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61
161. 쉿
간혹 사람에게는 마음을 둘 무언가가 필요할 때가 있다.
캠린 하긴스는 연달아 터진 부상으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재작년에 시즌을 치르다가 공에 맞아 손목 골절을 당했고, 그 후유증은 꽤 오래갔다. 작년 복귀는 성공적이었지만 이번에는 발목이 문제였다.
공을 던진 후에 발목을 삐끗했는데, 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이 찾아왔다. 인대는 깨끗하게 붙었다. 재활 운동도 계속해 왔고 이제 정상적으로 투구를 할 수 있는 몸이었다. 손목도, 발목도 모두 공을 던지는 일에 무리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캠린은 부상을 걱정했다. 공을 하나 던지기 전에 부상 입었던 손목을 매만지고 공을 던진 후에는 발목을 쓰다듬었다.
유리 몸이라는 불명예를 가져다준 치명적인 부상이었기에 더더욱 생각이 깊은 얼굴이었다.
“좋아!”
캠린 하긴스가 선두 타자를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구속, 구위 모두 좋았고 변화구 움직임도 탁월했다.
“98마일까지 찍혔군.”
“무브먼트도 좋습니다.”
슈나이더 감독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1회 초를 마무리 짓고 더그아웃에 들어온 캠린과 짧게 대화를 나누었는데, 알 수 없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푸적? 그게 뭐지.”
부적.
무당에게 직접 받은 물건도 아니었고 문구점에서 파는 단순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은 물건이다. 하지만 이런 물건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효능이 달라진다.
아니, 효능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떨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캠린이 바보도 아니고 동양인 선수가 준 생소한 물건이 부상을 모두 가져가 주었다고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심리적인 압박감을 이 종이 한 장으로 떨칠 수 있었다. 의사가 천 번 넘게 이제 부상은 없다고 말을 해도 스스로가 믿지 못했다면, 이 노란 종이에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심리가 안정된 것이다.
“럭키가 줬다고?”
캠린은 웃고 있었다.
몸 컨디션이 최상이라며 올 시즌은 문제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속옷에…… 그걸 넣었다고?”
믿을 수 없는 말이다.
캠린 하긴스는 아침에 일어나 몸이 가뿐한 걸 느끼고 바로 새 속옷에 부적을 넣었다. 비록 부적이 구겨졌지만,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시범 경기에 임했다.
투수코치가 고개를 돌려 감독을 쳐다본다. 감독 역시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투수코치를 보았고 동시에 혀를 찼다.
“플라시보 효과인가?”
그냥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기로 했다.
* * *
지금 유행운은 굶주린 상태였다.
KBO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살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량을 늘렸다. 몸무게는 미세하게 차이가 있었지만, 본디 체지방보다 근육이 더 무거운 법이었다.
[최악의 트레이드라 생각했는데 캠린 괜찮은데?]└ 전성기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무조건 레드삭스가 이긴 트레이드지
└ 최고 구속이 98마일 제구도 좋았어 특히 그는 슬라이더가 일품이지
└ 우린 선발진이 빈약했어 잭이 잘 던지긴 했지만 나머지는 쓰레기였거든 캠린이 잘해야만 해 그래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어 물론 이 트레이드를 진행한 메이슨도
└ 끔찍한 트레이드 메이슨이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어제 시범경기에서 캠린은 예전 좋은 모습을 기억나게 했지 올 시즌이 기대가 돼
└ 그나저나 럭키는 잘 하고 있는 거야?
└ 시범경기지만 럭키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 아무것도는 아니지 수비를 봐 내야 수비가 럭키 덕분에 견고해졌다고
└ 유격수는 공격도 하는 포지션이야 수비만 보고 그를 데려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
└ 럭키는 제발 돈 낭비가 아니길 바라
└ 근데 푸적? 이게 뭐지?
현재 유행운은 침묵 상태였다.
수비에서는 최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타석에서는 볼넷 하나를 골랐을 뿐, 좋은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행운은 개의치 않았다. 여유를 갖고 있었고 타석에서 헛스윙을 하더라도 감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미세하게 타격폼을 바꿨고 몸 자체도 근육량을 늘렸다. 시범 경기는 정규 시즌이 아니었기에 그저 적응의 도구로 사용했다.
사흘째 무안타.
슬슬 미국 언론은 물론, 한국까지 나서서 유행운은 실패작이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헤이. 부적을 써 보는 거 어때?”
유행운이 욕을 먹는 게 신경 쓰였나 보다.
캠린이 다가와서 부적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는 유행운에게서 부적을 파는 사이트를 알아냈다. 가짜 부적이지만, 대량으로 구입하여 매일매일 건강을 기원하고 있었다.
“어, 나는 괜찮아.”
유행운이 손을 저었다.
“공이 안 맞는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아.”
“괜찮아?”
“어, 바깥 공에는 어디까지 리치를 늘려야 정확히 때릴 수 있는지 확인하느라고.”
“오…….”
지금 유행운은 여러 투수를 경험했다.
감독은 나흘 째빈타에 허덕이는 유행운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지만, 참고 있었다. 시범 경기가 열리는 날, 직접 자신을 찾아와 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20타석 무안타를 신고해도 참아 달라더군.”
“예……?”
“럭키가 확인할 게 있다더라고.”
“그걸 믿으십니까?”
“시범 경기니까, 믿어 봐야지.”
나흘 동안 유행운은 19타석을 먹었다.
볼넷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헛스윙 삼진 내지는 뜬볼 아웃이었다. 유행운은 처음 2번 타자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9번 타자로 내려앉았다.
점차 미국 내 여론은 심각하게 유행운을 비난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안타 하나를 신고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실패한 영입이라고 떠들고 있다.
