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40
ⓒ 목마
입산-11
‘유혈.’ 이 특성은 라덴을 난전 특화로 만드는 핵심 특성이자, 전투 중에 라덴의 체력을 유지하는 것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특성이다.
‘폭혈.’ 이 특성 역시 라덴을 난전 특화로 만드는 것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전투를 계속함으로서 광란 중첩을 쌓고, 중첩이 될수록 라덴의 기본 능력치가 상승한다.
두 특성 모두 아까의 상황에서는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에클레어와의 일대일 상황. 피도 흐르지 않고, 아무리 공격을 적중시켜도 에클레어는 주변 성기사와 사제들의 보조로 체력을 회복한다.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싸웠다면, 라덴은 버티다가 결국 쓰러졌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했다. 이런 상황이.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직접 변수가 되어 변수를 끌어올 수밖에. 라덴은 킬러 앤트 사이로 쑤셔 들어가 날뛰기 시작했다. 물어뜯으려고 덤비는 킬러 앤트를 주먹으로 후려치고, 발로 걷어차고.
‘생각대로 내려오지는 않는군.’
에클레어로서도 킬러 앤트의 둥지에 들어오는 것은 제법 부담스럽겠지. 아니, 부담을 떠나서 들어 올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리라. 가만히 두어도 라덴이 킬러 앤트에게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죽을 생각은 없었다.
죽을 생각이 없기에, 이곳 둥지로 뛰어든 것이다. 도망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도망칠 생각도 없었다. 라덴은 정신을 바짝 곤두세우고서 킬러 앤트와 싸우는 것에 열중했다. 당장 중요한 것은 킬러 앤트를 때려 잡는 것이다.
생각대로 잘 될까
모르겠다.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에클레어에 맞아 죽고 싶지도 않았고, 에클레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싶지도 않았다. 라덴은 라덴 나름대로 이것이 자신의 활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대로 움직였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했다. 아니, 하고 있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주먹에 맞아 으스러지는 개미의 갑각과, 그 안에서 튀는 끈적거리는 체액이 불쾌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에클레어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아래를 내려 보았다. 당연히, 자살하기 위해 내려간 줄 알았다. 자신에게 죽느니 차라리 몬스터에게 죽는 것으로 최소한의 명예를 챙기려는 것이라고.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에클레어에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결국 라덴을 죽인 것은 에클레어가 되니까.
하지만 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자살하기 위해 내려간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킬러 앤트와 싸우고 있었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대체 왜 왜 킬러 앤트의 둥지로 내려가서 싸우고 있는 것이지 자살할 생각 아니었나 설마 저렇게 시간을 끌면서 에클레어와 홀리데이 길드원들이 물러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일까
“생각대로 해 줄 리가 없잖아, 돼지가.”
에클레어는 인상을 팍 쓰고서 팔짱을 꼈다. 물러날 생각은 없다. 얼마나 시간을 끌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킬러 앤트의 둥지로 떨어진 이상 아주 오래 버티지는 못할터.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지쳐서 쓰러져 버릴 것이다. 에클레어는 그것을 진득하니 지켜 봐 줄 생각이었다. 저 오만한 돼지가 개미들에게 물어뜯겨 죽는 것을 말이다.
‘얼마나 됐지’
꽤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체감시간이니 실제로 흐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라덴은 숨을 크게 내뱉으면서 발을 끌었다. 킬러 앤트가 죽으면서 뿜은 체액 덕에 바닥은 진탕이 되어 있었다. 몇 십 마리는 족히 죽인 것 같은데… 놈들은 아직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킬러 앤트 한 마리라면 모를까, 주변 가득한 킬러 앤트를 상대로 싸웠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는 것이 용납되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
“…후우…”
라덴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아바타의 피로는 크게 없었지만, 문제는 정신이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가 딱 좋아. 라덴은 그렇게 생각했다. 딱 좋게 몸이 풀렸다. 뚜둑. 라덴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었다.
[광란 중첩이 5가 되었습니다.]폭혈의 광란 중첩이 최대치가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킬러 앤트를 처죽이면서 유혈 특성까지 활성화 시켰다. 라덴의 노림수가 이것이었다. 에클레어와 일대일 상황에서는 유혈 특성을 발동하는 것도, 폭혈 특성을 발동하는 것도 힘들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서, 다른 곳에서 발동시키는 수밖에. 라덴은 머리를 들어 올렸다. 카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킬러 앤트들이 밀려드는 소리였다. 라덴은 이쪽을 내려 보는 에클레어를 향해 피식 웃어 주었다.
