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잘려나간 것 (2)
운전대를 잡은 손 위로 불도마뱀이 스르륵 기어올랐다. 며칠 전에 비해 크기는 그대로지만 색은 조금 옅어졌다. 아니, 노란빛이 섞였다고 할까. 혹시나 싶어 떡잎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불의 정령 – E급]그새 등급이 올랐다. 여전히 낮은 편이긴 하지만 되게 빠르네.
“그 정령, 좀 성장한 모양이다?”
“그런가? 이것저것 잘 받아먹긴 하던데.”
“불 말고 다른 것도 먹어?”
“주로 먹는 건 불이지만 마석이나 잡다한 아이템도 삼켜. 일반적인 물건은 거들떠도 안 보지만.”
던전에서 나온 것만 먹는 건가. 유현이의 손가락 주위를 배회하던 도마뱀이 다시 팔을 타고 목 부근까지 기어 올라간다. 목을 한 바퀴 돌고는 귀 뒤쪽으로 올라가더니 오른쪽 눈가에서 돌연 사라졌다.
“…야, 너 눈이.”
오른쪽 눈이 붉게 변했다. 스킬의 영향으로 약간씩 검붉은 기가 돌 때도 있긴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확 달라졌다.
“피부에 문신처럼 스며들기도 하는데 눈에 들어가는 걸 더 좋아하더라고.”
유현이가 여상스럽게 말했다. 정령이란 거 특이하구나.
붉어진 눈을 무심코 빤히 쳐다보는데 도마뱀이 다시 나타났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꼬리를 탁탁 치면서.
“신경 쓰여?”
“응? 아, 혹시 네가 나오게 한 거냐? 조종도 가능해?”
“어느 정도는.”
붉게 일렁이는 도마뱀이 빠르게 기어 내려오더니 내 쪽으로 건너왔다. 내 무릎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던 피스가 눈을 반짝이며 앞발을 뻗는다.
– 그르릉.
알일 때부터 관심을 보이더니 불의 정령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도마뱀은 이내 몸을 휙 돌려 유현이에게로 가 버렸다. 멀어지는 도마뱀을 피스가 아쉽게 바라보았다.
“…시스템 제작자는 확실히 믿을 만한 거야?”
신호에 걸렸을 때 유현이가 물었다. 빨갛게 들어와 있는 불을 바라보던 시선을 동생에게로 돌렸다.
“글쎄다. 믿고 안 믿고 이전에 자세히는 말 못 해도 일단 시스템에 관여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니까. 나한테 뭐 이상한 거 시키는 것도 아니고.”
S급으로만 50명 채우라는 말에 기겁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냥 내 스킬 착실히 쓰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기간도 넉넉하고 몬스터도 해당되고 딱히 위험할 일도 없었다. 노아 건이 있긴 했지만 괜한 욕심 안 내고 기승수만 키우면 안전할 테니까.
‘소원석으로 사기 친 거 외의 다른 수작은 안 부린 듯하고.’
회귀한 게 여러모로 나으니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스킬 설명 부족이야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고. 사슴 놈만 어떻게 해 줬으면. 뿔 진짜 잘랐을까.
“지금으로서는 그냥 내 할 일 하며 살면 그만이야. 따로 해야 될 일도 없어. 기껏해야 좀 부담되는 정도? 오늘도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가 보려는 거고. 혹시 너도 물어보고 싶은 거 있냐?”
대답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번에도 저번처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냥 한번 찾아가 보는 거지.
“…물어보고 싶은 거야 너무 많아서 고르기 힘들 정도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걸.”
“하긴 석하얀 씨에게 말해 주면 눈을 번뜩이며 석 달 열흘쯤 읽어내려야 할 질문지 더미를 가지고 올지도.”
그쪽 팀원들이 단체로 만세 삼창이라도 하며 기뻐 날뛰는 모습이 절로 눈앞에 그려진다.
“형, 저주 저항도 L급이야?”
유현이가 문득 물어왔다. 그때 독 저항 말고는 등급까진 자세히 말 안 해 줬던가.
“응.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마라. 너야 알아서 잘하겠지만.”
독 저항은 그렇다 쳐도 저주 저항 등급은 들키면 진짜 귀찮아진다. 지금도 인벤토리나 계약을 비롯해 쓰이는 곳 많은 게 저주 스킬인데 앞으로는 더 다양하게 이용될 예정이다. 그런데 S급도 아니고 무려 L급 저항 스킬이면 나를 묶을 수 있는 저주 스킬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스킬 영향 범위 내에 드는 다른 사람까지도.
“걸리면 S급이라고 해 둘 거야.”
