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69
169. 제발 나 좀 살려줘
“곰! 고오옴!”
처음 유행운의 딸은 거대한 곰 한 마리 같은 민현웅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었다. 미국에 와서 외국인을 볼 때마다 무서워하던 걸 조금씩 적응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민현웅은 외국인이 아님에도 누가 봐도 거대하고 살벌하게 생겼다.
엄마를 똑 닮은 귀여운 아이를 보고 그 거대한 솥뚜껑 같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던 민현웅은 아이가 자지러지며 울자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고 묵묵히 식사를 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얼굴 좀 봤다고 꺄르르 웃는 이현이었다.
“곰!”
“이현아, 삼촌이라고 해야지.”
옆에서 엄마가 예절을 가르친다.
“응! 곰 삼똔!”
아직은 발음을 또렷이 할 수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이제 울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민현웅은 감격한 눈치였다.
“삼촌한테 가 볼래?”
그 말에 딸이 고개를 저었다.
“왜? 이현이 곰 좋아하잖아.”
“으응…….”
고민하던 딸이 민현웅을 힐끔 보며 말했다.
“몬땡겼더.”
“아.”
그 말을 모두가 알아들었다.
민현웅은 못생겨서 싫단다. 생각해 보면 이현이는 벌써 얼굴을 따지고 들었다. 그런 이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삼촌은 역시 백유진이었다.
아빠도 마다하고 백유진에게 안아 달라 하고 울다가도 백유진 삼촌만 보이면 방긋 웃었다. 유행운은 그게 못내 마음이 쓰라렸는데, 이제는 그냥 마음을 놓았다.
유진 외삼촌을 좋아하는 덕분에 육아를 분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시즌에 백유진만 있으면 하루가 뚝딱이었다. 지금은 그 잘생긴 외삼촌이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미안해. 우리 애가 좀 얼굴을 따져.”
“…….”
이번에는 다른 상처를 받은 민현웅의 눈이 촉촉해졌다.
“상처받지 마, 애가 하는 소리니까…….”
민현웅의 어깨를 토닥인다.
오늘 팀이 패배해서 기분도 좋지 않을 텐데, 본의 아니게 아이가 순수하게 상처를 주었다.
하필 이현이는 언어 발달이 또래보다 빨랐다. 엄마, 아빠라든가 아주 짧은 문장 정도는 발음이 불분명해도 구사할 수 있었다.
“이현아. 사람한테 함부로 못생겼다고 하는 거 아니야.”
“으응……?”
“알아들었잖아. 그렇지?”
“으응…….”
“아무리 현웅이 삼촌이 못생겼어도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아니, 저기요.
유행운이 당황한다. 지금 훈육을 하고 있는 아내는 아주 작게 속삭이고 있지만,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힐끔, 유행운이 민현웅을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고 누가 봐도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딸이 아니라 아내가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었다.
“야…….”
유행운이 고개를 돌려 민현웅을 보았다.
“내가 그렇게 못생겼냐?”
떨리는 목소리.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은 애잔한 모습이었지만…….
“글쎄……?”
차마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민현웅이 입술을 삐죽이며 크게 한숨을 쉰다. 마음의 상처와 쓰라린 외모에 대한 상처를 안은 채,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이현아. 삼촌 갈게.”
민현웅이 마음의 상처를 감추고 손을 흔들었다.
“응! 곰 삼똔 잘 가!”
그래도 이현이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자, 민현웅이 미소를 지었다.
“너도 참 다행이다.”
“왜?”
“딸이 엄마 닮아서.”
* * *
뉴욕 양키스와의 3연전에서 레드삭스는 선방했다. 2승 1패를 가져왔고 14경기 5승 9패를 신고했다. 승률은 35%로 아주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이어진 주말 3연전은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대결이었다.
지금 보스턴 레드삭스는 아메리칸 리그에서 당연히 꼴찌다. 반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다행히 뉴욕 양키스와의 대결에서 승수를 쌓았으며 분위기도 최대한 끌어올렸다.
“저 이번 주말만 경기하면 월요일 쉬니까, 좀만 기다려 주세요.”
지난주 화요일에 휴식하고 계속 경기를 이어 가고 있다.
