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cond Coming of Shinken RAW novel - Chapter 209
“…나는… 백호 무술관의 제자가 되어… 스승과… 사형제를 존중하고…”
“제대로 말 하거라.”
염화는 울상을 지으며 검왕을 바라보았지만, 검왕은 아직까지 꺼내 쥐고 있는 패천을 슬며시 들어 올리는 것으로 염화의 불만에 대한 답변을 대신했다. 염화는 부르르 몸을 떨면서 손에 든 종이를 내려 보았다.
종이에는 검왕이 직접 적고 백설에게서 검수를 받은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염화가 백호 무술관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이었다.
“나는… 백호 무술관의 제자가 되어 스승과 사형제들을 존중하고, 막내라는 위치에 충실할 것이며,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스승과 사형제들에게 폭력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백호 무술관 관주인 백설의 허락이 있지 않은 한, 결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다만 타인이 먼저 나에게 해를 끼칠 때에 한해서만 능력을 사용할 것입니다.”
“마지막 맹세는?”
검왕이 물었다. 염화는 어깨를 부르르 떨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상의 것을, 위대한 마나에 약속합니다.”
염화의 주변을 휘감고 있던 마력의 색이 진해진다. 존재를 걸고 한 약속. 이것은 라덴도 이전에 직접 본 적이 있었다. 키아미르에서, 유의에게 세뇌를 걸었던 적야의 대주인 한센이 했던 것과 같은 약속이다.
존재를 걸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육체는 거짓에 대한 대가로서 마나에게 바쳐진다. 보통의 경우라면 육체가 완전히 흩어져 세상에 만연한 마나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염화와 같은 불사의 괴물에게는 이 약속은 다르게 적용된다. 이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괴물들이니까.
죽지는 않지만… 고통은 느낄 수 있다. 전신이 흩어지는 고통을 영원히, 영원히 받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불사자들로서도 결코 감수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고문이었다.
‘내가 왜 이런 귀찮은 일을…!’
검왕이 윽박질러대지만 않았더라면 결코 맹약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마나에 존재를 걸고 맹약을 한다는 것이 등신짓이다. 왜 제 목숨을 걸고 약속 따위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을 하기는 해도, 이미 맹세는 끝났다. 염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맹세를 하지 않는다면 검왕이 일만 번이이고 십만 번이고 베어 죽이겠다고 윽박을 질렀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방법도 있기야 하겠지만, 염화는 검왕의 추격을 떨쳐낼 자신이 없었다. 평생을 검왕을 피해 도망 다니고 싶지도 않았고.
“…새로운 막내가 들어올 때까지야.”
염화가 이를 갈면서 내뱉었다. 이런 약속이었다. 백호 무술관에 새로운 막내 제자가 들어올 때까지, 염화는 백호 무술관의 막내가 된다. 막내 제자이니만큼 막내가 해야 할 행동을 해야 하며,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사형이나 관주를 죽이려 들 수는 없다.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염화는 자신이 한 맹약에 의해 전신이 마나로 흩어지는 무한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좋아.”
검왕은 개운한 얼굴이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염화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언제까지 그 불태우는 능력으로 괴물로 불릴 수 있을 것 같으냐?”
“…이 능력으로도 여태까지 충분했어…!”
“그래, 여태까지는 그랬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지? 세상은 넓다. 나도 최근 들어서 그를 확실히 알았다. 이름 없는 야산에서 마주친 놈이 내 검에서 도망치더구나. 그리고 저 백설이란 사내를 보아라. 너는 저 사내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본 적이라도 있느냐.”
검왕의 물음에 염화는 입술을 꾹 다물고서 머리를 흔들었다. 백설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서량. 이 도시에 저 정도의 강자가 있다고는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서량제일검이라는 청성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었지만… 백설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괴물.’
