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62
162. 너를 위해서
긴 침묵 끝에 유행운이 시범경기에서 본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감을 잡고 나니, 장타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세 경기 연속 홈런포를 쏘아 올렸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장타를 날리며 자신에게 머문 의구심을 한결 걷어 냈다.
사실 시범 경기로는 부족하다. 동양인이라는 사실은 유행운에게 끝없는 의구심을 가져올 테니 결국에는 정규 리그에서 보여 줘야 사람들이 납득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마지막 시범 경기.
유행운은 라이벌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2점 홈런을 터트렸다. 무력시위를 하듯, 사흘 연속 홈런포를 가동했던 유행운에게 아주 오랜만에 터진 손맛이었다.
이날 경기를 보러 온 메이슨은 흐뭇하게 웃으며 턱수염을 매만지고 있었다. 유행운이 시범 경기가 시작되고 좀처럼 안타를 신고하지 못했을 때도 메이슨은 여유가 있었다.
그 나흘이라는 시간 동안 욕이란 욕을 다 먹었지만, 계속 말했던 것처럼 그저 시범 경기일 뿐이었다. 그 어떤 의미도 없는.
“캠린도 제 모습을 찾았고…….”
캠린 하긴스는 명백한 모험이었다. 아니, 모험보다 도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의 5년간 성적을 살펴보았고 몸 상태도 긴밀하게 체크했다.
최근 2년간 바닥을 긴 선수라고 해도 건강하다면 에이스 역할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투수.
암흑기의 레드삭스에게는 강력한 에이스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유망주를 내주며 영입했다. 도박이 절반은 성공했다.
아직 본격적인 시즌에 들어간 건 아니기에, 시범 경기에서 잘 던졌다 해도 미지수였다.
“유행운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메이슨은 자신감이 있었다.
캠린이 도박이었다면 유행운은 안전한 선택이었다. 신임 사장으로서 처음 맺은 계약이 유행운이었다.
비록 내부에서 지나치게 오버페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메이슨은 비싼 값이라도 그를 꼭 영입하고 싶었다.
고교 시절의 유행운은 사실 보스턴에서 그리 급하지 않은 매물이었다. 게다가 완성된 기량도 아니었기에 숙성할 시간도 필요했다.
물론 그를 그 시기에 영입했다면 완벽하게 저점 매수에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유행운은 여전히 저점이었다.
“아쉬운 건…….”
최소 3년은 지켜야 했다.
메이슨은 유행운에게 3년 8천만 달러를 제시했다. 유행운을 아끼는 마음으로 지켜보았기에 후려칠 생각은 결코 없었다. 이런 선수는 최대한 잘해 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 기회에도 다시 함께할 수 있는 법이었다.
물론 1년을 더한 계약 기간을 채리원은 수용하지 않았다. 옵션을 끼워 넣되, 2년 8천만 달러를 제시하는 모습에 혀를 찼다.
메이슨이 보인 성의를 확인하자마자 가격을 올려 버린 것이다.
“그 여자도 대단한 여자야.”
분명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르고 그 이후에 조금씩 깎이더라도 원래 생각했던 가격을 받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2년 6천만 달러가 되었고 다저스로 가겠다는 채리원의 모습에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다저스보다 급한 건 레드삭스였다. 다저스는 공격적인 투자로 포스트시즌 단골 팀이었지만, 레드삭스는 암흑기였다.
물론 레드삭스도 할 말은 있었다. 포지션을 지켜 줄 수 있다는 것. 그 말에도 채리원은 돈을 많이 주는 구단이 최고라고 말했기에 할 말은 없었지만…….
“참 대단한 여자야.”
듣기로 양키스의 민현웅이 내년 FA를 위해 에이전시를 갈아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채리원.
선수가 직접 찾아갈 정도로 채리원의 돈 뽑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현재 뉴욕 양키스의 주축 타자로 성장한 민현웅이었고 3루 수비도 많이 올라왔다.
