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8
018/ 뒷골목-2
라덴은 흠칫 놀라서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두커니 선 청아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치켜 뜬 청아의 눈동자는 몇 십 걸음 떨어진 이곳에서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사나웠다.
“사, 사형?”
라덴이 더듬거리며 청아를 불렀다. 청아는 대답 대신에 이쪽을 보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노려보았다. 갑작스러운 청아의 등장으로 상황이 멈추었다. 라덴 쪽으로 다가오는 플레이어들도, 알케나를 몰아붙이던 플레이어들도. 그렇게 열 명이 청아 쪽으로 머리를 돌리고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야?”
칼잡이가 물었다. 해머를 들고 있던 거구가 라덴 쪽을 힐긋 내려 보면서 말했다.
“사형이라고 한 것을 보니까, 백호무술관의 제자인 것 같은데.”
둘의 대화를 통해서 라덴은 이것 하나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놈들은 서량 출신이 아니다. 서량 출신이라면 백호무술관의 제자인 청아를 모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외지에서 왔다는 것인데.
‘루키 하나 밟으려고 외지에서 여기까지 와?’
이 미친 새끼들. 라덴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상황파악을 끝낸 청아는 크게 발을 뻗어서 앞으로 걸었다. 라덴은 다가오는 청아를 말려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둬야 할 지에 대해 잠깐 동안 고민했다.
“혼자잖아. 그냥 조져.”
“NPC니까 뒷감당도 없겠고. 어차피 이 지역에서 오래 있을 생각도 아니니까.”
라덴의 앞에 선 플레이어들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상황은 누가 보기에도 플레이어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그들은 거의 지치지도 않았고, 부상자도 없었다. 조금 체력이 줄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힐러가 있으니 금세 채울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10명이다.
청아는 1명이다.
“막내야.”
청아는 걸음 속도를 조금도 죽이지 않았다. 골목의 끝에서 라덴이 주저앉아 있는 곳까지. 청아는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잔뜩 찡그린 청아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안 뒈졌지?”
“..네.”
“대답하는 것 보니까 살아있네. 일어설 수는 있어?”
“아뇨. 일어설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척추가 박살나서.”
척추가 박살나서 하반신이 마비되었는데, 제 입으로 박살났다고 말하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새삼 이 세계가 가상현실세계라는 것을 자각한 기분이었다. 감각이 없어야 할 하반신이 욱신거리는 것과,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라덴이 느끼고 있는 이상의 전부였다.
“좋겠네, 플레이어는. 척추 박살나도 별로 아파 보이지도 않고.”
청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돌렸다. 주저없이 나아가던 청아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녀는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고서 이쪽을 보는 플레이어들을 보았다. 우선, 청아는 알케나 쪽을 보았다. 알케나는 괜히 움찔하여 들고 있던 칼을 아래로 내렸다.
“저 여자애는 누구야?”
“..청성님의 제자에요.”
“그래? 야, 괜히 휘말리지 말고 저쪽에 가서 찌그러져 있어.”
“네, 네?”
“가서 찌그러져 있으라고.”
청아가 미간을 찡그리면서 쏘아붙였다. 알케나는 뭐라고 반박하지 못하고서 슬금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청아는 머리를 옆으로 돌려 퉤 침을 뱉었다.
“기분도 엿같았는데 잘 됐네.”
그러고 보니. 청룡무술관으로 가기 전, 백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청아가 생리하는 날이라고. 그래서 청아의 기분이 엿같을 것이라고.
“너희들 다 뒈졌어.”
뱉는 목소리가 싸늘했다. 라덴은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고, 라덴의 앞에 서있는 플레이어들은 피식 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청아를 모른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녀가 뱉는 말에 조금의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다.
“도대체 뭔 자신감으로..”
칼잡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청아의 발이 붕 들렸다. 라덴은 예지능력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몇 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쩌억, 하는 소리가 났다.
청아의 근처에 있던 놈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선 자세 그대로 허리를 회전시키며 휘두른 발차기. 그것이 정확히 놈의 관자놀이에 박혔다. 갑옷에 보호되지 않은 급소였고, 기습이었다. 속도도 타이밍도 완벽했다.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쿠웅. 남자가 옆으로 쓰러졌다. 시간이 순간 멈춘 듯 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움찔거리면서 몸을 떨다가, 그대로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남자가 쓰러졌던 자리에는 길쭉한 검 한 자루만이 덩그러니 놓였다.
“..하는.. 말..”
칼잡이가 뒤늦게 말을 더듬거렸다. 청아는 머리를 좌우로 우둑 꺾으면서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 칼잡이를 비롯한 10명, 아니 9명은 드디어 상황을 깨달았다. 칼잡이가 고함을 질렀다.
“잡아 죽여!”
버럭 외치는 말에 다른 플레이어들이 청아를 덮쳤다. 청아의 상체가 살짝 낮춰졌다.
“이 씨발놈들이.”
