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17
816화 따뜻한 우유
“뭐야, 어떻게-.”
– 부탁을 받고 왔단다.
말랑말랑한 해파리가 공중을 빙그르 돌았다. 루가 폐야 이 녀석은 못 들어가는 곳이 없는 거냐. 여긴 의식, 기억 속이라 할 수 있는 장소라서겠지만. 어쨌든 반갑기는 했다.
“밖은 어떻게 됐어? 다들 무사해?”
– 너와 함께 세계수도 굳어졌어. 중추에서 강력한 의식이 셋이나 자리 잡았으니 버티지 못한 거지. 심지어 두 그루, 두 개체가 합쳐진 거잖아? 유사근원과 월식을 품은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혼란이 상당했을 거야~.
“아… 확실히 상승한 능력치에 비해 행동은 굼뜬 느낌이었지.”
몸 안에 자아가 넷이나 들어간 상태였으니. 거기에 리에트의 힘을 받아 SS급 이상이 된 나까지 포함되었다.
– 네 동생이 잠깐 놀라긴 했지만 이내 진정했어. 시간은~ 15분쯤 흘렀을 거야. 작은 물방울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고.
“15분이면 여기서의 하루가 5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건가.”
아무튼 별일 없다니 다행이었다. 유현이도 괜찮다고 하고. 무해의 왕이 촉수 끝으로 양 인형을 톡톡 건드려 보다가 올라앉았다.
“그런데 무슨 부탁?”
– 흑룡의 조각을 찾아와 달라는 부탁.
“흑룡… 리에트? 리에트의 조각을?”
– 원래 태생 S급쯤 되면 사망했다고 해서 곧장 존재가 흐트러지진 않거든. 근데 흑룡은 살짝 손상되었어~. 기억과 힘에 딸려 갔나 봐.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극히 일부지만 광룡은 온전하길 바라니까.
어, 내 보은 스킬 때문인 건가. 능력에 더해 기억까지 일부 전해 받았으니까.
“리에트 헌터가 사망한 겁니까?”
그때 송 실장님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성현제도 의외라는 기색이었다.
“…네. 세계수 두 그루가 결국 합쳐지는 바람에. 하지만 노아 씨가 되살릴 방법이 있다고 했어요. 아, 노아 씨도 돌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송 실장님이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탓에 리에트 헌터가-.”
“아니에요! 애초에 사과받을 사람은 제가 아니기도 하고요. 리에트는… 저를 지키다가 화를 당했습니다.”
“리에트가 한유진 군을?”
성현제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송 실장님 또한 비슷한 얼굴이었다.
“노아 씨의… 영향이었어요. 노아 씨를 대신해서, 동생을 이해하고 싶어서. 리에트는 노아 씨와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동생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래도 리에트 헌터가, 그런.”
“리에트는 희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언제나처럼 들이받은 거죠. 망설임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어찌 보면 여전했다. 노아가 싫어하든 말든 자신만의 애정을 쏟아부은 것처럼. 노아 씨는 자신의 누나가 나를 지키다 잘못되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았을 테니까.
“리에트 자체는 그대로예요. 하지만 노아 씨와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겠죠. 송 실장님, 노아 씨에게 있어 리에트는 무시무시한 괴물과 다름없었어요.”
노아가 A급으로 각성하고 S급으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어릴 때의 그는 평범한 아이였다. 리에트를 극도로 두려워하던 노아 씨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내 부모님이 유현이에게 느꼈던 것처럼 노아 씨 또한 어릴 때부터 누나가 자신과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부모님까지 떠나갔다니 더더욱 두려웠겠지.
“그런데도 괜찮아질 수 있었어요. 물론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두 사람만 해도 회귀 전의 결말은 좋지 못했으니까요. 저도 그랬고요. 하지만 분명한 건 누구든 더욱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당신이 어떠한 존재든 그 사실이 처음부터 포기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송 실장님이 침묵했다. 송 실장님 또한 나와 리에트와 비슷하달 수 있었지만, 그는 돌이킬 상대를 잃고 말았다. 그러니 더욱 힘들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 괜찮아지기를 바랐다.
