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6
16. 야구는 모른다
목동 야구장.
고교 시절에는 뛰어 본 적이 없는 이 야구장은 주말에 경원상고 경기가 있으면 종종 찾았던 구장이었다.
한 때는 프로 구단의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목동이라 시설도 준수했고 느낌도 남다르다.
유행운은 타석을 발로 다지면서 생각을 갈무리한다.
타자에게 루틴이란 그런 거였다.
익숙하게 배트를 돌리기도 하고 땅을 고르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너 잡아당기는 거 잘하더라.”
첫 타석에는 말이 없었던 상대 포수가 유행운에게 말을 걸었다.
“뭐, 못하는 것 같지는 않아.”
유행운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고교 무대에서 홈런 한 번 쳤다고 으스댈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 경기에서 눈에 띄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고교 무대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도 프로에서는 고꾸라지는 경우가 숱했기 때문이었다.
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
지금 유행운은 미래의 정보와 꾸준히 노력하며 만들었던 것을 토대로 지금, 야구 잘하는 ‘천재’인 척을 하고 있다.
어쩌면 지나친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생각해야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번엔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지금 사인을 주고 받는 포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김태환과 타순을 살펴보며 유행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정보는 0에 가까웠다.
그나마 얻게된 정보는 이주영이 맞은 홈런이었다.
데이터가 없으니 어느 방향으로 볼배합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홈런 맞은 그 상황과 비슷한 공은 최대한 피한다. 그게 지금 북성고 배터리의 계산이었다.
스윽.
포수의 미트가 자리를 잡는다.
김태환이 등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을 주자를 신경쓰며 셋포지션에 들어갔다.
투수 왼발이 올라가고 유행운 역시 타격 자세를 취한다.
“훅!”
파앙!
초구는 바깥에 형성된 포심.
“볼.”
김태환이 눈을 찡그린다.
“아.”
포수 역시도 미트를 든 채로 아쉬움에 탄식한다.
유행운은 미동이 없었다. 초구부터 급하게 달려들 생각은 없었다.
북성고는 투수진이 좋았고 최대한 김태환의 투구수를 뽑아내는 것도 중요했다.
2구 슬라이더.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급격하게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신해원이 말했던 것처럼 궤적이 눈에 보였고 아직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볼.”
이번에도 볼 판정.
이쯤되면 슬슬 투수가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갖게 된다.
‘안 속네.’
포수가 힐끔 타자를 살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배터박스에서 물러나 연습 스윙을 하고 있었다.
‘쉽네.’
유행운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김태환이 한 차례 견제를 하고 공을 돌려 받았다. 그 행동으로 지금 투수가 궁지에 몰렸다는 걸 느낀다.
3구는 다시 포심.
유행운은 깊게 들어오는 포심을 당겼다.
커트, 공이 뒤로 넘어가 뒷그물을 때렸다.
얼추 타이밍을 맞춰가던 유행운이 이번에는 배터박스에 바싹 붙었다.
‘역시 약점은 바깥쪽이야.’
일부러 볼인 걸 알면서도 몸쪽 공을 건드린 건, 그 선입견을 부추기기 위해서였다.
지금 두 차례 바깥 승부를 하고 그 다음에는 몸쪽으로 이동했다.
똑같은 지점에 공을 던지는 건, 여러모로 위험부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태환이 심호흡을 한다.
셋포지션에 들어가 왼발을 높게 들고 허리를 비틀며 온 힘을 다해 공을 뿌렸다.
‘싱커.’
유행운은 안타를 만들기 위해, 히팅포인트를 뒤로 둔 상태였다.
먹기 좋게 날아오던 공이 급격히 가라앉는 걸 보고 가까스로 나가려는 배트를 참았다.
그 상태에서 배트를 뒤로 뺀다.
“볼!”
이제 투수는 벼랑 끝에 몰렸다.
김태환이 시선을 돌렸다.
유행운이라는 낯선 타자도 신경 쓰이지만, 그 이상으로 거슬리는 건 역시 민현웅이었다.
‘여기서 끝내야 해.’
유행운을 볼넷으로 내보내게 되면 일이 복잡해진다.
당연히 민현웅은 비어있는 루를 채우게 할 것이다.
승부하다가 얻어 터지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걸어 나가게 하는 것이 더 좋았다.
차라리 다른 타자와 정면승부하는게 나을테니.
‘만루는 안 돼.’
하지만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민현웅을 걸러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에 만루 상황을 스스로 만든다는 스트레스가 함께 동반된다.
“후우.”
본능적으로 느낀다.
이 상황이 승부처라는 것을.
“끄악!”
거칠다 못해 격한 숨소리가 사방에 퍼진다.