문득 메이슨은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쉬운 포지션은 아주 많다. 어찌 된 게, 이 팀에는 똑딱이만 한 바가지였다.
한 방 있는 타자가 절실하다. 메이슨이 주판을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또 그 여자를 만나야 하는 건가.”
* * *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준비해 준 집은 아주 좋았다.
입지 조건도 좋았고 안전하기도 했다. 항상 생각하지만 미국은 왜 현관이 이렇게 튼튼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유행운은 집을 좀 손을 볼까 하다가 결국 대문을 튼튼한 재질로 바꿔 버렸다. 현관도 마찬가지였다. 총기 소지가 가능한 국가에서 원목으로 된 현관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압빠!”
퇴근해서 들어오는데, 오랜만에 보는 딸이 아주 많이 큰 것 같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데, 그 모습을 자세히 지켜볼 수 없어서 아쉬울 뿐이었다.
와락 안기는 딸을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된장찌개 냄새가 풍겨 왔지만 유행운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식사 안 했지?”
“응.”
냄새가 좋다.
된장찌개 냄새와 두부부침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아, 두부는 먹을 수 있겠다. 유행운이 그런 생각을 하며 식탁에 앉았다.
“된장찌개는 국물은 괜찮고 건더기만 먹을게.”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아내에게 다가갔다.
백유정이 두부를 뒤집으며 웃는다. 뒤에서 끌어안으니 이제야 집에 왔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식단 관리?”
“응. 닭 가슴살에 반찬으로 먹을게. 고마워.”
“고맙긴. 나도 이현이도 밥 먹어야 하는데.”
쪽.
가볍게 뽀뽀를 하고 도울 건 없는지 주변을 살핀다.
“딱히 할 건 없어. 아, 이현이 먹이게 김치 물에 좀 씻어 줘.”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팔을 걷어붙이고 돕는다.
요즘 백유정은 혼자 애를 보고 있었다. 아이는 쑥쑥 자라지만, 아직 어린이집에 갈 나이가 아니었다. 보모도 생각했지만 부모 입장에서 못 미덥다.
해서, 백유정은 자택 근무를 주로 했고 가끔 베이비시터의 도움을 받았다.
“요즘 이현이가 김치를 잘 먹어. 이제 세 살 됐다고 그러나?”
“내가 김치를 엄청 좋아했거든.”
“그럼 자기 입맛 닮았나 보다.”
어른이 먹을 두부는 그대로 접시에 놓고.
아이가 먹을 두부는 으깬다. 소금 자체가 별로 들어가지 않고 아이 입맛에 맞춘 터라, 된장찌개도 두부부침도 모두 삼삼했다.
유행운이 아이 식판에 으깬 두부와 된장찌개를 담았다. 그리고 소금 간이 안 된 김도 놓인다.
“내가 먹일게. 당신 먼저 밥 먹어.”
유행운이 육아를 함께한다.
야구하느라 요즘 육아는 백유정이 맡아 하고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양가 부모님이 많이 도와주었는데, 이제는 오롯이 혼자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자, 아.”
김 위에 밥과 으깬 두부를 올려 먹기 좋게 말아 준다.
요즘 뭐든 잘 먹는 이현이가 입을 벌리자 그 속에 쏙 넣어 주었다. 맛있는지 발도 동동 구르고 손도 파닥거린다.
“한 여름쯤에는 혼자 먹게 둘까 봐.”
“그래도 돼?”
“그쯤 되면 그래도 돼. 10월생이라 또래 애들보다 좀 늦지만, 그쯤 되면 얼추 먹을 수 있는 나이야.”
다만 치울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도 딸은 혼자서 먹고 싶은지 오물거리며 아빠가 만든 김밥을 삼키고 수저로 된장찌개를 먹고 있었다. 여기저기 흘리면서도 웃는다.
“우리 딸, 맛있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새로운 김밥을 만들었다.
