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7
017/ 뒷골목-1
앞에 다섯, 뒤에 다섯. 그렇게 열. 장비는? 무기의 종류도 갑옷의 종류도 달랐고, 장비의 수준도 달랐다. 척 보기에도 지난번에 보았던 놈들보다 레벨이 높아 보였다. 라덴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맞는데. 무슨 일로 온 겁니까?”
그다지 좋은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길드 스카웃을 제의하러 온 것이라면 살기를 발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도. 라덴은 피부가 찌릿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욕설을 삼켰다. 라덴이 가지고 있는 포식감지 특성은, 계속해서 저 놈들이 발하는 살기를 캐치하고 있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중앙에 선 백인이 검을 뽑았다. 스릉거리는 쇳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라덴은 일단 한 발 물러서면서 다시 물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별 이유는 없어.”
그렇게 말할 뿐이다. 아무래도 직접 말해 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라덴은 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백호무술관에서 지낸 한 달 동안 레벨도 늘었고 기본기도 늘었지만, 사실 가장 많이 는 것은 욕설이었다.
“루키 밟기네, 씨발놈들.”
아니면 단순 관심종자들이던가. 어느 쪽이든 좋은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최악이다. 라데는 헛웃음을 흘리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거, 보니까 레벨도 꽤 되시는 양반들인데.. 헛지랄하지 말고 갈 길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너 잡으러 왔는데, 온 수고비는 받아야지.”
“내가 와달라고 했나? 자기들이 직접 온 것이면서 왜 나한테 수고비 달라고 지랄이야?”
내뱉는 말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잠깐 라덴을 노려 보던 남자는 곧 표정을 풀고서 피식 웃었다.
“..시간 끌려고?”
“들켰네.”
살살 긁으면서 시간을 끌어보려고 했는데, 너무 쉽게 들켜버렸다. 이를 어쩐다.. 라덴은 백호무술관 쪽을 힐긋 보았다. 아직 백호무술관과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고, 이쪽은 원체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사람들이 잘 오가지 않는다.
‘루키 밟기. 올 것이라고는 생각했었는데.. 열 명이나 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아니면 단순한 루키 밟기가 아닌가? 라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안타깝게도 라덴에게는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따위는 없었다. 당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느냐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관계없는 사람은 보내지?”
라덴은 그렇게 말하면서 알케나 쪽을 힐긋거렸다. 그녀는 뻣뻣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건 라덴의 문제였다. 라덴은 괜히 상관도 없는 알케나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지. 괜히 저 여자가 백호무술관의 제자들을 끌고 온다면 귀찮아 지거든.”
“..새끼들. 그렇게 간이 작으면서 나 건드릴 생각은 왜 했어?”
아니면 로그아웃하는 것으로 도망칠까. 피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는 것이 상책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겠지만, 당장의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지. 놈들이 발하는 살기를 보고 있자니 차라리 피하는 것이 현명해 보였다.
“..도와드릴까요?”
곁에 서있던 알케나가 조용히 물었다. 그 말에 라덴은 알케나 쪽을 힐긋 보았다.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도와주기는 무슨.
“로그아웃하려고?”
“들켰네.”
대답한 순간. 남자가 땅을 박찼다. 다가오는 속도가 빠르다. 라덴은 곧바로 대응했다. 이 경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없다. 막거나, 피하거나.
‘레벨 차이가 꽤 날 거야. 장비 차이도 있고. 제대로 맞는다면.. 피 절반은 날아갈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피하는 수밖에. 라덴은 놈이 검을 휘두르는 궤적을 다라 크게 몸을 비틀었다. 파아앙! 휘둘러진 검이 공기를 찢으며 소리를 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하고서, 라덴은 벌린 발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놈에게 파고 들어갔다.
선택한 스킬은 파쇄권. 칼을 휘두를 수 없고, 주먹도 휘두르기 어려운 초근거리에서 쓸 수 있는 스킬이다. 꽈앙! 근거리에서 짧게 끊어 친 주먹이 남자의 옆구리를 때렸다.
“읍!”
남자는 헉하고 숨을 삼키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얕았나? 아니, 그냥 위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공격 자체는 제대로 들어갔다. 라덴은 이를 악물고서 물러서는 남자를 추격했다. 지껄이는 꼴을 보니 놈이 리더 같았다. 리더를 조졌을 때 놈들이 와해될지 와해되지 않을지는 잘 알 수가 없었지만, 그나마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이를 놓칠 수는 없었다.
