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473
471화 편지 (2)
“알아는 보겠는데 좀 이상하긴 하네.”
“공짜 번역기잖아요.”
평범한 인사말 다음에는 내가 무사히 돌아간 것을 축하하는 헛소리가 적혀 있었다.
“뭐? 걱정을 해? 경고 한마디 없이 홀랑 튄 주제에? 너와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을 잊지 못할… 번역기가 문제인 건가.”
끼이익, 유현이 손에서 포크가 우그러졌다. 노아가 미간을 좁히고 명우 또한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개새끼네요.”
“예림아, 그렇게 말하면 강아지에게 미안하잖니.”
개가 얼마나 착한데.
“다시 만나면 더 사랑… 뭐야. 역시 번역이 제대로 안 된 거 아니냐.”
“어, 이건 귀여워해 주겠다는 거 같아요.”
노아 씨가 편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중국어도 아세요?”
“아주 조금요. 이건, 중국 던전에 갔을 때 누님께서 쓴 적 있는 거라…….”
아. 근데 황림 이 자식 대체 뭐 하자는 거야. 번역기의 문제가 크지 싶긴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초화운은… 잘 있다네. 네 다리를, 예림이 넌 보지 마.”
그 개새끼가, 개에겐 미안하지만, 내 다리를 잘라 주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다. 많이 분했나보네. 자른 건 유현이였는데 왜 나인가 싶기도 하지만. 총 맞은 게 열 받았나?
“그때 죽였어야 했는데.”
유현이가 나직하게 말했다. 목소리도 표정도 차갑기 그지없었다. 만약 초화운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목을 베려들지 않을까.
“나도 살려두라고 할 생각 없다. 황림은 별 유감 없어 보인다만 초화운은 아니겠지.”
처음부터 성격은 정말 더럽고 더러운 놈이었지. 그런데 그 꼴을 당하기까지 했으니 지금쯤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나게 되면 어느 한쪽은 무사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초 씨 머리를 잘라야지.
“일단은… 안부편지네.”
편지 내용도 그렇고 편지지나 봉투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냥 우리 그때 즐거웠지, 초화운이 너 잡아 죽이려고 하더라, 걔도 잘 있긴 해, 다음에 또 보자, 고생 많았어~ 이따위 소리들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호연 선생님께 확인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제대로 번역된 것도 아니고 숨겨진 내용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까 클로이 헌터가 아저씨 납치한 사람들과 한패고, 그 사람들은 황림이랑 손잡았다, 라는 거 맞죠?”
예림이가 눈썹을 이리저리 움찍거리며 말했다.
“응. 그런 셈이야. 정확히는 무해의 왕이 중국 군부 쪽과 함께 도깨비 왕을 붙잡았고, 도깨비 왕이 위험하다고 느낀 황림이 박하율의 누님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그 누님이란 사람이 박하율을 시켜서 나를 납치하게 한 거지. 그리고 클로이 씨는 박하율 쪽과 관계가 있는 것이고.”
그 결과로 군부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황림도 거기에 한몫한 셈인데 초화운은 괜찮은 건가?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성격은 아니지 싶건만, 황림이 속이고 있나. 일단 윤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 대장 김서방!]“응, 안녕. 잘 지내고 있어?”
[물론이지! 애들 몇 명 더 늘어났어!] [대왕님! 나도 김서방!] [고양이 보고 싶어!] [나 영상통화 하는 방법 알아요!] [대장 김서방! 잘 먹었어!] [맛있었어!] [자장면 좋아! 떡볶이도!] [나 메밀묵은 별로였어…….] [맞아, 엄청 맛있을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귀 아파라.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약속대로 도깨비들에게 먹고 싶은 걸 다 사주었다. 정확히는 돈만 대준 거긴 하지만. 윤윤이 영상통화를 걸어오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도깨비들이 보였다. 대부분이 어린애 모습이었지만 어른도 간간히 섞여 있었다. 잘들 변신해서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인간 같았다. 음, 쟤는 너무 동글동글하긴 하다.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거 같구만.
[조용히! 쉿! 통화 중이잖아!]윤윤의 외침에 도깨비들이 합,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윤윤도 고생이네.
“중국 쪽의 일과 관련된 사람이 한 명 한국에 들어왔어.”
도깨비들은 여전히 신나게 떠들고 있었지만 윤윤의 표정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그러다가 푸우, 길게 한숨을 내쉰다. 윤윤의 어깨가 크게 오르내렸다.
