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24
124. 약이야, 약!
“감독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유행운은 차에 실어 둔 야구 용품을 꺼냈다.
야구공과 나무 배트, 그리고 글러브도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글러브는 따로 챙긴 거였는데, 이형호 감독에게 들은 말이 있어서 직접 구매한 용품이었다.
“잘 지냈지. 이렇게 보니까, 좋네!”
오랜만에 찾은 모교.
아직 오전 시간이라 야구장에는 훈련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올해 경원상고는 사실상 약팀으로 분류되었다.
작년에는 전국대회 8강 진출도 하며 화제를 일으킨 팀이었지만, 신생팀의 한계가 드러난 셈이었다. 그래도 작년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프로 배출에도 성공하며 괜찮은 신입 멤버가 들어왔는데, 이형호 감독은 올 시즌 2학년을 주축으로 하고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너는 괜찮냐? 욕 좀 먹는 거 같던데.”
“제 욕보다는 윤서준이 더 많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도 잘했다.”
“어, 저 감독님께 혼날 줄 알았는데.”
“혼날 일이냐? 손버릇 안 좋은 놈은 매가 답이지.”
웃으며 감독실로 들어온다.
감독실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책장에 사진 액자가 몇 개 놓였다는 점이었다. 하나는 조금 크기가 컸는데, 작년에 졸업한 3학년들 단체 사진이었고 그 외는 유행운, 백유진, 민현웅의 기사 사진이었다.
“이걸 직접 뽑아서 액자에 끼우신 거예요?”
“그럼.”
“다 프로 진출한 애들이네요.”
“성과주의라…….”
작게 웃는다.
“오늘 애들이 너 온 거 보면 엄청 좋아하겠다. 너 하나 보고 이 학교에 입학한 애들도 많거든.”
“아, 진짜요?”
“응. 요즘 네가 크보 씹어 먹고 있지 않냐.”
“부끄럽네요.”
시즌이 끝나면 경원상고를 한번 찾을 생각이었다.
야구를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 이형호 감독이었고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조언을 받고 있었다.
“근데 KBO 지원금 끊겼던데, 괜찮아요?”
“어어. 괜찮아.”
KBO는 아마추어 선수가 해외 진출을 할 경우 제재를 가하는 동시에 해당 학교에도 5년간 지원금을 끊으며 압박을 가했다. 해서, 보통 선수들은 미국에 진출하면서 계약금의 일부를 모교에 전달했다.
지원금이 끊기는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었다.
“현웅이가 계약금 10% 떼 주고 가서 문제없어.”
“하긴 민현웅 돈 많이 받았었죠.”
“그렇지. 나도 걔가 그렇게 돈 많이 받고 갈 줄은 몰랐다.”
“근데 감독님은 현웅이 미국 반대 안 했어요?”
“왜 하냐.”
이형호 감독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솔직히 헐값으로 팔려 가는 거면 나도 말렸을 거야. 근데 그 정도 돈을 준다는 건, 어느 정도 선수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거거든. 100만 달러 남짓이었으면 가지 말라고 했을 거다. 그 녀석 성격에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힘들 텐데, 돈마저 제대로 못 챙기면 더더욱 승산이 없을 거라.”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이형호 감독은 민현웅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보던 친구였고 그만큼 신경도 많이 썼던 선수였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힘들고 외롭다며 징징거리고 있지만,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고맙다.”
“네? 갑자기요?”
“너도 1억이나 기부했잖아.”
“아, 그거…….”
유행운은 계약금을 받고 모교에 1억을 기부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형호 감독은 좋은 지도자였고 자신같이 현실에 부딪혀 야구를 그만두는 친구가 생기면 도와줄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내놓은 금액이었다.
“저 감독님 덕분에 지금 잘 된겁니다.”
“네가 야구 잘해서 성공한 거지.”
“그건 맞지만, 만약 감독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전 더 힘들게 출발했을 거예요.”
세상에는 이형호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자신의 실적 때문에 투수 팔을 갈고 선수를 압박하는 아마추어 감독이 없어야만, KBO에도 좋은 선수들이 수급된다.
지금은 투구 수와 관련된 여러 가지 규칙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편법으로 에이스의 어깨를 터는 감독이 널렸다.
그럼에도 이형호는 원칙을 준수한다. 팀 승리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모든 경쟁의 승리자는 실력으로 판단한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유행운이 경원상고에서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점심 안 먹었지?”
“네.”
“오랜만에 급식 어떠냐?”
“좋죠.”
“먹고 나서 애들 좀 봐주고 가라.”
“당연하죠. 오늘 제가 회식까지 쏠게요.”
