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36
36. 에이전시
재원고와의 승부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현장에 스포츠 기자가 있었는지, 경원상고에게 유리한 보도자료가 여러 건 나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작정하고 취재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유행운 입장에서는 나쁠게 없었다.
다른 고교 선수와 달리 후발주자인 유행운은 황금사자기에서 최대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유행운 학생, 맞죠?”
그 기사를 준비한 리원 에이전시의 대표 채리원이 유행운을 찾아왔다.
* * *
“유행운, 우리 다음 타깃은 쟤다.”
채리원은 남초로 분류되는 스포츠 세계에서 질기게 살아남은 여성이다. 그리고 프로 구단이 가장 싫어하는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의 악명, 아니 명성은 돈으로 귀결된다. 서양에는 스캇 보라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채리원이 있었다.
최대한 선수의 몸값을 올리는데 일가견이 있는 그녀는 전국대회 시즌이 오면 고교야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유행운이요?”
“어딜 반말을? 우리에게 돈을 벌어다 줄 귀한 고객님께!”
채리원은 프로 선수를 주로 고객으로 받지만, 아직 프로 세계에 발을 딛지 않은 어린 선수도 고객으로 모신다.
그리고 작년, 민현웅을 영입하기 위해 발로 뛰었지만, 놓친 그녀는 그에게 대적할 만한 최대어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띈 거다.
“고교 야구선수 순위 11위? 웃기지 말라 해. 저 친구는 1등을 다투는 귀한 고객님이야.”
채리원은 야구, 농구, 축구, 가리지 않고 고객을 모시지만, 중점이 되는 분야는 단연 야구였다.
한국의 인기 스포츠이자, 몸값 자체가 많이 올라 ‘거품’ 소리를 듣지만, 채리원은 오히려 그 거품이 좋다. 그리고 그 거품에 일조를 하기도 한 사람이기도 했다.
“장타를 겸비한 유격수. 게다가 수비도 잘하지, 개인적인 서사도 완벽하지. 이 정도의 스타감이 어디 있어?”
그래서였다.
채리원은 돈을 들여서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황금사자기 첫 번째 경기에서 취재 기자를 대동했고 용감하게 싸워준 재원고를 올려 세워주는 동시에, 경원상고가 더 이상 치졸한 싸움을 하지 않도록 세팅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얘, 은정아.”
채리원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아직 어린 고객님이라도 확실히 마음을 사로잡아야 해. 지금 메이저리그에서도 스카우트 팀을 보냈다고 하고 이 친구는 이미 핫하다니까? 메이저리그. 얼마나 좋니? 계약금을 최소 1억을 더 끌어올 수 있는 매력적인 이슈라고.”
그러니.
“그런 귀한 고객님을 모실 때는 확실한 선물은 드려야 하지 않겠니?”
씩, 미소를 지은 채리원은 경원상고를 바라보았다.
민현웅을 놓쳤을 때는 속이 쓰렸던 그 학교가 지금은 복덩어리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유행운 학생, 맞죠?”
손에는 ‘단백질 드링크’ 한 박스를.
그리고 얼굴은 사람 좋은 미소를 한껏 지은 채, 유행운에게 다가간다.
“리원 에이전시에서 준비한 선물은 어땠어요?”
그 말과 함께 채리원이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리원 에이전시 대표, 채리원이에요.”
* * *
스포츠 에이전시.
유행운에게는 과거 1회차에는 없었던 그것.
지금은 고등학생 신분에서도 제발로 찾아온 ‘리원 에이전시’가 신기하기만 했다.
“엄마한테 전화 받기는 했는데, 진짜 바로 오셨네요.”
“하루가 급하니까요.”
채리원은 학교 근처 레스토랑에서 유행운을 마주했다.
딱 점심 시간이었고 식사 겸 미팅을 가졌는데, 아침에 유행운의 모친과 전화 통화를 한 직후였다.
“선물이라니, 이 단백질 드링크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이건 그냥 소박한 마음이죠.”
채리원은 직접 스테이크를 썰어서 유행운에게 주며 말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유행운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맞춰주고 있었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는 직접 썰어주고 고칼로리의 크림 파스타를 눈 앞에 가져다주고, 거기에 연어 샐러드, 시원하게 목을 축일 자몽에이드까지.
음식이 모자라면 더 시킬 준비를 확실히 하고 있었다.
“기사 잘 봤죠?”
“네?”
순간 어리둥절했던 유행운은 포크로 잘 썰린 고깃덩어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그 재원고 기사 말하는 건가요?”
짝!
“정답!”