아직은 시즌 초였고 홈에서 경기 중이기 때문에 따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서 몸 상태는 좋았다.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지금 부모님은 열심히 여행 중이다.
보스턴은 날이 따뜻했고 공원도 많았다. 어른들이 여행하기에 딱 좋았다. 이 과정에서 백유정이 고생했다.
미술관 같은 관광지 예약을 해야 했고 아이도 돌봐야 했다. 물론 부모님이 오셔서 아이를 케어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마냥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쉬는 날이 오면 잠시 운동을 뒤로하고 부모님을 모시는 데 신경 쓸 생각이었다. 이제 미국이라 자주 올 수도 없거니와, 하루 운동 안 한다고 실력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편히 해, 편하게. 운동이 더 중요하지.”
장인어른은 그사이 얼굴이 더 좋아지셨다.
유행운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와 인사를 하고 이제 출근을 해야 한다.
“압빠!”
“응.”
“안녀엉!”
“안녕!”
유행운이 몸을 낮추고 두 팔을 벌리자 아이가 달려와 포옥 안겼다. 작은 아이가 안기자 기분이 몽글해지는 느낌이다.
“아빠, 뽀뽀.”
볼을 내밀자 익숙한 듯 뽀뽀를 해 준다.
아무래도 이 맛에 애를 낳아 키우는 듯했다.
어색했던 미국 생활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가장 걱정했던 아이도 별 탈 없이 적응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제 부모가 되어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게 되어 그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뭐지……?”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니, 다들 손에 부적을 들고 있다.
지금까지 부적 광인은 단 한 사람이었다. 바로 캠린 하긴스만 부적을 맹신했다. 단순히 의지할 데가 필요한 거라는 걸 알지만, 파란 눈을 가진 외국인이 할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카치, 그게 뭐야?”
“부적. 네가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아, 알아. 아는데…….”
“캠린에게 들었어. 네가 부적 캠린 줬다며.”
“응.”
“나도 하나 가져 보려고.”
“왜?”
“음…….”
아카치가 고민하더니 뒤늦게 입을 열었다.
“그냥, 너한테 이상한 기운이 있는 것 같아서.”
“뭐?”
“이상하다기보다는…….”
“…….”
“긍정적인 기운이 있는 것 같아.”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카치는 손에 들고 있던 부적을 내게 내밀었다.
“뭔데?”
“여기에 입김 좀…….”
“What?”
“부탁해.”
유행운 손에 부적이 쥐어진다.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카치가 얼른 하라는 듯 손짓했고 유행운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부적을 들었다.
“호오…….”
아니, 대체!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는데!”
다들 미쳐 가는 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손에 부적을 들고 있을 리가 없다. 아카치가 만족스럽다는 듯 부적을 돌려받았다.
“헤이.”
그리고.
이번에는 프랭키였다. 1루수에 3번 타자로, 유행운의 뒤를 받치고 있는 타자였다. 최근 조금씩 타격감이 오르고 있었는데, 그의 손에도 어김없이 부적이 들려 있었다.
“나도 부탁해.”
왜 이래, 진짜.
“이거 받고 나서 홈런 쳤어.”
“그게 부적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아니야. 동양의 신비! 어메이징 코리아!”
“오 마이 갓…….”
속이 터진다.
괜히 가짜 부적을 캠린에게 선물했다. 골이 띵한 유행운의 엉덩이에 프랭키가 부적을 문댔다.
“뭐,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유행운이 프랭키를 밀쳤다.
“놀랐다면 미안. 캠린이 속옷에 이걸 넣으면 효과가 극대화된다더군. 자네 엉덩이라면 행운 그 자체 아니겠나?”
“오…….”
“실례하겠어. 엉덩이 좀 이리 주겠어?”
“안 돼. 다들 미친 게 분명해!”
유행운이 놀라 저 멀리 도망갔다.
* * *
기가 쭉 빠졌다.
유행운은 경기 시작 전부터 기가 빨린 걸 느꼈다.
마치 무당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저기서 부적을 들고 찾아와 기운을 불어넣어 달라는데, 이게 대체 야구 선수가 부탁할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YU.”
감독이 경기 시작 전에 유행운을 부른다.
“이거 말인데…….”
“네.”
