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47
445화 돌아와서도 일합니다 (1)
“괜찮겠어, 형?”
유현이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에 눈을 둔 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많이 쌓이긴 했지만 뭐…….”
솔직히 조금 슬퍼지긴 했다. 테이블 위의 종이는 다름 아닌 석시명 씨가 친절히 보내온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의 목록이었다.
“귀국 추가 인터뷰는 건강 문제로 생략되었고. 피스 인형 홍보는, 얼굴 한번 비춰 주긴 해야 하는데. 새끼 몬스터들을 정식으로 데려온 게 아니니 협회에 가서 뒤처리해야 하고……. 중국 헌터는 해연에서 맡아 주는 거지?”
“응. 그쪽 수속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미 항구에서 대기 중이고.”
“수술 일정도 잡아야 하고… 뭐야, 그새 골드 햄스터 잡았네.”
곧 입국 예정이라고 하였다. 그럼 해외 기승수도 맡게 되는데… 첫 해외 의뢰니 또 이래저래 얼굴 들이대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니냐.
“각성센터 문제도 협회에서 슬슬 재촉해 오는 모양이고. 한국은 안전해졌으니 이건 좀 미뤄도 되지 않나. 던전 내 촬영기기도 많이 진행되었네. 이거 말고도 송 실장님 문제도 있고. 해외 헌터들 확인할 겸 불러 모으기도 해야 하고.”
뭐지. 뭐가 이렇게 많은 거지. 일단 가장 급한 건 몬스터들 등록이었다.
“해연 길드장님, 동생 한정 특별 우선권을 드리지요.”
유현이가 눈을 깜박이더니 미소를 머금었다.
“감사합니다, 한유진 소장님.”
자연스럽게 대답하곤 1인용 소파에 앉으며 긴 다리를 가볍게 늘어뜨린다. 내가 옛날에 다리 꼬면 몸에 안 좋다고 몇 번 말해서인가 동생은 대체로 자세가 바른 편이었다. 그러면서도 약간 느슨하게, 여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난 저렇게 적당히 앉으면 폼이 전혀 안 나서.
“상급 기승수는 그 어떤 종이라 해도 귀하지만, 그중에서도 수룡은 해연의 박예림 헌터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승수입니다.”
“S급에 꼭 필요하기까지 하니, 이거 몸값이 만만찮겠습니다.”
“동시에 국내에서 수중 타입 기승수를 필요로 하는 상급 헌터는 현재로선 박예림 헌터가 유일하기도 하지요.”
다시 말해 해연 아니면 값을 제대로 치러 줄 대형 길드가 없다는 소리였다. 해외와 거래하기에는 헌터특별법상 세금이 어마하게 붙을 거고.
“물론 그 이유로 가치를 절하하지는 않을 겁니다. 한유진 소장님께서 만족하실 만큼, 충분한 대가를 치러 드리겠습니다.”
“자신만만하시네요. 절 만족시키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실 텐데요. 만약 제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해연 길드장님께서 몸을 일으켰다. 테이블을 천천히 돌아 내 옆에 서서는 상체를 숙였다. 내밀어진 동생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남이었으면 꽤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얼굴이 부드럽게 웃고 있는걸.
“거절하실 겁니까?”
정말로? 하고 묻는 목소리에 애교가 은근슬쩍 섞여 있었다. 이것 봐라. 동생의 팔을 잡아당기자 순순히 내 옆에 풀썩 앉는다.
“길드장님이 되어서 말이야,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당연히 형한테.”
“뭐? 아니 내가 언제!”
짚이는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알바 할 때라거나.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서비스 정신이고. 특히 어른들이 어린 청년이 고생한다며 잘 봐주다 보니.
“배워도 그런 걸 따라 하냐, S급 헌터가.”
“어차피 형한테 말고는 한 적도, 할 일도 없어.”
살짝 기대오는 동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주었다.
“나 아니면 어떻게 할 건데?”
“해연 외에는 거래 상대가 마땅찮으니까, 먼저 거절해 주면 잘된 거지. 명분도 생겼으니 돌아 나와서 천천히 조여가면 돼.”
좋은 대답이다.
“뭘 가지고 싶어, 형?”
