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93
591화 한유진 (3)
“…저게 뭐야.”
“스킬 감추고 소원석 감추려면 저 방법밖에 없잖아~ 별 말고 하트로 할 걸 그랬나?”
해파리가 발랄하게 말했다. 야…….
“아니, 그 전에 너무 대놓고 회귀했다고 하면 곤란하다고!”
이미 다 보여 준 거나 다름없었지만 그래도 한유진이 회귀했어요! 콕 찍어 말하는 것과 적당히 두루뭉술 넘어가는 것은 전혀 달랐다. 주체를 정확히 밝히지 않으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회귀에 휘말렸답니다, 라는 변명이 가능하니까.
“…해파리를 믿은 내가 바보지.”
“그새 촉수가 좋아졌나 보구나. 몇 개나 달고 싶어? 손가락부터 바꿔 볼까?”
“제 입이 방정입니다.”
해파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해의 왕 모조품이 되어 있었을 테니 불평할 처지는 아니긴 하다만. 이거 수습할 생각 하니 뒷골이 다 쑤셨다. 수습되기는 되나. 사람들에게 잊힐 때까지 몇 년쯤 잠수라도 타야 하나. 유현이가 좋아하겠네.
“…회귀 사실을 이렇게 다 알려도, 진짜 괜찮은 거 맞긴 맞아?”
“초월자 정보는 열심히 빼고 있으니까.”
영 믿음이 가질 않았다. 자막이 사라지고 유현이를 끌어안는 한유진이 나타났다.
“사랑한다.”
닭살이 돋았다.
“이, 이 정도면 되지 않았어?”
회귀 전의 기억이 오히려 더 보기 편했다. 내가 생각해 온 회귀 전의 한유진은 초라하고 볼품없고 무능력한, 기대라는 것 자체를 가질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다시 본 한유진은 내 기억과는 많이 다르게 다가왔고, 그래서 괜찮았다.
근데 회귀 후는, 좀, 으…….
“지금 이 순간의 한유진까지 이어져야 완벽하다고~ 자, 빨리빨리 가자!”
완벽한 양육자나 라우치타스 관련 스킬은 나오지 않았다. 유현이와 화해한 내가 헌터 협회로 가 등록을 한다. F급.
“야! 명우야!”
그리고 명우를 보고 쫓아가 붙잡았다. 악, 아악, 그만해!
“내 귀 좀 막아 봐! 으아악, 듣기 싫어!”
저 뻔뻔하기 그지없는 놈이 입 터는 것 좀 봐라. 살려 주세요. 하필 두 팔이 묶인 채라 귀를 막을 수도 없었다.
“위만 올려다보다 목 부러질 필요 있겠냐. 그냥 나는 사실 잘났다, 남들이 몰라주는 거다 하고 사는 거야. 스스로에게 애정도 좀 가지고. 나는 잘난 나를 사랑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죽을 것 같았다. 아니 한유진 니가 남한테 할 소리냐. 저때는 유현이에 대해 알기 전이라, 마음의 여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명우도 이거 보고 있을까. 명우 참 많이 변하긴 했다. 쪽팔려 죽을 것 같으면서도 뿌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역시 쪽팔렸다.
– 갸르릉.
새끼 화염 뿔사자가 한유진 주위를 빙그르 맴돌았다. 와, 피스 진짜 작아. 지금도 유체화할 수 있었지만 저땐 유체화 상태보다 더 작았다. 솜털 보송보송한 피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조심 거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 캬아웅!
TV를 켜자 깜짝 놀라며 뒤로 폴짝 뛰어 경계태세를 취한다. 귀를 바싹 세운 채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모습이 몸서리치게 깜찍했다.
“이건 TV야. 실제 사람이 아니야.”
– 크흥.
살금살금 TV 앞으로 다가간 피스가 코끝을 킁킁거렸다. 의심스러워하면서 TV 뒤쪽을 살펴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 피스도 어릴 땐 참 순진했지. 물론 지금도 귀엽지만.
