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63
163. 불운의 레드삭스에게 행운을
보스턴 레드삭스는 시작부터 원정길을 떠난다.
첫 원정 경기는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4연전이었다. 그 이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4연전이 잡혀 있었다.
3월 31일 월요일 2036시즌 메이저리그가 문을 열었다.
시즌 초 일정은 굉장히 빡빡하다. 보통 메이저리그는 6일 경기를 하고 하루를 쉬는데, 일정에 따라 열흘 이상 휴식일이 없을 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한국보다 땅이 넓기 때문에 일정은 최대한 맞추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다. 만약 우천 취소로 경기를 하지 못했다면 그 다음 날 바로 더블헤더를 잡는 일도 잦았다.
결국 체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지명타자는 주축 선수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좋은 제도였다. 한때는 투수가 타석에 서서 타격을 했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내셔널리그는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명타자 제도 없이 시즌을 운영했지만, 시대에 맞춰 리그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재미를 위해 지명타자 제도를 받아들였다.
“잡생각은 그만두고…….”
유행운은 시애틀의 홈구장 T-모바일 파크를 둘러보았다.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돈 냄새가 난다.
MLB 구단은 아무리 스몰마켓이라 불리는 구단이어도 KBO 10구단하고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크고 넓다. 시범 경기를 치르며 느끼긴 했지만, 역시 정규 시즌이 되니 다른 마음이 들었다. 유행운은 가볍게 풋워크를 하고 경기장을 돌며 몸을 풀었다. 마지막은 스트레칭으로 마무리 지었고 낯선 시선들을 마주했다.
동양인 선수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물론 익숙해지면 선수 중의 한 명일 뿐이겠지만, 유행운은 현재 신인이었다. 메이저리그에 들어온 새로운 선수를 향한 궁금증과 경계는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
[레드삭스는 올 시즌 공격적인 영입을 단행했습니다. 트레이드도 활발했고요. 대표적인 선수가 오늘 1선발로 경기를 나서는 캠린 하긴스입니다. 이 선수, 부상으로 장기간 슬럼프를 겪었는데요.] [시범 경기에서 완벽하게 부활했다는 평가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확실치 않죠.] [네, 슬럼프를 겪기 전의 캠린이라면 확실히 압도적인 선수가 맞습니다. 레드삭스의 새 신임 사장 메이슨이 직접 주도한 트레이드인데,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합니다.] [사실 메이슨이 캠린을 데려 온 이유는 뚜렷하죠. 명분도 있고요. 잭 워커, 이 한 명의 투수로는 긴 시즌을 이겨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캠린이 슬럼프를 떨쳐 낸다면 유망주 두 명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네, 반면에 YU는 그 어떤 것도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유격수입니다. 2년 6천만 달러. 계약 조건이 알려지고 많은 분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어요.] [특히 레드삭스 팬이 말이죠.] [네, 맞습니다. 그들이 가운뎃손가락을 과감하게 들어 올렸죠. 그 정도로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YU는 시범 경기 성적이 아주 좋죠? 20타석 무안타에 그칠 때는 메이슨이 도박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는데, 그걸 단숨에 뒤집었어요. 하지만 그것 역시도 그저 시범 경기일 뿐이죠.] [사실 캠린이나 YU나 똑같습니다. 레드삭스에게 필요한 자원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그들이 얼마나 해 줄지 모르겠지만, 만약 메이슨이 기대한 만큼 성적을 내 준다면 올 시즌 레드삭스는 정말 달라질 겁니다.] [네, 오늘 날씨가 무척 좋습니다. 시애틀 매리너스 홈 개막전! 레드삭스와의 맞대결, 이제 시작합니다.]* * *
2번 타자는 편하다.
지금까지 자주 섰던 타석이 2번이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개막전이라 그런가, 평일 임에도 경기장은 관중으로 가득 들어찼다.
재밌는 건 원정석을 가득 채운 레드삭스 팬이었다.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대체로 좀 강하다. 성격도 있고 밤비노의 저주를 마주하며 더욱 강해졌다.
최근에는 5년간 지속되는 암흑기에 더더욱 악독해졌다. 그들이 잘하는 것, 새로운 동양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는 일.