환경상 끝까지 들키지 않는 건 무리고, S급 저주 저항이면 사람 하나 커버할 정도로 범위가 넓진 않은 데다가 나 하나야 스탯 F짜리니 크게 신경 안 쓰겠지. 리에트도 그 정도로 알고 있을 테다. 어쩌면 더 낮게 예상하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스킬 사용 능력이 떨어져서인지 저렴하게 만든 것인지 리에트의 계약서 등급은 B였으니까.
“그 정도면 계약서 쓸 때만 조심하면 등급 들킬 일 없을걸. 계약서도 S급짜리 찢어 버리는 짓만 안 하면 티 안 날 거고.”
헌터의 저주 스킬이야 조건 수락만 아니면 등급 대비 효과가 낮으니 문제없다. 내가 뭐 공격형 저주 스킬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몬스터 잡으러 갈 것도 아니고.
“그래도 네가 SS급 이상 저주 풀어야 할 일 있으면 도와줄게. 성녀님도 S급까지밖에 커버 못 하잖아.”
들키면 평화로운 은퇴 계획이 좀 더 멀어지긴 하겠지만. 예림이한테도 말해 둬야 하나, 고민이네. 독과 달리 저주는 불법 계약서만 조심하면 되니 괜찮으려나.
“계약서는 SSS급까지 막아 줄 수 있겠네.”
“당사자가 동의한 조건 저주는 한 단계 위의 저항이나 해주 스킬로만 막을 수 있으니 그렇겠지. 어차피 아직 SS급도 없지 않나?”
“없지.”
어째 대답하는 목소리가 시들하다. 있나? 내 기억으로는 없지만 모를 일이긴 하다.
그러는 사이 던전 건물에 도착했다. 나는 푸른색 게이트 앞에 멈춰 서고 유현이가 먼저 들어갔다. 10분쯤 기다렸다 따라 들어가기로 했는데.
“…유현아?”
유현이가 도로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혹시 우리가 던전을 잘못 찾아온 건가?”
“아니, 맞는데? 애초에 다른 던전이었으면 건물 안에 들어오질 못했겠지.”
게이트 옆 벽에 붙어 있는 일련번호도 오기로 한 던전의 것이 맞았다. 일련번호 아래로 사막환경 D급이라고 적혀 있다. 유현이도 그것을 보곤 멍하게 중얼거렸다.
“눈이… 내리던데.”
“…눈?”
“눈 덮인 숲이었어. 몬스터도 안 보이고.”
…던전 환경이 바뀌었단 소리는 또 처음 듣는다. 혹시 시스템분들과 관련 있는 건가.
“나도 들어가 볼게.”
“안 돼. 위험할지도 몰라.”
“게이트 열려 있잖아. 이것도 있고.”
샬로스의 구슬을 꺼내 저번의 팔찌와 같은 효과라고 하자 승낙을 한다. 하여간 까다로운 놈. 유현이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고 나도 피스를 안아 든 채 게이트를 넘어섰다.
“정말로 겨울 숲이네.”
새하얗게 눈 덮인 고요한 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크리스마스카드 속 그림 같다. 희뿌연 하늘에서 눈송이가 사락사락 떨어져 내린다. 잠시간 보일 듯 말 듯 작게 흩날리더니, 이내 그쳐 버렸다.
“좀 춥다.”
“냉기 저항 붙은 건 없는데. 상쇄하기 쉬워서.”
예림이가 들으면 투덜거릴 소리로군. 그러면서 코트를 꺼내서 내게 걸쳐 주었다. 이어 불도마뱀이 다가와 내 목에 감기고 피스까지 커져서 감싸듯 기대와 주자 금방 추위가 가셨다. 눈에 신발이 젖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지만.
숲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 봤지만 여전히 주위는 조용하기만 했다. 몬스터가 없는 던전이라니. 역시 이상하다. 심지어 인사 메시지창도 뜨지 않았다.
나가는 게 좋으려나 싶던 그때.
콰득!
“유현아!”
소리도 없이 날아온 날카로운 얼음창이 한유현의 팔뚝을 꿰뚫었다. 팔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머리를 향한 것을 팔로 막았다.
불길이 팔을 휘감으며 얼음을 순식간에 녹인다. 동시에 유현이가 발끝으로 쌓인 눈을 강하게 걷어찼다.
촤악—
거대한 파도처럼 앞으로 십수 미터 덮쳐든 눈이 다시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하지만 일부는 공중에 둥둥 떠 있다. 아니, 투명한 무언가에 쌓였다. 이 미터가량 높이의, 사람과 비슷하게 머리와 어깨의 형태를 가진 것에.