“착한 동생이니까 특별히 예전 S급 새끼 몬스터 시세로 받아 줄게. 어차피 그거 예림이 빚 되는 거 아니냐.”
길드에서 관련 일처리야 도와주겠지만 공용도 아닌 개인 기승수를 위한 비용까지 지불해 줄 의무는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주고 싶었지만 공적인 일을 너무 사적으로 진행하는 것도 안 좋았다. 자칫했다간 나중에 예림이에게 흠으로 잡힐 수도 있고.
“그럼 진짜 얼마 안 하는데.”
“덤으로 해연 길드장님 봉사라도 받아 볼까. 어제 애들 목욕시켰더니 형 어깨가 쑤시는구나.”
유현이가 냉큼 내 어깨를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아이고 시원하다. 검은 등 물소는 A급 팀에 넣으면 좋을 거야. S급 던전 팀에서도 충분히 동행할 수 있고.”
“응, 물소는 제대로 다 받아 가.”
“그러마. 반면에 리프닐과 뿔여우는, 일단 보류해 두자. 둘 다 애매해.”
둘 다 작다 보니 기승수로 쓸 수 없고 전투원으로 넣기에도 까다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별생각 없이 상급 새끼 몬스터니까, 라며 무작정 사로잡은 모양이었다. 난 기승수 사육소장이라고, 기승수.
“페가수스는, 으으윽, 아파.”
“좀 뭉친 것 같아. 날개뼈 부근도 그렇고. 등 바로 펴, 형.”
“악, 야. 살살 좀……. 초원 페가수스는 A급이지만 S급 헌터들도 충분히 기승수로 쓸 수 있을 거야. 방어계는, 윽, 별로고. 근접계보다도 원거리가아악! 잠깐, 잠깐!”
– 크르르.
소파 아래에 엎드려 있던 피스가 내 신음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다 못해 이를 드러냈다.
“피스야, 괜찮─ 유현아악!”
“다리 치료하고 나면 진짜 운동하자.”
“아니, 그래도 내가, 윽, 던전에서 중급 헌터들도 잡고!”
“그러니까 더 이렇지. 아무래도 형에게 전투 중 무리해서 몸을 쓰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 마력이나 스킬이 아니라, 신체 자체를 말이야. 회귀 전 기억도 있고 가끔 스탯이 상승하는 데다가 주위의 S급 헌터들을 보고 감각 공유도 하니까.”
으음, 그럴 수도 있겠다. 자기 한계를 체감하기 어려운 환경이긴 했지.
“심지어 평소에도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페가수스는 말이야, 에블린 헌터에게 어울릴 것 같더라고. 딱히 속성 스킬은 없는 듯했지만 물어보려고.”
현아 씨도 쓸 수 있겠지만 소록이가 있으니까. 소록이의 성장이 너무 느리더라도 페가수스보다는 차라리 유니콘을 빌려주는 편이 나을 것이다. 블루도 있고.
“해연에는 그다지 필요 없지?”
“음, 당장은. A급 기승수는 넉넉한 편이니까.”
유니콘 두 마리에 더해 늑대 두 마리, 도마뱀에 타조까지. 상급 팀 하나를 커버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물론 예림이에 성한 씨까지 각자 기승수를 포함한 팀을 만들려면 훨씬 더 많은 몬스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 한 팀은 갖추었으니 해연에서 조금쯤 양보하는 모습도 보여 주는 편이 나았다. 너무 독식하면 미움받기 마련이니까.
아예 동생 무릎 위에 엎드린 채로 휴대폰을 들었다. 뭉친 게 좀 풀린 건지 아까보다는 덜 아팠다.
“안녕하세요, 세성 길드장님.”
[간밤에 편히 쉬었나, 한유진 군.]“푹 잘 잤죠. 다름이 아니라 에블린 씨에게 페가수스, 어떻습니까.”
[환영이지.]“대답이 바로 나오시는 걸 보니 이미 에블린 씨와 말 끝냈나 봐요.”
척하면 척이다. 한발 앞서 나가고 말도 탁탁 통하니 길게 끌 것 없어서 편하긴 하다니까.
“그럼 거두절미하고, 일단 이번에 들여아, 악!”