아마 아카치도 똑같은 야유를 받았을 것이다.
딱히 슬프다거나 위축된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모두 예상했던 일이었고 앞서 미국 진출에 성공한 민현웅에게서도 자주 들은 내용이었다.
민현웅은 성질이 더러워서 인종차별적 욕을 하는 관중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한국어 욕을 퍼부었지만 유행운은 그냥 무시했다.
[1번 타자 아카치. 스위치 타자로 주로 좌타로 타격을 합니다. 재밌네요. 테이블세터 라인을 동양인으로 꾸렸어요.] [아카치는 작년 시즌 1번 타자로 주로 활동했고 타격감이 내려가면 8번이나 9번에도 배치되었던 선수죠. 장타는 거의 실종 상태이지만, 출루형 타자입니다.] [수비가 괜찮아요, 아카치는.] [네, 스윙. 허공을 가릅니다.]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아카치에게서 어떻게든 출루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개막전에 나서는 선수는 당연히 공이 좋을 수밖에 없다. 유행운은 집중해서 타이밍을 맞추었다.
따악!
잡아당긴 타구가 2루수 정면으로 간다. 유행운이 혀를 찼고 아카치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쓰며 내달렸다.
“아웃!”
열심히 뛰었지만, 그렇게 됐다.
3루수 정면도 아니고 2루수 정면이었다. 이걸 흘리거나 더듬거나 송구 실책을 하면 당장 마이너리그에 가야 하지 않을까?
[자, 이제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리며 나타난 루키가 타석에 서네요. 이 선수 별명이 럭키인데, 과연 불운의 레드삭스에게 행운을 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언제나 그렇듯 처음은 중요하다.
공이 날아온다. 바깥 코스였고 깊었다. 그대로 공을 따라가며 체감 구속을 몸으로 느꼈다.
“볼.”
심판은 정확한 판정을 했고 투수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포수가 미트질을 열심히 했지만, 공 한 개가 빠져나간 코스였다.
153km/h.
좋은 구속이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 구속을 던지면 강속구 투수라 할 수 있었다. 유행운이 어깨를 풀고 다시 배트를 든다.
투수 역시도 지체 없이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공이 맹렬하게 날아온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살짝 떨어지는 궤적을 따라 풀스윙을 당겼다.
따아아아아악!
유행운에게 야유를 보내던 레드삭스 관중이 벌떡 일어난다. 유행운은 멀리 날아가는 타구를 눈으로 확인했다.
바닥에 배트를 내려놓고 1루를 향해 달려간다. 함성 소리가 귀에 울렸고 그 순간, 유행운의 여론이 10% 정도 긍정적으로 변했음을 느끼게 했다.
* * *
처음으로 해설이 유행운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했다. 성을 부르거나 별명을 주로 불렀던 그들인데, 데뷔 첫 타석 홈런에는 한국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밖에 없었다.
유행운은 그라운드를 여유롭게 돌아 마중 나온 감독과 손바닥을 경쾌하게 마주쳤다.
“…….”
“…….”
감독과 격한 세리머니를 하고 들어오니, 더그아웃 분위기는 침착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들어오는 유행운을 무시하고 있다.
뭐, 익숙한 침묵 세리머니였다.
유행운은 담담하게 자리를 찾아 앉았다. 보호대를 풀고 경기를 지켜본다. 사실 기쁘긴 하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곳이 미국이었다.
여기서 야구를 할 수 있다니…….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꿈같은 일이 펼쳐졌다.
“우와아아아악!”
상념에 젖은 그 순간, 순식간에 선수들이 몰려와 유행운의 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때리고 어깨를 치고 정강이를 건드리고…….
“좀 아픈데…….”
유행운이 거대한 덩치들 사이에 끼여서 사정없이 흔들렸다.
* * *
1:0.
솔로포를 가동한 유행운이 팀에게 리드를 선물했다.
캠린은 마운드에 올라가기 전에 갑자기 유행운의 엉덩이를 터치했다.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유행운이 몸을 피하며 경계했다.
“럭키.”
“어.”
“부적 제대로 속옷에 넣은 거 맞아?”
“어? 당연하지!”
