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81
ⓒ 목마
키아미르-2
의외로 라바로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에 대해서는 딱히 라덴이 직접 나서서 수소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길을 걷던 도중, 우연찮게 들어버렸다. ‘라바로크’라는 이름을 가진 NPC에 대해서.
‘본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단순한 동명이인인 것이 아닐까. 사실 그렇게 생각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라덴은 표정을 가다듬고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세한 정황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키아미르 역시 제노미아와 크게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곳에도 ‘황혼’은 ‘황혼교’로서 존재하고 있었고, 도시의 주민들에게 크게 나쁜 이미지는 주고 있지 않은 듯 했다.
라바로크는 그 황혼교의 주교 중 한 명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것은 우연이었다. 정보 수집을 위한 방법을 탐색하던 도중이었고, 술집 같은 곳에 들어가 볼지 아니면 시스템 하우스를 탐색해 볼 지에 대해 고민하던 중, 우연히 지나가던 NPC가 하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 새로운 주교 선출식에서 라바로크가 주교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제노미아에서는 대주교에 황혼의 배신자였는데. 이번에는 황혼의 주교야’
물론, 이번에 주교가 된 라바로크가 황혼의 숙적 퀘스트에서 만나야하는 NPC인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동명이인이라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니까.
문제는 동명이인인지 본인인지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굳이 방법을 찾자면 직접 물어보는 것뿐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특히나 주교급이라면 감히 접근하는 것도 힘들 테고.
‘…어쩐다. 일단 접촉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라바로크라는 이름은 들었지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라덴은 다시 한 번, 발할라 퀘스트의 불친절함에 탄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의 NPC 탐색 퀘스트라면, 그 NPC의 신상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알려준다면 좀 좋을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 안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지.’
라덴은 한숨을 내쉬면서 걷기 시작했다. 여기 가만히 죽치고 있어봐야 라바로크와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또 몸으로 구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노미아처럼 되면 어쩔 수 없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그는 어색함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황혼 신전 입구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신전의 앞에서는 따로 검문을 하지 않았다. 라덴은 언제나 입던 갑옷과 망토를 벗고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NPC들과 같은 옷을 입은 덕분일까. 아니, 그보다는 신전에 들어오는 사람 하나하나를 굳이 검문하지는 않는 것이겠지.
‘여기도 다른 신의 신전인 걸까.’
제노미아의 경우를 떠올리면서 라덴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제노미아에는 플레이어가 없다. 이 도시 역시, 라덴이 최초로 발견한 도시인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주변에 보이는 이들은 모두가 NPC라는 말이다. 라덴은 그들의 곁에 슬쩍 붙었다.
“젊은이는 무슨 일로 왔는가”
곁에서 함께 걷던 노인이 라덴에게 시선을 주면서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라덴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음, 최근에 여러 가지로 심란한 일이 있어서요.”
“그럴 때야말로 신께 기도를 올려야지.”
“그러는 할아버지께서는”
“이번에 주교가 된 라바로크님에게 축하를 드리러 왔다네.”
“라바로크님에게”
라덴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신전으로 들어 온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지금부터 라바로크를 어떻게 만나느냐인데. 의도치않게 라바로크와의 연결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저… 괜찮다면, 저도 라바로크님에게 축하를 드려도 될까요”
“응 아. 물론이지. 축하는 여럿이 해 줄수록 좋은 것이니까.”
노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별 의심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라덴은 그런 노인의 표정을 믿지는 않았다. 제노미아의 감옥에서 거하게 뒤통수를 맞았던 것을 잊지 않은 것이다.
노인은 휘적휘적 걸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라덴은 경계심을 얕게 묻어두고서 노인의 뒤를 따랐다. 노인은 닫힌 문 앞에 서서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누구십니까”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라바로크님. 플뢰르 시계방의 늙은이올시다.”
“아!”
놀란 탄성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 선 것은, 얇은 안경을 쓴 청년이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노인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데벨님! 제가 찾아갔어야 하는데…”
“하하, 아닙니다. 의뢰하신 물건이 다 만들어지기도 했고, 이번에 주교가 되셨으니… 축하도 드릴 겸 해서 직접 온 것 뿐입니다.”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노인이 꺼낸 것은 잘 세공된 회중시계였다. 노인은 라바로크를 향해 회중시계를 두 손으로 건네면서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주교가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라바로크가 시계를 받으면서 환히 웃었다. 곧, 그는 곁에 있던 라덴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머리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이쪽 분은 누구신지…”
“아, 오다가 만난 젊은이입니다. 요즘 심란한 일이 많다 하여 신전을 찾았다는 군요.”
“아아… 그렇군요.”
“라바로크님이 주교가 된 것에 축하를 드리고 싶다 하여 데리고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라덴은 라바로크를 향해 살짝 머리를 숙이면서 인사를 전했다. 라바로크의 표정에는 의심이 묻어 나오지 않았다. 그는 환히 웃으면서 라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에 심란한 일이 있다 하시는데, 괜찮다면 저에게 말해주시겠습니까”
“남이 들으면 곤란한 일이라…”
라덴은 목소리를 내리 깔면서 말했다. 그 말에 노인이 냉큼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런! 이 늙은이가 주책 맞게 남아 있었군. 이 늙은이는 그만 가 보겠습니다. 아, 라바로크님. 혹시 시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시계방을 찾아 주시지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이 멀어져간다. 라바로크는 회중시계를 품 안에 넣으면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그럼… 방 안에서”
“그럼 저야 좋죠.”