채리원은 아주 경쾌하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지금 짓고 있는 표정부터 행동까지 아주 장사꾼 그 자체였다.
“경원상고가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 냉혹한 프로세계도 아니고 지금부터 이러면 곤란하죠. 그래서 살짝 숨 쉴 틈을 준 거 뿐이에요.”
그리고 속마음은.
‘네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해야 돈이 불어나지.’
였다.
“그건 고맙습니다. 덕분에 감독님 얼굴도 한결 피셨어요.”
유행운은 스테이크를 씹어 삼킨다. 그리고 크림 파스타도 크게 입에 밀어 넣고 있었다.
오늘 채리원의 등장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몹시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감독님께 미리 양해를 구했고 이 시간에 채리원과 미팅을 하고 있다.
‘민현웅도 에이전시가 있지.’
속으로 생각한다.
민현웅은 이미 발빠르게 에이전시를 선임했다. 들어보니, 부모님과 가깝게 연결된 스포츠 에이전시라 했다.
유행운은 거의 모든 걸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라, 지금 시점에서 에이전시는 거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원이라면 그 돈 뜯는 귀신으로 유명한······.’
리원은 그런 곳이다.
10구단 팬들은 애정하는 선수가 ‘리원’과 계약만 해도 탄식한다. 연봉 협상이든, FA 관련이든 뭐든,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기어코 리원은 돈을 끌어 온다. 구단의 속옷까지 탈탈 털어서 1억, 천만 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 귀신처럼 달려든다.
그게 채리원, 눈 앞에 사람 좋은 척 웃고 있는 이 여자였다.
“유행운 선수는 지금 자신의 위치가 어느정도라고 생각해요?”
“저요? 글쎄요. 좀 주목 받고 있는 유망주 정도······.”
“틀렸어요. 좀이 아니죠. 지금 유행운 선수는 굉장히 핫한 존재에요.”
아, 제가요?
“지금 우리 귀한 예비 고객님은 말과 행동에 굉장히 주의해야 해요.”
채리원이 자몽에이드를 쭈욱 빨아 마시는 유행운을 보며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유행운의 첫 인터뷰 기사가 실린 프린트지가 있었다.
“유듣보? 이런 별명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마세요.”
그 기사는 신지원이 작성한 보도자료였다.
기사 타이틀에 ‘유듣보’라고 대문짝하게 실린 기사였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자신을 깎는 발언은 자제해야 해요.”
채리원은 기사가 프린트된 종이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왜냐, 지금부터는 최소 억의 싸움이니까요.”
유행운은 그녀의 말에 끌려가고 있었다. 열심히 턱을 움직이며 음식을 먹으면서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
“지금 유행운 선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크보 직행이냐, 아니면 도전을 위해 광활한 미국으로 떠나느냐.”
“제가 미국이요?”
“네, 피츠버그. 그리고 탬파베이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유행운의 눈이 커졌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제가 알아보긴 했는데, 계약 규모는 솔직히 작아요. 3,40만 달러를 예상하는데, 그 정도라면 저는 그냥 드래프트에 참여하는 걸 추천해 드려요. 물론, 미국은 이용해야죠. 미국 진출 만큼 프로 구단을 똥줄 타게 할 좋은 아이템이 없으니.”
채리원의 입에서 미국 정보가 술술 터져 나온다.
아직 유행운에게 접근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피츠버그와 탬파베이였기에,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자, 왜 선수에게 에이전시가 필요할까요?”
채리원은 다짜고짜 계약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근사근하게 예비 고객의 마음을 맞추고 있지만, 직접적인 ‘계약’ 대신 돌려 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잘 대처하기 위해서예요. 선수는 운동에만 집중하고. 에이전시는 억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죠.”
이번에는 재원고와 관련된 기사 프린트물을 팔랑이며 보여주는 채리원이었다.
“필요할 때는 보도자료도 준비합니다. 오직 선수를 위해서. 우리 귀한 고객님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싹 다 치우는 거, 그거 에이전시가 할 일이죠.”
유행운이 여전히 손을 움직여 파스타를 돌돌 말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금은 곧 선수의 가치에요. KBO 직행해서 1억을 더 뜯고 안 뜯고의 차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10만 달러를 더 뜯냐 안 뜯냐의 차이는 크죠. 그 돈 때문에 기회를 한 번 더 받고 말고가 결정 나니까요.”
채리원이 미소를 지었다.
“자, 맛보기는 이 정도까지.”
귀한 어린 고객님, 앞으로 돈을 벌 기회가 무궁무진한 고객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얼마나 먹힐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 해 준 정보가 그의 구미를 얼마나 당길지도 알 수 없다.
