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183
ⓒ 목마
키아미르-4
제노미아.
풍작의 신 아하베스의 신전이 있는 곳으로, 알라베스 산 바로 너머에 위치한 대도시다. 동시에 이곳은 블랙벨트로 가려져 있던 미공개 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도시였고,
투왕 라덴이 영주로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라덴이 제노미아의 영주가 되었다는 것은 TV에 편성 된 발할라 채널, 그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투왕 라덴과 함께하는 두근두근 발할라 대모험’에서 밝혀졌다. 라덴이 영주가 되고, 텔레포트 게이트가 활성화되면서 알라베스 산 너머에 있는 플레이어들도 제노미아로 텔레포트가 가능해졌다.
그로 인해 제노미아는 미공개 지역을 탐사하는 플레이어들의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제노미아의 상점에는 알라베스 산 저편의 도시들과는 다른 아이템이 판매되고 있었고, 풍작의 신 아하베스의 가호가 도시에 어려 있었기에, 제노미아에서 유통되는 작물은 다른 도시에서 유통되는 작물보다 압도적으로 질이 좋았다. 덕분에 요리 전문 기술을 익히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제노미아는 곡물 요리의 성지와 같은 곳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제노미아에 유입되고, 제노미아의 시장 경제를 활성화 시킨다. 제노미아 안에서 플레이어의 자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이는 돈의 일부는 라덴의 인벤토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텔레포트 게이트의 비용에도 적용된다.
알라베스 산 너머에서 제노미아로 들어오는 텔레포트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그 일부가 라덴의 인벤토리로 들어가는데, 이곳에 유입되는 플레이어의 수를 생각한다면 일부라고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돈은 아니다.
물론, 라덴은 아직 이에 대한 실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제노미아에서 거둔 세금이 라덴의 인벤토리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할라 내에서 내로라하는 거부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라덴은 그에 대한 자각도 없이 텔레포트 비용을 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노미아의 텔레포트 게이트 앞. 급조하여 세워진 아하베스의 동상은 꼴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하베스 본인이 위엄과는 안드로메다 광년만큼 떨어져 있었기에, 그를 본 따 만든 동상도 위엄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쩍 마른 노인이 구부정한 자세로 세우고서 한쪽 손에는 보리를 들고, 반대쪽 손에는 호미를 들고 있다. 저것이 신인지 늙은 농부인지 분간이 안 되는 모습인 것이다.
“…안녕하세요.”
그런 꼴사나운 동상 앞에서 두 명의 여자가 마주 섰다. 새턴. 서리여왕이라는 별명과 함께, 최근 발할라 투기장에서 크게 이름을 떨치고 있는 여성 플레이어다. 레벨은 110.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마법사용과 얼음 마법을 장기로 삼는 마법사 플레이어다.
“…네. 안녕하세요.”
새턴의 앞에 선 것은 알케나. 발할라 이전의 가상 현실 게임, ‘판타지아’의 한국 랭커로 이름을 날렸던 플레이어다. 일신의 사정으로 인해 판타지아를 접었고, 당시 알케나의 아래에 모였던 길드 ‘코맷’은 공중분해 되었었다.
그 이후, 대중들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알케나는 갑작스레 발할라에 모습을 보였다. 다시 코맷을 결성하지는 않았지만, 알케나는 솔로 플레이와 파티 플레이를 번갈아 하면서 투기장에도 꾸준히 모습을 보였고, 새턴과 함께 투기장의 여자 플레이어로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각자 능력이 다른 다섯 개의 검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스텝과 카운터 위주의 날카로운 공격을 장기로 하는 그녀에게 팬들은 ‘발키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더 오기로 했었죠”
“…네, 그렇죠.”
서리여왕 새턴과 발키리 알케나. 현재 발할라 투기장에서 가장 유명한 두 플레이어가 마주 서있었지만,
문제는 둘이 그리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애초에 둘 사이에 접점이랄 것도 없다. 투기장에서 서로 마주친 적도 없었고, 그나마 서로 만난 적이라고 해 봐야 라덴과 레이크의 PVP에서 해설을 맡았을 때뿐이다.
그때도 간단하게 통성명만 나누었을 뿐, 서로 친밀함은 쌓지 않았다.
“…기다릴까요”
“…그러죠.”
대화 사이에 침묵이 끊이질 않는다. 진짜 문제인 것은, 새턴과 알케나 모두 그런 침묵을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둘은 아하베스의 꼴사나운 동상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다른 일행들을 기다렸다. 서로가 먼저 말을 걸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서로에게 궁금한 것도 없었고 딱히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텔레포트 게이트 쪽에서 스크라이더와 라바, 로사나, 해로이가 걸어 나왔다.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해로이가 동상 앞에 서있는 알케나와 새턴을 발견했다.
“알케나님과 새턴님, 맞으십니까”
“네.”
“네.”
스크라이더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애초에 둘은 유명인이었기에 물어볼 것도 없었다. 스크라이더는 머리를 꾸벅 숙이면서 말했다.
“이번에 두 분과 함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저도요.”
삭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듣고서, 스크라이더는 내심 생각했다.
‘유쾌하진 않겠군.’
앞날이 어둡게 느껴졌다.
지원 병력을 부르고서, 라덴은 친구목록을 닫았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저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못해도 일주일은 걸릴 터.
