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누님께서 좀… (2)
옥상정원으로 나가기 위해선 1층으로 내려간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아쉽지만 집에서 바로 나갈 수는 없었다.
또한 정원 산책 시엔 미리 보안실에 연락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빌딩 쪽에서 옥상정원을 집중적으로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사생활은 뭐, 집에 감시카메라 안 달린 것만으로 만족하자. …안 달렸겠지?
‘햇볕이 아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자마자 쨍한 여름햇살이 피곤한 눈두덩을 찌른다. 정원을 잘 꾸며 놓았다고 들었지만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태미너 포션… 재료 던전 빨리…….’
원래는 나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던전 출몰 속도가 빨라졌다니까 제발 과로사하기 전에 나와라. 시스템분들 만나서 당장 나오게 해 달라고 매달려 볼까.
한밤중에 깨어난 코메트는 한 시간쯤 놀아 주고 밥 먹이니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한 시간 놀고 다시 잠들고, 삼십 분 뒤에 깨서 삑삑 울고, 십 분쯤 칭얼대다 다시 자고, 그리고 다시 깨고, 자고, 깨고… 아침 8시까지 반복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침대에 머리 처박고 딱 한 시간 뒤, 정확히 아침 9시에 블루가 우렁차게 울어대기 시작하자 진짜 딱 죽을 거 같았다.
‘피스는 정말 천사였어…….’
삐약이는 물론이고 블루도 이 정도면 착하다. 잠은 푹 자게 해 주잖아. 아홉 시에 잠들어서 아홉 시에 일어나는 규칙성이라니. 잠투정도 전혀 안 하고, 착한 거 맞네.
– 꺄아우!
블루가 기분 좋은 외침을 내뱉으며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다. 새파란 하늘 위를 가로지르는 크림색 그리폰의 모습이 눈부시다. 신나게 날아다니다가도 내 위치를 확인하고 일정 이상 거리를 벌리지 않는 게 기특하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긴 삐약이는 정원을 보고 흥분했는지 날개를 파닥파닥거리고 있었다. 당장 뛰어내리지 않는 걸 보니 똑똑한 삐약이 쪽이네.
“자, 너도 가서 놀아.”
– 삐약!
화단 안쪽에 내려 주자 새파란 잔디를 발로 헤집다가 부리로 물고 당긴다.
“먹지는 마라.”
애들 놀 데라 약은 치지 말라 했지만 그래도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
삐약이를 따라 걷다가 벤치가 보이자마자 걸터앉았다. 이것도 비싼 건지 벤치 주제에 편하다. 좀 잘까.
‘블루도 훈련시켜야 하는데.’
A급 던전 들어가기 직전에 키워드 적용되어서 아직 내새끼 스킬은 쓰지 못했다. 쟤라도 빨리 키워서 손이 덜 가야… 덜 가겠지? 다 커서도 저러진 않겠지?
– 꺄우! 꺄꺄!
멋들어진 정원수를 벌거숭이로 만들고 있는 블루를 보자 머릿속이 멍해진다. 자라면 얌전해질 거야…….
‘특수 스킬 각성 예정자들도 슬슬 데려와야 하고. 빨리 체계 잡아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지 진짜 업무 과중이다.’
그 와중에 전화도 오네. 갈수록 연락해 오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너무 많아져 결국 폰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이쪽 번호를 아는 사람은 몇 없다.
‘리에트 동생이군.’
리에트에게 받아 저장해 뒀던 번호다. 오늘 온다고는 들었지만 생각보다 이르네. 누나처럼 몰래 들어오려나? 미니포털은 통과 못 하겠지만.
전화를 받자 정중하지만 젊다 못해 어린 티가 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크의 길드장 노아 루히르입니다. 한유진 헌터가 맞으십니까?]…길드장? 노아 루히르? 페블이 아니라?
“맞습니다만, 리에트 씨 동생분의 연락처가 아니었습니까?”