옅은 붉은 색의 입술이 열리고,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청아는 눈을 날카롭게 뜨면서 굽힌 무릎에 힘을 주었다.
“감히 우리 막내를 건드려?”
질풍각. 청아에게 붙은 별명이다. 그 이름대로 청아는 질풍이 되었다.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는 청아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펄쩍 뛴 청아의 몸이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로 날았다. 공중으로 떠오른 청아는 허리를 비틀면서 다리를 크게 휘둘렀다. 콰직! 박살나는 소리가 났다. 무리 중 한 명이 쓰고 있던 투구가 우그러지는 소리였다. 꽈앙! 그대로 내리찍은 발이 놈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시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청아는 멈추지 않았다. 팽그르 도는 청아의 몸은 마치 팽이 같았다. 칼날이 달린 팽이. 그녀가 휘두르는 다리는 날카롭게 날이 선 질풍이었다. 가죽 갑옷은 예리하게 베어졌고 갑옷은 우그러졌다. 갑옷이 아니라 살에 맞는다면, 그대로 살이 잘려나갔다.
라덴은 입을 반쯤 걸리고서 청아의 폭력을 보았다. 공격을 거듭할수록 청아의 발을 예리하고 빠르며 강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걷어차는 정도였지만, 청아의 다리가 점점 빨라질수록 휘두르는 것은 다리가 아니라 칼날이 되었다. 휘두르는 궤적에 걸린 팔이 그대로 잘려져 위로 솟구친다. 재수 없게 허리가 걸린다면 그대로 허리가 잘린다. 피는 잔뜩 튀었지만 절단면은 희뿌연 색으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체력이 회복되고 있어.’
라덴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유혈 특성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주변에 피가 많이 흐를수록 라덴의 체력 속도는 계속해서 올라간다. 절반 이하로 떨어졌던 체력은 어느새 2/3이 넘게 차있었다. 그리고 그 속도는 계속해서 오른다.
“와, 이거 사기네.”
라덴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발할라 안에서 포션이나 회복 마법을 겪어 본 적은 아직 없었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런 것들과 비교해도 유혈 특성이 크게 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체력이 회복되면서 박살난 뼈가 저절로 맞춰지는 것이 느껴졌다. 감각이 없던 다리가 조금씩 저릿거리더니 욱신거리는 통증이 엷어진다. 라덴은 발끝을 살짝 움직여 보았다. 움직였다.
“아, 이거 물어보는 것을 잊었네.”
노도처럼 몰아치던 청아의 맹공이 멈추었다. 그녀는 호흡 하나 흩트리지 않았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싸늘하게 식은 청아의 눈동자가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을 보았다. 살아남은 것은 셋이었다. 칼잡이와, 망치와, 힐러.
“..이런.. 미친..”
칼잡이가 말을 더듬었다. 설마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아는 피에 흠뻑 젖은 신발을 털면서 말을 이었다.
“너희 뭐냐? 뭔데 우리 막내 괴롭히고 있어?”
“이.. 이..”
칼잡이의 눈이 홱 돌았다. 놈은 가까운 곳에 주저앉아 있는 라덴의 멱살을 잡아 들었다. 청아는 움찔 눈썹을 꿈틀면서 놈이 하는 꼴을 보았다. 칼잡이는 라덴의 목에 칼을 바짝 들이 밀면서 외쳤다.
“가, 가까이 오지 마!”
“..너 뭐하냐?”
청아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물었다. 졸지에 인질이 된 라덴도 어이가 없어서 눈을 돌려 칼잡이를 보았다.
“저기, 일단 진정 좀 하시지.”
목에 붙은 칼이 피부를 베었다. 시큰한 통증과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라덴은 별 긴장 없는 얼굴로 칼잡이를 바라보았다.
“이거 존나 의미 없다는 것 알잖아요. 너무 몰입한 것 아냐? 이거 게임이야, 게임. 여기서 댁이 내 목 따봤자 나는 사망패널티 받고서 사흘 뒤에 다시 접속할 수 있는데.”
라덴은 침착한 목소리로 그렇게 설명했다. 그 말에 칼잡이의 얼굴이 멍해졌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안이라고 해서 PK가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보스 몬스터를 잡던 도중에 PK를 당한다면 죽쒀서 개 준 꼴이 되니까.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니다. 칼잡이 역시 그것을 깨닫고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여기서 칼잡이가 라덴을 죽여 보았자, 그는 잠시 뒤에 청아한테 맞아 죽을 것이다.
“이런.. 이런.. 가, 가까이 오지 마..!”
그럼에도 칼잡이는 라덴을 놓지 않았다. 일단 시간이라도 끌려는 것일까. 라덴은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체력을 확인했다. 체력은 이미 거의 회복되어 있었고, 다리에는 감각이 그대로 있었다.
“어휴.”
