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82
ⓒ 목마
키아미르-3
‘…이건 또 새로운 퀘스트네.’
라덴은 갱신된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하고서 쩝 입맛을 다셨다. 여태까지 라덴이 받은 퀘스트의 대부분은 이런 내용이었다.
누구를 죽여라.
어떤 몬스터를 잡아라.
어느 NPC를 만나라.
사실 이것이 보편적인 퀘스트의 내용들이다. 제노미아 도시 해방이라는 퀘스트는 조금 까다롭기는 했지만, 그것의 실상은 단순히 제노미아를 장악하던 황혼을 쫒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쫒아내는 방법은, 황혼의 주력 멤버들을 죽이는 것이었고.
하지만 이번 퀘스트는 다르다. 이번 퀘스트에서 라덴이 중점으로 둬야 할 것은, 퀘스트의 메인 NPC인 라바로크의 ‘보호’다.
라바로크를 죽게 해서는 안 된다. 라바로크의 안전을 챙기면서, 라바로크와 함께 키아미르를 떠나 제노미아에 도착해야 한다. 그것이 퀘스트의 목적이다.
“…어려운데…”
오히려 이런 퀘스트가 더욱 어렵다. 라덴은 미간을 찡그리면서 신음을 흘렸다. 차라리 누군가를 죽이는 퀘스트라면 크게 문제는 없다.
라덴은 플레이어다. 죽음이 달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면역은 가지고 있다. 사흘간의 접속 패널티. 장비 아이템 랜덤 드랍. 뼈 아픈 패널티이기는 하지만,
죽음의 대가라고 하면 그리 가혹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라덴이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NPC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NPC는 죽으면 끝이다. 사흘간의 패널티 장비의 랜덤 드랍 그런 것 없다. 죽으면, 그냥 죽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퀘스트가 어렵다. 황혼이 점령한 이 도시에서, 라바로크를 데리고 빠져나가야 한다. 라바로크가 단순한 NPC인 것도 아니다. 이번에 새로이 자리에 오른 황혼의 주교. 이 도시, 그리고 황혼에게서 상당한 위치를 가진 인물이란 말이다.
‘그런 놈을 데리고 이 도시를 빠져나가야 해.’
단순히 빠져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제노미아까지 라바로크를 안전하게 옮겨야 하는 것이다.
키아미르에서 제노미아까지는 상당히 멀다. 라덴도 제노미아를 떠나 키아미르에 도착하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도중에 길을 잃고서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가장 빠른 길을 잡고서 달려도 일주일은 걸릴 것이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라덴 혼자서 움직였을 때의 이야기다. 라바로크까지 데리고 간다면 라덴은 플레이어다. 도중에 어쩔 수 없이 로그아웃을 해야 한단 말이다.
‘수면 시간을 한계까지 줄여도… 네 시간은 로그아웃을 해야 해.’
그 네 시간 동안 라바로크는 무방비로 방치된다. 네 시간. 사람 하나 죽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좆같은 퀘스트네.”
생각의 끝에서 라덴은 그렇게 감상을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라덴 혼자서 제노미아를 빠져나가는 것이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자면, 텔레포트 링을 사용한던가. 이미 키아미르의 좌표는 등록되었으니, 이곳에서 제노미아까지 이동하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라바로크와 함께라면 불가능하다.
“…당장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죠”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고서 물었다. 그 말에 라바로크가 눈을 끔벅거리다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죠.”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나도 준비가 필요하니까.”
“무슨 준비 말입니까”
“나 혼자서 당신을 빼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도움을 청해야죠.”
“도움 누구에게요”
“친구.”
라덴은 친구목록을 열었다.
“제노미아로 와 달라고”
새턴은 라덴에게 온 귓속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막 투기장을 끝내고 나온 시점에서 온 귓속말이었다.
[응. 내가 지금 좀 귀찮은 퀘스트에 휘말렸거든.] “그래서 나보고 도와달라고”[왜 뭐 바쁜 일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닌데. 내가 너한테 투기장에서 상대 좀 해달라고 할 때마다, 너 바쁘다는 핑계 대고서 내 부탁 무시했었잖아.”
[…야! 그건… 어… 진짜로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랬던 거고…] “열 번.”
새턴이 기다렸다는 듯이 요구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자고 할 때, 앞으로 열 번 나랑 어울려 줘. 그러면 나도 널 도와주지.”
