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36
835화 미래의 별 (4)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송 실장님도 우리 쪽으로 다가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저 앞에선 현아 씨가 소록이와 함께 몰려드는 정원을 시원하게 박살 내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무시무시한 위력의 거창이었는데 S급 기승수와 합쳐지자 둘의 돌격 앞에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주위에 다른 헌터가 있으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라 숨을 돌릴 겸 송 실장님이 빠져 준 모양이었다.
“이런 곳에 오게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위험하다 싶으면 박하율이 돌려보내 줄 수 있다고 했어요.”
– 예엡!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무엇보다도요.”
신나게 길을 따라 달리는 노란 자동차를 보며 웃었다.
“꿈이니까요.”
송 실장님의 딱딱하던 얼굴도 별이의 모습에는 살짝 풀어졌다. ‘여긴 위험하니까 안 돼, 돌아 가’ 하고 단호하게 말하기 힘들어지는 풍경이었다. 그때 또 다른 새끼 몬스터가 나타났다.
– 매애애
다름 아닌 송이였다. 설이처럼 어린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은 채 종종종 빛 속에서 나와서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송이야?”
– 매앵
내 부름에 새끼 양이 대답하듯 짧게 울었다. 그리곤 폴짝폴짝 다가와 내 다리에 가볍게 머리를 부비곤 송 실장님을 돌아보았다.
– 매애!
조그맣고 검은 꼬리가 홱홱 돌아가더니 내게 다가올 때와 다르게 송이의 발굽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탓, 힘차게 땅을 박찬 새끼 양이 송 실장님의 다리에 박치기를 가했다. 퍽 소리가 제법 크게 났지만 송 실장님은 흔들림 하나 없이 몸을 숙여 송이를 안아들었다.
“왜 여기까지 온 겁니까.”
– 맹
“그것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굳이…….”
“송이도 지금의 자신이 마음에 든 게 아닐까요? 설이처럼요.”
자라기 싫어, 라기 보다는 지금이 좋아 쪽에 가까울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자체에 별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어른이 되고 싶어는 보통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때니까. 아니면 단순히 어른이 멋있어 보여, 라거나.
“되고 싶은 것 되는 꿈이라잖아요. 어쨌든 확실한 건 송이는 송 실장님을 만나 힘껏 부딪치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게 즐거운가 봐요.”
– 매애애애
송 실장님이 가만히 송이를 내려다보았다.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원한다는 것은 송이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말로는 전할 수 없지만 새끼 양의 모습 그 자체가 송 실장님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저는 해준 것이 없습니다.”
“자리 많이 비우시긴 했죠.”
“불성실한 아빠지.”
성현제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반갑지 않은 동의를 해왔다.
“더욱 노력해서 송태원 실장의 아이도 아빠를 닮도록 하─.”
– 입 다물어어어어!
요정용이 성현제에게 덤벼들었다. 지금은 성체라서 성현제의 머리를 와락 전부 붙잡아 감쌀 수 있었다. 물론 성현제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헛소리는 잘라 냈다.
– 결이 아빠는 한 명뿐이야! 두고 봐, 다음번에는 반드시 아빠로 변할 테니까아!
“기대되는군.”
결이가 성현제의 머리통을 갉작갉작 깨물었다. 사이가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놀려 먹는 것만 그만두면 결이도 성현제를 순수하게 좋아할 것 같은데 저 인간이 그럴 리가 없으니.
“그래도 애들 태도에 답이 있다잖아요. 송 실장님은 잘해 주셨어요. 또 송이를 돌봐 주는 사람들에게 송 실장님의 영향이 분명 있을걸요. 각관실 쪽도 헌협 쪽도 말이에요.”
송이는 도담과 헌터협회, 각관실을 오가며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별 문제 없다는 건 세 군데 모두 송이를 잘 보살펴준다는 뜻이었다.
“다들 송 실장님을 좋아하니까 송 실장님의 기승수인 송이에게도 그 영향이 미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잖아. 호감이 있는 상대의 가족이나 강아지나 고양이나 하다못해 화분 하나라도 말이야. 모르는 사람의 것보다 더 관심이 가고 신경을 쓰게 되는 법이니까.
“그러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무사히 돌아가서 조금만 쉬엄쉬엄 일하시면서 송이랑 놀아주세요. 그거면 충분할걸요. 그쵸, 송이야.”
– 매앵!
송 실장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새끼 양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에겐, 송 실장님과 성현제에겐 해결하지 못한 일이 남아 있었으니까. 불확실한 상황을 두고 꼭 돌아가겠노라 장담할 성격도 못 되시고.
