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30
829화 동료 (1)
카가각, 내 발톱이 덩굴을 길게 긁었다. 하지만 버티지 못하고 이내 튕겨 나갔다. 빙그르 도는 하늘이 온통 나뭇잎으로 뒤덮인다. 그 사이로 나비가 날았다.
– 도망이라도 쳐볼 테냐.
공중에서 몸을 바로 돌렸다. 하지만 발아래는 온통 꿈틀거리는 덩굴 천지였다.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공포와는 또 다른 피부를 기는 혐오였다.
– 어서 달려야지.
웃음소리가 들린다. 인간화하며 살쾡이 총을 꺼내 들었다.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 탕- 아래를 향해 강하게 쏘았다. 훌쩍 튕겨 나가는 나를 나비 떼가 뒤쫓아 왔다. 식물의 물결에 뒤덮여 성현제와 송 실장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천둥소리가 아득히 멀었다.
– 쫓기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총을 놓고 창을 손에 들었다. 불길이 인다. 흑염으로 덩굴을 태워 내며 검게 그을린 땅 위로 내려섰다. 하지만 새카만 흙 사이로 이내 싹이 트고 꽃이 폈다. 겹겹의 하얀 꽃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 이대로 도망쳐 네 세계로 돌아갈 수는 있겠지.
땅을 박찼다. 나무줄기가 뻗어오고 덩굴이 뱀처럼 사납게 긴다. 사방에서 열매가 맺혔다가 이내 펑, 펑 터지며 물과 같은 즙을 흩뿌렸다. 액체가 닿을 때마다 나를 보호하는 불길이 잦아들어갔다.
– 놀란 토끼처럼 뛰는구나.
– 제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웃음기 섞인 조롱이 계속해서 따라붙었다. 우수수, 바로 코앞에 굵은 가지가 잎을 흩뿌리며 내밀어진다. 부딪치기 직전 몸을 낮춰 바닥을 미끄러졌다. 동시에 땅속에서 뿌리가 튀어나온다. 짐승을 향한 덫처럼 얽혀 오는 것을 폭탄을 터뜨려 떨쳐 냈다.
‘성현제와 합류해야 해.’
정원사의 말대로 나 혼자서는 답이 없었다. 나 혼자는. 이가 절로 악물렸다.
– 그쪽이 아니야.
– 길조차 잃었어.
선생님 스킬은 이미 끊어졌다. 불행 중 다행히 성현제에 대한 기억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이대로 멀어지면 언제 흐려질지 알 수 없었다.
“…윽!”
달려가는 길 곳곳에서 나무뿌리가 치솟고 가지가 옆을 찔렀다. 덩굴이 올가미처럼 스윽 내려오기도 했다. 흑염은 간신히 내 앞을 치워 내주고 있었다. 그마저도 힘없이 꺼졌다 다시 타오르기를 반복했다.
– 그게 네 전부라면.
– 초라하구나.
– 장난조차 되지 못하는 가벼운 손짓이건만.
빽빽한 잎에 하늘이 막혔다. 땅 위는 풀과 나무와 꽃과 덩굴만 가득했다. 땅속조차 뿌리가 그물처럼 엮였다. 숨을 헐떡이며 어떻게든 감각을 끌어올려 길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길은 사라진 지 오래요, 방향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분간 불가능한 나무와 나무, 나무만이 이어지는 미로 아닌 미로. 희미하던 천둥소리조차 완전히 사라졌다. 나비의 속삭임만이 남은 고요한 숲. 꽃이 연달아 피었다. 붉고 파랗고 노랗고 하얗게 색색으로 시야를 어지럽힌다.
– 자신이 가고픈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 무작정 달릴 뿐이지.
불길이 사그라질 때마다 눈앞이 새까매졌다. 하늘에는 태양이 떠 있을 것이건만 겹겹이 쌓이는 나무 그늘은 이미 한밤중이었다.
– 그저 뛰고 뛰다가.
– 운 좋게 길을 찾은 것으로.
발끝이 몇 번이고 무언가에 부딪쳤다. 팔도 다리도 손도 허리도 온갖 곳에 멍이 들었을 것이다. 이대로 계속 달려서야 지쳐 쓰러질 뿐이다. 하지만 멈출 수도 없었다. 차라리 몬스터가 나았다. 목숨 걸고라도 맞설 특정한 상대가 더 편했다. 머리를 굴려 볼 수 있는 그런 적이.
– 네가 해낸 것이라 착각했을 따름이지.
길이 없어. 보이지가 않아. 나비가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휘두른 창대가 붉은 날개를 산산조각 내며 폭발하듯 가루가 퍼져 나간다. 불길에도 다 녹지 않고서 내 눈으로.
“읏─.”