“은신 스킬 등급이 높아. 절대 D급은 아니야.”
유현이가 포션병을 열며 나직이 말했다. 샬로스의 구슬은 이미 꺼내 들었다. 이어 떡잎 스킬을 썼다.
[장난감 병정 6호 – S급계약자 – □□□□□]
‘…정령?’
유현이의 불의 정령 때와 비슷한 상태창이 떴다. 그보다 S급에 6호? 설마 1~5호도 있다는 건가. 어쩌면 그 이상도…….
최대한 빨리 게이트로 탈출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죄송해요오오~~]메시지창이 떴다. 이거 설마.
“…유현아,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구슬을 쓰면 바로 공격할 태세 만만이던 유현이가 의아한 눈빛을 보내왔다. 이어 메시지창이 다시 뜨며 저 멀리서 무언가가 통통 튀어오는 게 보였다.
통통통, 눈코입이 그려진 배구공이 다가온다. 유현이가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아니 웬 배구공인가 싶지만 그 전에.
“죄송하다면 답니까? 남의 동생 팔에 구멍 내 놓고선!”
배구공에 그려진 동그란 눈이 ㅠㅠ 모양으로 변했다. 웃고 있던 입도 쭈글쭈글해졌다.
[허니 동생 잘못도 있는데…….]“잘못? 갑자기 공격해 오더니 떠넘기기까지 해?”
바로 앞에까지 온 배구공을 붙잡고 짤짤 흔들었다. 어디서 말도 안 되는 변명질이냐.
[아뇨, 그게요…….]“너, 신입이지.”
[윌슨인데요!]…윌슨? 그건 또 누구냐.
[…신입 맞아요ㅠ0ㅠ]역시 맞잖아. 아무튼 적은 아니다.
“유현아, 이거 시스템—”
시스템 쪽이니 괜찮다고 말해 주려고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몇 발짝 물러서 있는 유현이가 보였다. 그것도 당황한 표정으로. 피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애처롭게 쳐다보며 허공을, 투명한 벽 같은 것을 박박 긁고 있었다.
“그래도 설명은 해 주고 내보내야죠.”
소리는 안 통하는 모양이고, 메모장과 펜을 꺼내려는데 인벤토리가 작동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쪼그려 앉아 눈 위에다 괜찮다고 적어 주었다. 손 시리다. 그나마 도마뱀은 아직 목에 감겨 있어서 다행이지.
“공격은 왜 했고 여기는 또 뭡니까?”
[그건요, 허니 동생이 서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 누군가들과 관계가 있어서예요. 여긴 허니를 위한 던전이랍니다. 게이트 앞에서 노크를 세 번 하면 이쪽으로 들어올 수 있어요. 열심히 만들었죠!]“노크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처음에는 그냥 들어와야 알려 주죠. 언급할 수 없는 쪽이 최근에 간섭을 좀 크게 해서 만들 수 있었어요.]언급을 못 한다니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다. 게다가 유현이랑 관계가… 잠깐만. 예전에 유현이가 했던 엉뚱하고 수상쩍은 소리가 퍼뜩 떠올랐다.
“…그 언급 어쩌고가 혹시 사이비 종교 같은 겁니까? 유교 같은?”
유교는 사이비가 아니지만. 내 질문에 신입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말 못 하는 거 보니 맞구만.
[아무튼 여기는 청소를 잘 해 놨으니까 위험한 일은 생기지 않을 거예요. 오래 열어 둘 수는 없지만요. 한 30분쯤?]이미 십 분은 지난 거 같은데. 빨리 물어봐야겠다.
“그 사이비 종교는 많이 위험합니까? 저한테 S급 모으라고 한 이유는 아직 설명 못 해 줘요? 제 일 대신해 줄 수 있는 다른 사람은 없고요? 혹시 일본 쪽에 스태미너 포션 재료 나오는 던전 빨리 나오게 할 수는 없을까요. 그리고 삐약이라고 새끼새 몬스터가 있는데 상태창 정보가 제대로 안 뜹니다. 키워드 적용은 되지만 테이밍이나 내새끼 스킬 적용도 안 되고요. 또—”
[잠깐만요! 위험, 위험은… 지금 수준으로는 괜찮아요. 자세히 설명하면 더 위험해져서 안 되고요. 허니를 대신해 줄 사람은… 아직은 없네요. 하지만 허니가 찾아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럼 좋을 텐데!]찾아낼 수 있다고? 나와 비슷한 특수 스킬 가진 사람 말인가.
“네.”
