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25
125. 그게 대전 호크스야
“누나!”
“술 먹었어?”
“조금, 아주 조오금.”
유행운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인생 1회차에서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가끔 분위기에 못 이겨 맥주 한두 잔 하는 게 전부였다.
“몸에 좋은 술이라고 해서…….”
“물 마실래?”
“응.”
유행운이 잡은 호텔 객실에는 백유정의 전공 서적이 늘어져 있었다. 요즘 백유정은 취업 준비 중이었다. 올해 3학년이고 내년에 4학년이니, 이제 슬슬 스펙을 쌓고 취업할 생각을 해야 한다.
“오늘은 그냥 손잡고 자자.”
순간 유행운은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
백유정을 만나면 항상 뜨겁게 달아올라서 몰아붙일 때가 많았다. 특히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는 더더욱 마음 놓고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백유정이 힘들었을 것 같다.
유행운에게 일이 야구라면 백유정은 학교를 다니며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곧 일이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취업도 준비해야 하니, 체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갑자기?”
백유정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누나 일하느라 바쁜데, 내가 너무 욕심부린 것 같아.”
“갑자기 이러니까 되게 이상해.”
“이상해? 사실 나는 지금도 키스하고 싶어.”
“하면 되잖아.”
“안 돼. 지금 고기 먹고 와서 냄새나.”
급해도 지킬 건 지킨다.
백유정이 그런 유행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까치발을 들고 볼에 가볍게 입 맞춘 백유정이 유행운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말했다.
“그럼 깨끗하게 씻고 와.”
“응.”
“나 이거 더 보고 있을게.”
“알았어.”
유행운이 씻는 동안 백유정은 마저 공부를 했다.
오늘 강의를 듣고 와서 미리 과제를 하고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개인 시간이 그만큼 줄었다.
야구는 일주일에 무려 6일이나 했고 남자친구가 야구선수인 덕분에 그만큼 시간을 많이 빼앗겼다. 하지만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딱히 취미라는 게 없었던 백유정인데, 연애를 시작하면서 야구를 보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아, 이제야 좀 술이 깬다…….”
이번 생에서는 처음 먹는 술이나 다름없었다.
백유정과 함께 있을 때도 유행운은 맥주 한 잔 마시지 않았다. 웬만하면 제정신으로 있어야 예상치 못한 일에도 대처가 가능했다.
“갑자기 술은 왜 마셨어? 감독님이 권했어?”
“아니, 나 후원해 주신 분이 내 생각 해서 좋은 술을 가져오셨거든.”
“좋은 술?”
“응.”
“어디에 좋은 술인데?”
“…….”
유행운은 대답하지 않고 젖은 머리를 타월로 탈탈 털어 닦았다. 거울 너머로 보이는 유행운의 복근은 제법 탄탄했다.
“왜, 나 옷 입을까?”
“으음.”
“그렇게 쳐다보니까, 좀 부끄러운데…….”
“아니야, 보기 좋아.”
“보기 좋다고?”
“응. 딱 좋아.”
백유정이 미소를 지었다.
호텔 타월로 가볍게 골반을 감싸고 늘어뜨린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몸에 자신이 없으면 할 수 없었다. 유행운은 야구선수 치고 마른 축에 속했지만, 속은 근육으로 꽉 차 있었다.
괜히 감상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남자 선택을 아주 잘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자태였다.
“안 되겠다. 옷 입을래.”
“왜?”
“아니, 머리 말리는데 노골적으로…….”
“예뻐서 그래.”
“아니야. 여분 티셔츠 있어.”
“왜? 밤엔 훌렁훌렁 잘도 벗길래, 지금도 그럴 줄 알았는데.”
“그건…….”
유행운의 얼굴이 빨개진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티셔츠를 꺼내는 유행운을 보며 백유정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자기야.”
조심스럽게 유행운에게 다가간 백유정이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오늘 마신 술, 어디에 좋은 술이었어? 응?”
유행운이 한 손에는 티셔츠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허리를 꽉 붙잡은 백유정의 손을 풀며 말했다.
“비밀!”
“우리 사이에 비밀이 있어?”
백유정이 샐죽 웃으며 유행운의 목덜미에 쪽쪽 입술을 맞추었다. 귀엽기도 했고 계속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자꾸만 장난기가 발동된다.
“남자들이 몸에 좋다고 하는 술, 거기서 거기지.”