파쇄권이 질풍연각으로 이어졌다. 거기에 허허실실까시 사용하고, 위력을 늘리기 위해 기공술까지 사용했다. 허허실실, 기공술의 공격력 추가에 질풍연각으로 데미지를 중첩시킨다면 라덴의 공격은 못해도 통상 타격의 3배 가까이 오른다.
허리를 통째로 비틀어 휘두른 다리가 남자의 사슬갑옷을 갈겼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옆으로 휘청거렸다. 자세 그대로, 휘두른 다리의 무릎만을 접었다가 다시 튕겨 때린다. 소리가 조금 더 무거워졌다. 그 후에 허리에 역회전을 주고서 다리를 바꾼다. 탁, 탁. 발바닥이 경쾌하게 바닥을 두드리고, 크게 휘두른 반대쪽 다리가 남자의 어깨를 갈겼다.
“크윽!”
남자의 몸이 땅을 뒹굴었다. 거기서 라덴의 공격이 멈추었다. 라덴의 발 바로 앞에 얼음으로 만들어진 암기들이 꽂혔다.
“레벨 7이라는 놈한테 처맞고 잘하는 짓이다.”
“아니, 야. 그게 아니라.. 저 놈 저거 이상한데?”
“이상한 건 너지. 왜 계속 처맞고 있는 거야?”
동료들의 이죽거림을 듣고서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씨근거리는 숨을 내뱉던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서 라덴을 노려 보았다.
“야, 힐 좀 줘 봐.”
“힐? 힐은 왜?”
“달라하면 그냥 좀 줘!”
남자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 말에 힐러는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남자를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엷은 녹색의 빛이 남자의 몸을 감싸고 감소되었던 체력을 회복시켰다.
‘저 새끼.. 저거 도대체 뭐야?’
분노와 굴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남자는 적잖게 경악했다. 몇 대나 맞았지? 그렇게 많이 맞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런데 체력이 상당히 줄어 버렸다.
‘레벨 차이가 15나 나는데.’
라덴은 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남자를 노려보았다. 빠르게 끊고 갈 생각이었는데 실패했다. 공격은 확실히 성공했지만, 단순히 데미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레벨이 높아.’
저 정도면 최소 20은 될 것이다. 입은 갑옷을 보니까 탱커도 아니고 근딜러인데, 허허실실에 기공술, 질풍연각으로 뻥튀기시킨 데미지를 입혔음에도 죽이지 못했다.
‘일대일 구도여도 잡을 수 있을까 잡을 수 없을까를 모르겠는데. 저쪽이 쪽수도 많잖아. 이건 진짜 최악인데.’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바로 옆에서 스릉거리는 칼 소리가 들렸다. 라덴은 움찔 놀라고서 옆을 돌아보았다. 알케나가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저, 저기. 그냥 로그아웃하시는 것이..”
“스승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함께 있다가 오라는.”
“이런 상황에서까지 스승님 명령을 따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라덴님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도와드릴게요.”
“까놓고 말해서 알케나님이 도와줘도 뭐가 바뀌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건 모르는 거죠.”
알케나는 눈을 흘기면서 대답했다. 그 말에 라덴은 얌전히 입술을 다물고서 저쪽을 바라보았다. 회복이 끝난 남자는 카악거리며 끓인 가래를 옆으로 퉤 뱉었다.
그것이 신호라면 신호였다. 지저분한 신호. 처음에는 구경하듯 거리를 두고 있던 놈들이 거리를 좁혀왔다. 앞에서, 뒤에서. 라데는 미간을 찡그리고서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놈들을 노려보았다.
라덴의 특성은 난전에 유리하다. 하지만 난전도 난전 나름이다. 한 명 한 명이 라덴보다 레벨이 훨씬 높고 아이템이 좋은 상황이다. 난전 특성인 유혈을 발동시키고 싶어도, 이 상황에서는 상대를 피투성이로 만들 수가 없다.
‘알케나의 레벨은 나랑 비슷해. 아무리 알케나가 칼을 잘 쓴다고 해도 이 상황은 무리야.’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PK를 당하게 될 줄이야. 장비 아이템을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사흘 간 접속 패널티가 뼈아프게 느껴졌다.
얌전히 뒈져 줄 생각은 없었다. 라덴은 이를 악물고서 앞으로 튀어나갔다. 알케나에게 신호는 주지 않았다. 손발을 맞출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뜸 무리 사이로 뛰어 들은 라덴은, 가장 방어력이 취약해 보이는 로브를 입은 남자를 노렸다. 처음 라덴과 부딪혔던 남자에게 힐을 걸어 주었던 힐러였다. 대뜸 달려드는 라덴을 보고서 힐러의 표정이 움찔 굳었다.