[네. 제가 동생입니다.]동생이라니, 좀 이상한데. 불법 던전을 남매끼리 돌았다기에 당연히 길드 소속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길드장에, 심지어 리에트로부터 들은 이름도 아니다. 리에트도 대외적으로는 다른 이름을 쓰지 싶지만.
‘아크에 노아 루히르라. 누구였지.’
해외 길드와 헌터까지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라서. 일단 회귀 전 헌터 랭킹 30위권 내엔 없었던 게 확실하다. 누나와 함께 디오 발쉐시스 칭호를 얻은 지금은 달라지겠지만.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르군요. 이름도요.”
[네. 누님께서는… 페블이라 부르셨을 겁니다.]동생 맞긴 맞구나.
“길드장이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리에트 씨께서도 그런 말은 없었거든요.”
[누님께서는 길드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 관계가 험악한 길드도 많죠. 그래서 한곳에 자리 잡지 않고 세계 곳곳의 불법 던전을 찾아다니곤 합니다. 힘에 부치겠다 싶으면 제게 연락해 오고요. 제 스케줄은 신경 쓰지 않고 끌고 다니려 해서, 종종 곤란해지기도 하죠.]말하는 목소리가 씁쓸하다. 누나 때문에 고생이 많구나.
“물론 그러겠습니다.”
거대 길드 기숙사실에 침입하는 무모함만 봐도 리에트를 싫어하는 길드 참 많겠다 싶었다. 아무리 S급 헌터라지만 그렇게 막 살아도 되나.
노아는 내게 정식으로 초대해 주기를 부탁했다. 헌터협회와 MKC, 한신의 동의는 받았지만 나머지 세 길드로부터는 대답이 없어 사육 시설 정식 방문을 위해선 내 초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연과 브레이커야 길드장이 자리 비운 상황이지만 세성은 왜 대답을 안 해 준 거지.
협회 측으로 말 전해 놓겠다 한 뒤 약속 시간은 오후로 잡았다. 블루 사육장에 맡겨 놓고 그 사이 눈 좀 붙여야지.
* * *
예림이가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저씨, 진짜…….”
내 목덜미를 지그시 노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이건 역시.
‘강소영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입 가볍네.’
말한 게 분명하다. 어디까지 퍼진 거지.
“오늘은 저도 붙어 있을 거예요. 오전에 수업 들었어요.”
“오전 수업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아, 그럼 저녁에 보충하면 되죠. 아무튼 앞으론 혼자서 누구 만날 생각 하지 마세요.”
“…민원 넣지는 마. 나쁜 의도는 정말로 아니었으니까.”
예림이의 눈길이 아프다. 송 실장님, 괜찮으시겠지. 성현제 귀에도 분명 들어갔을 텐데 그걸 빌미로 사람 피 말리려 드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 차 부쉈으면 됐잖아.
노아 루히르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다. 리에트와는 다르게 밝은 금발에 금속성 연회색 눈을 지닌 미청년이었다.
라우치타스의 천적 스킬 메시지창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아마 저 눈도 디오 발쉐시스 칭호의 영향이지 싶다. 머리색도 완전 상반되는 거 보니 역시나 쌍둥이 용의 색 배합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방문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노아가 무척이나 정중하게 인사해 왔다. S급 헌터가 이렇게나 정상적으로 예의 바르다니, 놀랍다. 송태원도 정중한 편이긴 했지만.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날씨도 좋은데 위로 올라가실까요?”
이건 보안실의 요청이었다. 실내보다는 실외가 감시하기도 좋고 만약의 사태 때 대응도 빠르게 할 수 있다나. 소리는 안 들리고 행동은 확인할 수 있으니 비밀 유지가 필요한 의뢰를 해 올 때 딱 좋긴 하다.
“박예림 헌터가 동석할 예정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물음에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쪽의 통역 아이템을 벗으면 됩니다. 박예림 헌터님, 혹시 영어나 불어에 능하십니까?”
“영어만 쪼오끔이요.”
