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26
26. 약속
유행운은 야구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애정한다.
야구를 잃었을 때는 삶의 의미도 함께 잃었고 다시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성과가 없어도 야구를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감독님.”
그러니 유행운이 다시 과거로 회귀했을 때, 느낄 그 희열은 말도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 펑고 더 받고 싶습니다.”
지금 유행운은 울며 퇴장한 임영원 따위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지금은 제대로 받지 못한 6개의 공만 머리에 남아 있었다.
“더 받고 싶다고?”
“네.”
“오늘은 맛보기였는데, 아쉬웠나?”
“오늘은 봐주셨잖아요. 저도 임영원도.”
유행운은 알고 있었다.
이형호 감독이 오늘은 힘 조절을 했다는 걸.
“오늘 이걸 왜 했을 것 같나?”
질문을 받은 유행운이 짧게 생각했다.
“기본기에 대한 중요성 때문 아니었습니까?”
“그건 이미 내가 말해준 거고.”
이형호가 펑고 배트를 든 채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네가 받았던 건 고교 수준에 맞춘 훈련이었다.”
오늘 이형호는 일부러 이 대결을 통해, 유행운의 부족한 점을 끄집어냈다.
지금까지 훈련을 하면서 공을 빠뜨리는 일은 없었던 유행운이었고, 그렇기에 오늘 실수한 그 6개의 공을 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네가 받은 타구는 프로 2군 선수라면 쉽게 받을 거다.”
그 순간, 유행운이 자기도 모르게 발끈했다.
“에이, 설마요!”
유행운도 짧게나마 프로에 있던 사람이었다.
특히 1군에는 아주 스치듯이 머물렀고 대부분을 2군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동안 훈련도 받았고 대충 그들의 수준을 알고 있었다.
“못 믿겠어?”
유행운을 보며 이형호가 말했다.
“내가 은퇴한지 10년은 넘었거든? 한 번 시험해 봐라. 네가 어디로 보내든, 깔끔하게 잡아줄테니.”
이형호가 갑자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푼 이형호 감독이 펑고용 배트를 들고 유행운에게 다가갔다.
“타구 보내봐. 네가 생각할 때 이 정도면 못 잡겠다, 그 정도로 보내 봐.”
“예?”
“딱 열 개만 보여준다.”
“진심이세요?”
“그럼, 당연히 진심이지.”
이형호가 굴러다니는 글러브를 하나 골라 손에 꼈다. 그 모습을 본 유행운도 주저하다가 배트를 들었다.
“정말 갑니다?”
“걱정말고 쳐라.”
“네.”
따악!
유행운이 가볍게 공을 보냈다. 예전 독립리그에 있을 때, 서로 훈련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 순간의 기억을 살려, 그리고 이형호 감독이 보냈던 타구를 기억하며 같은 코스로 공을 보냈다.
그리고.
“?”
이형호는 경쾌하게 스텝을 밟고 순식간에 타구를 쫓아갔다. 어느새 자세를 낮춘 이형호가 포구에 성공했다.
“미친.”
따악!
작게 소름끼친다는 듯 중얼거린 유행운이 이번에는 조금 더 깊숙하게 타구를 보냈다.
“아이구!”
저놈보소.
이형호는 당황하지 않았다.
현역 시절만큼의 눈부신 수비 능력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몸으로도 고교 수준은 압도할 수 있었다.
타격에는 재능이 없었지만, 수비에는 재능을 타고난 천재의 수비는 나이를 먹었다해서 녹슬지 않는다.
“와.”
이번에도 이형호 감독은 가볍게 포구에 성공했다.
살도 찌고 담배도 피우며 스트레칭도 잘 안 하는 양반인데, 저런 유연함과 부드러움은 어디서 나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따악!
마지막 타구를 보낸다.
‘왜 가볍지?’
스텝을 밟는 이형호는 깃털처럼 가볍다.
몸무게만 보면 묵직해야 하는데, 마른 멸치 같은 유행운보다 가벼운 발놀림이었다.
게다가 타구를 쫒아가는게 부드럽다.
성큼성큼, 몇 걸음 뗀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타구를 정면에 두고 있었다.
하체를 낮추는 것도 힘들이지 않는다.
늘 했던 것처럼 엉덩이를 내려 자세를 낮추고 부드럽게 포구에 성공한 후, 공을 빼는 속도까지 확실히 달랐다.
‘괜히 수비천재라고 불린게 아니구나.’
유행운은 인정했다.
어린 몸을 가지게 된 자신보다 지금의 이형호 감독이 수비에 있어서는 발끝도 쫓아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후우, 오랜만에 뛰니 힘드네.”
이형호가 글러브를 벗으며 숨을 몰아 쉬었다.
“행운아. 모든 일에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너도 그건 알지?”
“네.”
“정면으로 타구를 받는 연습을 하라는 이유는 간단해. 그걸 하다보면 정말 잡지 못할 타구도 몸을 던져 건져낼 수 있거든. 즉, 기본기를 챙겨서 타구를 쫒으면 최소 두 걸음은 더 많이 갈 수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멀리서 닿지도 않을 거리에서 몸을 던지는 것보다, 최대한 타구를 따라간 후에 다이빙을 하는 것이 공을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경기 전날을 제외하고 앞으로 너는 나와 개인 교습을 할 거야.”