“한유진 군은 사망한 사람의 기억과 힘을 받을 수 있는 건가.”
성현제가 불쑥 말했다. 반사적으로 양 인형을 꽉 끌어안았다. 침착하게 대응하기에는 너무도 갑작스러워 목소리가 튀어올랐다.
“네?!”
“그래서 라우치타스 앞에서 살아남았었군. 옥상정원에 방문했을 때도 누군가의 힘을 지닌 상태였을 테고.”
…귀신같았다. 깜둥이 때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었구나. 송 실장님이 한발 늦게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한쪽 세계수를 먼저 잡고 남은 하나도 처리하여 한유진 씨가 들어온 게 아닐까 했지만… 합쳐진 데다가 리에트 헌터까지 사망한 상황이라면.”
“여느 때의 한유진 군이라면 세계수에게 접근하기조차 힘들었겠지.”
성현제가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리에트의 스킬을 훨씬 능숙하게 사용하더군. 선생님 스킬로 간접 체험했을 때와는 달랐어.”
“…예, 맞습니다.”
하여간 눈치 진짜 빨라요.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았다. 물론 거짓을 살짝 섞어서.
“양육자 칭호 관련 스킬입니다. 저와 친분이 일정 이상으로 깊은 상대가 저를 감싸며 사망했을 시 상대의 능력치 두 배와 기억을 전해 받아요. 기억은 주로 저와 관련된 내용의 일부만요.”
“힘들었겠군.”
“괜찮으신 겁니까. 시간을 되돌리기 전에 분명, 한유현 헌터 외의 이들도 잃었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멋쩍게 웃었다.
“딱 죽을 맛이긴 했죠. 막상 잃었을 땐 스탯이 대폭 상승하니까 그래도 버틸 만했거든요. 바로 앞에 복수 대상이 놓인 상황이기도 하고요. 근데 시간이 지나서 정신력 스탯도 원래대로 하락하고, 기억은 그대로 남고…….”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성현제와 송 실장님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이 스킬이 다시 발동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스물여섯 살의 유현이는 알고 있지만 스물한 살의 유현이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혹시 모르잖아요. 이왕이면 예림이한테도요.”
“죽었다 되살아나도 적용이 되는 건가.”
“…사망자인 스물여섯 살 유현이는 적용 불가하다는 걸로 봐선 성현제 씨처럼 불사나 마찬가지라면 안 되지 싶은데요.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시죠.”
“궁금하지 않는가. 유사 근원으로서의 쌓인 것들 또한 두 배로 전해질지.”
듣고 보니 나도 좀 궁금해지긴 했지만.
“스킬 등급이 L급인걸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근데 어차피 성현제 씨와 송 실장님은 해당 안 됩니다. 양육자 칭호 스킬이라 저한테 피보호자 취급받아야 돼요. 나이 제한에 걸립니다. 스킬 얻은 게 회귀 전 영향이라서인지 서른한 살 취급해서 리에트는 적용되었지만요.”
성현제는 어차피 안 죽지만 송 실장님은 혹 모르니 그렇게 말해 두었다. 키워드 등록이 안 되어서 쓸 수 없는 건 사실이고.
“이 세계에 심어 진 시기를 생각한다면 한유진 군보다 연하건만.”
“아, 네. 초월자 뺨치게 나이 잡수신 조상님. 따지고 보면 시그마가 인형술사보다 연상이거든요?”
시간이 멈춰 버린 상태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성현제는 그 시그마의 형뻘 아니냐. 그런 주제에 뻔뻔한 소리를.
“동생의 힘을 받아 라우치타스를 죽이고 F급이 저주독룡종의 왕을 홀로 잡은 대가로 시간을 되돌렸습니다. 원래는 유현이를 되살리고 싶었는데… 초월자들이 사기 쳤어요. 죽은 사람은 못 살려낸다고.”
