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60
160. 오리엔탈리즘
애틀랜타 스프링 트레이닝.
보스턴 레드삭스는 그레이프푸르트 리그에 속해 있다. 보통 미국에서는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을 6주간 진행한다.
유행운의 첫 훈련의 시작은 역시 적응이다. 40인 로스터에 든 선수와 그 외에 초청 선수까지 포함하면 60여명 정도의 인원이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여한다.
여기서 동양인은 딱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새롭게 팀에 합류한 유행운이었고 나머지는 아카치 카즈마였다.
대다수가 서양인이었으니, 상대적으로 소수인 동양인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물론 유행운은 MLB에 이제 막 발을 들인 신인 선수였기에, 이미 팀에서 입지를 다진 아카치와는 입장이 다소 달랐다.
“반갑다.”
자기소개 이후에 유행운을 과하게 의식하는 시선이 따라왔다. 그 중에서도 유행운에게 관심을 보이는 선수도 있었다.
“어.”
“맞아.”
잭 워커, 작년 WBC에서 유행운에게 홈런을 얻어맞은 투수였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1선발이었고 작년 방어율은 2.58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좋은 투수는 맞다. 실제로 작년에 맞붙었을 때 꽤 고전했던 기억이 있다.
끝내 홈런을 만들어 내기는 했지만, 앞서 두 타석을 삼진으로 물러섰었다. 슬라이더가 굉장히 좋았다. 속도 조절을 할 수 있고 두 가지 종류의 슬라이더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투수였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몹시 반가운걸?”
“반가운 거 맞아?”
“어, 반갑지. 내가 그렇게 피홈런이 많은 투수가 아니니까.”
잭이 유행운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나였다.
“네 수비 좋더라고. 날렵하기도 하고, 투수가 널 의지하는 게 느껴졌어. 참고로 우리 팀은…….”
한 발 유행운에게 다가간 잭이 고개를 내밀며 속닥거렸다.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유격수가 구멍이거든.”
아.
유행운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지난 시즌 경기를 모두 살펴보았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주전 유격수였던 제임스는 작년 급격히 무너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수비 범위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는데, 작년 경기에서 그 여파가 강하게 눈에 들어왔다.
수비 범위가 좁아진 건 물론이고 반응 속도도 예전 같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칼같았던 송구는 무뎌지지 않았었는데, 그마저도 작년 시즌에는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레드삭스는 백업 자원을 올리며 유격수 대체제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유격수는 쉽게 채울 수 없는 포지션이었다. 트레이드까지 진행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괜히 유망주를 낭비한 꼴이 되었고 그 결과, 유행운 영입까지 이른 것이다.
투수에게 유격수는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땅볼 유도형 투수에게는 더더욱. 작년 시즌 투수조는 팀의 유격수를 신뢰하지 못했을 것이다.
잭 워커처럼 유행운을 반기는 투수가 있다면 아직도 유행운을 의심하는 투수도 당연히 있었다.
“날 높게 평가하는 건가?”
유행운이 아내에게 배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물었다.
“높게 평가하지.”
“그래?”
“넌 내게 홈런을 선물한 녀석이니까.”
잭은 머리가 길다. 장발을 흩날리며 투구하는 모습이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투수였다.
바람이 불어 잭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꽂았다. 그 모습을 보는 유행운의 얼굴이 순간 굳는다.
‘와.’
토 나온다.
“넌 흔치 않은 남자라고.”
찡긋.
윙크를 하는 그 모습에 유행운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걸 왕자병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저기.”
아무래도 이건 물어봐야겠다.
“혹시 게이는 아니지?”
“왓?”
“아니면 됐어.”
일단 오해는 풀었다.
* * *
영어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지난 시간 동안 열심히 연습한 결과가 좋았다. 구단에서 통역을 붙여 주긴 했지만 직접 선수들과 대화하는 쪽이 더 빠르게 가까워질 수 있다.
“배트 스피드 좋고. 타격폼도 간결하고 깔끔하군.”
6주간 진행하는 스프링 트레이닝은 정규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시작점이었다. 지금 유행운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그가 연습 스윙만 해도 주변 선수들은 물론 코치까지 집중하여 지켜보았다. 한국을 씹어 먹고 미국에 왔다는 루키가 어느 정도 수준의 선수인지 궁금하다는 눈치였다.
“괜히 사장이 돈 쓴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수비는?”
“좋습니다. 실제로 보니 더 좋아요.”
슈나이더 감독은 딱히 유행운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유격수 포지션에 보강을 요청했지만, FA로 걸출한 선수를 영입하거나 트레이드를 통한 보강을 원했다. 그가 전도유망한 선수라는 건 알겠지만, 미국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카드였다.
물론 실제로 확인하니 예상 밖이었지만, 아직 실전에서 기용하지 않았다.
“우리 엔트리에 동양인이 두 명이나 되는군.”
“예. 아카치는 이제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죠.”
“완벽까지는…….”
아카치 카즈마는 일본 선수로 발이 빠르다. 주로 테이블세터나 9번 타자로 경기에 나선다.