노림수는 특성 발동이 끝이 아니다.
라덴의 자세가 낮춰졌다. 뱉은 숨을 다시 삼킨다. 발을 앞으로 뻗는다. 라덴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는 절벽을 그대로 뛰어 오르면서, 경사가 아예 직각 수준이 되었을 때 위로 크게 뛰어 올랐다.
에클레어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라덴은 크게 다리를 뻗었다. 허공답보로 하나, 둘, 셋… 열 넷. 흑색 방패를 사용해서 다시 한 번 하나, 둘 셋…
ㅡ타악! 라덴의 몸이 에클레어의 앞에 내려 섰다. 에클레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뭘 하고 싶은 거야”
결국 참다 못한 에클레어가 그렇게 질문했다. 그 말에 라덴은 씩 웃더니 에클레어에게 달려들었다. 접근하는 속도. 에클레어의 머릿속에서 아딤이 경고했다. 뭔가 다르다. 아딤의 경고에 에클레어는 발을 뒤로 끌면서 거리를 벌리고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콰앙! 에클레어가 휘두른 스태프와 라덴의 주먹이 부딪힌다. 광란 중첩을 최대한 쌓은 덕에 라덴의 신체 능력은 아까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에클레어는 손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에 눈썹을 찡그렸다.
“마, 마스터!”
변수가 시작되었다. 성기사들이 놀란 고함을 지른다. 셀 수 없이 많은 킬러 앤트들이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라덴의 몸을 듬뿍 적신 죽은 킬러 앤트들의 페로몬 때문이었다. 놈들은 둥지를 습격한 침입자를 자비롭게 돌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쫒아서 죽인다. 수십 마리의 킬러 앤트들이, 아니, 그 이상의 징글맞은 개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절벽을 기어 오른다.
“돼지 새끼…!”
에클레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라덴이 무엇을 노리고 있었던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몸에 페로몬을 듬뿍 묻히고 달려왔으니 저 징글맞은 개미 새끼들이 뒤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바. 아무리 홀리데이가 좀비처럼 질긴 전투 유지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저만한 킬러 앤트를 상대로 싸워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쩔래”
라덴이 바짝 붙었다. 타탁! 에클레어가 휘두른 스태프가 라덴의 손에 잡힌다. 라덴은 양 손으로 에클레어의 스태프를 단단히 잡고서 그녀의 몸을 밀어 붙였다.
“이대로 같이 개미한테 먹혀 죽을래 아니, 아니지. 나는 도망칠 자신 있어. 그런데 너는”
라덴이 가진 기동력이라면, 고생하기는 하겠지만 킬러앤트의 추적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에클레어와 홀리데이 길드원들에게는 불가능하다. 사제와 성기사는 기동력이 좋은 편이 아니니까.
“…개미들 막아!”
라덴의 얼굴을 노려 보던 에클레어가 고함을 질렀다. 그녀는 선택을 내렸다. 이대로 물러서는 것이 아닌, 일단 라덴은 아예 짓밟아 죽여버리는 쪽으로. 에클레어의 명령에 성기사들이 절벽 쪽으로 뛰어갔다. 그들은 개미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거대한 방패를 앞에 세웠다. 그 뒤에 사제들이 붙는다. 성기사들이 킬러 앤트가 올라오는 것을 막으며 버티는 동안, 그들의 체력을 회복시켜주기 위함이었다.
“왜 싸우게”
“넌 죽여야 겠어.”
에클레어가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 와중에 사제와 성기사들이 에클레어에게 각종 버프 마법을 걸어 주었다. 프리스트인 그녀가 양자택일을 사용하는 라덴을 상대로 압도하게 만드는 그 사기적인 버프 지옥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더는 너 새끼가 무릎을 꿇는 것에도 관심 없어. 너… 죽인다. 죽여 버릴 거야. 돼지새끼야…!”
“아까랑 다를 걸.”
라덴이 이죽거렸다. 일단 여기까지는 성공했다. 킬러 앤트를 상대로 싸우면서 광란 중첩을 쌓고, 놈들을 끌어 들여 성기사와 사제를 전선에서 빼버린다. 아직 몇 명의 사제들이 남아 에클레어를 보조하고 있었지만, 아까 같은 상황에 비해서는 훨씬 낫다.
“해 봐!”
아딤이 전투 보조에 들어간다. 에클레어는 눈을 번뜩이면서 라덴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프리스트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근저 공격의 연속, 라덴은 발 빠르게 몸을 움직이면서 에클레어의 공격을 회피했다. 광란 중첩 덕에 기본 스펙이 상승했고 거기에 양자택일까지 사용하고 있다. 버프를 둘둘 만 에클레어의 공격에 충분히 대응이 가능했다.