짧게 한숨을 쉰 라덴의 몸이 움직였다. 축 늘어트리고 있던 팔이 대뜸 위로 솟구치더니, 목에 대고 있던 칼을 처냈다. 그 자리에서 팽그르 돈 라덴은 꽉 쥔 주먹을 칼잡이의 명치를 향해 쳐냈다. 파쇄권이었다. 칼잡이는 헉하는 소리를 내면서 비틀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놈이 물러서는 즉시 라덴은 추격에 나섰다. 크게 상체를 젖히며 휘두른 철산포가 남자의 면상 한 가운데에 처박혔다.
코가 주저앉는 느낌이 확실했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땅을 뒹굴었다. 해머를 든 놈이 급히 반격에 나섰지만, 놈이 해머를 휘두르기도 전에 청아가 달려들었다. 콰앙! 청아가 크게 휘두른 발이 놈의 어깨를 갈겼다. 어깨를 감싸고 있던 두꺼운 갑옷이 박살났다.
청아가 그 거구를 상대하는 동안, 라덴은 땅을 뒹굴고 있는 칼잡이를 쫒았다. 놈이 일어서기 전에 일단 체중을 실어 발을 걷어 찼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들썩거렸다.
라덴은 침착하게 공격을 연계했다. 우선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다. 이쪽의 데미지가 부족한 이상, 그 데미지의 부재를 매우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공격이 중요하다. 단순 타격보다는 상대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가장 유효한 것은 관절기다. 라덴은 버둥거리는 놈의 팔을 양 손으로 붙잡았다. 관절기는 백설에게 많이 당해 보았고, 백설은 친절하게도 라덴에게 관절기의 정수에 대해 알려 주었다.
‘관절기는 존나 쉬워. 이보다 쉽게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은 없을 걸. 그리고 별 힘도 안 필요하고. 관절기의 기본이 뭔지 알아? 존나 간단해. 역방향으로 꺾는 거야.’
이렇게. 칼잡이의 왼팔 관절이 우두둑 꺾였다. 놈의 입이 쩍 벌어졌다.
‘플레이어는 통증을 심하게 느끼지는 않지만, 관절이 꺾였을 때의 무력함은 똑같이 느끼지. 관절이 꺾이면 행동이 굳어. 잘만 잡는다면 상대의 움직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힘들고. 관절이 부러졌는데 어떻게 힘을 줘?’
라덴은 꺾은 관절을 더욱 크게 비틀었다. 칼잡이의 팔이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완전히 젖혀졌다. 푸들거리는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루키 밟기치고는 너무 과하잖아.”
라덴의 발이 칼잡이의 정강이를 강하게 걷어 찼다. 순간 힘이 풀린 다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아 하니 댁 레벨은 20 웃돌 것 같고, 다른 놈들도 그런 수준인 것 같은데. 한 명도 아니고 열 명이 우루루 몰려와서 나를 조지려고 해? 이건 아무리 봐도 평범한 루키 밟기가 아닌데. 뭐야? 어느 길드에서 사주한 거야?”
“이 새끼..!”
“거 의리 따질 필요는 그리 없을 것 같은데. 그냥 툭 까놓고 말합시다. 될 성 부른 떡잎을 챙기고 싶은 길드가 나 괴롭히라고 사주한 거야? 아니면 나 고깝게 보는 길드가 사주한 거야?”
당장 라덴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라덴의 PVP 영상을 보고서 어떤 길드가 라덴을 영입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서 다른 길드에게 라덴에게 압박을 넣으라고 사주를 넣었다.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라면 영입하는 길드원에게 빚을 지워 둘 수도 있으니까.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넌 이 일을 후회할 거야. 후회할 거라고..!”
“댁들이 누군지는 관심 없고. 누가 시켰냐니까?”
“말할 것 같냐..!”
“아, 그래?”
라덴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죽여야지.”
라덴의 발이 땅에 떨어져 있던 검을 가볍게 걷어 찼다. 공중에 떠오른 검이 라덴의 손에 잡혔다. 칼잡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먹보다는 칼이 죽이기는 편해서.”
지금 당장은. 라덴은 변명처럼 그렇게 덧붙였다. 라덴이 휘두른 검이 남자의 목에 박혔다. 일격에 베어낼 수는 없었다. 스탯과 레벨 차이 때문이다. 라덴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검을 도끼처럼 몇 번이고 내리 찍었다.
그리고 남자의 목이 베어졌다. 목이 베어진 즉시, 남자의 몸이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라덴의 손에 쥐어져 있던 남자의 검이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청아 쪽을 보았다. 이미 그쪽은 상황 정리가 모조리 끝나 있었다. 라덴은 자신을 빤히 보는 청아를 향해 쓰게 웃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형.”
“너 뭔 죄 지었냐? 왜 이런 새끼들이 너를 노리는 거야?”
“나도 몰라요.”
라덴은 그렇게 대답하고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검을 하나 들어올렸다. 방금 라덴이 죽였던 칼잡이가 사망 패널티로 드랍했던 단검이다.
[이빨 길드의 단검.] 이빨 길드원에게 지급 되는 제작 단검이다.아이템을 확인하고서, 라덴의 눈썹이 찡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