[화내면 안 돼, 화내면 안 돼.]“그냥 조심하라고 말해 주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사진도 보내 줄게.”
클로이는 군부를 막으려는 쪽이었지만 그래도 황림과 관계가 있는 만큼 경계해서 나쁠 건 없었다. 도깨비들을 이용할 사람은 아니지만… 음.
‘…내가 납치당한 것도 눈감았으니까.’
여전히 그녀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송 실장님과 다른 사람들의 말대로 최소한 내게 있어선,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니 대의를 위해서라면 도깨비들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취할지도 몰랐다.
“그동안 별문제는 없었지?”
윤윤이 히죽 웃었다. 없었을 리가 없지. 지금 주위에서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는 도깨비들만 봐도 사고 여러 번 쳤지 싶었다.
“돈으로 해결 가능한 정도로만 사고 쳐라.”
[응! 나도 돈은 많아.]“한계는 있잖냐. 혹 모자란다고 훔치진 말고.”
나도 도와줄 수 있으니까. 대형 길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도깨비들이 싸움은 못해도 보조는 충분히 가능했다. 특히 상급 도깨비들은 공간이동도 할 수 있으니 던전 안에서든 밖에서든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였다.
[다른 나라에서도?]“안 돼.”
[그럼 물속에 가라앉은 보물 같은 건? 보물선 많이 가라앉아 있대!]“어… 그건 되나?”
모르겠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은 거냐. 그래도 지금은 얌전히 지내라고 말하곤 윤윤과 통화를 끊었다. 이어 이번에는 송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얼마 가지 않아 전화를 받는다.
“송 실장님, 밤새 아무 일 없었습니까?”
성현제로부터 연락이 왔다거나.
[없었습니다. 번케이브 길드원들은 모두 숙소로 돌아갔으며 클로이 앨저 헌터는 협회에 단독행동 보고만 해왔습니다. 행방은 알 수 없지만 문제 되는 행동은 없었던 듯합니다.]클로이는 그저 성현제에게 답장만 받아 출국 할 생각일 테니까. 여전히 명백한 잘못 또한 저지르지 않았다. 납치범과 관련이 있다는 자백 외에는 그녀를 체포할 명분조차 없었다.
[한유진 씨는 괜찮으십니까.]송 실장님이 물어왔다.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네, 괜찮아요.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럼 세성 길드장에게는─]“제가 가보겠습니다.”
제대로 대화를 해봐야지. 만나 줄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혼자 가도 괜찮을까.’
바로 오늘 낮에만 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성현제의 집이든 길드든 혼자 덜렁 만나러 갔을 것이다. 내게 해가 되는 일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테니까.
‘여태껏 당한 거 생각하면 너무 방심하고 있긴 했지.’
그래도 말이야,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었잖아. 최근에는 정말로 잘 대해 주긴 했으니까. 그리고 아직도.
[동행하겠습니다.]송 실장님이 말했다.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요.”
혼자 만나는 편이 나을 거라며 거절하고 통화를 끊었다. 성현제가 좀, 아니 꽤 많이 짜증나고 속을 알기도 힘들고 제멋대로고 너무 잘난 인간이라 솔직히 질투도 나고 기타 등등 불만은 많지만. 그래도 그 역시 내게는 소중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현제 또한 좋아하고 있다. 갑자기 떠나 버린다면 무척이나 쓸쓸할 거고.
그러니 아직 믿고 싶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내 마음이 그랬다. 설사 진짜 적으로 돌아선다더라도 내 목숨까지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클로이가 한국에 온 건 성현제에게 전할 게 있어서야. 답장을 받으러 올 테니까 잡는다면 그때를 노려야 해.”
나를 바라보고 있던 네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이도 꼬리를 탁 쳤다. 결이 넌 나랑 같이 집에 있어야지. 명우 너도 다치면 큰일이잖냐.
“일단 내가 성현제를 만나고 올게.”
“정말로 혼자 가려고?”
유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클로이가 답장까지 받으러 올 거라면, 세성 길드장이 그쪽과 관련 있을 수 있다는 거 아니야? 송 실장님이 동행하겠다고 한 것도 그렇고.”
일부러 두리뭉실하게 말했는데 역시 눈치챈 모양이었다.
“확실한 건 아니야.”
“그 말은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잖아. 안 돼.”
“맞아요, 유진 씨. 제가 동행할까요? 은신 스킬 써서요. 약속 장소에서 구석에 미리 숨어 있으면 세성 길드장이라 해도 눈치채기 힘들 거예요.”