예림이가 엄지와 검지 사이를 살짝 띄워 보이며 말했다. 문제없겠네. 그래도 리에트의 이름은 가급적 말 안 하는 편이 낫겠지.
“우선 누님께서 저지른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분명 막무가내로 굴었겠지요.”
정원 한쪽의 테이블에 자리 잡자마자 노아가 고개를 살짝 숙여 왔다. 잘 아시네요. 그런 누나 밑에서 어쩜 이렇게 착실한 동생이 나왔냐. 그런 누나라서인가?
“그리 나쁜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노아 씨와도 알게 되었고요.”
SSS급 칭호를 지닌 S급 헌터가 스킬 효과 두 배 덕에 키워드 적용까지 쉽다. 길드장이라는 게 아쉽지만 공으로 S급 한 명 추가만 해도 어디냐. 리에트도 그냥 그때 키워드 적용해 버릴 걸 그랬나.
‘착하고 말 잘 듣는 동생이라고 했으니 더 좋지.’
혹시나 싶어 둘의 관계도 확인해 두었다. 리에트의 장담대로 예의 바르고 성격도 좋아 보인다. 이건 키워드 말하라고 멍석 깔아 주는 수준 아니냐.
“노아 씨야말로 고생이 많으셨을 듯합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도 누님의 부탁 때문이잖습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자세한 이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당분간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다른 볼일도 있는 건가. 노아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고 싶지만 리에트가 내 스킬에 대해 말한 건지 안 한 건지 모르겠다. 일단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는데, 동생 상대로도 비밀을 지켜 준 건가. 그렇다면 태도완 달리 믿을 만은 하구만.
“누님분께서 제게 맡기고 싶은 몬스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 동행하지는 못했지만요. 조만간 몬스터를 배편이 아닌 비행기로도 나를 수 있게 될 예정입니다. 우선적으로 S급 헌터 동행에 전용기, 혹은 전세기 사용이 조건이며 차츰 완화해 갈 거라고 하더군요.”
그럼 한동안은 해외 몬스터 사육 의뢰는 S급 헌터가 직접 납셔야겠군. 가만히 앉아서 유명한 얼굴들 구경할 수 있겠네. 개인적으로 팬인 헌터도 있는데, 오려나.
“물론 저도 구할 수만 있다면 기승수 사육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노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서글서글하기도 하지. 앞으로 올 다른 S급들도 이랬으면 좋겠다.
“언제든 환영합니다. 오신 김에 시설도 확인하시고 가세요. 아, 혹시 어디 머무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오늘 키워드 적용 못 하면 한 번 찾아가야지.
“일단 저 혼자 들어왔기에 아직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숙소야 많으니까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노아 씨도 사랑하는 제 고객님이신걸요.”
한 번에 될까 안 될까. 그보다 이름이 두 갠데 아무거나 써도 되는 건가. 노아의 반응을 살피는데 엉뚱하게도 예림이가 내 팔을 쿡 찌른다.
“아저씨, 사랑한단 소리 너무 가볍게 막 하는 거 아니에요? 세성 길드장한테도 그러더니.”
“그냥 비즈니스인데, 뭐.”
“그래도 마음에 안 들어요.”
이런, 예림이 앞에서는 키워드 적용 삼가야겠다. 최근에 얘 앞에서 자주 말하긴 했지.
“알았어. 하지만 서양 쪽에선 예사로 말하지 않나? 인사말이나 감탄사로 쓰는 거 많이 본 거 같은데. 그러니 내가 사랑해요, 노아 씨 라고 말해도 별거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지.”
“…그런가요?”
나도 모른다. 어쨌든 키워드는 더 말하면 안 될 듯하고, 나중에 예림이 없을 때 따로 만나든가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노아를 돌아보는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미소 띤 낯으로 날 마주보던 사람이 시선을 테이블에 못 박고 있다. 표정도 굳었다.
“…노아 씨?”
키워드가 적용된 반응은 아닌 듯하고. 혹시 사랑타령이 거슬렸나. 재차 말을 걸려는데,
파직!