OPS가 0.601로 장타력은 거의 실종된 수준이다. 뎁스가 얇고 그를 대체할 선수도 마땅치 않아 발이 빠르고 수비력이 준수하다는 이유로 기용하고 있지만, 감독으로서는 조금 아쉬운 선수였다.
“더 잘해야지.”
따아악!
유행운이 투수의 공을 강하게 밀었다. 1, 2간을 꿰뚫는 타구. 연습 경기는 크게 무리하지 않고 타격을 점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나저나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가.”
타격 코치가 슈나이더 감독을 보았다.
“아카치가 심각하게 견제하더군.”
“유를 말입니까? 같은 포지션도 아닌데…….”
“등 번호.”
“아!”
아카치 카즈마는 NPB를 거쳐 미국 진출에 성공했다. 유행운과는 동년배였고 한일 양국의 역사적 관계 외에도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걸 앙심이라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프로 세계에서는 실력이 곧 돈이었다.
유행운이 MLB에서는 루키라 하더라도 잠재성을 인정받았다. 충분히 미국에서도 통할 자원이라는 것을 인정받았기에 돈은 물론, 원하는 등 번호까지 가져올 수 있었던 셈이었다.
“자네가 잘 조절하게. 괜히 기 싸움으로 힘 빼는 건 좋지 않아.”
“네, 알겠습니다.”
아카치는 지나치게 유행운을 의식한다.
그가 보기에는 유행운이 별거 아닌 선수로 느껴졌다. 어제와 오늘 연습 경기에서 유행운은 무안타로 침묵하기도 했고, 오늘은 모처럼 안타를 신고했다.
유행운이 생각하기에 연습 경기는 그저 연습일 뿐이었다. 지금은 새로운 도전에 앞서 타격폼을 미세하게 조정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KBO에서는 140km/h 후반대 공도 강속구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달랐다. 구속 차이가 있었고 구위나 변화구 완성도도 차원이 달랐다.
그렇기에 빠른 볼에 맞춰 타격폼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연습 경기에서는 미세하게 교정한 타격폼을 몸에 입히는 데 집중했다. 굳이 연습 경기에서 장타를 빵빵 때릴 필요가 없었다.
아카치의 눈에는 유행운이 강속구에 쩔쩔매는 걸로 보였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굿! 럭키 보이!”
유행운은 수비에서는 날아다녔다.
깊게 빠지는 타구를 슬라이딩하며 낚아채고 벌떡 일어나 터닝 스로우를 시도했다. 넓은 수비 범위, 빠른 발, 순발력을 갖추었으며 심지어 송구도 정확하다.
레드삭스의 4선발 로건이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지난 시즌 주전 유격수였던 제임스의 노쇠화로 유격수는 구멍이나 다름없었다.
“보이?”
유행운은 대전 호크스에서 뛰면서 외국인 선수에게 ‘럭키 보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지금도 이들은 유행운을 친근하게 ‘럭키’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의 한국 이름이 행운이었고 그걸 쉽게 풀면 럭키였기 때문이다. 유행운이 투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가이. 럭키 가이.”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먹었고 ‘럭키 보이’라는 말 보다는 ‘가이’가 좋았다. 미국은 확실히 한국보다 체급이 다르다. 한국에도 덩치가 큰 선수가 있지만, 근육보다는 거진 살인 경우가 많았다.
여기는 딴딴하다. 야구 주머니가 딴딴하다. 유행운도 열심히 몸을 만들었지만,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넌 보이가 어울리는걸.”
“놉!”
유행운이 정색한다. 로건이 피식 웃고는 다시 경기를 진행했다. 유행운은 실책 하나 없이 수비를 마쳤고 그 모습을 외야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수비는…….”
혼자 중얼거린다.
“나쁘지 않군.”
아카치 카즈마는 혼자서 경쟁을 하고 있다.
동 포지션도 아닌 선수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다. 유행운의 타격을 지켜보며 그가 안타를 치지 못하고 헛스윙으로 물러나면 혼자 음흉하게 웃었다.
역시 한국인은 빠른 볼에 손도 못 댄다며 비웃다가 수비가 시작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확실히 수비가 남달랐다.
투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수비였고 심지어 뒤로 빠지는 애매한 타구도 발 빠르게 쫓는다.
넓은 수비 범위.
아카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린다.
“오늘 나는 안타 두 개…….”
이겼다.
* * *
지금 보스턴 레드삭스는 암흑기였다.
공교롭게도 유행운은 레드삭스가 지독한 암흑기에 처했을 때 입단했다. 지난 5년간, 보스턴 레드삭스는 포스트 시즌을 경험하지 못했다. 와일드카드 역시도 3년 연속 진출하지 못했다. 지금 레드삭스는 위기였다.
보스턴의 새로운 사장 키런 메이슨은 팀을 개편했다. 단장을 해고했고 선발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물론 팬들은 반기지 않았다.
최근 보스턴 레드삭스의 트레이드는 시도하는 족족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캠린은 어때?”
“발목에는 문제없습니다. 시범 경기 일정에 맞춰서 복귀할 수 있습니다.”
“유리 몸인 게 약점이군.”