[YU, 이번에도 땅볼을 쳐 내며 아웃. 2년 6천만 달러를 받은 유격수가 안타를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슈나이더 감독은 계속 그를 기용하고 있는데, 아무리 시범 경기라고 해도 심각한데요.] [끔찍하죠. 지금 레드삭스의 팬 여론은 바닥을 쳤습니다. 차라리 제임스를 보겠다고 외치고 있는데 말이죠. 새 신임 사장 메이슨이 자신 있게 데려온 루키라고 볼 수 없는 타격입니다.] [오. 하지만 제임스는 수비가…….] [예, 호러 그 자체죠.]약속한 20타석은 지나갔다.
유행운은 고작 시범 경기에 왈가왈부하는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는 아내에게서 걱정하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방금 20타석을 신고했다. 이제 확인할 건 다 했다. 강속구 투수와 승부하면서 계산하고 어느 타이밍에 배트를 내야 하는지 얼추 알 것도 같다.
배트를 내는 것에 망설이지 않고 헛스윙을 하면서 찾은 감이었다. 몸 상태도 괜찮다. 늘어난 근육량에 서서히 적응하고 있었다.
처음 배트는 한국에서 쓰던 가벼운 무게를 그대로 사용했고 이틀 후에는 조금 더 무게를 늘렸다. 점차 새로운 배트에도 익숙해졌으니 슬슬 기지개를 켤 때였다.
타율은 0.000 / 출루율은 0.048.
도저히 KBO를 씹어 먹고 등장한 선수로는 보이지 않는다. 유행운이 대기 타석에서 가볍게 배트를 휘두르고 타석에 섰다.
[1사 1, 3루. 여기서 20타석 무안타에 그친 0할 타자가 타석에 섭니다.] [지금 위기 아닙니까? 상대 투수 입장에서는 구세주로 보이겠군요. 럭키라는 별명은 상대 투수에게 행운을 주기 위한 수단이 아닌지…….]득점 찬스를 맞이한 유행운에게 의구심이 가득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 경기를 보고 있는 레드삭스 팬들은 물론 한국에서도 욕을 하고 있었다. 보나 마나 헛스윙 삼진이나 병살타나 날릴 거라고. 욕을 하는 동시에 유행운을 영입한 메이슨에게도 노망났다며 손가락을 놀리고 있을 것이다.
“음.”
유행운은 배팅 장갑을 고쳐 끼며 수비 위치를 확인했다.
완벽한 전진 수비였다. 유행운의 타격감이 바닥을 쳤다고 생각하고 전진 수비를 진행하고 있다. 이건 반드시 더블 카운트를 잡겠다는 의지였다.
“날 너무 얕보네.”
물론 그렇게 만들었다.
현재 점수는 3: 5. 두 점 차로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앞서가고 있다. 유행운의 귀에는 야유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한마음 한뜻이다.
볼티모어 팬뿐만 아니라 레드삭스도 함께 야유를 보내고 있었다.
[깊게 들어오는 컷 패스트볼. YU, 한 발 물러서며 공을 피합니다. 볼.]이제 슬슬 기지개를 켤 순간이다.
상대 투수가 발을 차올린다. 유행운이 타격 자세를 취했고 공을 뿌리는 손을 보았다. 살짝 벌어진 두 손가락.
투심 패스트볼.
유행운이 빠른 볼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상대 투수가 선택한 구종이었다.
따아아아악!
유행운이 그대로 공을 잡아당겨 좌측으로 보냈다. 쭉 뻗어 가는 타구를 감상하던 유행운은 기다렸다는 듯 배트를 멀리 집어 던졌다.
이건 도발이다.
상대 투수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동시에, 볼티모어 벤치가 들썩거렸다. 동시에 관중들도 욕설을 내뱉는다.
유행운이 그라운드를 돌며 검지손가락을 들어 입에 대었다. 볼티모어 팬이든 레드삭스 팬이든, 관중을 보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오, 홈런 세리머니가 공격적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국에서 온 이 선수를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분명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 이 모습은 마치…….] [예, 입 닥치라는 소리죠.] [부정할 수 없네요.] [배트 플립도 같은 의미일 겁니다.] [닥치라는 거죠.] [그렇죠.] [우리부터 닥칠까요?] [그러죠.]* * *
아무리 시범 경기라 해도 배트플립은 위험하다.
유행운은 너무나 시원하게 배트를 돌려 던져 버렸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다. 하도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말을 많이 해서, 스트레스를 받던 중이었다.
전진 수비를 보고 웃음이 나왔고 빠른 볼로 승부 보려는 투수를 확인한 순간, 배트는 자신 있게 나왔다.
그대로 잡아당겨 만든 3점 홈런.
슈나이더 감독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격한 반응을 보였고 더그아웃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침묵 세리머니를 하지 못하고, 유행운이 들어오자마자 헬멧을 두드릴 정도였다.
물론 아카치는 입술을 삐죽였다.
타격에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에, 7번 등 번호는 머지않아 다시 제 것이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럭키는 다음 타석에 대타 준비하지.”
“아무래도 빈볼이 날아오겠죠?”
“그 럴테지. 미국 놈들은 속이 좁거든.”
“감독님도 미국 사람 아닌가요?”
“나는 캐나다가 섞였네.”
“아, 예…….”
오늘 유행운의 타격은 여기서 끝이었다.
보복구가 날아올 확률이 100%였기에 유행운 대신 타석에 선 제임스가 엉덩이에 강속구를 맞아야 했다.
억울하지만, 가끔은 몸으로 대신 때워 줄 사람이 필요하긴 했다.
“쏘리.”
물론 유행운은 엉덩이에 멍이 들었을 제임스에게 사과를 잊지 않고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