“요즘 이현이한테 입맛 맞춰서 그런가? 밖에서 못 먹겠어. 너무 짜.”
“외국인들이 더 짜게 먹긴 하지.”
“한국은 맵고 자극적인데, 여긴 그냥 짜. 소금을 들이부은 맛이야.”
“나도 그래서 식단만 챙겨…….”
기껏 키운 근육량을 다시 빼앗길 수는 없다.
물론 시즌을 치르다 보면 어느 정도 포기할 부분이 있겠지만, 시즌 초에는 지금 이 몸을 지키고 싶은 유행운이었다.
사실 외국 음식은 짠 것보다도 먹다 보면 물린다. 그 이유 때문에 오늘 반찬으로 먹는 된장찌개가 심심하더라도 오랜만에 먹는 맛이 났다.
“근데 아무리 짜도 매운 떡볶이가 먹고 싶어.”
“사다 줄까? 여기 근처에 한식당 있잖아.”
“아니, 미국 맛 나는 떡볶이 말고…….”
“아…….”
숙연해진다.
한국에서 아내는 종종 매운 떡볶이로 유명한 브랜드를 주문해 먹었었다. 지금 그 떡볶이가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시즌 끝나고…….”
“괜찮아. 가끔 생각나는 거야, 가끔.”
“미안해.”
“자기가 미안할 건 없어. 지금 성공해서 미국에서 살고 있잖아. 이것도 좋은 경험이야.”
“맥주 가져다줄까?”
“어!”
“오늘은 내가 이현이 볼게. 편하게 마셔.”
미국의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역시 맥주가 맛있다는 거다.
한국 맥주보다 더 맛있다. 유행운은 술을 하지 않지만, 백유정은 술을 좋아한다. 냉큼 맥주를 가져온 유행운이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 집에 남편 있으니까 좋다.”
“그치? 오늘 그럼 오랜만에…….”
“이현이 자면.”
“아…….”
“요즘 툭 하면 깨서 울어.”
“응, 알았어. 내가 엄청 놀아 주고 중간에 깨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
그런 거다.
아빠의 시간이 있으면 남자의 시간도 있는 거다.
“으아아아아앙!”
하지만.
늘 그렇듯, 자식이 있다면 밤에 자지러질 듯 우는 아이의 시간도 있는 법이다. 이현은 그 울음이 엄마, 아빠의 오붓한 시간을 망치는 것도 모른 채 미친 듯이 울었다.
* * *
“럭키. 이거 내가 직접 쓴 부적이야.”
“…….”
유행운은 오늘 시즌 첫 선발로 나서는 캠린이 내민 부적을 보았다. 직접 펜으로 그렸는지, 엉성한 부적이었다.
“직접 만들면 더 효험이 깊어지지 않을까 해서.”
“효험?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근처에 사는 한국인이 알려 줬지. 부적은 효능이 아니라 효험이라더군.”
“그래서?”
“너를 위해 만들었어.”
“오…….”
부적을 받아 든 유행운이 멋진 필기체를 읽는다.
아니, 읽을 수 없다.
“미안하지만, 난 아직 필기체까지는 못 읽어. 연습 중이야. 와이프가 내게 알려 주고 있긴 한데, 아직은 좀 어려워.”
“오! 그럼 말로 해석해 주지.”
“그래.”
그가 유행운을 위해 직접 만든 부적의 의미는 이러했다.
“오늘 자네는 만루 홈런을 치게 될 거야.”
“오…….”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그래, 나를 위해서.”
“그렇군.”
뭐, 만루 홈런을 치게 된다면 좋긴 하겠지만…….
캠린 하긴스가 토속 신앙에 너무 깊게 빠진 건 아닌지 그게 걱정이었다.
“그럼 이제 속옷에 넣으라고.”
“뭐라고?”
“속옷에 넣고 경기를 뛰어야지. 그래야 효험이 생기지 않겠어?”
“…….”