‘그 일주일 동안 내가 문제로군.’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라바로크와 접촉하는 것은 성공했다. 그렇다면 이 뒤에는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니고, 일단 지원 병력이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뿐이다.
이곳, 키아미르. 황혼의 지배를 받는 도시에서 숨어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일주일 동안 접속을 하지 않던가, 아니면 텔레포트 링을 사용해서 다른 도시로 가있는 것.
하지만 그렇게 할 시에는 라바로크가 이 안에서 고립된다. 상황이 어찌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니, 키아미르를 떠나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냥 아라포니아에게 부탁하는 것이 편하겠지만.’
사실 가장 쉬운 방법에 대해서는 라덴도 이미 알고 있었다. 라덴은 아라포니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아라포니아에게 부탁하여, 라바로크와 함께 제노미아로 텔레포트를 시켜 달라 한다면 퀘스트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아까워.’
그런 생각 때문에 아라포니아에게 부탁할 수 없는 것이다. 다섯 괴물 중 하나인 흑성 아라포니아. 그녀에게 부탁할 수 있다는 백지 수표를 이 퀘스트에서 사용하는 것은 너무 아깝다. 정 방법이 없다면 모를 일이나, 일단 주변 지인들을 불러들여 도움을 받기로 하였으니 당장 아라포니아의 도움은 필요없다.
“…일단, 라바로크님. 당신은 괜한 티를 내지 말고서 평소처럼 행동해 주세요.”
“다, 당장 떠나는 것이 아닙니까”
“당장 떠나는 것은 힘들어요. 그러니까, 대략 일주일을 잡고서 이곳에서 대기해 보자고요. 일주일 뒤에는 저를 도우러 다른 플레이어들도 올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괜히 움직였다가 잡히면 끔찍한 꼴을 겪게 될 테니까요.”
라바로크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라덴은 라바로크가 괜한 고집을 부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 멈칫하고서 물었다.
“아, 혹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뭡니까”
“혹시… 유의라는 NPC를 알고 계시나요”
반 년이나 전의 일이지만, 유의가 키아미르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서량에서 들었었다. 혹시나 유의가 아직 제노미아에 남아 있다면, 겸사겸사 인사라도 해두고 싶었다.
“유의 설마 철권 유의님을 말하는 겁니까”
라덴의 질문에 라바로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철권. 서량에서 유의를 칭하던 별명이다.
“네. 맞는데요.”
“설마 유의님과 아는 사이신 겁니까”
“어… 같은 스승 아래에서 무술을 배웠었죠.”
“유의님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유명하신 분이니까요.”
“유명하다니 무슨 의미인가요”
“유의님은 반년쯤 전부터 이 도시에서 살고 계십니다. 작은 무술관을 열고서, 다른 NPC들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계시죠. …유의님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서, 황혼 쪽에서도 유의님에게 접촉하였었습니다.”
“예 접촉”
“황혼의 성기사가 되어달라는 식이었죠. 유의님은 그것을 쭉 거절하셨고, 황혼 쪽에서도 아직은 유의님에게 강압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라바로크의 말에 라덴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클어졌다. 유의는 아직 이 도시에 남아 있다. 왜 유의가 무술관을 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문제는 황혼이 유의에게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의가 거절했다고는 하나, 유의 정도의 실력자라면 황혼에서도 욕심을 내겠지. 아직까지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도, 황혼이 마음을 먹는다면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것이다.
‘세뇌라던가.’
라덴은 그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세뇌 마법. 황혼이 제노미아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황혼의 마법사들이 제노미아의 영주와 유지들을 마법으로 세뇌했었기 때문이다.
‘유의 사형이 세뇌를 당했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불안감이 싹틀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유의를 만나러 가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한 일이다.
“…그, 유의 사형이 하는 무술관의 위치가 어디입니까”
하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라바로크가 그려 준 약도를 통해서 유의가 운영하고 있다는 무술관의 앞에 도착했다. 라바로크가 말했던 것처럼, 무술관은 그리 크지 않았다. 민가를 개조하고, 뒤뜰을 넓힌 모습이다.
백호 무술관.
라덴은 간판을 보고서 반쯤 입을 벌렸다. 순간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량에 있는 백호 무술관의 간판보다는 깔끔하고 필체가 다르기는 했지만, 간판에는 틀림없이 ‘백호 무술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는 것은 좀 그렇고.’
켕기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황혼이 유의에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괜히 걱정이 먼저 들었다. 일단 라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키아미르의 백호 무술관과 서량의 백호 무술관은 그래도 하나의 공통점은 가지고 있었다.
후미진 골목의 안쪽에 있다는 것.
덕분에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라덴은 흑익 무르시엘라고를 꺼내 장비했다. 그리고는 빠르게 담벽 위로 올라, 그림자 뛰기를 통해 멀리 있는 나무 아래의 그림자로 이동했다.
자그마한 연무장은 텅 비어 있었다. 훈련용 목각 인형이 세워져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흔적은 적다. 아무래도 관원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림자 밟기 스킬이 남아 있다면, 은신을 사용해서 그림자 안에 계속 숨어 있을 텐데. 안타깝게도 흑익 무르시엘라고에는 그림자 밟기 스킬이 남아 있지 않다. 라덴은 입맛을 다시면서 슬며시 몸을 빼냈다.
몇 걸음 걷지 못하고서, 라덴은 다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뒷문으로 유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키아미르-4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