이형호가 수비코치가 가져다주는 물을 받으며 말했다.
“딱 30분 동안 진행할 거다.”
과한 훈련은 오히려 독이었다.
“저는 1시간도, 아니, 그 이상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열정이 넘치는 친구는 더더욱 조절해야 한다.
“그래서 안 돼.”
이형호 감독이 물을 꿀떡꿀떡 마셨다.
“너는 지금도 훈련량이 많아. 지금도 바로 헬스장에 가서 하체 조질 거 아니냐?”
그 말에 유행운은 할 말이 없었다.
오늘 펑고를 받으면서 하체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매일 하체 운동을 하지만, 근육은커녕 살도 제대로 안 붙었다.
하체가 흔들리면 자세를 낮추는 것도 버겁다.
“너는 아직 성장기야. 내가 말했지?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네, 알고 있어요.”
당연히 알고 있다.
그저 유행운이 야구에 대해서는 조급증이 있기에 조절이 안 되는 것 뿐이었다.
“네 개인루틴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않으마. 하지만 주 1회는 꼭 쉬어.”
이형호 감독이 애정을 담아 당부했다.
“일요일, 그 쉬는 날을 일요일로 정하자.”
유행운은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유행운이 가장 못하는 일은 휴식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혼자 학교로 돌아와 풋워크를 연습했고 몸을 키우기 위해 따로 운동도 했었다.
“너 짧게 선수생활 하다 갈래?”
이형호가 대답하지 않는 유행운을 보며 짐짓 엄격한 목소리를 냈다.
“아니요.”
“길게 오래 해먹고 싶지?”
“네.”
“그럼 내 말 들어라.”
더 이상 유행운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저 감독님의 말을 순순히 들을 수밖에 없다.
“감독님.”
“어, 그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으래.”
두 사람의 대화가 마무리 되었다.
* * *
– 행운아, 유격수가 참 좋지?
개인 루틴을 마치고 캐비넷을 여니, 웬 초코우유가 있었다.
유행운이 초코우유에 붙은 메모지를 뗐다.
– 초코우유는 내 마음이야♡
바로 강수현이 남긴 초코우유였다.
“우웩.”
메모지에 쓰인 악필이 유행운의 눈을 더럽혔다. 특히 삐뚤게 그린 하트가 최악이었다.
메모지를 뜯어 쓰레기통에 버린 유행운이 초코우유를 마셨다.
“얼른 집 가자.”
어느새 시간은 밤 열한 시였다.
원래는 되도록 밤 열 시 전에 루틴을 마치려고 했지만, 오늘은 작은 이벤트가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아직 멀었어.’
오늘 임영원과 되도 않는 펑고 대결을 하며 유행운은 자신의 모자람을 느꼈다.
고등학생 때 야구 잘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프로 가서 잘하는게 가장 중요했다. 가끔 하위라운더에서도 뒤늦게 실력이 개화하여 성공하는 경우도 숱했다.
그만큼 이 시기는 그 어떤 것도 확실히 장담할 수 없었다.
‘풋워크 연습량을 더 늘리자.’
천천히 계획을 수정한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유행운은 메모지에 그간 수행했던 루틴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타격 연습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수비에 대한 연습 비중을 늘렸다.
“늦었네?”
늦은 시간, 현관문을 여니 익숙한 목소리가 반겼다.
“응, 개인 훈련 좀 하느라고.”
유행운의 모친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 감독님이 따로 연락왔는데, 너 쉬는 거 확인하라더라.”
“감독님이?”
“응, 일요일에는 쉬기로 했다며?”
“별 이야기를 다 하시네······.”
이선영은 이형호 감독이 있는 자리에서 후원자와 대화를 했다.
이형호 감독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 믿음직한 사람이었고 아들을 어떻게 육성할지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후원자 이태식은 생각했던 이미지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물론 그 성격이 이선영과는 맞지 않았지만, 그가 베푸는 마음은 진심으로 감사했다.
동시에 자괴감이 들었다. 혼자서는 아들을 케어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앉아.”
이선영은 늦게 귀가하는 아들을 기다렸다.
원래도 늦게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늦은 유행운이었다.
“뭐야?”
“밤 늦게 초코파이 먹지 말라고.”
유행운이 벌크업을 위해 선택한 아이템은 요거트 음료와 초코파이였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초코파이와 요거트로 배를 채웠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친이었다.
“유부초밥. 밤이라 거하게는 못하겠고.”
식탁에는 유부초밥과 먹기 좋게 썰어 놓은 토마토가 있었다.
“늦은 시간에 힘들게 뭐하러 했어.”
“유부초밥은 쉬워. 김밥이 손이 많이 가지.”
“그래도.”
유행운은 괜히 미안해서 볼멘소리를 내며 식탁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이선영은 미리 만들어 놓은 어묵탕을 끓였다.
“천천히 먹어. 국도 줄게.”