아니. 그 이상이다. 라덴이 빠르게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에클레어는 흠칫 놀라면서 거리를 조금 벌리려는 한 편, 스태프를 쥐지 않은 주먹을 일직선으로 뻗으면서 라덴의 접근을 견제했다. 에클레어의 주먹에 환한 빛이 어렸다. 신성력이 강기처럼 뭉쳐 물리력을 갖춘 것이다.
라덴의 허리가 크게 옆으로 돌아갔다. 에클레어의 주먹이 라덴을 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라덴의 손이 스태프 아래를 미꾸라지처럼 유연하게 파고들었다. 노린 것은 명치였지만, 그 짧은 순간에 에클레어는 급히 몸을 비틀면서 라덴의 주먹을 피해냈다.
아딤의 경고가 없었다면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확실히 뭔가 바뀌었군. 이 이상은 너로서는 힘들어.]아딤이 경고했다. 그것을 듣고서 에클레어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힘들어 누구 마음대로 발끈하여 공격을 휘둘렀지만 닿지 않는다.
[슬슬 버프의 지속시간도 끝날 거야. 개미를 막아내느라 성기사들도 빠졌고 사제들도 그쪽을 신경 쓰고 있지. 버프 시간이 끝난다면 네 우세함은 사라지고 힘들어질 걸. 지금이라면 잡을 수 있다. 지금이라면.]경고에서 설득으로 넘어갔다. 에클레어는 어쩔 수 없이 아딤에게 아바타의 통제권을 넘겨주었다. 단, 의식은 그대로 두고서. 에클레어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응’
에클레어의 몸을 장악한 아딤이 달려들었다. 여태까지도 충분히 과격했지만, 지금의 에클레어는 이전의 움직임이 어린아이 장난이었다는 냥 무식했다. 라덴은 정직하게 정면으로 파고 들어오는 에클레어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일단 확인해 볼까. 라덴의 손끝에서 호령환의 손톱이 튀어나왔다. 에클레어의 손이 앞으로 뻗어졌을 때, 라덴은 망설임없이 에클레어의 팔을 잘라버렸다.
자르려고 했다.
손톱이 스치기 직전, 에클레어는 뻗은 손을 빠르게 접었다. 촤악! 자를 생각으로 휘두른 것인데 손톱은 에클레어의 팔뚝을 스치는 것에 그쳤다. 피가 뿜어졌고, 에클레어의 허리가 비틀렸다.
‘다리!’
라덴은 급히 몸을 둥글게 말고서 다른 팔로 배를 감쌌다. 콰앙! 라덴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에클레어는 입술을 꾹 다물고서 뒤로 밀려난 라덴에게 접그했다. 양 손으로 잡은 스태프가 라덴의 머리를 내리 찍는다. 라덴은 혀를 차면서 몸을 던졌다. 꽈아앙! 스태프가 내리 찍힌 곳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땅이 갈라졌다. 여전히 프리스트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무식한 위력이었다. 에클레어는 내리 찍은 스태프를 바로 들어 올리더니 라덴이 있는 쪽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촤라라락! 보석이 풀려나오면서 포탄처럼 라덴을 향해 쏘아졌다.
“쯧!”
아까 전까지만 해도 깔끔하기는 했어도 묘하게 반응이 늦은 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없다. 오히려 변칙적성이 늘었다. 도대체 뭐야 설마 여태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건가
‘어쩔 수 없지.’
라덴은 날아오는 보석을 피하고서 양 손을 들어 올렸다. 흑염룡과 호환백섬. 그것이 동시에 쏘아졌다. 에클레어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면서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아까 전에 보았던 공격이다. 에클레어가, 그녀 대신에 움직이고 있는 아딤이 프리스트의 최고 방어 주문인 생크추어리를 펼쳤다.
생크추어리에 부딪힌 호환백섬과 흑염룡이 라덴에게 되돌아 온다. 라덴은 이를 악물고 그것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백색거울이 펼쳐졌다. 한 번 반사된 호환백섬과 흑염룡이 그대로 에클레어에게 돌아간다. 이미 생크추어리는 한 번 사용했고, 설마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반사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에클레어의 몸뚱이가 반사 된 호환백섬과 흑염룡과 충돌했다. 두 번의 반사를 거치면서 데미지가 크게 줄었지만, 애초에 무식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스킬이다 보니 에클레어를 물러서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거기서,
[광폭을 사용하였습니다!]
라덴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입산-1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