현재에 만족한다. 나는 결국은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그럼에도 돌이킬 때마다 입안이 썼다. 그때 유현이를 되살렸다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더 궁금하신 거 있습니까? 특별 서비스 해드립니다~. 이젠 거의 다 털어놓은 거나 다름없지만. 저도 두 분에 대해 온갖 것 다 알게 되었고요.”
처음에는 말 못 할 사정도 많았고 헌터계 특성 때문에라도 열심히 숨기고 감추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되었다. 키워드야 들키면 안 되니 이것까진 말 못 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유진 군에 대해.”
“이제 더 말할 스킬 없습니다만. 심지어 제 기억 가져가서 웬만한 건 다 알게 되었으면서.”
성현제가 딱,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테라스 카페가 있는 너른 정원이었다.
“여유가 있으니 잠시 앉을까.”
“오래는 안 돼요. 유현이가 기다리고 있다고요. 딱 한 시간.”
한 시간이면 밖에선 1분도 안 될 테니까. 어느새 성현제의 옷차림이 바뀌었다. 카페 사장처럼 앞치마도 했다.
“주문하시지요.”
“그럼 오랜만에 카페라떼요.”
– 너네 세계에서 잘나가는 걸로 주렴.
“저는 괜찮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내게 맡기겠다는 뜻이군.”
성현제가 안으로 들어가고 테라스의 테이블에 앉았다. 인형도 한자리 차지했다. 이내 과자와 음료가 나왔다. 네 잔 다 따뜻한 우유였다.
“저기요 사장님, 음료 잘못 나왔습니다만.”
“정확히 나왔어.”
“카페인의 키읔자도 안 들어간 우유잖아, 우유!”
이 집 서비스 태도가 별 한 개짜리야! 그래도 뭔가 더 넣긴 했는지 맛있긴 맛있었다. 별 세 개로 올려 준다. 우유… 예전에도 이렇게 준 적이 있었지. 그때 성현제와 말을 하니 안 하니 했었던가.
“다 잘 끝나고 나면요, 제 수명 늘릴 방법이나 찾아볼까 봐요. 그땐 한가할 테니까.”
문득 말했다. 성현제가 우유를 홀짝이며 눈매를 휘어 미소했다.
“그래도 백 살은 채우고 싶거든요. 제 근원에 손상이 갔을지도 모른다곤 하는데, 그래도 방법이 있겠죠. 아무렴 저도 여기 있는데.”
– 근원에 문제 있니?
“확실하진 않아. 몸에 과부하 많이 가긴 했을걸.”
– 내가 봤을 때도 상태가 좋진 않았으니까.
“고생한 거 생각하면 백 년쯤은 애들이랑 평화롭게 살아야 수지가 맞을 텐데~.”
“학교를 세우고 싶다 했었지.”
“그것도 있고요. 송 실장님! 오십쇼!”
“겸직은 안 됩니다.”
“안 되는 게 어딨습니까. 당장은 아니더라도요.”
“…각성자 교육시설의 관리감독 역할은 가능할 겁니다. 원래 제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유보다는 술이 딱인데. 무해의 왕이 내 기억에 대해 설명해 주기도 했다. 예상대로 한번 연결된 상태라 밖에서도 기억을 이을 수 있고 되찾기도 쉬울 거라 하였다.
“그럼 나가죠.”
성현제가 두 번째로 내준 카페라떼 잔을 마저 비우곤 일어섰다.
“세계수의 마석이 있는 중심부는 제 힘으로도 파헤치기 힘듭니다. 유현이의 흑혈염으로 재생을 막았지만 오래가진 않을 테고, 부수는 것보다 회복 속도가 더 빨라요. 하지만 안에 성현제 씨와 송 실장님이 계시죠.”
“준비하고 있겠네.”
“좋아요.”
“한유진 씨. 저는 이후 전력에서 제외시켜 주십시오.”
송 실장님이 말했다.
“정원사 때문에요?”
“예. 정원사가 저를 완전히 조종하지는 못하지만 움직임을 제한할 수는 있습니다.”
“황림이 가져왔던 흙과 비슷한 효과네요. 여태까진 별일 없기에 괜찮은가 싶었는데.”