김태환이 지금 유행운을 상대로 온 힘을 다한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선구안이 좋은 타자에게 유인구를 요리조리 날리는 건 좋지 않다.
지금 상대는 몸쪽 공 외에는 배트를 모두 참아냈다.
심지어 완성도가 높은 싱커까지 골라내지 않았나.
‘왔다.’
정면 승부.
잘 친다고 판단되는 몸쪽은 피하고 철저히 바깥 승부였다.
부웅!
유행운의 배트가 나왔다.
뒷발을 단단히 고정하고 직구를 밀어친다.
따아악!
허리 부근에서 배트에 공이 맞닿았다. 손목 컨트롤을 빠르게 가져간다.
타고난 손목힘으로 그대로 밀어 우중간으로 보내버렸다.
“아쉽지만.”
날아가는 각도를 보니 홈런은 아니었다.
“아, 타점 맛있다.”
중얼거리며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주말리그 성적은 중요하다.
바로 전국대회 출전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전반기 성적으로 전국대회 출전권이 부여되며 이는 여러모로 선수들에게 중요했다.
“좋다.”
이형호는 점수를 갖고 시원하게 홈플레이트를 훔치는 강수현을 보며 박수를 쳤다.
담장을 맞추는 장타였기 때문에 서서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지만, 굳이 멋지게 슬라이딩을 하는 강수현이었다.
“잘했다.”
어렵게 점수 한 점을 짜냈다.
그리고 그 다음 타자는 다시 득점을 기대할 수 있는 강타자였다.
“거슬리네.”
지금 이 상황에서 김태환은 2루에서 리드폭을 길게 늘리는 유행운이 몹시 짜증났다.
스타트 끊을 것처럼 달리다가 급하게 되돌아 오고.
리드폭을 스스슥 늘렸다가 슬라이딩 하며 귀루하고.
아주 별 짓을 다 하는데,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다는 게 짜증이 났다.
“태환아!”
결국 포수가 마운드에 방문한다.
“어차피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으면 돼.”
이미 점수는 내줬고 그건 잊어야 한다.
“민현웅 거르자.”
김태환은 유행운에게 적시타를 얻어 맞고 이주영처럼 오기를 부렸다.
“뭐?”
“1루 비어 있잖아. 감독님도 채우래.”
김태환이 시선을 옮긴다.
이주영과 같은 마음이었지만, 박광윤 감독과 눈이 마주치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기운 없는 목소리.
결국 고의 4구로 민현웅은 걸어서 베이스를 밟게 되었다.
“자존심도 없냐?”
민현웅은 짜증이 났다.
“승부에 자존심이 어디있냐?”
상대 포수가 당연하다는 듯 응수했다.
“하, 존나 비열하네.”
결국 민현웅은 배트를 신경질스럽게 던지고는 1루로 걸어 들어갔다.
다음 타자는 강민하였다.
팀의 주장으로서 득점권에 있는 주자를 홈으로 불러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내가 만만하다 이거지.”
그럴 수 있다.
강민하도 알고 있었다.
타자 최대어를 상대하느니, 차라리 그 팀의 주장하고 승부하는게 낫다는 걸.
스스슥.
그 상황에서도 유행운은 도루각을 보고 있었다.
민현웅이라면 무리하게 도루를 감행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제는 타석에 선 타자가 강민하였다.
‘신경쓰지 마.’
포수 역시도 유행운을 체크하고 있다.
여차하면 피치아웃도 할 생각이었지만, 투 아웃인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타자만 잡자.’
시그널을 보내고 미트를 올린다.
김태환도 심호흡을 하며 셋포지션에 들어갔다.
자존심은 상했지만, 심리적인 부담은 한결 덜어졌다.
1구, 깊숙하게 몸쪽으로 바짝 직구가 들어간다.
“볼.”
2구, 유리한 카운트를 잡기 위해 가장 완성도가 높은 변화구 싱커를 선택한다.
“볼.”
하지만 강민하는 끈질기게 볼을 지켜보며 참아낸다.
아직 야구는 모른다.
“할 수 있어.”
고작 1할 타자라도 기회 열 번이 오면 한 번은 가져온다.
강민하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강민하는 통산 고교 타율이 2할 6푼이었다. 그 말인즉슨, 1할 타자보다는 더 확률이 높았다.
“후욱!”
3구, 카운트를 잡기 위해 바깥에 형성되는 직구를 선택한다.
“아.”
공을 뿌리자마자 김태환이 탄식했다.
지금까지 제구가 잘 잡혔는데, 손에 힘이 빠진 건지 바깥이 아니라 중앙에 몰리는 실투가 되었다.
그 순간, 강민하의 배트가 매섭게 돌았다.
따악!
이미 빠르게 스타트를 끊은 유행운은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를 구경하며 유유히 3루 베이스를 돌았다.