“당장 화장실에 가서 넣고 오라고.”
이를 어쩐담.
거짓말이 되돌아왔다. 유행운은 일단 부적을 받고 빙긋 웃었다. 그럼 또 거짓말하면 된다. 부적을 들고 화장실에 가서 그냥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 * *
보스턴 레드삭스는 이번 시즌을 준비하며 전략 보강에 나섰다.
가장 큰 변화는 1선발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오늘 개막전에 나서는 선발 투수는 캠린 하긴스였다. 어째 부적의 힘이라 해야 할지 다소 이상해진 그였지만, 사라진 자신감을 되찾았다.
작년 시즌, 팀의 에이스 역할을 맡았던 잭 워커는 긴 머리를 흩날리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어깨춤을 추는 걸 보니, 1선발에서 밀려도 큰 타격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성격이 쾌활했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고 그저 야구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본인이 선발 투수로서 마운드에 오르는 날에는 아주 조금 예민해진다. 머리를 과하게 정리한다고 해야 하나?
공 하나를 던지고 모자를 벗어 웨이브 진 머리를 정리하는 게 그의 루틴이었다. 그 말은 공 하나 던지고 난 후에 준비 시간이 길다는 뜻이기도 했다.
요즘은 그래도 빨라졌다.
12초 룰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SS YU / 0.000]몸을 풀며 전광판을 본다.
유행운은 올 시즌 2번 타자로 투입된다. 감독은 그의 타순을 고민했는데, 팀의 4번 타자를 한순간에 갈아치울 수는 없었다.
물론 아직 유행운이 검증 안 된 선수라는 점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2번 타순은 파격적이었다. 대체로 그를 8번이나 9번에 놓을 거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유격수는 하위 타순에 기용하기도 하니, 신인인 유행운의 타순은 하위 타순이 더 맞는 옷이라고 보는 여론이 많았다.
[YU가 2번이라니……. 감독이 대가리에 총을 맞았나 보군]└ 시범 경기 성적을 보면 2번 자리도 모자라지
└ 시범 경기는 그냥 시범일 뿐이야 이 친구야
└ YU가 부담감으로 돌연사하면 어떡하지?
└ 놉, 슈나이더는 현명한 선택을 했어 시범 경기에서 유행운은 홈런 네 개를 때렸고 타율도 3할을 찍었다고 볼넷도 미친듯이 많이 얻었어 그는 2번이 딱 맞는 옷이야 심지어 럭키가 KBO에서 2번 타자로 계속 출장했다는 걸 아는지?
└ 우리 타선은 빈약해 YU가 보여준 모습이라면 2번 타자가 맞아
└ 현대 야구는 2번이 가장 중요하다고…….
└ 일단 감독이 대가리에 총을 맞았는지 아닌지는 경기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아
└ 나는 YU가 실패할 거라는 것에 내 손목을 걸겠어
└ 오, 친구……. 몸을 아껴야지
└ YU는 확실히 저평가되었어 시범 경기 동안 실책 하나도 없었다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라? 시범 경기에서 실책이 하나도 없는 유격수는 럭키가 유일하다고! 타격에서도 재능이 있다는 걸 보여줬어 지금 이 반응을 보면 난 아직도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다고 강하게 느껴!
└ KKK단 같은 거겠지
└ 시발 레이시스트 지겨워
└ 우리 팀의 아카치도 동양인이야 두 명이나 선발 라인업에 동양인이 있는데 피부색으로 차별을 두는 건 정말 역겹다고
└ 백인들은 지나치게 우월감에 젖어 있지
└ 제발 YU가 잘하길 빌어 이러다가 정말 메이슨이 암살당하겠어
└ 일단 너부터
└ 좆까 시발아
└ 저거 한국어지? 여기 한국인이 많나 보군
└ 시발놈들아 유행운은 신이다! 갓!
└ 예아, 유니폼이나 많이 사주라고 돈이라도 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