‘그보다 이제 어쩌지.’
현아 씨와 소록이는 강하긴 해도 성현제, 송 실장님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정원을 밀어낼 정도는 아니었다. 별이는 자동차고 설이와 송이는 변하지 않았고 결이는 전투에 적합지 않은 요정용이니까. 애들더러 싸우라고 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좀 애매했다. 여기서 놀다가 돌아들 가렴, 해야 하나. 원하는 꿈 꾸며 실컷 잘 놀고 가는 것 자체야 좋긴 한데.
– 아빠아!
그때 별이가 퐁 높이 뛰어올랐다. 깜짝 놀랐다는 듯 내 옆으로 다가와 소리친다.
– 또 큰 뱀이야!
“뱀?”
빛을 돌아보았다. 그 속에서 눈부신 광채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붉은 색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을 반사시키며 시시각각 화려하게 변해 가는 보석과 같은 비늘. 기다란 몸뚱이가 공중을 서서히 가로지른다.
“…벨라레?”
하지만 보석뱀은 성체라고 해도 소형인 몬스터였을 텐데 지금 나타난 뱀은 길이가 최소 백 미터는 가볍게 넘을 만큼 어마어마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 둥둥 떠!
하늘 위에 둥실 떠 있었다. 날아다닌다거나 공중을 헤엄친다고 하기는 힘든 미묘한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딱… 삐약이와 비슷했다. 자신의 힘으로 나는 것이 아닌 아이템의 힘으로 떠다니는 새끼 새와. 진짜 벨라레인 건가.
“벨라레는… 성장을 거의 하질 않았는데.”
그래서 소록이처럼 아직 자라고 싶지 않은 줄 알았다.
“삐약이 때문이겠지.”
여전히 결이에게 물린 채로 성현제가 말했다.
“덩치가 더 커지면 삐약이가 들고 날거나 공간이동을 하기 힘들어질 테니.”
“…아.”
벨라레는 삐약이와 함께하고 싶었던 거였구나. 더 커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럼 삐약이와 같이 다닐 수 없어지니까. 단순히 자라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커져도 저렇게 날아다니면 삐약이와 함께 다닐 수 있겠지요. 공간이동 스킬도 생겼을지도요.”
마치 거대한 용처럼, 혹은 아름다운 보석 구름 띠처럼 벨라레가 하늘을 떠다녔다. 그럼 삐약이는 어떻게 변할까. 또 다른 아이들은.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내가 아무리 관심을 가지고 잘 살펴본다더라도 속마음까지 완전히 다 알아내기는 힘드니까. 말이 통하는 사람조차도 그렇잖아.
그리고 이번에는.
몸을 완전히 돌려 빛의 길을 바라보았다. 성현제와 송 실장님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을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억지로 보내 놓고 이렇게 기다리다니, 우습기도 했지만 분명 올 테니까. 가슴이 살짝 설렜다.
– 유진이 형.
박하율이 꽃줄기를 길게 뺐다.
– 바다가 깨어나고 있어요.
꿈의 세계의 바탕이 된 인어여왕의 잠든 바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파도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이 세계의 아래를 채우는 물. 박하율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일부만 겨우 끌어낼 수 있었던 드넓은 바다.
휘이이이-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퍼져 나갔다. 공기가 젖어든다. 철썩, 보이지 않는 물이 발목을 적셨다. 길게 뻗은 빛 사이로 매끄러운 용의 머리가 나타났다. 한 쌍의 날카로운 뿔을 지닌 수룡이 반투명하게 햇살을 머금은 지느러미를, 아니, 날개를 활짝 펼친다. 가닥가닥 갈라진 날개의 끝이 물에 잠긴 해초처럼 한들거렸다. 푸른 하늘이 바다처럼 느껴졌다. 깊은 물에 잠겨 빛이 비쳐드는 수면 아래 헤엄치는 수룡을 올려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수룡, 마르가 몸을 돌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쏴아아아-
물이 밀려들었다. 여전히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전신이 서늘해졌다. 오싹한 느낌은 아니었다. 기분 좋은 시원함이었다. 별이도 마음에 드는지 물장난을 하듯 폴짝폴짝 뛰었다.
그 가득 찬 바닷속으로 발끝이 내디뎌졌다. 운동화였다. 집 근처 편의점에라도 가듯 가볍게 걸쳐 입은 후드 티와 바지. 찰랑이는 귀걸이와 팔찌, 반지가 언밸런스한 듯 잘 어울렸다. 상체를 길게 휘감는 베일과 함께 물결처럼 출렁이는 머리칼은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아래로 갈수록 점점 반투명하게 정말로 물 그 자체처럼 발끝을 넘어 길게 흔들린다. 눈동자 역시 푸르렀다.