[…안 보이는데요?@△@??]안 보인다고? 상태창… 도 안 열리네. 하지만 분명 삐약이도 있었다. 등급은 □로 표시되었지만.
[이상하네. 가지고 오면 확인해 보고 삭제 처리해 드릴게요.]…미친?
“됐습니다!”
시발, 삭제 처리라니 미쳤나 진짜. 삐약이를 던전에 데리고 올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애가 버그 좀 있을 수도 있지 뭔 삭제야, 미친.
“그리고 최근에 S급 던전 첫 공략 보상이 회귀 전과 달라진 일이 있었습니다만, 원래 그럴 수도 있는 겁니까?”
[혹시 소모품이에요?]“예.”
[소모품이면 사용되었기 때문이에요. 아이템은 물론이고 다른 것도, 예를 들면 죽은 것도 다 잘려 나갔거든요. 똑같은 게 여럿 있으면 대체하지만 없으면 다른 아이템을 넣어 놓았죠.]“…잘려 나갔다고요?”
[네. 회귀가 원래 그렇잖아요. 참, 허니는 잘 모르겠구나. 회귀를 해도 대상은 허니 한 명뿐이기에 남은 건 그대로예요. 5년의 시간이 흘러간 세계는 그대로 두고, 허니만 다시 5년 전으로 돌아온 거죠.]순간 속이 메슥거렸다. 그대로라니. 그게 다, 그대로 남았다고. 없어진 게 아니라?
“남은, 건, 그럼…….”
“…겹쳐졌다는 건, 결국 사라지긴 한 겁니까?”
[말하자면 같은 이름의 파일을 덮어쓰기 한 셈이니까 사라졌다고도 볼 수 있겠죠? 사실은 합쳐진 것이지만 그 사실을 느끼지도, 알아채지도 못하니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아주 예민한 사람은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몰라요.]덮어쓰기. 나는 미래의 파일을 과거의 파일에 덮어쓴 거고, 다른 사람들은 그 반대라는 뜻인가. 그렇기에 미래의, 없어졌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로 비롯된 칭호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거였구나.
나는 미래의 파일 그대로니까.
“그럼 현재 시점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리고… 죽은 사람들은. 그, 잘려 나갔다는 게…….”
[현재 정보는 없으면서 회귀 전에 사망하지 않은 생명의 정보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이건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한데, 겹쳐진 영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결국은 대체로 비슷하게 태어나고 최소한 대체할 정보는 나오게 되거든요.]메시지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반면에 사용되어 사라졌거나 죽은 생명은 회귀 전에 이미 제외되어 버린 거라서요. 가령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고 해요. 1년 차에는 A와 B 모두 존재하죠. 하지만 5년 차에는 A는 그대로 있지만 B는 죽어 버렸어요. 이때 1년 차와 5년 차가 합쳐지게 되었는데, 5년 차의 A는 존재하지만 B는 죽어 정보가 사라진 거죠. 존재하는 5년 차 A는 무사히 1년 차 A와 합쳐지게 되겠지만, 5년 차 B는 이미 삭제된 정보로 처리되어 허니의 세상에서 잘려 나가는 거예요. 삭제된 정보를 1년 차의 멀쩡한 정보와 합칠 순 없잖아요? 말씀하신 아이템의 경우엔 1년 차 정보도, 5년 차 정보도 없으니 아예 나타나지도 못한 거고요.]삭제된 정보.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1년 차 B도 B다. 단지 5년이란 시간이 지워졌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후회가 고개를 들었다.
“…그냥 살렸어도 좋았을 텐데.”
[네? 어, 설명이 좀 어렵죠? 자세히 가르쳐 드리기엔 너무 많이 알려 드려야 해서 힘들어요8ㅅ8]“아뇨, 괜찮습니다. 충분해요.”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제 됐다고 하자 오 분쯤 뒤에 원래 던전으로 돌아갈 거라는 말을 남기고 배구공이 사라졌다.
“형, 괜찮아?”
– 캬흥.
유현이와 피스가 곁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동생을 올려다보았다.
“물론 괜찮아. 그냥 대화만 나누었을 뿐이니까. 아, 오 분 뒤에 원래 던전으로 돌아간다더라.”
“…표정은 별로 안 좋은 거 같은데.”
“추워서. 그래서 그래. 안아도 돼?”
“나보단 피스가 더 따뜻할걸.”
이상하다는 듯 말해도 거절하진 않는다. 팔을 뻗어 동생을 끌어안았다. 확실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거면 된 거 아닐까.
“넌 나보다 일찍 죽지 마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피스 너도 마찬가지고.”
이번에는 피스의 목을 끌어안았다. 역시 피스가 더 따뜻하긴 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