[…좋아. 그런데, 야. 내가 진짜로 바쁜 일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어. 그건 이해 좀 해 줘.]
“알았어. 그래서, 제노미아로 가면 되는 거야”
[아니… 음… 제노미아에서 다시 이동을 좀 해야 하거든 아마 제노미아에서 넉넉히 일주일이면 될 거야.]
“…지금 나보고 일주일 동안 그러라고”
[어… 왕복해야 되니까 이주일은 잡아야겠네.]
“열 번으로는 택도 없겠네. 삼십 번 해.”
[콜.]
결국 그렇게 말을 받는다.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다시 친구목록을 훑어보았다.
라덴이 제노미아의 영주가 되고서, 라덴은 제노미아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해금했다. 덕분에 다른 도시에서 제노미아까지 텔레포트가 가능해졌고, 그로 인해 제노미아는 플레이어의 유입을 받아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제노미아에서 키아미르까지 오는 것에 넉넉잡아서 일주일.’
새턴도 레벨이 110이 넘는 상위 랭커였지만, 퀘스트의 내용을 보니 새턴의 도움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레이크는 다른 지역을 공략하고 있고…’
랭킹 1위인 레이크와 파라곤의 지원을 받는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까지 바랄 정도로 라덴은 양심이 없지 않았다.
“알케나님”
[아, 네!]
부른 즉시 대답이 튀어 나온다. 그 즉발적인 반응에 되려 라덴이 놀라 움찔해 버렸다.
[무슨 일이세요] “어…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어서…”[라덴님의 부탁이라면 들어 드려야죠!]
알케나가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서량에서 알케나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알케나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서 말수가 적고 감정을 그리 드러내지 않았었다.
‘많이 변했다니까.’
하긴, 일 년이 지났으니 변할 만도 하지. 라덴은 입맛을 다시면서 알케나에게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알겠어요.]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알케나가 대답했다.
[라덴님이 곤란한 상황이라면 제가 도와드려야죠. 그럼, 그… 새턴님과 함께 출발하면 될까요] “아, 잠깐만요. 일단 다른 사람들한테도 물어보고…”라덴은 빠르게 친구 목록을 훑어 보았다. 라덴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루아노스와 루벡이었고, 혹시나 싶어서 연락을 해 보았지만-
[진짜 미안한데, 나도 지금 던전 탐색하느라 바쁘거든.] “그러면 어쩔 수 없죠.”루아노스에게는 거절을 들었다. 불칸과의 동맹이 깨진 후, 루아노스와 그녀의 길드인 흑접은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블랙 벨트가 해금되고 미공개 지역이 공개된 지금, 다른 상위 길드들은 미공개 지역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틈에 시즌 던전 하나를 발견하고 공략할 생각인 모양이다.
[어… 나도 안 되겠는데. 나도 내 개인 방송에 주력해야 할 때라서.] “알았어요.”루벡도 거절했다.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루벡은 한국 랭킹 1위이고, 버추얼 피버의 간판 BJ인만큼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알케나와 새턴. 둘로는 아무래도 불안한데…’
제노미아에서 키아미르까지 오는 루트는 보내 주었다. 도중에 출현하는 몬스터도 알케나와 새턴의 레벨이라면 그리 까다롭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새턴은 마법사고, 알케나는 근접 딜러다. 파티의 안정성도 그렇고, 이곳까지 도착한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
잠깐 고민하던 라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쩍하고 스치고 지나갔다. 라덴은 급히 친구목록을 확인했다.
있었다.
레벨도 높고, 실력도 검증되었으며, 나름대로 안정적인 파티 멤버들이.
“아아아ㅡ 라덴 보고 싶다ㅡ”
“…큰 소리로 말하지 마, 등신아!”
땅바닥에 주저 앉아 큰소리로 외치는 해로이를 보면서 로사나가 질색하는 얼굴로 쏘아 붙였다. 하지만 해로이는 여동생의 질책과 멸시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라덴 보고 싶다고!”
“그니까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고!”
어째서 부끄러움은 내 몫인 것일까. 로사나는 깊은 탄식을 흘리면서 한심한 오빠를 노려보았다.
“에이, 누님. 너무 그렇지 마십쇼. 생각해 보면 라덴 형님도 너무한 것 아님까!”