주위로 인어여왕처럼 성장한 물의 정령이 맴을 돌았다.
– 끄르륵
마르가 목울림 소리를 내며 예림이에게 머리를 내밀었다. 예림이의 손이 마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니까.
“…예림아. 많이 컸구나.”
몇 살은 더 먹은 모습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니, 제가 2미터 넘게 크고 싶긴 했었는데요!”
예림이가 조금 부끄러워하며 외쳤다.
“이건 너무 큰 거 같긴 해요!”
음, 한 4미터? 5미터? 혹은 그 이상? 단순히 길이가 길어진 게 아니라 몸집 자체가 커졌다. 거대했다. 역시나 거대한 수룡이 딱 적당한 기승수로 느껴질 정도였다.
– 고모 멋지다!
별이가 우와, 감탄했다. 예림이가 더더욱 쪽팔려 했다.
“맞아, 멋있어 예림아!”
“그래, 예림아. 딱 적당히 크고 좋은걸!”
나도 크게 소리쳐 주었다. 현아 씨도 동조하며 예림이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완전 초월자 같아!”
– 초월자 맞아요, 형.
…응? 내 머리 위의 박하율이 신나게 잎을 흔들며 말했다.
– 인어여왕의 영역이요! 잠든 바다가 예림이를 완전한 주인으로 인정했어요!
“예림이를…….”
되고 싶은 것이 되는 꿈. 단순히 성체가 되기도 했고 곁에 있는 어른이나 친구를 따라가기도 했으며 아예 엉뚱한 것이 되거나 변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림이가 되고 싶어 했던 롤모델은.
‘회귀 전의 예림이와 인어여왕.’
그 두 사람이었다. 예림이가 창을 손에 들었다. 몸에 맞게 커진 창이 푸른빛을 머금는다.
“정원 따위 싹 밀어 버려요!”
우르릉, 바다가 울었다. 높게 치솟는 투명한 파도 사이로 반투명한 프릴 같은 형체가 일렁인다. 하늘하늘하게 겹겹의 지느러미와 비슷한 몸체가 점차 선명해지고.
“안~녕.”
루가 폐야가 나타났다. 해파리가 아닌 인간의 형태를 지닌 그녀가 웃으며 물결 사이에서 춤췄다.
“루가 폐야, 너!”
“나도 어린아이잖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무사했네요!”
예림이가 반갑게 인사하고 루가 폐야가 마주 손을 흔들었다. 루가 폐야의 주위로 안개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안개였다.
“기분 좋아라. 역시 예림이 네 힘은 나와 잘 맞는 거 같아.”
안개가 정원을 향해 밀려들었다. 우거진 식물들이 단숨에 밀려나고 그 자리에 물이 치솟았다. 예림이도 창을 치켜 올렸다. 예림이의 손짓을 따라 바다가 이끌려 나온다. 촤아아- 물결이 정원을 쓸어내기 시작했다.
– 아빠. 아빠도 가야지.
결이가 날아올라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도?”
– 응. 아빠가 삼촌 데리러 가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결아, 아빠는 어른이라서─.”
– 어른도 하고 싶은 건 있잖아? 그러니까 아빠, 결이가 도와줄게.
요정용이 크게 날갯짓했다.
– 지금은 아빠에게 부담가지 않게 해줄 수 있어. 알고 있잖아, 결이는 꿈의 용인걸!
당신이 바라는대로. 환상을 현실화하는 요정용. 나의 어린아이가 손을 내밀어왔다. 결이가 성현제도 흘끔 쳐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 너도 조금 도와줄 수 있어. 실체화하는 건 자신이 확실하게 인식하는 환상에 한해서라, 경험한 힘만 쓸 수 있겠지만.
“나는 지닌 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몸이니. 확실히 도움이 되겠군.”
– 아빠가 걱정하니까! 그것뿐이야! 공무원 아저씨도요. 현아 이모랑.
“저는… 아닙니다. 도움 감사합니다.”
송 실장님은 월식을 사용하고 싶지 않은 쪽이니까. 그사이 예림이와 루가 폐야의 모습은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결이의 그 힘이라면 S급 이상이 될 수 있다. 정원을 없앨 정도는 아니지만 예림이와 함께 갈 수는 있었다.
“별아, 너는.”
– 응, 알았어!