유행운이 순간 당황했다. 캠린은 계속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유행운은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의 눈빛이 다소 두려움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에 대고 맹세할 수 있어?”
“캠린.”
“잘 들어 봐. 나는 소원으로 만루 홈런을 기도했어. 하지만 넌 솔로 홈런을 날렸다고. 내 믿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어. 알아?”
“캠린, 잘 들어 봐. 부적이 모든 걸 다 이뤄 주지는 않아. 그런 물건이 있으면 이미 부적은 다 팔렸을 거라고! 솔드아웃!”
“그렇지…….”
“자, 잘 들어 봐. 홈런은 홈런이야. 주자가 앞에 쌓이지 않아서 솔로 홈런이 된 거지. 그렇지?”
“응.”
“그럼 그 부적은 효험을 한 셈이지. 물론-”
“…….”
“내가 잘 친 거야.”
그게 사실이다.
아무리 하늘이 축복을 내려도 실력이 없으면 운빨도 안 터진다. 물론 캠린이 쓴 부적이 의미가 있다면 홈런에 대한 마음을 더 강하게 해 주었겠지만, 이 역시도 상대 공을 잘 때린 유행운의 덕이다.
“그렇지.”
유행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부적에 의지하는 건 좋지만, 너무 가면 안 돼. 적당히. 캠린,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하다고.”
엉덩이를 털릴 뻔해서 그런가?
더듬거리기 바쁘던 영어 실력이 조금 상승한 느낌이었다. 유행운은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를 손으로 가렸다.
느낌이.
이 뭔가 삐뚤어진 듯한 이 서양인이 자신의 엉덩이를 까서 부적이 있는지 확인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넌 열심히 던지면 돼.”
“어어.”
캠린이 유행운의 등살에 못 이겨 더그아웃에서 나갔다.
“넌 잘할 수 있어.”
“…….”
“지금의 넌 아프지 않잖아?”
“응.”
“건강하지?”
“어.”
“그럼 가서 공이나 던져.”
수비 위치를 잡는다.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름은 한국이 더 무덥기 때문에 체력 손실이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었다.
유행운은 무더운 여름이 되면 체력이 뚝뚝 떨어졌다. 심지어 건장한 외국인 투수도 한국의 살인적인 습한 더위를 경험하면 당황하고 뒷걸음친다.
더위에도 깔끔한 게 있고 기분 더러운 게 있는데, 한국의 더위에는 기분 더러운 습함이 포함된다.
따아악!
초구를 강타한 타구가 투수 옆을 스치고 빠르게 빠져나간다. 유행운이 스텝을 밟고 내야를 빠져나가려 하는 공을 몸을 던져 막아 냈다.
[YU, YU, YU! 글러브로 공을 떨어뜨리고 바로 주워 스로우! 강하게 던진 공이 정확하게 1루수 미트에 들어갑니다!] [수비는 역시 완벽하네요. 타격에서 고전할 거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첫 타석에서 홈런을 생산했고 수비에서는 빠져나갈 수도 있는 타구를 호수비로 건집니다. 아, YU. 이 모습이 시즌 내내 유지된다면 무섭겠는데요?]그 이후, 캠린 하긴스는 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한 타자는 헛스윙을 유도하여 돌려세웠고 그 이후에는 삼구삼진이었다.
시작이 좋다.
새로 팀에 합류하여 레드삭스의 에이스 역할을 부여받은 캠린 하긴스가 좋은 모습을 보였고 유행운 역시 첫 득점을 만들어 내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메이슨, 그 할배가 여전히 시력에 문제없나 보군.”
슈나이더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어느 순간부터 캠린 하긴스가 공을 던지고 발목을 만지던 습관이 사라졌다. 긍정적인 변화였다.
한 시즌을 운영하는 데 원투 펀치가 제대로 가동된다면 작년 시즌보다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유행운에게 놀랐다.
좁은 물에서 대장 노릇 해 봤자, 미국에서는 별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기용해 보니 느낌이 달랐다.
타구질도 좋았고 무엇보다 수비를 할 때, 내야에서 안정감이 느껴졌다.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그것만으로도 투수의 심리적 안정을 돕고 있었다.
“좋아, 아주 좋아.”
슈나이더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흡족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