“자식.”
이형호 감독이 흐뭇한 얼굴로 유행운을 보았다.
“정말 잘 컸다.”
아직도 유행운이 돈이 없다며 도와 달라고 했던 그 순간이 선했다. 당시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유행운은 놓치기 아까운 선수라 도움을 주었다. 그 경험은 이형호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조금 더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신입 선발 테스트를 하더라도 여러 가지 부분을 모두 고려했고 유심히 관찰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더 좋은 선수를 찾고 묻힌 선수를 발굴하는 것도 아마추어 지도자의 역할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 *
“형!”
신해원이 달려온다.
작년 주전 중 유일한 1학년이었던 신해원이다. 지금은 주장을 맡고 있는 신해원이 새까맣게 탄 얼굴로 해맑게 유행운을 반겼다.
“이렇게 보니까, 엄청 반갑슴다!”
“새끼, 야구는 좀 늘었냐?”
“네.”
“확실해?”
“아마도요?”
유행운이 야구장에 들어오자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이 선수들에게는 유행운이 롤모델일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성적으로 올 시즌 MVP가 유력했고 무엇보다 만년 꼴찌팀인 대전 호크스를 우승으로 이끈 선수였다.
“어디 한번 보자.”
유행운 역시도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오늘은 후배들을 직접 둘러보며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저 친구죠? 저 까까머리.”
경원상고 야구부는 엄격한 두발 제한이 없었다. 염색이나 파마를 하는 게 아니라면 모두 허용이 된다.
그 안에서 머리를 바싹 깎은 선수가 눈에 띄는 건 당연했지만, 그보다 운동 능력이 눈에 보였다.
“그래, 괜찮지?”
“괜찮은데요. 타격도 나쁘지 않고, 수비도 타구 반응 속도 괜찮고. 글러브질은 조금 더 만져야 할 것 같긴 한데, 저 정도면 고교 유격수로는 살아남죠.”
“돈이 없어서 중학 시절에 주전 못 먹었던 애야. 우리 학교 입부 테스트 보러 왔는데, 딱 눈에 띄더라고.”
“감독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뭐가?”
“유격수 사냥꾼 같아요. 저도 그렇고…….”
“아무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이 유격수니까.”
작게 웃은 유행운이 배트를 챙겼다.
“저 친구 봐 달라고 저 부른 거죠?”
오늘 이형호 감독이 유행운을 찾은 이유가 바로 저 유격수 때문이었다.
“저 친구는 이름이 어떻게 돼요?”
“해민, 이해민.”
이름을 들은 유행운이 이해민에게 다가갔다. 이해민은 유행운이 다가오자 몸이 바짝 굳고 있었다.
아마추어 선수 입장에서 유행운은 슈퍼스타 그 자체였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존재가 자신에게 다가오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타격 좀 봐줄까?”
“네?”
“네가 원하면 타격 좀 봐준다고.”
“아! 감사합니다!”
이형호 감독이 요즘 공들여 키우는 유격수인 이해민은 실전 경험이 거의 없었다. 중학 시절에도 야구를 했지만, 육성회비를 낼 돈이 없었고 감독에게 뒷돈을 찔러 줄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은 있었음에도 두 번째로 밀렸고 내야 백업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여러모로 개인사가 유행운과 닮아 있었다. 지금 이해민은 부모님이 야구에 있어서 회의적인 입장이라고 들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야구 자체가 돈이 드는 스포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악!
따악!
따악!
이해민이 신중하게 배트를 돌린다.
유명 선수 앞에서 타격을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잘하네.”
유행운은 현실적으로 그의 타격을 보았다.
몸집이나 타격 스타일을 보아 큰 타구를 날리는 유형은 아니었다. 발이 빠르고 교타자에 가까운 스윙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그 스타일에 맞춰 타격을 하는 것이 옳았다.
갑자기 안 하던 것을 하면 타격 밸런스가 모두 무너진다.
유행운이 과거로 회귀해서 타격폼을 바꾸고 스타일을 바꿀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머리에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 지금 이해민은 아니었다.
“하체 운동은 좀 해야겠다.”
“예?”
“우리 야구부 헬스장 잘 되어 있잖아. 하체 운동 매일 해.”
“아…….”
“하체 운동은 지금 당장 뭐가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하다 보면 덕을 보게 되어 있어. 처음에는 하체부터 하고 그 다음에 상체로 옮겨 가는 거야. 일단 하체가 단단해야 타격을 할 때 밸런스가 흔들리지 않아.”
“네, 알겠습니다.”