“아니에요. 그리고 세성 길드장이 저를 해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면.”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때는 도와주십시오. 유현아, 예림아 부탁할게. 명우 너도. 만약 세성 길드 자체와 맞서야 한다면 도와줘.”
“당연히 도와줄 거야.”
“절대 무리하지 말고 형 안전만 생각하고 있어.”
“안 그래도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는걸요. 전 환영이에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가능성은 낮아.”
창 빼들지 마렴, 예림아. 유현이도, 다른 사람들도 계속 걱정하긴 했지만 이번 한 번만이라며 달랬다. 사실 성현제가 섣부르게 나올 거 같지도 않았고. 그래도 다들 내 말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 아빠 미워!
한결이는 완전히 토라지고 말았다.
– 진짜로 미운 건 아니지만 너무해!
“괜찮을 거라니까. 삼촌이랑 고모랑 같이 있자. 착하지.”
– …정말로 위험할 수 있단 말이야. 잘 숨어 있을 테니까 데리고 가줘. 아무 말 안 할 수 있어.
어린애처럼 빼액거리는 게 통하지 않자 이젠 차분하게 날 설득시키려고 들었다. 그래도 정말로 얌전히 있을 거 같진 않았다.
“아이스크림 주문해 줄까? 전에 맛있다고 했잖아.”
– 먹는 거에 안 넘어가.
“호텔 아이스크림은 더 맛있을 텐데.”
룸서비스에 아이스크림도 있나. 예림이가 잔뜩 삐진 표정의 요정용을 붙잡아 들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하자.”
– 으으으으으.
아이고, 달래 주려면 한참 걸리겠네. 결이에게 미안하다고 하곤 욕실 쪽으로 향하며 성현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금방 받는다.
“아직 호텔이에요? 잠깐 만나죠. 저 혼자 갈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조차 주지 않다니. 너무하는군.]“하룻밤 지났잖아요. 그리고 마음의 준비는 그쪽이 아니라 저한테 필요한 일 아닙니까.”
갑자기 뒤통수쳐 놓고선 뭐래. 성현제도 늦게 알았다곤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귀띔해 줄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아침식사는.]“했죠. 조금 전에.”
[그럼 티타임을 가지도록 하지.]문득 등나무 아래의 티 테이블이 떠올랐다. 그때, 그곳에서 성현제는 내내 나를 지켜보고 도와주었었다. 포인트도 잔뜩 받았고.
“네, 그러죠. 시간과 장소는요?”
[이 호텔 내에서, 준비가 끝나면 문자를 보내겠네.]“알겠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칫솔을 들었다. 거울 속에 머리칼이 잔뜩 흐트러진 남자가 비쳤다. 조명이 좋아서인지 얼굴 자체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아, 몰라.”
마음을 가볍게 하고 가자. 성현제가 어떻게 나오든 그 인간과 있었던 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진짜 배신해도 말이야, 유현이가 집 나갔을 때보다야 충격이 덜하겠지. 그땐 딱 미쳐 버릴 수준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이유라도 제대로 들어야지.
그리고 어떻게 되든 내가 하고 싶은 일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냥 좀 더 힘들어질 뿐이다. 아니, 생각보다 많이 힘들진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내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받고 힘내서 성현제 멱살 잡아 끌고 올 것이다.
어제보다야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나름 단장을 하고 객실을 나섰다. 유현이가 데려다주겠다며 나를 따라왔다. 그 전에 있었던 가위바위보는, 생략하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탯 차이는 어쩔 수 없다니까. 예림이가 역시 제비뽑기하자며 억울해할 만했다. 한 번을 안 져요.
“세성 길드장을 너무 신경 쓰지는 마.”
엘리베이터 앞에 서며 유현이가 말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형이 세성 길드장을 의지하고 있는 건 잘 알아. 하지만 없어도 괜찮잖아. 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형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더 노력할게.”
“부족하기는 무슨. 전혀 아니거든?”
동생의 팔을 툭 치며 웃었다.
“나도 너를, 너희들을 믿고 있어. 특히 유현이 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일 테니까. 그러니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아. 잠깐 힘들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야.”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아무렴 동생이 떠나 버렸을 때도, 그때도 포기는 한 적 없는걸. 애초에 이 정도야 무너질 일도 아니고.
“난 끄떡없어. 차라리 성현제가 더 걱정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밖에서 기다리겠다는 동생을 점심 먹기 전에 돌아갈 거라며 달래어 보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곤 안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