[…한유진 군?]“안마받는 중이라서요. 거긴 좀 많이 아픈데. 새로 온 새끼 몬스터들 등록 처리는 세성에서 대신 맡아 주십시오.”
나는 피곤해서 말이야. 일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사육소장님께서 직접 하셔야 할 텐데.]“튕기지 마시고요. 세성 길드장님께서 그 정도 편법 하나 못 쓰실까.”
[송태원 실장이 싫은 소리 하겠군.]“송 실장님 괴롭히지 마시고, 깔끔하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세한 거래 조건은 애들 등록 후 이야기하도록 하죠.”
통화를 끝내고 곧장 해연으로 전화했다. 피스 인형은 아직 홍보팀에서 관리 중이지만 조만간 따로 부서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확실히 많이 늦춰지긴 했죠.”
[예. 컨셉 촬영 외의 준비는 끝났으니 한 소장님께서 잠시 시간만 내어주시면 됩니다.]“이왕이면 주말이 좋겠지요?”
평일에는 직장도 가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하고. 진행 상황 보고받고 일정도 맞추었다. 제일 급한 건 사진 촬영이라 이건 오늘 오후에 바로 찍기로 했다.
“왜 나도 찍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피스 인형인데 피스만 귀엽게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 유체화 피스는 나랑 찍고 성체는 유현이와 찍을 예정이었다.
이어 석시명에게 사육소 신입들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차근차근 인수인계 중이긴 하지만 경력자가 적어서 시간이 좀 걸리는 모양이었다.
인력 모집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했다. 특히 사육장 담당은 자격요건이 높음에도 희망하는 헌터가 제법 많은 모양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인 걸까.
[그리고, 길드장님께서 옆에 계시지 싶습니다만.]“네. 있어요.”
[빌딩 쪽에 기자들 대기하고 있습니다. 길드장님께서 해연으로 오실 때 한 소장님께서 배웅을 나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배웅이요?”
[예. 이번 납치 건에 대한 헛소문을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 한동안 사이좋은 모습을 비춰 주셨으면 합니다.]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무슨 헛소문이지. 내가 납치되고 나서 손 놓고 던전 들어간 것 때문에 사실은 사이가 나쁘다, 라는 말이라도 나온 걸까.
[덧붙여 기승수 사육소 이름을 적당히 추려 놓았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으음, 요즘 이름 정하는 건 자신감이 좀 떨어지는데. 그래도 골라 놓은 것 중에서 선택하는 거니까 눈 감고 찍어도 나쁘진 않겠지.
피스와 함께 유현이를 배웅해 주고 사육장으로 향했다. 그사이 헌터 협회에 갔던 예림이가 돌아왔다.
“우리 길드 최대 장점은 협회랑 가깝다, 인 거 같아요.”
예림이가 귀찮다고 투덜대며 말했다. 어제는 일본 귀국 보고였고 오늘은 새로운 장비 등록 및 보고였다. 예림이가 가지게 된 아이템들은 시시오의 협조를 얻어 일본에서 얻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여러모로 참 든든한 아들… 이라니까.
“저렇게 일일이 다 등록했다가 협회 털리면 난리 나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난리야 나겠지. 그래도 장비는 외형 정보만 받아가잖아. 살상력 없으면 단순 보고만 해도 되고, 애초에 우리나라는 총기 관리가 철저했지.”
그래서 초기에는 헌터 무기도 개인 소지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었다. 중급 이상 각성자면 그 스스로가 총기보다 강력하니 흐지부지되었지만.
“임시로 대형 풀장을 설치했습니다.”
사육장 헌터가 운동장 쪽으로 안내해 주며 말했다. 잔디 위에 지름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이동식 수영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강도가 약해 다른 몬스터들은 운동장으로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하긴 저런 구조물은 새끼 늑대가 물어뜯기만 해도 금방 부서지고 말 것이었다. 옥상정원에 연못이 있긴 하지만 수중생활을 하는 수룡에게는 너무 작고. 우선은 가까운 실내수영장을 장기대여하기로 말이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 뀨르륵!
풀장의 파란 막 너머로 새끼 수룡이 고개를 내밀었다. 예림이가 둥실 날아가 수룡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룡이 친근감 있게 예림이의 손바닥에 코끝을 문질렀다.