노란 자동차가 끄덕하더니 펑, 하고 커졌다. 아니, 여기서 놀고 있으라는 뜻이었는데. 웬만한 대형 트럭 서너 대를 합쳐 놓은 크기의 별이가 쿵, 뛰었다.
– 아빠 타!
“그게, 별아.”
– 어서! 갑니다아!
별이 위에 앉아 있던 설이가 뭐 하냐는 듯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별이가 부릉부릉 소리를 냈다.
– 오빠도 타고 저거도 타고!
저거라니, 결이 따라하는 건가? 음, 꿈이니까 괜찮겠지? 짧게 숨을 들이켜곤 푸른 버들잎을 불러냈다. 익숙한 그 잎을 밟고 거대 자동차 위로 올라섰다. 성현제도 가볍게 뛰어 올라왔다. 이어 송 실장님도 합류하려는데.
– 매애!
송이가 갑자기 바동거렸다. 송 실장님의 품을 벗어나 땅에 내려선 송이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성체가 된 것은 아니었다. 동글동글하고 폭신해 보이는 새끼 양의 모습 그대로 덩치만 커졌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송 실장님을 돌아보았다.
– 매애애애~
송 실장님이 당황하며 송이를 쳐다보았다.
“송 실장님, 송이가 어서 타래요!”
“…예?”
“멋지다고 칭찬해 주시고 타세요!”
“하지만…….”
“기다리고 있잖아요. 여긴 되고 싶은 것 되는 곳이라니까요~.”
거대 새끼 양의 커다란 눈이 송 실장님을 담았다. 꼬리가 연신 흔들리고 있었다.
“…멋있습니다.”
– 매앵
송 실장님이 송이 등 위로 올라탔다. 비록 몸의 반 이상이 털에 파묻히고 말았지만 탑승감은 좋아 보이네.
“가자, 별아!”
– 빵빵!
별이가 예림이의 뒤를 쫓아 뛰기 시작했다. 으악, 별아! 좀 많이 흔들리는 구나. 하늘 위로 벨라레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앞서 있던 소록이가 우리를 돌아보고는 역시나 훌쩍 커졌다. 등에서 순록의 거대한 두 뿔 사이로 옮겨 올라 선 현아 씨가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나도 따라 웃음이 났다.
“어디서도 못 볼 광경 아닙니까.”
성현제도 옅게 미소를 머금었다.
“꿈에서도 본 적 없지.”
“왜요, 성현제 씨도 아주 어릴 적에는 이런 꿈 꿨을지도 몰라요.”
그도 자동차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첨벙첨벙 물이 튀었다. 어느새 아래는 온통 물이었다. 노란 자동차와 커다란 새끼 양과 하얀 순록이 바다를 달리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안개와 뒤섞여 물거품이 비눗방울처럼 피어올랐다.
– 형! 벌써 반이나 돌아왔어요!
박하율이 잎을 파닥이다가 내 머리 위에서 날아올랐다. 거대한 꽃이 되어 바다 위에 피어난다. 정말로 어린애가 그린 그림 같았다.
– 다시 길이 연결됩니다!
박하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 허니!
촤아아아, 물이 치솟으며 흑룡이 나타났다. 흑룡의 머리 위에 탄 소영이가 두 팔을 크게 흔들었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역시 우리 길드장님, 끈질기시다니까요!”
금빛 비룡도 나타났다. 벨라레의 옆에서 하늘을 가르며 노아가 나를 향해 머리를 까닥여 보였다.
– 끼아앙!
“피스야!”
피스가 내게 와락 안겨들었다. 이어 낯선 몬스터 한 마리가 넓게 퍼져 나간 빛의 길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쫓아왔다. 화염뿔사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좀 더 날씬하고 주둥이도 길고. 설마 정원사가 만들어 낸 몬스터인가 순간 긴장하는데, 피스가 그 몬스터를 보고 크흥, 꼬리를 탁 쳤다.
– 끄르르르
낯선 몬스터가 피스를 향해 부르듯 울었다. 피스가 내 품에서 빠져나가 성체화 했다. 몬스터가 기쁜 듯 피스 곁으로 바싹 다가간다. 뭐지.
“호랑이에요!”
강소영이 말했다. 뭐? 호랑이라고? 자세히 보니 성체 뿔여우와 화염뿔사자가 섞인 듯한 모습이긴 한데.
“호랑이 너 피스 정말 좋아하는구나.”
저렇게까진 아니어도 피스와 조금쯤은 비슷하게 자라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하율이 힘을 되찾으며 바다 위로 도시와 산, 강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 아직 남아 있는 정원이 보였다. 우거진 식물들 너머 검은 형체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