“누나…….”
“정력에 좋아서 마신 거지? 응? 이제 보니, 엄청 밝혀. 술도 안 마시는데, 정력에 좋다고 해서 마셨어? 응?”
모든 걸 들켜 버린 유행운의 얼굴이 폭발한다.
뜨겁게 달아오른 채로 고개를 돌려 백유정을 보니, 그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백유정은 조심스럽게 복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거 알아?”
자기는 부끄러우면 복근도 빨개진다?
* * *
인생 계획을 짠다.
유행운은 올 시즌이 끝나면 백유정과 결혼할 것이다.
당분간 아이 계획은 없었다. 내년 졸업하는 백유정은 이제 사회 초년생이 될 것이고 서로 일에 열중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유행운은 서비스 타임이 끝나면 미국 진출을 준비할 것이다. 그때쯤에는 두 사람 사이에 애가 있을 수도 있다.
애는 얼마나 낳게 될까?
아들도 좋고 딸도 좋다. 성별에 상관없이 사랑을 줄 것이다. 누굴 닮아도 다 좋지만, 딸이든 아들이든 엄마를 닮으면 참 좋겠다.
다만 임신 자체는 사람의 몸에 무리가 가니까, 욕심은 내지 말아야지.
누나가 애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생각도 이해해 줘야지.
“…….”
눈을 뜨니 제 팔을 베고 잠든 백유정이 보였다.
유행운의 눈에는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고른 숨소리를 내뱉으며 곤히 잠든 백유정은 참 사랑스러웠다.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 주며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아침 7시가 넘어가고 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백유정을 깨워야 한다. 오늘도 오전부터 수업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누나.”
부드럽게 백유정을 부른다.
볼을 조심스럽게 누르자 눈살이 찡긋하며 미간이 좁혀지는 게 귀여웠다.
“누나, 학교 가야지.”
그 말에 백유정이 작게 한숨을 쉰다.
정신은 들었는지, 꼬물거리며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다. 등에 닿는 손바닥의 느낌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누나.”
유행운이 계속 백유정을 불렀다.
“누나, 나 참고 있어.”
그 말과 동시에 백유정의 손이 유행운의 얼굴을 밀었다. 동시에 유행운이 웃음을 터트렸다.
“시도 때도 없어.”
“그래도 어제 좋았잖아.”
“응, 좋았어.”
몸은 힘들었지만, 좋은 건 사실이었다.
싫었다면 애초에 연애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보다 그다음 날이 더 좋았고 그다음 날보다 일주일 후가 더 좋았다. 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줄줄 새어 나왔다.
“욕조 물 받아 놓을게.”
“응, 고마워.”
뒤늦게 백유정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수업이 하나 있었다. 그 이후에는 모두 오후 수업이니 지금부터 씻고 준비하면 시간에 맞출 수 있다.
백유정은 남자친구가 대충 던져 놓은 티셔츠를 입었다. 유행운이 입는 옷은 사이즈가 커서 백유정이 입으면 허벅지까지 가려졌다.
유행운의 키는 고등학생 시절보다 3cm가 더 자랐다. 말랐지만 키가 큰 편이라 백유정이 입으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몸을 가리기에는 딱이었다.
“자기야, 룸서비스 말고 조식 먹을까?”
“응, 좋아.”
유행운이 욕실에서 욕조 물 온도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오늘 유행운은 백유정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대전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제 놀 만큼 놀았으니 다시 몸을 만들고 타격 훈련을 하며 복귀 준비를 해야 한다.
“자기야!”
“어?”
“어제 또 졌어! 미쳤나 봐!”
“그러게, 정말 미쳤나 보네.”
대전 호크스가 연패를 하고 있다.
유행운이 빠진 경기에서 계속 패배를 거두고 있었다. 유행운이 혀를 차고 욕실에서 나왔다.
“가자.”
침대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던 백유정을 번쩍 든 유행운이 욕실로 데려다주었다.
“잠깐만, 나 핸드폰…….”
“여기에 둬.”
백유정이 욕조 옆 선반에 핸드폰을 두었다.
“나 옷은?”
“잠깐만.”
앙, 입으로 티셔츠 끝을 물어 고개를 들자 백유정이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개도 아니고…….”
백유정이 제 손으로 옷을 벗자 유행운이 티셔츠를 입에 문 채로 웃었다.