라덴은 라바로크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화려한 방은 아니었다. 침대와 장롱, 책상, 의자, 책장. 필요한 최소한의 가구가 있었고, 침대 위의 이불은 잘 개어져 있었다.
“그럼, 무슨 일로…”
“플레이어.”
우선, 라덴은 그렇게 직구를 던졌다. 눈앞에 있는 라바로크가 황혼의 숙적 퀘스트가 가리키는 라바로크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확인할 방법이라고는 이렇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뿐이다. 물론, 위험부담은 크다. 이곳은 황혼의 신전. 그 본거지니까.
“플레… 이어”
라바로크의 얼굴이 하얗게 변한다. 라덴은 슬며시 발을 뒤로 끌어 문을 막아 섰다. 그리고 언제고 라바로크에게 달려나가, 그의 입을 막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가 대뜸 고함이라도 지르면 곤란해 질 테니까.
“플레이어라니… 갑자기 무슨…”
“난 플레이어입니다.”
라덴이 빠르게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덴은 인벤토리에 등록해 두었던 자신의 주력 장비로 갈아 입었다. 라바로크는 삽시간에 모습이 변한 라덴을 보고서 움찔 눈을 떨었다.
“제노미아에서 황혼을 쫒아낸 장본인이죠. 그 퀘스트에서 이어진 황혼의 숙적 퀘스트가 가리키는 NPC의 이름은 라바로크. …당신 아닙니까”
“…으으음…”
라덴의 말이 끝나는 동안 라바로크의 표정은 다채롭게 변했다. 라덴이 입술을 다물었을 때, 라바로크는 앓는 소리를 내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그렇군요. 당신이 퀘스트의 수행자… 그래. 차라리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인 것일까…”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라바로크는 손을 들어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고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맞습니다. 제가 황혼의 숙적 퀘스트의 관련 NPC입니다.”
일단 정답은 찾았다. 이번에 새로 주교가 된 라바로크가, 황혼의 숙적 퀘스트의 관련 NPC인 것이다. 라덴은 살짝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물었다.
“…퀘스트 내용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놈의 퀘스트는 워낙에 불친절해서.”
“어디서부터 해야 합니까”
“일단 이 도시의 상황부터.”
“이미 황혼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지요.”
라바로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제노미아와 키아미르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황혼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제노미아에는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았어요. 제노미아를 관장하는 신인 아하베스를 봉인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아하베스와 관련된 주교들은 죽이지 않고 내버려 두었지요.”
그것에 대해서는 라덴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제노미아를 해방하라. 까다로운 퀘스트이기는 했지만, 내용에 비해서는 오히려 진행이 쉬웠다. 진행 도중에 황혼은 오히려 제노미아를 떠나주었고, 덕분에 라덴은 은검을 비롯한 암검의 대원 몇몇과 싸우는 것으로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시 해방. 이것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황혼이 떠나는 것으로 제노미아 영주와 유지들의 세뇌는 자연스럽게 해제되었고, 그 후에는 영주와 유지들이 자멸하다 시피 하여 라덴으로서는 손쉽게 도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키아미르는 다릅니다. 이곳은 이미… 완전히 황혼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요. 키아미르의 영주와 유지들은 황혼에게 세뇌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황혼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지요. 오히려 이쪽이 더 까다로울 겁니다.”
라덴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제노미아와는 상황이 다르다. 라덴은 그것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황혼만 치우면 어떻게든 됐던 제노미아와는 다르게, 키아미르는 황혼을 치운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퀘스트는 대체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저를 데리고 도망쳐 주세요.”
라덴의 질문에 라바로크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잠깐. 당신을 데리고 도망쳐 달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황혼에 남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아 열심히 하다 보니 주교까지 되어버렸지만… 이대로 남아 있다가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게 될 겁니다.”
라바로크가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긴장한 것일가. 그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면서 말을 이었다.
“키아미르를 해방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를 데리고 도망쳐서, 제노미아로 돌아가 주세요.”
“자, 잠깐. 당신을 제노미아로 데리고 가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요”
“황혼에 소속된 모두가 황혼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땀을 닦던 손수건을 다시 품 안에 넣으면서, 라바로크가 힘을 주어 말했다.
“어쩔 수 없이 황혼에 남아있는 이들도 많습니다. 저만 해도 몇 명을 알고 있지요. 제가 이곳을 탈출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그들 역시 기회를 봐서 제노미아로 떠날 겁니다.”
“…어… 음… 까놓고 말해서, 그들이 제노미아로 합류한다면 도움이 될까요.”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요! 당신… 그러니까… 아직 이름도 듣지 못했는데…”
“라덴이요.”
“그래, 라덴님. 라덴님은 황혼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 뭐냐… 고대 신을 숭배하는 단체라는 것 정도…”
“그것밖에 모르시지 않습니까 황혼은 비밀이 많은 단체입니다. 저 역시 황혼의 일부밖에 알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지역의 동지들이 합류한다면, 라덴님은 황혼의 비밀에 근접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게 끝”
“그게 이 퀘스트의 목적입니다.”
여전히 떨떠름한 라덴의 머릿속에 시스템의 알림이 울렸다.
[황혼의 숙적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황혼의 숙적.
키아미르의 황혼 주교, 라바로크와 만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라바로크는 황혼의 사상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으며, 당신의 도움을 받아 황혼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라바로크와 함께 키아미르를 떠나, 황혼의 손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십시오.
키아미르-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