예전에 황림이 정원사의 흙을 가져와 송 실장님을 제압한 적이 있었다. 흙이 없이도 정원사의 나비가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 흙은 사라졌었는데, 인형술사가 가지고 있는 걸까.
“정원사의 간섭을 완전히 막기 전까지는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네. 염두에 두겠습니다.”
“송태원 실장님은 내가 잘 챙겨드리지.”
“성현제 씨 코가 석 자면서. 그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해파리가 도와주겠다며 내게 달라붙었다. 끈적거리잖아. 귀엽긴 해도 역시 기분 나빠.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
유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뜬 눈앞에 나뭇결이 줄줄이 펼쳐진다. 흑혈염은 이미 사라졌다. 세계수 또한 의식을 되찾고 빠르게 몸의 상처를 재생시키기 시작한다.
“성현제 씨!”
이 너머에 그가 있다. 내 기억 덕분인가 더더욱 선명하게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재빨리 선생님 스킬을 썼다.
가사 상태에 빠져 있던 성현제가 깨어나는 것이 느껴진다. 그 옆의 송 실장님의 기운도 뚜렷해졌다. 송 실장님에게도 선생님 스킬을 적용시켰다. 신살 창. 새하얀 무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단절의 힘이 가득 어린다.
신호는 필요 없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직접적으로 전해온다. 단단한 나무 껍데기에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동시에 성현제가 방어력 약화 스킬을 끌어내어 중첩시킨다. 창을 든 내 팔이 잔뜩 꺾어졌다. 짧게 내쉬는 숨결. 그대로.
콰드드득-!
창을 길게 내리그었다. 두텁기 그지없던 나무의 중심이 갈라진다. 그 너머의 두 사람이 다치지 않게, 정확하게. 얄팍하게 남은 한 겹 너머에서.
콰르릉!
빛이 폭발했다. 나무 조각이 산산이 부서지며 황금빛이 퍼져 나온다. 성현제와 송 실장님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 안쪽, 크게 뚫린 구멍을 향해 재차 창을 휘두르며 외쳤다.
“유현아!”
기다렸다는 듯이 불길이 치솟았다. 흑혈염이 세계수의 안으로 사납게 파고들어 재생을 막는다. 동시에 거대한 흑룡으로 변해 마석이 자리 잡은 곳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단절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이빨이 세계수의 마석을 주위를 감싼 나무까지 통째로 물어 뜯어냈다.
쿠르르르- 세계수가 크게 흔들린다. 마석 덩어리를 문 채 몸을 빼냈다. 인간으로 돌아간 나를 노아 씨가 재빨리 붙잡아 뒤로 물러난다.
“형, 괜찮아?”
“아주 멀쩡해!”
마지막 발악을 하듯 세계수가 수백, 수천의 가지와 덩굴을 나를 향해 뻗어온다. 유현이와 성현제, 송 실장님은 이미 피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세계수는 마석을, 나만을 노리며 쫓아왔다. 금빛 날개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지 사이를 빠져나간다. 다 피하지 못한 공격은 내가 잘라냈다.
팡- 크게 공기를 치며 황금색 드래곤이 치솟았다. 흙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나무가 발아래로 보였다. 가장 굵은 가지마저 쿵, 땅에 길게 쓰러진다. 그 위로 불길이 번져 나간다.
흙먼지와 연기를 헤치며 아래로 내려섰다. 유현이가 곧장 내게 달려왔다.
“형이 갑자기 굳어 버려서 놀랐어.”
“걱정 끼쳤구나. 별일 없었고?”
“세계수의 움직임도 멈추기에 형이 정신계 스킬을 사용한 건가 싶었어. 이내 무해의 왕이 나타나 설명해 줬고.”
놀랐다는 말과 달리 유현이는 침착하게 행동한 모양이었다. 온갖 던전을 다 공략한 경험이 있으니까 웬만한 돌발 상황에도 대응이 빠르겠지. 해파리가 한들한들 리에트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노아 씨를 돌아보았다.
이제 리에트를 살려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