노아의 손이 닿아 있던 테이블 모서리가 으스러진다.
예림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은회색 눈은 여전히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다.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보다 약해.”
무슨 헛소리—
“아저씨!”
예림이의 손이 내 팔을 잡고 뒤로 당긴다. 거의 동시에,
콰득!
테이블이 부서지고 가슴팍이 화끈해진다.
“윽!”
강하게 뒤로 내던져진 내 몸뚱이가 바닥을 두어 번 구르다 멈추었다. 무슨 영문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가슴에 강한 통증을 느끼고 주저앉고 말았다. 바닥에 흩뿌려진 피가 보인다. 포션, 아니 그보다— 예림이를 향해 선생님 스킬을 썼다.
“이 미친 새끼가!”
카강!
얼음나무 창이 공격을 막는다. 부딪친 것은 길게 돋아난 날카로운 손톱이다. 힘을 이기지 못한 예림이가 순간이동으로 물러난다.
콰드드!
그 자리를, 엄청난 힘의 손톱이 파헤친다. 흙과 잔디가 높게 솟다 못해 건물 천장의 파편까지 튀어 오른다.
그림자 없는 낮은 이미 펼쳐져 있고 탄식의 안개가 그 위를 넘실댄다. 서슬 퍼런 안개 사이로 노아의 모습이 보인다.
파충류의 것처럼 변한 두 눈, 짐승의 발톱과 금색 비늘이 돋아난 한쪽 팔. 무엇보다 그 얼굴이, 표정이 광인처럼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예림아!”
포션을 상처에 대충 뿌리고 일어났다.
“아저씬 거기 있어요!”
훅 일어난 냉기가 여기까지 느껴지고,
쏴아아—!
얼음의 비가 노아를 향해 쏟아진다. 하나 노아는 아무렇지 않게 팔을 휘둘러 공격을 부수듯 막아 냈다. 그림자 없는 낮의 저지 효과가 발동했지만 노아의 발을 잠깐 붙잡을 뿐이었다.
그에 비해 예림이는, 이미 피투성이다. 아니, 부상만 입었다면 다행이다. 크게 할퀴어진 왼쪽 팔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검다. 독이다.
젠장, 역시 수준 차이가 크다. 심지어 예림이가 전력을 다하기엔 냉기 저항 없는 내가 걸리적거린다.
“멈춰, 노아!”
대충 소리치며 인벤토리에서 정신력 위주 장비를 꺼냈다. 이건 진짜 쓰면 안 될 거 같은데, 어쩔 수…….
“…어?”
“어라?”
예림이와 내 입에서 동시에 당황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노아가 진짜 멈췄어?
시선을 바닥으로 팍 떨군 채 뒷걸음질을 친다. 심지어 몸을 떨고 있다. 작게 중얼이는 소리가 예림이의 귀를 통해 들려왔다.
“…괜찮아, 저건 약해. 나보다 약해, 괜찮아, 죽일 수 있어…….”
대체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틈이 생긴 사이 초기 스킬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떡잎 스킬을 썼다.
[각성자 – 노아현재 스탯 등급 S
각성 가능 스탯 등급 A
최적화 초기 스킬
소리 없는 비명(S) 획득
스탯 대여(A) 획득
치유하는 손(B) 획득]
…순간 눈을 의심했다. 각성 가능 스탯 등급이 A다. A~S가 아닌 A. 최적화 각성을 했다 하더라도 A급이어야 하는데 현재 스탯은 S급이다.
길어야 3년 만에 S급으로 성장했다. 절대 정상적인 속도가 아니다.
황급히 내새끼 스킬창도 확인했다.
(노아-S)
역시 키워드가 적용되었다. 노아의 저 반응, 스탯 S급으로의 성장, 제가 동생을 키웠다는 리에트의 말. 그리고 그는 지금 나를 제 누나로 느끼고 있다.
…미친. 리에트,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