“그런데 진짜 우리 부모님이랑 아는 사이예요?”
예림이와 만났을 때가 나왔다. 아아아악! 그만 말해! 그런데 예림이도 생각보다 많이 변하긴 했구나. 경계 어린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드리워진 그늘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예림이도 지금쯤 나처럼 괴로워하고 있겠구나. 예림아, 미안하다…….
“예림이 부분은 축약해, 축약! 아님 멋진 부분만 잘라 넣거나.”
쪽팔려도 나 혼자 쪽팔려야지. 수치심에 몸부림치는 사이 명우를 구해 주는 장면이 지나가고 김성한과 술집에…….
“안 돼! 넘겨! 살려 주세요!”
“그러니까 더 보고 싶어진다~”
“루가 폐야 님! 제발!”
“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해파리 놈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좋아해 사랑해~ 대단해 멋져 최고야 등등. 좋은 말이잖아?”
“아니, 그렇긴 한데…….”
“무리 짓는 생물이라면 보통은 욕이나 험담 같은 걸 부끄러워할 텐데. 그건 사회관계에 부정적인 일이니까. 생존에 도움이 안 되거든.”
그럼 무리 지을 필요가 없다면 험담 막 해도… 상관없긴 하겠구나. 애초에 혼자 살아가면 남을 욕할 일 자체가 거의 없겠지만.
“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좀, 뭐랄까… 쪽팔리기도 하고. 그, 트집 잡는 사람들도 있고.”
솔직히 민망해서가 80퍼센트쯤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 애들한테는 칭찬 술술 잘 나오긴 하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도 좋은 말 해서 나쁠 건 없지만. 그래, 부끄러울 것 없…….
“김성한 씨. 사랑합니다.”
“역시 저건 아니야! 악! 악! 악!”
필름 끊어졌는데 왜 나오냐! 한유진의 목소리가 묻혀라 비명을 내질렀다. 해파리가 시끄럽다고 투덜거렸다.
“취해서 그래요! 취해서! 여러분! 저건 그냥 주정입니다! 해파리, 자마악!”
[한유진♡김성한]“야!!!”
자막 미쳤냐! 분홍빛 효과 넣지 마! 아니, 애초에 사랑한다고 다 성애적인 그런 쪽인 건 아니잖아. 난 유현이도 사랑하고 예림이도 사랑하고 피스도 사랑한다고! 그리고 삐약이도 결이도 명우도 노아 씨도 현아 씨에 송 실장님, 성현제…는 끼워 줘야 하나. 아무튼 많다고!
윤윤과 석하얀과의 만남이 빠르게 지나갔다. 유현이와 예림이, 명우와 함께 회귀 후 처음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나왔다. 피스가 성장하고 명우가 노력했다. 빛을 흩뿌리며 갈려 나가는 칼날은 지금 다시 보아도 멋있었다.
기승수 사육으로 각 길드장들이 모여 거래하던 날. 그날의 모습에 기분이 묘해졌다.
“…저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변하게 될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그냥 거래 정도나 하고 끝날 줄 알았지. 어쩌다 보니 한 명은 내가 함정으로 끌어들여 죽이고, 두 명은 친해졌다. 한신은 별다를 바 없지만.
“예외 조건은 기억해 두겠네.”
라고 성현제가 말했다. 저때는 저랬는데 말이야. 괜히 입꼬리가 으쓱 올라갔다. 저러다 납치도 당하고 슬쩍 빠져나가서…….
“야! 저건 아직 비밀이라고!”
다행히 양육자 칭호와 관련된 일이기에 몰래 나가서 삐약이를 주워 온 것 정도로만 처리되었다. 박하율을 도와준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애들 키우고 석하얀 팀 만드는 데 보조도 하고 그사이 명우가 황금대장간 스킬을 얻고 리에트도 튀어나오고. 생각보다 더 바쁘게 살았구나. 축약해도 한세월이었다.
