 사진도 새로 찍어야 한다.
공식적으론 한국에 있어야 할 S급 헌터들의 모습에 군인의 얼굴이 더더욱 일그러졌다. 그래도 상황을 아는 사람을 보낸 건지 의문을 표하지는 않았다.
“본인 확인을 하겠습니다. 신체 사이즈를 기재해 주십시오.”
이어 열 감지 카메라 촬영과 직접 줄자로 키를 재는 작업까지 이루어졌다. 변신 스킬이나 아이템은 보통 타인의 눈을 속이는 것이지 신체가 실제로 바뀌지는 않았다. 노아 씨나 윤윤 같은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 정도로 등급 높은 스킬은 드무니까.
“내 키는 아직도 그대로네…….”
악몽 던전 속에서 레벨 꽤 올랐는데 새 스킬도 없고. 스탯 좀 상승한 게 전부였다. 10레벨당 얻어야 하는 스킬 다 어디 갔냐고. 선생님 스킬 때처럼 특수 조건이 있는 모양이지만 뭔지 알아야 시도라도 해보지.
검문 통과 후 비행장으로 들어갔다. 전용기를 보자마자 예림이가 먼저 훌쩍 날아 들어갔다가, 이내 도로 뛰쳐나왔다.
“이 비행기 아닌가 봐요!”
응?
“이건, 그러니까, 유치원 비행기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유치원 버스도 아니고 비행기라니. 하지만 비행기 옆면에 세성 영문이 뚜렷하게 박혀 있었다.
“세성 전용기 맞아.”
애초에 다른 비행기들은 출발 준비도 안 되었고. 옆에 동동 떠 있는 예림이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서 계단을 올라 안으로…….
…세성 전용기 아닌가.
“이게, 뭔…….”
핑크였다. 분홍 벽에 분홍 소파에 분홍 테이블에 아무튼 다 분홍빛이었다. 심지어 벽에 그린 그림도 동화풍 유니콘과 색색의 풍선과 무지개와 솜사탕 구름과… 음. 테이블 위에 피스 인형도 있네.
“독… 특하네요.”
노아 씨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유현이는 별 반응 없었지만.
“그러게요. 어, 성현제 씨. 취향이 특이하십니다.”
이런 거 좋아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네. 아니다, 그래서 핫핑크 털실로 그렇게나 열심히 뜨개질을 한 거였나. 어쩐지…….
“한유진 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네만.”
성현제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
“아니 댁 전용기잖아요.”
“기승수 사육소장님 납치용으로 새로 단장시켰지. 좋아하는 색을 보면 기분이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
납치 미수는 일단 젖혀 두고.
“안 좋아합니다!”
대체 언제부터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게 된 건데!
“진짜요?”
성현제가 아닌 예림이가 내게 물었다.
“당연하지. 애초에 좋아한다고 한 적도 없어.”
“말로만 그러시는 줄 알았죠. 왜요, 싫은데 싫은데 하면서 속으로는 아닌 거. 어른들은 많이들 그러잖아요. 아저씨 그 핫핑크 털실 템 되게 잘 쓰셨고. 분홍색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그냥 있으니까 쓴 거야!”
“나도 형이 좋아하는 줄 알았어.”
“…뭐? 유현아?”
아니 다른 사람은 그렇다 쳐도 유현이 네가 왜.
“내가 분홍색 물건 산 적은 없지 않았냐.”
“취향은 바뀌기도 하는 거라잖아. 그리고 분홍색도 잘 어울려.”
“…진짜?”
“아저씨, 믿지 마세요. 아저씨는 콩깍지 정도지만 한유현은 눈알 자체가 문제라니까요. 아저씨가 삼단 신호등으로 빼입어도 똑같은 소리 할 게 분명해요.”
“아, 아무튼 분홍색 안 좋아해. 안 좋아합니다.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좋아하지도 않아요.”
그나마 봐줄 만한 건 피스 인형뿐이었다. 출시 전인데 어떻게 구했대. 인형을 들어 올리자 피스가 다가왔다.
“피스야, 네 인형이야.”
– 끼앙.
피스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앞발을 내밀었다. 가지고 싶은 건가. 피스에게 인형을 주자 덥석 물고는 신나게 뜯기 시작했다. 음, 원래 강아지나 고양이는 인형을 물어뜯으며 놀긴 하지. 분홍색 카펫 위로 하얀 솜이 흩날렸다.
“저를 챙겨 준 성의는 고맙지만 말입니다, 솔직히 정신 사나워요.”
“송태원 씨는 마음에 든 모양이던데.”
“…중국 올 때 이거 탔습니까?”
“물론이지.”
세상에나. 성현제 곁으로 다가가 슬쩍 물었다.
“사진이나 영상, 혹시 없어요?”
“아쉽게도 보안상 촬영은 금지라네.”
송 실장님이 여기 앉아 계셨다니. 솔직히 보고 싶었다. 심지어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잖아. 설마 송 실장님 분홍색 좋아하시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분홍색 스웨터라도 짜 드릴까. 수제면 괜찮을 거 아니냐.
혹시나 싶어 다른 곳도 살펴보았고, 역시나 죄다 핑크였다.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분홍색으로 도배를 해놓았다.
“…비행기 속에 웬 욕조입니까. 그것도 월풀 아닙니까, 저거.”
덧붙여 진분홍이었다. 침대도 분홍이고 그 옆에는 플라밍고 장식품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컵도 접시도 포크도.
돈지랄 한번 참 지랄스럽게 해놓았다.
비행기를 한 바퀴 돌아보는 사이 출발 준비가 끝났다. 처음의 그 응접실로 돌아가 분홍색 소파에 앉았다. 여기로 납치되었다면 어이가 없어서 화도 제대로 못 냈을 거다. 뭐야, 이게.
“음, 일단 아이템 정리 마저 하자.”
도검 세 개는 볼 것도 없이 유현이에게 주었다. 도검포식자용으로 챙겨 둬도 되고 길드원에게 대여해 줘도 될 것이다. 그리고 와이어는, 어떻게 드리지.
“혹시 이 와이어 송 실장님이 받아가게 할 방법 아시는 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무기 네 개를 제외하고 남은 S급 아이템은 여덟 개였다. 그중에서 S급 겉옷을 꺼내 들었다. 가을 들풀 재킷, 카키색 바람막이였다.
“이것 봐, 예림아. 어떠냐!”
예림이에겐 아직 숄 외의 S급 겉옷은 없었다. 숄이야 옷이라고 하기도 힘들었고.
“나름 괜찮지 않아?”
“요즘엔 괜찮은데요, 여름 되면 웃길 거 같아요.”
“어차피 아이템인데 뭐. 옵션도 좋아. 방어력에 민첩 순간 상승도 붙었고. 외투치곤 마력 옵션도 높아.”
예림이가 바람막이를 걸쳐 보았다. 평범하게 잘 어울렸다.
“어때요?”
“진짜 딱이네, 딱이야! 귀여워! 여기 반코트도 있더라. 옵션은 바막보다는 너한테 덜 어울리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
둘 다 S급이었다.
“SS급 생기기 전까지는 S급 적당히 돌려 입으면 돼. 그리고 이거, 장갑.”
“장갑에 반지 껴도 돼요?”
“괜찮아. 장갑은 손가락은 장식에 가깝거든. 손바닥이나 손등은 중첩 안 되지만.”
다만 옵션은 근접계에 가까워서 예림이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S급이니까. 예림이도 SS급 좀 더 갖춰 줘야 하는데.
예림이에게 이것저것 입혀 보며 옵션을 맞춰 보는 사이 비행기가 한국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