두 눈이 순간 아릿해졌다. 반사적으로 감자마자 다리가 걸렸다. 몸이 크게 휘청거린다. 급히 바닥을 짚고 굴렀다. 스스슥, 기어오는 덩굴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일어나려는 내 팔을 무언가가 휘감았다. 아차 싶은 순간에.
“안 돼!”
내 손에서 창이 떨어져 나갔다. 심장이 함께 내려앉았다. 아픈 눈을 억지로 떴다. 덩굴이 하얀 창을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비명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발버둥치는 내 앞에서 창이 달아올랐다. 검은 무늬가 새카만 불길이 되어 덩굴을 태운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창을 향해 몸을 던졌다. 손에 닿자마자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허억, 흑.”
창의 귀속 효과. 그것이 더욱 강해져 타인은 사용은 물론 손조차 댈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잃어버리면 끝이었다. 허둥지둥 창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불이 사라졌다.
– 도망칠 곳조차 없구나.
무해의 왕의 서랍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곳은 정원사의 영역이다. 무사히 사용한다더라도 이내 다시 끌어내질 것이다.
– 이제는 어떻게 할 거지.
콰득! 다가오는 덩굴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찌르기 스킬을 사용해 하나를 잘라 냈지만 그 배로, 다시 그 배로 계속해서 늘어난다. 결국 팔이, 다리가 묶였다. 주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노려보았다.
“…네놈이야말로 어쩌려고.”
이렇게 잡아서 뭐, 죽이기라도 할 거냐. 나비가 웃었다. 내가 주위를 볼 수 있을 만큼 약간의 햇살이 스며들어 오고 어디선가 검은 나비가 날아왔다.
“형.”
…검은 나비가 유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저것은 가짜다.
“이렇게, 대놓고!”
– 내가 움직였었고 여전히 내 계약자지. 정말로 가짜일까?
유현이의 형체를 한 것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절로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당연히 가짜지! 내 동생이라면 이 망할 덩굴부터 불 싸질렀을 테니까!”
나비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하얀 손이 내밀어진다. 내 두 팔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설마.
– 나는 네게 기회를 줬어.
팔 전체가 더듬거려졌다. 이어 발목을 확인한다.
– 온전한 상태로 계약을 권했지. 내게 필요한 건 너 하나만 남았으니 정중하고 친절하게.
정강이와 무릎.
– 유사근원과 월식은 이미 벗어날 수 없으니.
그 위쪽으로 잡히는 것.
– 너는 정원에서 도망쳤어야 했어.
그대로 뚜둑, 바지 천과 함께 뜯겨졌다.
– 삐익!
파랑새가 튀어나와 다급하게 울었다. 성현제와 함께 정원을 수색하면서 미리 숨겨 두었던 은혜. 파란색 보석이 엮인 줄이 가짜 유현이의 손에 들렸다. 검은 두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 삑! 삑!
은혜가 풀숲으로 던져졌다.
– 이미 늦었지만.
– 혼자라도 달아났어야지.
“…내가 어떻게.”
– 어떻게?
– 남더라도 이렇게.
무릎 위쪽에 있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다리를 붙잡는 움직임에 섬뜩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내렸다. 곧장 델로우즈 유체로 변했다. 순식간에 줄어든 몸이 자유로워지고 흐느적거리는 덩굴을 박차 물러났다. 다시 인간으로 변해 총을 꺼내 드는 순간.
콰득!
“……!”
다리가 뜨거워졌다. 매끄러운 나뭇가지가 허벅지를 꿰뚫었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는걸.
– 짓밟히는 것 외에는.
피비린내 속에서 몸을 돌려 방아쇠를 당겼다. 마탄이 유현이의 모습을 한 것을 두들기고 검은 나비가 되어 흩어진다. 직후.
퍽!
누군가가 나를 걷어찼다. 굴러간 몸이 나무 밑동에 부딪쳤다. 바닥을 짚고 얼른 일어나려 했다. 손을 스치는 풀잎이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피부가 닿는 족족 길게 베였다.
–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봐.
– 어서.
“하지만 없지.”
성현제의 목소리였다. 당연히 가짜다. 진짜일 리가 없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보지도 않고 총을 쏘았다.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며 일어섰다. 위에서 툭, 덩굴이 내려와 목을 휘감았다.
“컥!”
– 너의 불은 내게 있어.
– 그리고 너도 이렇게 무력하게.
덩굴을 잘라 냈다. 빈틈투성이로 비틀거리는 나를 정원사는 내버려 두었다. 신경 써서 공격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 다시 도망쳐 볼래.
힘겹게 발을 뗐다. 그러나 어디로 향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보이는 곳 모두가 숲이었다. 방향을 알 수 없이 빙글빙글 맴돈다.
– 포기하지 않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 네가 여기서 어떻게 되든.
– 무엇을 하든.