“나도 그 기운 좀 불어넣어 줄 수 있나?”
“예……?”
유행운이 어색하게 웃었다.
설마 했는데, 슈나이더 감독이 쑥스러운 듯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내고 있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팀의 감독까지 미신을 믿는다.
“부탁하네.”
슈나이더는 지금 경질 위기다.
작년도 최하위였고 올해도 영 좋지 않은 스타트를 끊고 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건, 팀 뎁스가 얇다는 걸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건데…….
그 이유로 계속 감독이 경질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면 대전 호크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은 원래 냉정한 법이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유행운이 체념하고 부적을 받았다. 하지만 내키지가 않는다. 부적을 들어 입김을 불어 넣는다거나, 두 손으로 부적을 감싸고 기도하는 것들…….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호오…….”
하, 진짜 욕 나온다.
유행운이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며 감독에게 부적을 돌려주었다. 슈나이더가 껄껄 호탕하게 웃더니, 유행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네만 믿겠네.”
“네?”
“믿을 건 자네뿐이네…….”
제발 나 좀 살려 줘.
* * *
“그렇지! 그거야!”
슈나이더 감독이 박수를 뻑뻑 치며 기뻐한다.
[이야, 1회 말부터 아카치가 선제 홈런을 날렸습니다. 아, 이 선수가 홈런이 많은 타자는 아니었잖아요? 놀랍네요. 지난 시즌, 홈런이 딱 4개였는데요.]그렇다.
공격이 시작하기 무섭게 아카치가 놀랍게도 홈런을 때렸다. 유행운이 행복한 얼굴로 달려오는 아카치를 미묘한 눈으로 보았다.
아카치가 달려와 점프한다. 마치 두 팔을 벌려 받아 달라는 것처럼.
“왜 이래, 진짜…….”
유행운이 배트를 떨어뜨리며 아카치를 받아 주긴 했지만, 굉장히 떨떠름했다. 순간적으로 놀라 영어가 아니라 모국어가 나올 정도였다.
“네 덕분이야.”
“그건 아닌 거 같아…….”
끝내기 홈런도 아닌데 너무 과한 리액션이다.
보통 일본 선수는 조용한 편인데, 지금 아카치는 뭔가 약을 한 사람처럼 들떠 있었다. 유행운이 아카치를 돌려보내고 타석에 섰다.
따아악!
[YU가 가볍게 받아 쳤습니다! 여유롭게 1루에 안착하는 행운 유!]레드삭스는 탬파베이 상대로 반등을 노리고 있었다. 시즌 초에 최대한 승수를 쌓아야 한다. 리빌딩 중인 레드삭스였기에, 시즌 초에 패배가 쌓이면 또다시 꼴찌로 시즌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빠아아아악!
“이게 왜…….”
유행운은 3번 타자 프랭키가 날리는 거대한 타구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가 봐도 홈런이었다.
[프랭키! 프랭키가 시즌 두 번째 홈런을 만들어 냅니다! 시작부터 홈런쇼를 보여 주는 보스턴 레드삭스!]이상하다.
유행운이 그라운드를 돌며 생각했다.
“혹시 내 기를 뺏는 거 아니야……?”
아주 불길한 예감이었다.
그와 반대로 더그아웃 분위기는 흥겨웠다.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고 휘파람을 불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주말 경기라 그 어느 때보다 관중들의 환호 소리가 컸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자네가 날 살린다니까!”
바로 슈나이더 감독이었다.
“이 복덩이!”
분명 홈런은 프랭키가 쳤다.
그럼에도 슈나이더는 세리머니를 하며 뒤늦게 들어온 프랭키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유행운의 얼굴을 터질 듯 움켜쥐며 껄껄 웃고 있다.
더 우스운 일은 프랭키도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유행운의 허리를 잡아 들어 올리는 그 행동에 유행운은 어느새 기가 쭉 빠져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제발 날 내버려 둬…….”
유행운은 인싸가 아니다.
사람들과 과하게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MBTI는 E 유형이 아니라 I 유형이 나왔다. 그렇기에 이 과한 관심이 유행운은 버겁기만 했다.
흔들린다.
프랭키가 유행운의 허리를 들어 계속 흔들고 있다. 진심으로 유행운은 이대로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