곁에서 쉬고 있던 라바가 해로이에게 바짝 붙으면서 말했다.
“우리랑 같이 파티 플레이했던 것은 이미 다 까먹은 모양이잖슴까! 스토리 퀘스트도 하고, 레이크랑도 싸우고! 그렇게 굵직한 일을 잔뜩 했으면서 우리한테는 말 한 마디 안 해주고!”
“맞아. 나도 경기장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고! 표 정도는 줄 수 있었잖아!”
“부끄럽다고 달라고 하지도 못했으면서!”
로사나가 쏘아붙이는 말에 해로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기에 뭐라고 변명할 거리도 없었다. 요리 키트를 깔아 놓고서 스튜를 끓이고 있던 스크라이더가 쓴 웃음을 지었다.
“뭐, 어쩔 수 없잖습니까. 라덴님도 바쁜 모양이고…”
“맞아. 친구 삭제 안 당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
“말 한 마디 안 하는데 뭐…”
“그럼 네가 먼저 말을 걸던가!”
“귀… 귀찮게 생각하면 어떡해”
해로이가 더듬거리며 대답하는 말을 듣고서 로사나는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렸다. 동시에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안쓰러운 걱정이 꽃을 피웠다. 해로이가 보이는 태도가 꼭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말 한 마디 못 거는 학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짜 호모가 된 것 아냐’
로사나가 그런 걱정을 하는 동안, 스크라이더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라덴님”
“헉!”
스크라이더가 중얼거리는 말에 해로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라바와 로사나도 놀란 표정을 짓고서 스크라이더를 바라보았다.
“오빠, 뭐에요 라덴한테 귓속말이 온 건가요”
“아, 예. 잠깐… 스피커로 돌리겠습니다.”
[뭐에요 다 같이 있는 건가요]
라덴의 귓속말이 모두에게 울렸다. 헉하고 숨을 들이킨 해로이는 양 손을 들어 입을 가로막았다.
“아, 예. 다 같이 있습니다.”
[어어… 그러면 더 잘 됐네요. 그… 오랜만에 연락해서 하기에는 조금 죄송하고 뜬금없는 말인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무슨 일입니까”
스크라이더가 물었고, 로사나와 해로이, 라바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라덴은 잠시 호흡을 고른 뒤에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구구절절히 설명을 늘어 놓았다.
“스토리 퀘스트…”
설명을 듣고 나서 스크라이더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일행들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서.”
[아, 예. 물론이죠. 곤란하시면 거절해도 상관없습니다.]
스크라이더는 잠깐 귓속말을 끊고서 파티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모두가 107 레벨을 찍었고, 지금은 레벨 105부터 입장이 가능한 인스턴트 던전 ‘흑원후의 밀림’의 입구에서 휴식하는 중이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난 찬성입니다. 인스턴트 던전만 도는 것도 질리고, 스토리 퀘스트에 한 발 걸칠 수 있는 거잖아요.”
해로이가 냉큼 대답했다. 로사나는 혀를 차면서 해로이에게 눈을 흘겼다.
“단순히 라덴이랑 같이 퀘스트하고 싶은 건 아니고”
“…뭔 상관이야!”
“뭔 상관이기는. 동생이 오빠 걱정하는 거지.”
“내가 뭘 했다고 걱정해”“…됐다, 됐어. 뭐, 나도 상관은 없어요. 인스턴트 던전 질리는 것은 똑같으니까.”
“저도 상관없슴다. 스토리 퀘스트라니! 그거 하면 우리도 TV에 나오겠죠”
라바가 눈을 빛내면서 히히 웃었다.
“알겠습니다, 라덴님. 곤란하시다니 저희가 도와드려야지요. 제노미아로 가서 새턴님과 알케나님을 만나면 되는 겁니까”
[네. 키아미르까지 오는 길은 따로 알려드릴게요.]
“예.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크라이더와 다른 파티원들이 몸을 일으켰다.
[어… 그리고, 제노미아까지 가는 텔레포트 비용은 저한테 청구해 주세요.]라덴은 슬며시 그렇게 덧붙였다.
골드가 썩어 날 정도로 많기는 했지만, 돈이 이렇게 빠지는 것은 여전히 속이 쓰리게 느껴졌다.
키아미르-3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