난전에서 힐러를 먼저 조지고 시작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힐러가 살아 있다면 이길 싸움도 질질 끌고 죽일 놈도 죽이지 못하니까.
“막아!”
라덴에게 낭패를 보았던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그는 라덴의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높은 공격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가뜩이나 체력이 낮고 방어력이 낮은 힐러라면 오래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힐러의 바로 곁에 있던 거구가 로브를 끌어 당겼다. 힐러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곧바로 묵직한 해머가 라덴의 머리로 날아왔다. 저만한 해머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완력에 라덴은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맞으면 죽는다.’
그런 마인드로. 맞지 않으면 된다. 크게 휘두른 해머가 라덴의 머리 바로 위를 스쳤다. 마침 주저앉아 있는 힐러가 보였다.
“이..!”
라덴은 뛰던 그대로 몸을 날려 힐러의 머리를 주먹으로 갈겼다. 놈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가면서 터진 입술에서 피가 뿜어졌다. 제 공격의 반동에 라덴의 몸이 땅을 뒹굴었다. 한 바퀴 구른 몸이 급히 자세를 갖추며 튀어 오른다. 일격에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안다. 일단 틈이 보이길래 공격했을 뿐이다. 등 뒤를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포식감지 스킬이 살기를 캐치했다.
“큭!”
라덴은 숨을 삼키고서 허리를 앞으로 젖혔다. 조금 늦었다. 얕게 눌린 통증이 등을 갈랐다. HP 포인트가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검을 휘두른 것은 아까의 그 코쟁이였다. 현재 라덴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다섯 명이다. 힐러와 해머를 든 거구. 리더처럼 보였던 검사. 묵직한 건틀릿을 끼고 있는 권법가.
그리고 창.
파앙! 공기를 뚫고 들어 온 창날이 라덴의 옆구리를 스쳤다. 빠르다. 일직선으로 뻗어 찌르는 창은 궤적이 보인다고 해서 쉽게 피할 수는 없었다. 스친 옆구리에서 피가 튄다. 체력이 줄어든다. 라덴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다섯. 나머지 다섯은 알케나가 상대하고 있다. 걱정되기는 했지만, 라덴에게 뒤를 돌아 볼 여유는 없었다.
뒤를 돌아보면 죽을 것이다.
연이어 뻗어지는 창격이 라덴의 몸을 스쳤다. 라덴은 최대한 몸을 비틀고 발을 움직이면서 피하려 들었지만, 라덴이 움직이고자 하는 대로 아바타가 잘 따라주지를 않았다. 창은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손목 쪽의 움직임을 조금만 바꾸어도 창의 길이 때문에 궤적이 확확 늘어나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리를 좁히는 것도 까다롭다. 창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다시,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칼이다. 앞에는 창, 뒤에는 칼. 라덴은 크게 몸을 움직여서 옆으로 빠져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건틀렛을 낀 권법가가 덤벼들었다. 서량에서 배운 것일까? 순간 그런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파파팍! 라덴의 손과 놈의 손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라덴이 장비하고 있는 초보자용 건틀릿은 공격력도 낮고 내구력도 낮다. 부딪힐 때마다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하지만 밀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맨손 격투가 상대라면, 라덴은 상대를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밀리는 스탯과 레벨. 그것은 경험에서 파생된 예측으로 커버한다. 실제로 유효했다. 라덴의 주먹이 남자의 턱을 한 대 갈겼기 때문이다.
너무 몰입했던 것일까. 조금 늦게, 라덴은 그런 후회를 생각했다. 조금이 아니라 많이 늦었다. 라덴의 몸이 공중을 훨훨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꽈앙! 가까운 담벽에 부딪히고서 라덴은 피를 토했다. 체력의 절반이 사라졌다. 권법가를 상대하다가 등 뒤에서 휘둘러진 해머에 대응하지 못했다.
‘뼈가 으스러졌어..!’
정확히 말하자면 척추가. 하반신에 감각이 전혀 없었다. 찌릿거리는 통증만 느껴질 뿐이다. 체력이 아직 남아 있으니 죽지는 않지만, 당한 곳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척추가 박살난 덕에 몸을 일으킬 수도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다. 힐러가 회복 마법을 걸어 주지 않는다면 이대로 맞아 죽게 된다.
“새끼, 애먹이네.”
남자가 욕설을 뱉으며 말했다. 라덴은 숨을 몰아 쉬면서 축 처진 다리를 붙잡았다. 그제 서야 라덴은 알케나가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고전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괜히 나 때문에.’
그런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너희들 씨발 뭐하냐?”
멀리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청아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