“그러면서!”
어지러운 머릿속을, 시야를 어떻게든 맑게 밀어내려 하며 외쳤다.
“너는 왜 내게, 이렇게 긴소리나 지껄이면서!”
– 아, 그럼.
– 그냥 죽일까?
나비가 웃었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쭈뼛 곤두서는 감각에 즉각 몸을 날렸다. 채찍 같은 것이 허리께를 깊게 후려친다. 튕겨 나간 몸이 날카로운 풀 위를 굴렀다. 핏물이 길게 궤적을 남긴다.
– 양육자에게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 단지 하얀 새의 예언 때문에 불을 붙잡고 너에게도 관심을 두었을 뿐이야.
– 내 원래 목적은 유사근원.
콱, 커다란 손이 내 목을 움켜잡았다. 흐린 시야로 송 실장님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유현이와 성현제, 송 실장님 모두 정원사에게 속해 있었다. 그러니 이것도 가짜겠지. 몸이 들리고 질질 끌려갔다.
– 네가 죽어도 몸뚱이의 능력은 쓸 수 있으니.
– 그래, 그러자.
숨이 막혔다. 버둥거리며 신살 창을 꺼냈다. 불길이 확 피어오르며 목을 쥔 손이 떨어져 나갔다. 흙 비린내. 피비린내. 쇠 비린내. 팔이 길게 찢겼다. 떨어뜨릴 뻔한 창을 끌어안고 나뒹굴었다. 검은 불이 나를 휘감았다. 그러나 완전히 보호하기엔 부족했다.
우득, 발목이 잡힘과 동시에 으스러진다. 물소리가 들려왔다. 첨벙! 머리부터 상체가 물에 처박혔다. 길게 흔들리는 물풀이 휘감겨 온다.
나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뚝 끊겼다. 더는 설득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물속에서 불은 피어오르지 못했다. 창을 인벤토리에 넣고 물풀을 잘라 냈다. 숨이 막혔다. 공기 방울이 코에서 입에서 새어 나간다. 물풀은 끊임없이 내 팔다리를 휘감았다. 매끄러운 감촉이 피부를 스치고 할퀸다. 숨이 막혔다. 델로우즈, 스킬.
– 커헉, 쿨럭! 쿨럭!
단숨에 커진 몸뚱이 덕에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무성한 나무는 내 머리보다 더 높았다. 가지마다 핀 꽃이 가루를 흩날린다. 붉게 익은 열매가 터져 나간다.
– 악!
커진 눈과 몸에 가루와 가시투성이 씨앗이 박혀 들었다. 전신을 긁는 씨앗이 털에 얽혀 떨어지질 않았다. 급히 물가로 올라 인간으로 돌아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포션을 꺼낸 손이 짓밟혔다. 걷어채여 다시 첨벙, 물에 빠졌다.
고요했다. 허우적거리다가 무언가를 간신히 붙잡았다. 붙잡은 것에 가시가 돋아난다. 손이며 팔에 새로운 피 냄새가 더해졌다.
“…정원사!”
말이라도 해. 떠들기라도 해. 헐떡이며 나를 찌르고 베는 가지에 매달렸다. 아래에서는 물풀이 다리를 휘감아 왔다. 숲은 여전히 고요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조차 멈추었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지조차 않았다. 버림받은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무도 모르게 죽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유현아.
희미하게 나비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나비가 내 몸에 내려앉는다. 극히 가벼운 무게감이 하나둘 늘어난다. 머리카락에 콧등에 입술 위에. 깨진 손톱 위에, 찢어진 손등 위에, 어긋난 어깨 위에.
희미하게 회복된 시야에 나비가 들어왔다. 내려앉은 채 천천히 날개를 접었다 펴며 맴을 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느다란 벌레의 다리가 피부 위를 긴다.
– 이렇게나 지쳤으면서.
나비가 속삭였다.
– 너덜너덜해진 머릿속이야.
아… 그렇겠지. 졸음이 밀려들었다. 자꾸 눈이 감겼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나 무력할 수 있구나. 내가 무력한 순간은 많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래, 덤벼들 상대라도 있었지. 불가능하다 해도 시도해 볼 무언가가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버려졌다. 정원사는 나를 적대시조차 하지 않고 훌쩍 떠나 버릴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매달려만 있다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쾅- !
…소리가 들렸다. 눈이 번쩍 떠졌다.
콰르릉!
천둥이다. 숨이 쉬어졌다. 차갑게 식은 몸이 펄떡였다. 퍼져 나가는 금빛을 뒤따라 검은 안개와 같은 그림자가 나비를 휘감는다. 누군가가 첨벙 물에 뛰어 들고 내 몸을 들어 올린다.