유행운은 후배의 타격을 지켜보며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히팅 포인트는 조금 더 앞으로. 교타자여도 강한 타구가 생산돼야 출루할 확률이 높아져. 강한 타구는 수비하기가 까다로우니까.”
사실상 당연한 소리였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유행운은 누가 봐도 성공한 프로 선수였고 그렇기에 그가 해 주는 조언은 모두 귀하게 느껴졌다.
“너 대회에서 배트는 뭐 쓰냐?”
“어…….”
“설마 학교에서 지급하는 연습 배트 쓰냐?”
“네.”
당연한 소리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 고급 배트를 어떻게 사용할까.
유행운도 글러브는 모아 둔 돈으로 샀지만, 배트는 살 수 없었다. 그때 민현웅이 도움을 주었고, 그 덕분에 유행운은 장비에 대한 걱정을 한결 덜 수 있었다.
“형이 이따가 배트 몇 개 챙겨 줄게.”
도움을 받았으니, 그만큼 도움을 주려 한다.
“글러브는?”
“중학생 때 쓰던 거 써요.”
“마침 형이 글러브 유격수용으로 사 왔거든. 그거 줄 테니까, 길들여서 대회 때 써.”
이해민이 가만 유행운을 보았다.
지금 이 학교에 들어와 이해민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야구를 하고 있었다. 경원상고 감독님은 다른 감독님과는 달리, 모든 선수를 평등하게 보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해민은 감동했고 경기를 처음부터 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육성회비도 지원받으며 최소한의 금액만 들인 채 야구를 하고 있는 이해민이었다.
“왜? 받기 싫어?”
“아니요. 제가 너무 도움만 받는 것 같아서요…….”
“나도 경원상고 다닐 때, 도움 많이 받으며 야구했어. 회비도 지원받았고 유니폼도 돈 없어서 공짜로 받고 그랬었어. 지금 도움 받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고, 네 야구에 도움이 된다면 감사히 받아.”
유행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공해서 갚으면 되는 거야.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네가 노력해서 프로에 진출하고 자리를 잡게 되면 도움 받았던 걸 몇 배로 돌려줄 수 있으니까. 나는 너에게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거야. 나중에 네가 성공하면 나한테 밥 한 끼 정도는 사지 않겠냐?”
* * *
“우리 유행운 선생님이 오셨다고 해서, 내가 여기까지 왔지!”
이태식이 정장 차림으로 달려왔다.
아직도 경원상고의 후원자인 이태식은 유행운의 엄청난 팬이었다. 지금 그는 오랜만에 멀쩡한 모습이었다.
늘 사회인 야구단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는 이태식이었는데, 오늘은 퇴근을 하고 달려왔는지 정장 차림이었다.
“아유, 선배님. 제가 무슨 선생님이에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선생님이지! 우리 대전 호크스에게 우승을 안겨 준 멋진 선순데!”
껄껄껄.
이태식이 시원하게 웃는다.
그는 요즘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의 바람대로 드디어 대전 호크스가 날개를 펼치고 비상했다.
정규 시즌 우승은 확정적이었고 만약 한국시리즈에서 패배를 한다고 해도 그는 만족할 수 있었다.
매년 꼴찌만 하던 팀이 우승을 하는데, 기쁘지 않을 팀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제가 한우 쏩니다. 선배님도 맛있게 드세요.”
“정말, 내가 후원했던 후배가 이렇게 장성한 모습을 보니…….”
이태식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유행운에게 있어서 이태식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의 지원금이 아니었다면 정말 힘들게 야구를 했을 것이다.
“드세요. 눈물은 호크스가 우승 했을 때 흘리셔야죠.”
“맞지! 그게 맞지! 정말 고마워…….”
이태식이 유행운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말했다.
“미국 안 가고 대전에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오늘 회식은 후배들에게 맛있는 걸 먹이기 위한 자리였는데, 어째 이태식의 눈물쇼가 되었다.
분위기는 좋았다. 경원상고 소속 야구부원들은 비싼 한우를 먹어서 좋았고 요즘 KBO 리그에서 가장 핫한 선수를 직접 보게 되어서 기쁘기도 했다.
“내가 좋은 술을 가져왔는데 말이야!”
유행운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이요?”
“어어. 이거 되게 좋은 거야.”
“제가 술은 안 마시거든요.”
이태식은 거절하려는 유행운을 보며 보자기에서 술을 꺼냈다.
“이게 정력에 좋은 술이거든!”
유행운은 술을 안 마신다.
“음양곽주! 이건 남자에게는 약이야, 약!”
하지만 설명을 듣는 순간, 눈동자가 약하게 흔들렸다.
“그럼 선배님이 권하시는 귀한 술이니까, 한 잔만 마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