염화 스스로가 괴물이었지만, 그녀는 백설을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불사성을 가지지 못했다 뿐이지, 백설이 가진 힘은 이미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해 있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이가, 자신의 재능이 가장 화려하게 꽃 필수 있는 분야를 발견하고, 그 분야에서 다시 끈질긴 노력을 해서… 아니, 그런 것이라고 해도 백설이 손에 넣은 강함을 염화는 완전히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불사성을 가진 것도 아닌, 고작 삼십 년도 살지 못한 인간이 저 정도의 힘을 어찌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넓다.”
검왕이 다시 말했다. 방금 전에 뱉은 말의 반복이었고, 강조였다.
“너는 앞으로 영원을 살아야 한다. 이, 만들어진 세상이 끝나거나… 네가 가지고 있는 불사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너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해. 그러는 동안에 세상은 많이 변할 것이다. 언젠가는 너나 내가 가진 힘을 우습게 여길 정도의 강자들이 나타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퍽이나.”
“확신할 수 있느냐?”
검왕이 되물었다. 염화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을 하고 싶었었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염화의 바로 앞에 그런 예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언젠가… 플레이어들도 강해지겠지. 그들은 지금도 강해지고 있으니까. 플레이어는 NPC보다 압도적으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 몇년만 지나면 우리를 위협할 정도의 플레이어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
그 말에 염화는 자신도 모르게 라덴을 힐긋 보았다. 염화는… 라덴의 주먹을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염화의 반응속도와 근접전투능력이 한참이나 아랫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불사성과 가진 능력만 믿을 수는 없어.”
염화의 어깨를 잡은 검왕은 진지한 눈으로 염화를 응시했다. 염화는 짧게 신음을 흘리면서 검왕의 시선을 피해 머리를 숙였다. 염화도 알았다. 검왕이 자신을 상당히 챙겨주고 있다는 것을. 십 년 전의 우연한 만남에서도, 검왕은 지금과 똑같은 말을 했었다. 가진 불사성과 잿불의 능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염화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었다. 마법적인 수행을 아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잿불을 사용할 때마다 염화는 잿불이 가진 거대한 힘을 이해했다. 그 힘을 이해한 끝에, 염화는 결론을 내렸다. 수행따위는 무의미하다고. 잿불의 힘만으로 충분하다고.
염화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는 백설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염화는 백설의 움직임을 쫒을 수가 없었고, 백설에게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으며, 백설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것도, 백설을 죽이는 것도 불가능했다.
“뒷일은 맡기지.”
염화가 어떻게든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자, 검왕은 안심하면서 염화에게서 물러섰다. 검왕의 시선이 백설에게 향했다. 백설은 영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돈만 준다면야.”
“얼마나 필요한가?”
“어… 음… 일… 일천만?”
잠깐 고민하던 백설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일천만 골드. 현금으로 하면 일천만원이다. 적은 돈은 아니다.
‘배포가 작아…’
라덴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백설을 바라보았다. 일천만 골드. 일천만 원. 분명 적은 돈은 아니지만…
솔직히, 라덴이 코파는 영상 하나만 올려도 일천만 골드보다 많은 골드를 벌 수 있을 것이다.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천만 골드를 말하면서 덜덜 떨다니. 라덴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백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살면서 무술관 일을 제외하고서 자신의 손으로,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번적은 한 번도 없다. 신규 관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돈을 받겠지만, 무술관에 가입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놈이 있으면 백설이 앞장 서서 두들겨 패서 내쫒았다. 가끔 청아와 호량이 마을의 잡다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왔고, 백설은 그들이 벌어온 돈에서 용돈을 따로 받았다. 아니면 꼬셨던 여자에게 조금씩 용돈을 받던가.
그렇다 보니 백설의 금전감각은 형편없었다. 백설이 생각하기에는 일천만 골드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당장 일천만 골드만 있으면 백호 무술관을 일 년 가까이 굴리면서 백설이 마시고 싶은 술도 실컷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일억 골드를 주지.”