“물방울 만들어서 데리고 다녀도 돼요? 좋아하는 거 같았는데.”
“물론 괜찮아.”
내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룡이 물덩이와 함께 두둥실 떠올랐다. 빙그르르 맴을 도는 게 예림이 말대로 즐거워하는 듯했다.
“이름은 정했어?”
“네! 근데 정령도 있잖아요. 그래서 두 개 골라 놨죠. 산호랑 마르요. 마르는 바다도 되지만 마르가리타가 진주라는 뜻이기도 하거든요. 산호랑 진주예요.”
수룡에게 아직 어느 쪽 이름을 줄지는 결정 못 했다며 예림이가 미간을 잔뜩 좁혔다. 산호와 진주라니. 솔직히 나보다 많이 나은 것 같았다. 하지만 물 속성이면 나도 나름 괜찮게 지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물의 정령까지 보면 정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태어나려면 멀었을까요?”
“색이 더 짙어지기는 했어.”
중국에 잡혀 있을 땐 인벤토리 밖으로 꺼내 둘 수가 없었다 보니.
“수룡은 마르가 더 어울리긴 하죠? 파란 비늘에 지느러미는 살짝 진줏빛도 돌고요. 어때, 마르야?”
– 꾸우!
“좋아? 응?”
예림이가 물방울 밖으로 뻗어 나온 수룡의 지느러미를 악수하듯 붙잡고 흔들었다.
“마르는 다 크면 경기도 사육소로 가겠죠. 인공호수 만들고 있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피스처럼 유체화를 배우지 않는 한은 말이야.”
“마르야, 너도 할 수 있어! 언니랑 같이 살자!”
– 끄르릉.
둘이 많이 친해지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리프닐은 야행성이었던지 잠들어 있었다. 한밤중에 활발히 움직이긴 했지. 페가수스는 그새 새끼 양과 친해진 모양이었다. 소록이도 웬일로 일어나 있었다.
“소록아, 그동안 운동 좀 했어?”
– 삐애앵.
소록이가 일어나니 물소가 누워 있네. 타조도 문제없고 연못의 도마뱀도 잘 있다고 했지만.
“뿔여우는 낯가림이 심합니다.”
밥은 먹었지만 산책도 하지 않고 우리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다고 했다. 내가 들어가자 귀를 쫑긋 세우며 얼른 달려온다.
– 키잉, 킹!
“그래, 그래. 괜찮아. 무서운 곳 아니야.”
얘는 집에 데리고 가야 하나. 하지만 피스가 싫어할 텐데. 일단은 뿔여우를 안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제.
“아저씨가 얘들 이름 지어 줄 건 아니죠?”
예림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물소와 페가수스는 주인에게 맡길 거야. 다른 애들도 뭐, 내가 안 지어 줘도 되긴 하지만.”
문제라면. 사육장 헌터에게 잠시 비켜 달라고 말하곤 고민거리를 꺼내들었다.
“나한테 이름 지어 달라고 한 애가 있거든.”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 지어 주면 싫어할 거 같아서 말이다.
“전에 세성 길드장으로 변했던 요정용 말이야. 던전에서 본 거 기억나?”
“아, 그 분홍색용이요?”
“응. 일단 음, 분홍이나 체리…….”
예림이 눈치를 슬쩍 살폈다. 다행히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다.
“아저씨치곤 노력 많이 하셨네요.”
“괜찮아?”
“그냥 용이면 괜찮을 거 같은데, 말도 하고 인간으로 변할 수도 있다면서요. 아저씨한테 아빠라고도 했고요. 한분홍이 귀엽긴 해도 다 크면 좀 그렇잖아요. 세성아저씨 얼굴인데.”
…성현제한테 분홍아, 하는 걸 떠올리니 살짝 소름 돋긴 했다.
“평소엔 변해도 어린애 모습이긴 해.”
“일단 색에서 벗어나서 고민해 보세요. 아직까진 괜찮았어요! 아저씨도 노력하면 될 거예요!”
발전이 있다며 예림이가 나를 칭찬했다.
“아니면 세성아저씨한테도 물어보는 게 어때요? 관련 있다면서요.”
“체인질링이 세성 길드장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
그래도 조언 정도는 구해 볼까. 나보다는 뭐,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