캠린 하긴스.
메이슨이 두 명의 선수를 내주고 팀에 데리고 온 투수는 캠린 하긴스였다. 지난 시즌까지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었고 작년에는 부상으로 제대로 시즌을 소화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이 정상이라면 탁월한 성능을 자랑한다. 메이슨이 괜히 유망주를 낭비했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캠린은 퐁당퐁당이었다. 요즘은 퐁퐁당퐁퐁당이긴 했는데, 확실히 한 시즌을 말아먹으면 그다음 시즌에는 제대로 부활한다.
캠린 하긴스가 1년 반을 부상으로 경기를 제대로 뛰지 못했다. 작년 초가을, 뒤늦게 복귀한 하긴스는 8경기 선발 출장하여 총 49이닝을 던졌고 자책점은 1점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마지막에는 발목 부상으로 출장을 하지 못했다.
신시내티 입장에서는 확실히 선발 로테이션을 돌아 줄 선수가 더 급했다. 하긴스가 만약 작년 뒤늦게 복귀했어도 추가 부상 없이 시즌을 마감했다면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온전한 몸으로 시즌을 소화하면 부정 못 할 1선발 투수죠.”
메이슨은 승부수를 던졌다.
구멍이었던 유격수 자리에는 유행운을 영입해 채웠고 부족한 선발진은 캠린 하긴스로 채운다. 승부수라는 말은 모험이라는 뜻도 있었다.
메이슨에게는 유행운은 안전한 카드라면 캠린은 어딘가 불안한 카드였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잘 던질 때가 됐다.
2년 연속 부상으로 말아먹었으니, 이번 시즌에는 건강할 확률이 높았다. 단순하다. 올 시즌 잘 던진다면 메이슨은 그를 팔아먹을 것이다.
본디 선수도 주식과 똑같았다.
저점일 때 매수해서 고점으로 치고 올라갔을 때 매도한다. 그 저점이라 평가한 선수가 바로 캠린이었다.
“이거 한번 써 볼래?”
캠린은 유리 몸을 갖고 있다. 건강할 때는 건강한데, 이상하게 부상이 잦은 몸이었다.
유행운은 미국으로 떠날 때 부적을 하나 선물 받았다. 전문적인 건 아니었고 심리를 안정하는 데 쓰는 그런 장난감 같은 부적이었다.
“이건 부적이라는 건데.”
“푸척?”
“어어. 부적.”
캠린 하긴스가 발목을 신경 쓰는 걸 유행운을 보았다.
공을 하나 던지고 무의식적으로 발목을 문지르는 캠린이었다. 유행운이 보기에는 캠린의 발목은 정상이다. 이미 인대가 다 붙었고 계속 재활 운동을 했으니, 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 심리적인 압박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올 시즌부터는 새로운 팀에서 뛰어야 하는 캠린 하긴스였다.
“여기 보이지. 여기에 소원을 적어.”
캠린이 노란색의 작은 종이를 본다.
“이걸…….”
문득 장난기가 샘솟는다.
보통 부적을 쓰는 방법은 베게 밑에 깔고 자거나 벽에 붙이는 수준이었지만, 이 부적이라는 걸 모르는 외국인에게 장난을 한번 걸어 보고 싶었다.
“속옷에 집어 넣는 거야.”
“왓?”
“경기 전에 속옷에 넣어 봐. 그걸 입고 자면…….”
“…….”
분위기가 묘하게 진지하다.
“그 소원이 이뤄질 거야.”
그저 심리적 안정을 위한 방법이다.
유행운은 미신을 믿지 않았고 이 장난감이나 다름없는 부적에 한국어로 작은 소원을 적었다.
하나는 가족의 건강을 적었고.
그 외는 부상 없이 미국에서 뛸 수 있기를 빌었다.
“오…….”
캠린이 부적을 받아 들었다.
“오리엔탈리즘!”
사실 캠린 하긴스도 알고 있다.
노란 종이에 소원을 적는다고 해서 모두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펜을 들고 마음을 정리하여 소원을 적으니, 심리적으로 안정을 느꼈다.
아주 착실하다.
자기 전에 삼각팬티에 속옷을 넣었다. 캠린은 유행운이 말한 대로 착실히 수행했고, 다음 날 몸이 가뿐한 걸 느꼈다.
“오!”
시범경기 첫 날.
캠린 하긴스는 연습 투구를 하며 감탄했다.
“아프지 않아!”
유행운은 그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고 있었다. 사실 큰 효과를 바라지는 않았다. 캠린의 부담감을 떨쳐 내기 위한 부적이었고 미신일 뿐이었다.
“와우!”
방방 뛴다.
공을 하나 던지고 점프를 하며 두 손을 든다. 과한 리액션, 유행운은 곁눈질로 캠린을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홱 고개를 돌렸다.
캠린 하긴스가 유행운에게 달려간다.
유행운의 손을 붙잡고 흥분에 겨워 침을 튀겼다.
“럭키 유가 내 발목을 고쳐 줬어!”
아주 대단한 오해였다.
“그 푸적 더 줄 수 있어?”
그리고 이게 목적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