검왕 역시 라덴이 느끼는 한심함을 공유했다. 그는 혀를 차면서 품 안에서 손을 넣었다.
“아니, 현금보다는 이것으로 주는 것이 낫겠군.”
검왕이 꺼낸 것은 발할라 은행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현금카드였다. 검왕이 꺼낸 카드를 보고서 백설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검왕이 꺼낸 카드의 색깔은 반질거리는 검은색이었다.
“마음대로 써도 좋으니, 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쳐 주게.”
“흠, 으흠, 흠. 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 대답하는 백설의 눈은 검왕이 들고 있는 카드에 꽂혀 있었다. 백설에게 카드를 넘긴 검왕은 드디어 마음의 짐을 완전히 덜었다는 표정이었다. 검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쥐고 있던 패천을 공간의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럼, 잘 부탁하네. 나도 슬슬 그 아이를 가르쳐야 할 때라서.”
“…알케나님은 잘 배우고 있나요?”
라덴이 검왕을 향해 물었다. 그 질문에 검왕은 멈춰서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잘 배우고 있지. …재능이 뛰어난 아이야. 플레이어의 성장력까지 더해졌으니, 앞으로가 기대되는 군.”
“제자로 삼을 건가?”
백설이 물었다. 검왕은 그 질문에 피식거리며 웃었다.
“그 아이가 원한다면.”
검왕은 세상을 떠돌면서, 자질이 있어 보이는 이들에게는 여러번 가르침을 주곤 했다. 라덴의 사형인 무풍도 우연히 검왕과 만나서 검왕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라덴 역시 그랬다. 사실 검왕이 라덴에게 강기 변환 스킬을 전수해 준 것은 흑성이 검왕을 압박했던 탓이었지만, 검왕 스스로도 라덴의 재능은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서 가르침을 준 것과, 완전히 제자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래? 언제 한 번 이쪽 제자랑 붙여봐도 재밌겠는데.”
백설이 히죽 웃으면서 라덴을 바라보았다.
알케나와 PVP를 해 본 적은 있었다. 알케나가 몇 번이나 PVP를 하자고 요구했었던 탓이다. 여태까지의 PVP에서, 라덴은 알케나에게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알케나의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은 라덴도 PVP를 하면서 인정했었지만, 그 성장속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라덴은 알케나와의 PVP에서 크게 곤란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검왕이 곁에 붙어서 지도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라덴도 백설의 가르침을 받아 실력이 크게 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것도 재밌겠지.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하지.”
검왕이 몸을 돌렸다. 염화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서 멀어지는 검왕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악!”
염화가 비명을 질렀다. 퍽, 소리가 나도록 염화의 뒤통수를 갈긴 백설은 염화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언제까지 보고 있을래?”
“왜… 왜 때리는 거야?!”
“야? 거야? 거야아아?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년. 어디서 하늘같은 스승한테 반말 질이야!”
“왜… 왜… 왜 때리는 거… 죠…?”
“맞아야 는다.”
백설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맞아야 사람이 된다.”
대체 저게 뭔 개소리인지 라덴조차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백설은 옆에서 얼떨떨한 얼굴로 선 라덴을 힐긋 보았다.
“막내… 아니, 아니. 다섯째야.”
“…저 말하는 거 맞죠?”
“그럼 너 말고 누가 다섯째인데? 유의가 첫째, 청아가 둘째, 무풍이 셋째, 호량이 넷째, 넌 다섯째.”
“그냥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되요?”
“막내라는 부름이 너무 입에 착착 감겨서, 라덴아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해. 그러니까 넌 그냥 다섯째 해라.”
“…아, 예.”
백설이 저리 시키는데 라덴이 뭐라고 반박을 할까. 라덴은 입맛을 다시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왜요?”
“막내한테 잘 가르쳐줘라.”
“…뭐… 뭘 가르치라는 거에요?”
“막내가 해야 할 일.”
백설이 라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일단 화장실 똥푸는 법부터 가르쳐.”
염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