“엄마, 식비 아껴야 한다며.”
“운동하는 아들이 집에 있는데, 어떻게 식비를 아끼겠니.”
데운 어묵국을 식탁에 놓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국을 보며 유행운이 유부초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간은 딱 좋았다.
“맛있어?”
엄마의 물음에 유행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한동안 이선영은 아들이 먹는 모습을 보았다.
운동을 다시 시작한 후로 살이 조금 붙은 것도 같다가도 음식을 꼴딱 삼킬 때는 뼈만 있는 것도 같았다.
“누가 괴롭히지는 않고?”
삐쩍 마른 그 모습이 하도 약해보여서 이런 물음을 던지게 된다.
“응?”
“너 너무 말라서······.”
“엄마, 나 어디서 맞고 다니게 생겼어요?”
진심으로 유행운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혹시나 해서······. 요즘 야구 선수들 학폭 문제도 뜨고 하니까······.”
“절대 아니야.”
유행운은 억울했다.
몸이 말랐지만, 누가봐도 한 대 치면 날아가게 생겼지만, 어디서 얻어맞을 성격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함께 야구하는 아이들은 한참 어리다. 회귀한 유행운은 정신은 서른이었다.
“아니면 다행이고. 혹시나 누가 때리고 그러면 엄마한테 꼭 먼저 말해야 한다. 알았지?”
“괜한 걱정이야, 정말.”
학폭을 저지르는 야구선수가 문제다.
그리고 그 야구선수를 제명하지 않는 KBO는 더 큰 문제였다.
유행운이 작게 한숨을 쉬며 유부초밥을 먹었다. 매번 생각하지만, 이 타고난 마른 체질은 엄마의 영향이 컸다.
그 유전자를 받았기 때문에 살이 쉽게 붙지 않았다.
“엄마.”
유행운은 어묵국을 떠먹고는 고개를 들어 모친을 보았다.
“나 야구하는 거 왜 허락했어?”
사실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어려운 질문이네.”
이선영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짧게 생각했다.
“그냥, 엄마가 소중한 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것 같아서······.”
“소중한게 뭐였는데?”
“너.”
이선영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건 너야.”
참 이상하다.
이런 질문과 이런 대답을 듣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생전 이런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고 갈라진 사이를 되돌릴 생각조차 못했던 유행운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 노인네가 그러더라.”
이선영은 유행운의 후원자 이태식을 노인네라고 불렀다. 나이가 한참 많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상극이었다.
하하호호.
웃으면서도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선영은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반대로 이태식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는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대. 그래서 아무리 반대해도 자식의 꿈은 막을 수 없다더라.”
유행운은 토마토를 먹으며 엄마의 말을 들었다.
“야구는 말이야. 우리 가족의 추억이 남은 스포츠잖아. 네가 처음 안타를 치고 신나서 방방 뛰던 모습. 네 아빠는 더 좋아서 샴페인 대신에 사이다를 터트리고.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마음에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 그래서 더 싫었어. 네가 야구를 하는 게.”
언제나 남은 사람은 상처다.
떠나간 사람은 상처를 남기고 사라진다.
“엄마, 다시 상담 받기로 했어.”
이선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이제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아들편 할게.”
이선영이 새끼 손가락을 아들에게 내밀었다.
유행운은 떨리는 모친의 눈을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내려 작은 손가락을 본다.
괜히 손바닥에 땀이 차는 것 같아서 옷에 슥슥 문지르고 새끼 손가락에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유행운의 마음을 단단하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 꺾이지 않는, 흔들리지 않을 힘을 주었다.
* * *
유행운은 감독의 애정을 받는다.
이형호 감독은 유행운에게 그 애정을 듬뿍 쏟기 위해서 임영원을 이용했다.
감독은 언제나 중립을 유지해야 했다.
유행운에게 개인 훈련을 진행했다가, 괜히 학부모에게 된서리를 맞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럴만한 계기를 만들었고 공교롭게도 그 물이 임영원이었음을.
아마, 울며 도망갔던 그 친구는 영원히 모를 일이었다.
“감독님.”
유청고와의 경기 전날을 제외하면 유행운은 감독과 함께 수비 기본기를 다졌다.
“오늘 제 목표는 단순합니다.”
유행운은 임영원과의 일을 계기로 수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저에게 오는 타구는 모두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유행운이 타격에 재능이 있다는 건 모든 사람이 안다. 하지만 유격수라는 포지션은 타격만큼 수비의 중요도가 몹시 높았다.
“그래, 기대하마.”
점차 유행운은 고교리그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고 있었다.
“거, 왜 자꾸 스타즈가 눈에 보이실까?”
그 증거로.
“그러는 마린스는 여기 무슨 일입니까? 이주영 보러 가야하는 거 아닙니까?”
“글쎄, 경원상고에도 괜찮은 친구가 좀 있어서. 1라가 아니더라도 말이지. 스타즈나 그 이범우 보러 가지?”
부산 마린스와 서울 스타즈가.
“설마 유행운은 아니죠?”
“그 설마가 맞을 것 같은데.”
눈에 띄게 유행운을 주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