“나이스.”
홈플레이트를 우아하게 밟은 유행운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야구는 한 명만 막는다고 되는게 아니거든.”
2루를 밟은 주장 강민하가 포효를 지르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유행운은.
“으악!”
누군가가 엉덩이를 걷어차자 새된 비명을 질렀다.
“우리 벌써 넉점 째다, 이 미친놈아!”
흥분에 겨운 강수현이 엉덩이를 연거푸 걷어 차고 있었다.
“아, 또 깝치네. 이 새끼.”
하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 * *
– 손모가지 어디갔냐? 글삭튀?
└ ㅇㅇ 글삭튀
└ 졸렬 그잡채
손모가지를 걸었던 누군가가 꼬리를 말고 도망간 그 순간.
“김 대리야.”
“네, 팀장님.”
“저 친구, 정보 싹 긁어와.”
“예?”
“저 새끼 미친 놈이다. 유명해지기 전에 미리 그림 짜놔야 해.”
“예에?”
“너 눈깔 동태야?”
최준혁은 확신했다.
유행운은 지금은 무명인 고교 선수였지만, 오늘 이 경기가 끝나면 다른 구단 눈에도 들어올 거라는 걸.
“첫 타석 홈런. 두 번째 적시 2루타. 세 번째 볼넷에 도루까지. 거기다가 민현웅이 적시타를 터트리며 추가 득점. 다음 타석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래도 모르겠냐?”
타격만 잘하는 거면 이렇게 몸이 달아오르지도 않는다. 문제는 수비까지 탁월하다는 거였다.
“쟤 포지션이 뭐냐?”
아직도 미적거리는 후배를 보며 최 팀장이 예민하게 물었다.
“유, 유격수요.”
“알면서 아직도 그러고 있냐?”
오늘 경기는 경원상고의 압승이다.
경기는 초반부터 경원상고가 승기를 잡았다.
김태환이 기울어진 승부를 다시 바로 세우려고 했지만, 불 붙은 경원상고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경원상고 에이스가 제 역할을 해주었다.
백유진은 맞춰 잡는 투구로 최대한 마운드에 오래 머무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4회 무사 1, 2루를 채우고 위기를 맞았지만, 단 1실점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 이후에도 수비 도움을 받으며 끈질기게 마운드에 버텼고.
“드디어 백유진이 내려가는군.”
7회에도 어김없이 마운드에 오른 백유진은 아웃 카운트를 두 개를 잡고 다음 투수에게 공을 넘겼다.
총 투구수 99구, 6.2이닝 4피안타 1볼넷 1실점.
백유진은 조금 더 던질 수 있었지만, 선발 전환 후 첫 경기라 감독은 욕심내지 않았다.
“아직 모르잖아요.”
여기저기 정보를 긁어 모으던 김 대리가 참견한다.
“아직 경기도 안 끝났고 4점 차면 충분히 가능성 있지 않을까요?”
“뭐, 김태환이 내려가고 그 다음 투수진이 잘 버티긴 했지. 상황도 상황이라 더 이상 민현웅을 피하지 못하고 정면승부해서 추가로 1실점이라면 괜찮은 수준이야. 문제는.”
최 팀장이 오늘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주는 유행운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유행운 타석이 또 온다는 거지. 더불어 그 뒤를 버티는 민현웅까지.”
“둘 다 거르면요?”
“글쎄. 이미 민현웅 거르고 5번에게 얻어 터졌잖냐. 덕분에 사기도 뚝 떨어지고.”
지금 박광윤 감독은 속이 몹시 쓰릴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경기를 되짚으며 생각했을테고.
“야구는 모르지. 9회 말 투 아웃에도 기적처럼 역전을 이루는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 북성고는 상대에게 완벽하게 말렸어. 만만하게 보고 접근했다가 이름 모를 타자에게 얻어 터진 셈이지. 그것도 뒤통수를.”
그건 그렇고.
“너 안 가냐?”
“네?”
“당장 가서 유행운 데이터 긁어 와, 이 자식아.”
김 대리가 허둥지둥 경기장을 나서는 그 순간.
놀랍게도 타 구단 스카우터도 어딘가 급하게 전화하며 이동 중이었다.
걸음을 멈춘 김 대리가 커진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경원상고 유행운, 걔 정보 좀 찾아 봐.”
분명.
“유행운, 유행운이라니까!”
사방에서 유행운이라는 이름을 소곤대고 있다.
그러다 우뚝 멈춰서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김 대리도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뭘 해도 한 발 느린 그는, 왜 대전 호크스가 만년 하위, 아니, 만년 꼴찌팀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완전 히트 상품이네.”
쉽게 말하면 오늘 경기의 히트 상품은 유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