“불안할 수밖에 없잖아.”
유현이가 내게 바싹 달라붙어 있었다. 커다란 덩치를 해가지고 어릴 때처럼 내 품에 파고들고 싶다는 듯한 몸짓이었다. 저게, 피스와 셋이 던전에 다녀온 뒤의 일이었지. 시스템이 나와서인지 그 부분도 잘려 나갔다.
“형이 다른 S급 헌터들과 자꾸 엮이는 것도 싫어.”
– 그르릉.
피스가 소파 아래에서 불만스럽게 목을 울렸다. 좀 비켜 보라는 듯 유현이 다리를 앞발로 툭툭 쳤지만 유현이는 모르는 척 했다.
“그래도 사람 가둬 두는 건 안 되지. 조심할게. 어차피 S급들이야 기승수만 받으면 나랑 더 거래할 일도 없는걸.”
그랬어야 했는데 말이다. 나를 꽁꽁 감싸 숨겨두고 싶어 하는 유현이를 보자 웃음이 조금 새어 나왔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 내가 집에 얌전히 붙어 있겠다고 하면야 여전히 대환영이겠지만, 전과 달리 내 능력을 믿어 주고 있다.
블루가 사육소에 오고 명우가 대장간 스킬을 발표했다. 명우의 선언을 다시 듣자니 또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풍경이 확 바뀌며 던전에서 날아다니는 예림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김성한을 S급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던전 공략이었다. 시스템 관련이라 거대 두꺼비는 나오지 않았다.
송 실장님이 병원을 방문하고 코메트를 데리고 사육소로 갔다. 헉, 잠깐만!
“여기도 자막! 송태원 실장님은 한유진을 걱정해서! 세뇌 확인을 한 겁니다!”
오해하면 안 되지. 이어.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아가 나왔다. 옥상 정원에서 대화 잘하다가.
“자막! 노아 헌터가 절 해치려고 한 게 아니라─!”
왜 이렇게 지뢰가 많냐. 공포 저항 때문인가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회귀 후에도 험난했구나. 노아 씨가 옥상 정원을 부숴 놓고, 코메트 덕분에 잠을 못 자 죽어가는 한유진이 나왔다. 비실비실 거실을 가로지르는 모양새가 반 좀비 같았다.
“악, 차가!”
컵 없이 식탁에 바로 물을 따르다가 화들짝 정신을 차린다. 피스와 블루, 삐약이가 쪼르르 쫓아와 왜 그러냐는 듯 동시에 머리를 갸웃했다. 귀여워…….
유현이와 노아가 싸우고 그리고, 통으로 잘려 나갔지만.
한유진은 동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유진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였다. 기억을 꺼내 보이진 않았지만 읽기는 한 무해의 왕이 내 뺨을 꾹 눌러 만졌다.
“슬퍼?”
“…만약 내 동생이, 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몰랐더라면. 지금의 나는 꽤 달라졌을 거야.”
“그래? 비슷했을 거 같은데.”
“사람은… 자기 자신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아.”
그렇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한유진은 사실 거의 없어. 박예림의 보호자, 피스의 양육자, 유명우의 친구. 그 밖의 많은 관계가 있잖아.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차지하는 것은, 역시 한유현의 형이겠지.”
5년을 제외하고 평생을 한유현의 형으로서 살아왔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잃게 되면. 그 사람과 관련된 한유진도 잃게 된다고 생각해. 한유현이 사라지면 한유현의 형도,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거지. 한유현의 형이라는 부분을 떼어내 버리면 한유진은, 정말 얼마 남질 않거든.”
5년을 제외하곤 평생을 한유현의 형으로 살아왔다. 그 시간들이 일순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래서 가슴이 도려내지는 듯이 고통스러운 것이겠지. 그 사람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금의 유현이가 곁에 있어서 나는 아직 살아 있지만. 내 동생을 잃어버린 것 또한, 사실이니까. 바뀔 수밖에 없었을 거야.”