따뜻한 욕조에 백유정을 내려 준다. 온도도 완벽했고 백유정의 가방에서 입욕제도 챙겨 착실히 넣어 놨다.
“어때?”
유행운의 물음에 백유정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 *
└ 행운아 어디니? 보고 싶다
└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 유행운 서울 목격담 연애하느라 바쁨
└ 행복하니? 행운아?
└ 모교도 방문해서 애들 가르치는 거 뜸
└ 행운아 대전 조돼떠
└ 화요일만 기다립니다…….
└ 참나 ㅋㅋㅋㅋ 유행운 하나 없다고 수비가 와장창 ㅋㅋㅋ
조식을 먹고 난 후에 차에서 잠시 기사를 찾아 보았다.
역시나 현재 유격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수호가 수비에서 불안함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안타를 간간이 치며 타격에는 문제가 없음을 보여 주고 있는데, 수비가 이렇게 불안하면 승리를 가져올 수가 없었다.
“근데 어떻게 질 수가 있지? 계속 연승하다가 한 명 빠진다고 팀이 휘청이면 그게 팀이야?”
올해 야구를 보기 시작한 백유정은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그게 호크스야.”
“아니, 프로잖아. 심지어 우승에 가깝잖아…….”
“작년에는 꼴찌였잖아, 대전 호크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이렇게 휘청여?”
“그게 대전 호크스야.”
자꾸 대화가 한곳에 맴돈다.
이제 야구를 보기 시작한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괜히 유망주들이 대전 호크스에 오는 것보다 차라리 미국행을 결정하는 게 아니었다.
올해는 FA 계약과 더불어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성적을 끌어올렸지만, 그 팀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지는 건 쉽지 않았다.
패배 의식은 차차 지워 가야 한다.
지금 한참 무력감을 느낄 즈음이었고 하필 오늘 경기는 이재희가 선발이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오늘만 넘기면 어느 정도 부활할 기미가 보인다는 것.
이재희만 넘기면 그다음엔 강우성과 윤규민이 등판한다. 그 둘은 가장 승률이 높은 선발 투수였고 적어도 무력하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다 왔네…….”
아쉽다.
오늘 백유정을 보내고 나면 다시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행운아.”
“응?”
백유정이 차에 내리기 전에 유행운의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 볼에 입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보고 싶어도 참아.”
“못 참아.”
“어쩔 수 없어.”
“입술에 해 주면 참아 볼게.”
피식 웃고는 이번에는 입술에 도장을 찍어 준다.
백유정이 입술 자국이 남은 볼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 주도 힘내고. 다음에 또 보자.”
“열심히 견뎌 볼게.”
“아.”
백유정이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유행운을 보며 말했다.
“40홈런 치면 내가 선물 줄게.”
“무슨 선물?”
“네가 좋아하는 선물.”
“……내가 뭐 좋아할 줄 알고?”
“난 알지. 네가 뭘 좋아하는지.”
“그게 뭔데?”
“일요일에 대전에 호텔 예약해 놓을게.”
그 말과 동시에 유행운의 눈이 커졌다. 그러다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완전 완전 내가 좋아하는 거야.”
“그렇지?”
“어어.”
“넌 내가 제일 좋지?”
“응, 맞아!”
그러했다.
* * *
[유행운 복귀전 홈런포 가동 …… 역대 유격수 40홈런 대열 합류] [유격수 홈런 기록은 멈추지 않았다 …… 유행운, 50홈런도 가능하다] [유행운, 무서운 슈퍼 루키는 어디까지 가나? “40-40 기록 달성은 물론 그 이상도 가능”]기다렸다는 듯 유행운은 복귀전에서 솔로포를 가동하며 40홈런을 생산했다. 대전 호크스도 점차 안정을 찾아 갔고, 승리를 거둔 인터뷰에서-
“제 여자친구가 40홈런 치면 선물 준다고 했거든요.”
수줍게 소감을 이야기했다.
“50홈런에는 얼마나 대단한 선물을 줄까요?”
그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서울로 달려가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당장 내일도 계속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는 행복했다.
기록도 달성했고 팀도 승리했다. 우승이 눈앞에 보였고 인생 처음으로 트로피를 들 수 있는 순간이 착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개인 훈련을 마친 후에 경기장을 나서던 유행운은 누군가를 보고 눈이 커졌다.
“선물 배달 왔어요.”
바로 백유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