“한유진 씨!”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멍하게 깜박이는 눈앞으로 무언가가 다가왔다. 방긋방긋 꽃이 웃고, 있… 어……. 성현제가 꽃 머리띠를 내 머리에 씌웠다. 동시에 머릿속이 확 밝아졌다.
– 형! 유진이 형!
박하율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신입이 말해 준 거 기억났어요! 다는 아니고요. 제가 형이랑 월식을 보호할 수 있을 거랬어요! 그래서 머리띠로 변한 거였는데, 깜박했지 뭐예요! 아, 예림이랑은 다 잘 돌아갔어요!
고개를 돌리자 나를 든 송 실장님의 모습도 보였다. 그의 머리에 알록달록한 화관이 씌워져 있었다. 저거 박하율의 분신 같은 건가. 나도 차라리 화관으로 해주지. 잘 어울리시네.
“한유진 군을 찾기 어려울 듯해 정원 밖으로 나갔었다네.”
여기저기 찢어지고 흐트러진 옷차림의 성현제가 말했다. 송 실장님 역시 멀쩡하진 않았다.
“괜찮냐는 물음은 의미가 없겠군.”
“정원사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물 밖으로 나간 송 실장님이 땅 위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머리 위에선 박하율이 호들갑스럽게 흔들거렸다.
– S급은 아직은 안전하겠지만요, F급에 초승달이나 무해의 왕 등에게 침범당한 적 있는 형이나 정원사와 깊게 연결된 월식은 위험하댔거든요! 으아, 형, 진짜 많이 다쳤다!
…확실히 홀릴 뻔했지. 지금도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었다. 일단 포션을 꺼내 상처를 치료했다. 우리 주위로 금빛 사슬이 맴돌았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무력했다.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방법이 없었다. 포션으로 다리를 치료했음에도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피곤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었건만.”
내 앞을 막아선 성현제가 나를 흘끔 돌아보며 말했다.
“한유진 군을 믿고 따르겠다고.”
“…지금은 그런 소리 못 하겠어요. 저는, 아무것도 떠올리질 못했어요.”
“그러니 한유진 군도 그렇게 하게.”
“…예?”
나도?
“떠넘겨.”
“무슨…….”
“예. 한유진 씨. 방법이 없어도 한유진 씨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송 실장님도 말했다. 무, 무슨. 숲이 흔들렸다. 파도처럼 쏟아진다. 녹음과 빛이 맞부딪쳤다.
– 유진이 형은 대단하지만요! 그렇다고 형이 다할 필요는 없잖아요?
박하율의 잎이 내 이마를 찰싹찰싹 두들겼다. 송 실장님이 빛 사이로 달려간다. 어디선가 삐익!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 형도 구해져도 돼요.
찰랑, 내 앞으로 송 실장님의 손이 내밀어졌다. 푸른 보석이 그 손안에서 반짝인다. 은혜가 삑 반갑게 울었다.
“한유진 씨가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환경적으로도 혼자 짊어져야 했었겠지요.”
“또한 얕보이기 쉬운 F급이니까.”
“성현제 헌터 역시 그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따르겠다 말해 주었지.”
“제대로 풀어서 설명하십시오.”
송 실장님이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몰아치는 전류의 보조를 받으며 검은 그림자 깃든 검을 휘두르고 튀어나오는 뿌리를 짓밟았다. 성현제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래 봬도 S급이라네.”
–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요!
“지금도 움직이고 있겠지.”
– 아무튼 형은요, 너무 완벽하게 다하려고 한다니까요. 물론 형 까는 사람들 많긴 한데! 저 열심히 싸웠어요! 자기들이 뭐라고 형을 욕한담!
“모르면 맡겨도 괜찮아.”
성현제와 송 실장님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위로 다른 사람들이 비쳐 보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문현아였다.
‘…기다리라고 했었지.’
돌아오겠다고. 분명 그럴 것이다.
“현아 씨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리가 없겠죠.”
내가 돌려보낸 사람들도. 박하율을 통해 도와주려고 애쓴 신입도. 명우와 어린 혼돈도.
“저는 정말로 아무 방법이 없지만.”
성현제와 송 실장님에게 선생님 스킬을 썼다.
“스킬도 다 동나서 이거 말곤 쓰지도 못하지만.”
“충분합니다.”
“버티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지.”
“…진짜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려도 되는 걸까요.”
“틀렸어.”
성현제가 단호하게 말했다.
“한유진 군이 해온 일들을 기다리는 것이라네.”
– 열심히 일한 유진이 형! 쉬어라!
마른 웃음이 조금 새어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살 창을 꺼내 땅에 박아 세웠다. 불길이 우리 주위를 둥글게 감싸 뻗어 오는 식물들을 막는다. 총을 손에 들었다.
“그럼 끝까지 버텨 기다려 보죠.”
반드시 나를 도와주러 올 사람들을 믿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