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6
016/ 청룡무술관-3
‘왜 알케나가 여기에 있는 거야?’
라덴은 입을 쩍 벌리고서 알케나를 올려보았다. 1년 전, 발할라가 오픈되면서 판타지아의 상위 랭커들은 대거 발할라로 이주해 왔다. 그리고 그들은 판타지아에서 그대로 끌고 온 세력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이 발할라의 랭커로 군림했다.
하지만 알케나는 그 대대적인 이주에서 홀로 떨어져 발할라로 넘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그것은 인터넷 상에서 상당한 이슈가 되었다. 띄엄띄엄이나마 하고 있던 방송활동도 확 접어버렸고, 판타지아 안에서도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이다.
‘그대로 접은 줄 알았는데.’
알케나와 만난 적은 몇 번 있다. 투기장 안에서였다. 당시 중이병에 걸려 있던 라덴은 투기장에서 활동할 때마다 다른 종류의 가면을 쓰곤 했었고, 알케나는 자신의 길드를 상징하는 문양을 박은 투구를 쓰고서 활동했었다.
‘알케나는 내 얼굴을 몰라.’
하지만 라덴은 알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가상현실게임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알케나의 맨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는 사이인가?”
청성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말에 라덴은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알케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라덴을 내려 보았다.
‘발할라를 하고 있었나? 하지만 아무 얘기도 못 들었는데..’
“..그냥.. 좀. 네. 다른 게임에서 봤었습니다.”
“아아, 그렇군. 그 이야기는 나도 들었었지. 하지만 너무 내색하지는 말거라. 저 아이는 다른 게임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실제로 알케나의 얼굴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라덴은 창백하게 질려 있는 알케나의 얼굴을 힐긋 거리면서 머리를 숙이려다가, 옆에 백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 목을 꼿꼿이 세웠다.
“..미안합니다. 그냥, 놀라서.”
“..아뇨. 괜찮아요.”
대번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백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알케나를 빤히 보았다.
“예쁘네. 수제자라더니, 얼굴로 뽑았나 봐?”
“저 놈은 바보 천치니까 하는 말은 귀에 담지 말거라.”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뇨, 할배.”
“너야 말로 할 말과 하지 못할 말은 언제쯤 구분할 생각이냐?”
청성은 그렇게 받아 치면서 알케나에게 앉으라 권했다. 알케나는 머리를 살짝 숙이고서 청성 쪽으로 가서 앉았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자리는 라덴의 맞은 편이 되었다.
“이름을 알고 있다면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겠구나.”
“나는 몰라.”
백설이 빙글거리는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그 말에 청성은 긴 수염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다. 레벨도 그리 높지 않아. 이제 겨우 10 근처를 맴돌고 있지.”
“그건 얘랑 똑같네.”
백설은 라덴을 힐긋 보면서 중얼거렸다. 라덴은 청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알케나의 얼굴을 힐긋거렸다. 발할라를 비롯한 온라인 가상현실게임은 외모를 바꿀 수가 없다. 가상현실 상의 범죄를 막기 위해서다.
‘알케나가 발할라를 시작했다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을 텐데. 왜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던 거지?’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라덴은 조심스러운 얼굴을 하고서 목소리를 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었다.
“무슨?”
“그러니까.. 알케나.. 님은 아주 유명한 플레이어인데요. 알케나님이 발할라를 시작했다는 말은 듣지 못해서..”
“가면.”
알케나의 입이 열렸다. 그녀는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리고서 말을 이었다.
“..거리를 나갈 때에는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청룡무술관 안에서도 가면을 쓰고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군. 알케나의 말을 듣고서 라덴은 납득했다. 얼굴을 바꿀 수 없는 가상현실이다 보니, 가면이나 투구를 쓰면서 얼굴을 가리는 사람은 제법 많다. 우스갯소리로 미국 대통령도 발할라를 한다고들 말한다. 거리를 걷거나, 사냥터를 돌아다니거나. 대뜸 맞은편에서 미국 대통령과 마주친다면 난리가 날 테니까.
“..한 달 전쯤에 저 아이가 청룡무술관으로 찾아왔었지. 검을 배우고 싶다고. 시험을 보았는데 잘 하더구나. 자질이 좋은 아이가 들어왔다고 사범들이 말하길래 직접 검을 보았다. 그리고 직접 가르쳐야겠다고 결정했지.”