눈이 내리는 나무 아래에, 한유진 또한 있었다. 장례식은 남은 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말은 참으로 그러했다. 한유현의 형, 한유진의 일부도 함께 묻어야만 하니.
성현제와 리에트가 싸우고 있었다. 호수 던전이 나타나고 각성 센터가 박살 났다. 내가 체포당하고 홍콩으로 납치되었다. 빌딩을 휘감은 물과 전기의 반짝임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좀 더 몸을 사리기는 했겠지. 한결이가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디아르마에게 복수심을 불태우지도 않았을 테고, 동생을 되찾으려고 마석을 심장에 심지도 않았을 테니까.
송태원이 벌 형태의 몬스터 무리를 향해 뛰어든다. 이제는 사라진 세성 길드의 성현제 자택에 내가 맡겨졌다. 편하긴 했었지. 리에트가 날뛰고 A급 랭킹전이 벌어졌다. 세성 길드 정원에 핫핑크 털실이 뿌려지는 것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왜 그랬을까.
일본 던전은 넘겼지만 SS급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장면은 고스란히 나왔다. 우리 유현이, 역시 대단하구나. 초월자 관련을 잘라내니 거의 반쯤은 사라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아 됐어요. 충분합니다. 한겨울에도 쪄 죽을 판이거든요?”
주방으로 내쫓겨 뒤집개를 든 성현제 옆에서 한유진이 투덜거렸다. 성현제는 강소영이 배달해 온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추석이지만 고향은 멀고먼 소영 씨는 온 김에 거실에 눌러앉았다.
“그리고 저 분홍색 안 좋아해요.”
헉, 결아, 아니야! 보지 마! 성현제가 능숙하게 전을 부치며 미소를 머금었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좋아하는 것을 고르게 되는 법이지.”
“그쪽 골리려고 고른 겁니다만?”
“내 생일 선물이었는데…….”
성현제가 슬픈 척을 했다. 그런 걸로 상처받을 리 없는 인간이었지만 표정은 정말 실감 나다 못해 절로 동정심이 들 정도였다.
“아니, 그게! 저, 정성은 듬뿍 넣었어요! 소영 씨, 튀김도 데워 줄까요?”
얼른 말을 돌리며 소리치는 물음에 강소영이 네! 하고 대답했다. 저때 즐거웠지. 생각해 보면 내 평생 제일 복작복작한 명절이었다. 한유진의 얼굴도 밝고 행복했다. 자신의 즐거움에 죄책감을 느낄지언정, 그래도 행복했다.
중국에 반쯤 자진해서 납치당하고, 일본에서 사육소 관련 모임을 열고.
“저에게는 참가할 자격이 있습니다.”
한유진이 당당하게 말했다. 채터박스의 파티에 혼자 참석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눈 아래로까지 흔들리던 머리카락이 어느새 짧아졌다. 내 몸을 파고들던 채터박스의 마력이, 안개의 힘이 더는 버티지 못한 채 완전히 밀려 나간다.
한유진의 존재는 그 누구보다 확실했다. 초월자, 무해의 왕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한유진은 한유진밖에 없어. 세상 모든 존재들이 그러하듯이.”
루가 폐야가 단언했다. 당연하게도, 그 누구와도 다른 삶이었다.
“스스로를 지킨 것을 축하해. 그리고 이젠~”
기억을 드러내던 장막이 거두어진다. 그 너머로.
“…윽.”
채터박스가 서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잃어버렸던 힘을 다시 전부 되찾은 채로. 잠시 사라졌던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전신을 눌러오고 루가 폐야가 한가하게 말했다.
“널 나로 바꾸기 위해 썼던 힘이 주인에게 돌아가 버렸네.”
…내가 무사해도, 채터박스는 그대로다. 내 사지도 여전히 묶인 채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