“플레이어 두고서 자질을 논하는 것만큼 우스운 것도 없지. 레벨 빨, 스탯 빨, 장비 빨, 스킬 빨. 그런게 넘치는 놈들이니까.”
“순수하게 자질만을 보았다.”
“내 제자도 그래. 순수하게 자질만을 보았지. 솔직히 말하자면 유의, 청아, 무풍, 호량.. 이 넷 중에서 자질만 따지고 보면 이 새끼가 가장 나아.”
“상당히 높게 쳐주는 구나.”
“그럴 만한 놈이니까. 할배의 제자는 어떻지?”
그 말에 청성은 잠깐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찻잔을 어루만지던 청성의 입이 열렸다.
“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한다면, 서량제일검이라는 과분한 이름의 주인은 이 아이가 될 것이다.”
“검왕과 비교하면?”
“인간과 괴물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청성은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둘의 대화를 듣고서 라덴은 알케나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알케나와는 몇 번 싸워봤지. 확실히 잘하기는 했어. 실력은 오히려 바이스의 길드장이었던 가람보다 나았어. 적어도 한국 랭커 칼잡이 중에서 알케나만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래봤자 내가 이겼지만. 라덴은 입맛을 쩝 다시면서 찻잔을 들었다. 청성은 빙그레 웃는 얼굴로 라덴을 보았다.
“네 제자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구나.”
“한 달 전에 제자로 받았어. 이름은 라덴이고.”
“..라덴?”
그 말에 알케나가 반응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혹시.. 판타지아의..”
“아닙니다.”
라덴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서 대답했다. 맞다고 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알케나가 괜히 인터넷으로 떠들어 댄다면 단번에 이슈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귀찮은 꼬리들이 덕지덕지 붙을 것이다. 언제까지고 숨길 생각은 아니었지만, 당장은 밝힐 때가 아니다.
‘그리고 쪽팔리잖아.’
캐삭빵 접고 쿨하게 게임을 접었는데.
“라덴. 유명한 이름이잖아요? 저도 한국인이라서 라덴 팬이었어요. 그래서 발할라 아이디도 라덴으로 했고.”
“..아, 네.”
라덴의 부정에 알케나는 머리를 끄덕거리며 납득했다. 하긴, 얼굴도 모르는 사이니까. 게다가 당장 판타지아를 즐기는 플레이어 중에서, 라덴이라는 이름을 쓰는 놈은 못해도 몇 백 명은 될 것이다.
“이름 말고, 그래서 뭐. 이 정도면 서로 소개는 끝났잖아. 할배는 뭘 하고 싶은 거야?”
“레벨도 비슷하니 서로 알아둬서 나쁠 것은 없다 생각했을 뿐이다.”
“뭔 맞선 주선하는 것도 아니고. 쟤들끼리 눈 맞아서 쿵짝이라도 하라는 거야?”
백설이 이죽거리는 말에 알케나의 얼굴이 붉어졌다. 라덴도 괜히 민망해서 머리를 옆으로 돌려 헛기침을 뱉었다. 백설은 낄낄 웃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별 할 말 없으면 돌아가지.”
“너는 남아라.”
청성이 말했다. 그 말에 백설의 표정이 멈칫 굳었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서 청성의 얼굴을 노려 보았다.
“왜?”
“할 말이 있으니까.”
청성이 하는 말에 백설은 허허 웃었다. 털썩 자리에 앉은 백설은 눈에 잔뜩 힘을 주고서 청성을 노려 보았다.
“..이 늙은이가. 뜬금없이 서로 제자를 소개하자고 운운하더니.. 그냥 나 데리고서 꼰대질 하려고 한 거였구만?”
“제자를 소개시켜 주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야. 겸사겸사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고.”
“나눠야 할 이야기는 어제 무로 무술관 회의에서 다 했던 것 같은데.”
“네가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었느냐? 개 짖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청성은 그렇게 대답하고서 알케나를 힐긋 보았다.
“너는 저 아이와 함께 거리라도 산책하고 오거라.”
“..스승님.”
“다녀 오거라.”
청성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고했다. 그 말에 알케나는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백설은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청성을 노려 보았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않았다. 청성이 개인적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백설은 욕설을 내뱉으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라덴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백설과 청성을 번갈아 보았다.
“뭐해? 쟤 데리고 나가지 않고.”
“..예.”
“저녁 전에는 끝날 것이니, 노을이 지면 돌아오거라.”
“너는 그냥 노을 지면 백호로 돌아가. 나도 그쯤 갈 테니까.”
백설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 말에 라덴은 머리를 끄덕거리고서 몸을 일으켰다.
“나가죠.”
알케나가 먼저 움직였다. 라덴의 곁을 지나친 알케나는 장지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갔다. 라덴도 조금 늦게 알케나를 따라 방 밖으로 나왔다. 마루로 나온 알케나는 곧바로 인벤토리에서 가면을 꺼내 얼굴에 썼다. 그녀가 쓰는 가면은 새하얀 색의 반 가면이었다.
“..가면 멋있네요.”
“감사합니다.”
조금도 감사가 느껴지지 않은 대답을 하고서, 알케나는 마루를 내려갔다. 라덴은 뻘쭘함에 압사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알케나의 뒤를 따랐다.
“..어디 갈까요?”
“일단 밖으로 나가죠.”
알케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연무장을 가로질렀다. 라덴도 걷는 속도를 빨리 하여 알케나의 뒤를 따랐다. 알케나는 아직 박살난 모습 그대로인 청룡무술관의 대문을 보고서 움찔 굳었고, 라덴은 모른 척 휘파람을 불었다.
“..저기. 저랑 돌아다니는 것이 싫으시면, 그냥 따로 다녀도 상관은 없어요.”
“아닙니다. 스승님이 시킨 것이니, 따를 생각입니다.”
의외로 고집있네. 라덴은 그런 생각을 감추고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결국 둘은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둔 상태로 서량의 거리를 걸었다. 사실 같은 방향으로 걷기만 할 뿐이지, 대화는 거의 없었다.
“..저기. 판타지아 얘기 하면 기분 나쁘시겠죠?”
“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그렇게 말은 걸었지만, 라덴의 말은 알케나의 철벽같은 가드에 막혀 튕겨 버렸다. 결국 라덴은 얌전히 입술을 다물었다.
졸지에 라덴과 알케나는 서량의 거리 곳곳을 하릴없이 걷게 되었다. 시간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느리게 흘렀고, 라덴은 입술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알케나를 버리고 다른 곳을 가볼까 싶었지만, 스승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알케나의 태도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딱히 갈 곳도 없었고, 보고 싶은 상점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발 길 가는 대로 걸었고, 자연스럽게 평소 걷던 길로 들어갔다. 백호무술관으로 향하는 뒷골목 쪽이다.
“..저기. 여기는 너무 인적이 없지 않나요?”
곁에서 걷던 알케나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 생각없이 걷던 라덴은 아차싶어서 머리를 돌렸다.
“네? 아, 그게.. 제가 별 생각이 있어서 여기로 온 건 아니고요. 그냥 이쪽이 백호무술관으로 가는 길이라서.. 맨날 이렇게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아, 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알케나는 누가 봐도 알아 차릴 정도로 경계를 하고 있었다. 라덴은 난감한 얼굴을 하고서 뺨을 긁적거렸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의 목소리가 경고를 발했다. 라덴은 움찔 놀라서 뒤를 돌아 보았다. 골목의 너머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걸어나왔다.
[다수의 살기에 노출되었습니다!]시스템이 다시 경고했다. 라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나, 둘.. 다섯. 다섯의 사람들이 라덴을 보고 있었다.
‘뒤에도.’
머리를 뒤로 돌렸다. 마찬가지로 다섯 명이 그쪽에 서있었다. 라덴은 혀를 차면서 발을 끌었다. 꼴을 보니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사람 잘 못 본 것 아닙니까?”
우선, 라덴은 그렇게 물었다. 곁에 선 알케나가 경직된 얼굴을 하고서 앞과 뒤를 막은 사람들을 보았다. NPC가 아닌 플레이어들이다.
“백호무술관의 제자. 맞지?”
말을 건 것은 앞에 선 이들 중 가운데에 선 놈이었다. 매끈하게 생긴 백인이었다.
“..씨발.”
라덴은 결국 욕설을 내뱉었다. 어제 처맞은 놈들이 올린 동영상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거기서 날파리가 꼬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