“식사는 천천히 맛있게 하세요. 우리 귀한 선수님 위장에 탈나면 안 되니까.”
채리원이 숨을 돌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거 알아요, 유행운 선수?”
“네?”
“유행운 선수 얼굴 말끔해요.”
“네에?”
갑자기?
“여기서 다듬으면 잘생긴 야구선수도 가능해요. 야구선수들 잘생긴 선수 몇 없어요. 말끔하기만 해도 먹혀요. 실력까지 갖춘 훈남 선수? 그건 곧 스타성이죠.”
정말 사기꾼같다.
그 생각을 하면서도 유행운은 채리원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물론 채리원이 실력 없이 입만 터는 재질이었다면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그저 주는 것만 냉큼 받아 먹고 외면하면 그만이었다. 채리원은 그만큼 능력이 있었다.
저 혀, 저 긴 혀로 돈을 얼마나 끌어왔던가.
“준비해놨습니다.”
두 손을 펼치며 채리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그 모든 걸 해드립니다.
* * *
[민현웅보다 빠르게 10홈런 달성! “경원상고 유행운은 거포 유격수다”]와.
유행운은 16강 길목에서 만난 강온고와의 경기가 끝난 후,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기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민현웅’이라는 키워드까지 끌어왔다. 아직 리원과 계약도 하지 않았는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미쳤다.
정말 미쳤다.
“너 설마 리원이랑 계약했냐?”
민현웅은 강온고와의 경기가 끝난 직후, 본인의 이름을 검색했다가 기함했다.
적나라한 기사.
특정 선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보도자료.
이건 누가 봐도 리원 에이전시의 솜씨였다.
“아니, 아직.”
“계약 할 거야?”
민현웅은 야구 외적인 건 부모에게 맡기고 있었다.
물론 그의 성향 자체는 채리원이 딱이다. 지옥의 혓바닥을 갖고 있는 민현웅이었기에, 채리원같은 공격적인 성향이 잘 맞았다.
“오늘까지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경원상고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채리원이 준비한 기사는 효과를 즉각적으로 보았다. 무사 1,2루 상황에서 딱 한 번 유행운을 걸렀는데, 그 때도 관중석에서 야유가 쏟아졌고.
‘그것도 채리원이 준비한 거잖아.’
그 이후에는 아예 거를 생각도 못했다.
채리원은 오늘 경기에 직원 전원을 대동했다. 아직 제대로 모시지 못한 어린 고객님의 마음을 확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도록 끊임없이 보도자료를 뿌리고 너튜브에 방송 컨텐츠도 만들었다.
말 그대로 유행운이 대회에서 활약할 수 있는 모든 발판을 만든 셈이었다.
“계약 하려고.”
“진짜?”
민현웅은 의외라는 듯 유행운을 보았다.
그리고 제발 계약을 안 했으면 했다. 아직 계약을 하기도 전부터 밑밥을 깔고 있다.
채리원이 펼치는 언플 실력을 아는 민현웅이었기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너와 성향 정반대인데?”
“그래서야.”
유행운은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전략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채리원이 가져 온 짤막한 정보가 아니었다면 아주 뒤늦게 메이저리그와 미팅을 진행했을 것이다. 그 어떤 정보도 모른 채 미팅을 한다는 건, 선수로서 매우 불리했다.
“나는 운동만 할 줄 알지, 이런 건 전혀 몰라.”
사실상 채리원이 준비한 선물이 제대로 먹혔다.
이런 방식으로 이 고난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가끔은 더러운 일도 해야할 텐데, 내가 그걸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리원이라면 더러운 똥을 만져서라도 거액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
채리원은 그렇게 성공한 여자였고 그 이유로 고객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 채리원이 예비 고객님을 위해 이렇게 발벗고 나섰다는 건, 그만큼 유행운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걸 잘할 것 같거든.”
황금사자기 2차전.
강온고와의 승부의 결과는 5:9.
이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상대가 고의4구 전략을 쓰지 못하도록 채리원이 미리 작업을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실력은 확실히 보았다.
계약 전에도 이렇게 성의를 보이는 에이전시라면 충분히 야구 외적인 일 모두를 믿고 맡길 만 했다.
– 야 좆됐다 유행운 리원 들어감 ㄷㄷㄷㄷ
└ 아 미친;;
└ 채리원이 또…
└ 유행운 계약금 최소 10억 이상 받겠네
└ 유행운이 그 정도 급이냐?
└ 올해 민현웅보다 빨리 10홈런 달성함;; 이거 고교에서는 흔치 않은 기록임
└ 대전이냐 부산이냐… 어느 팀이든 채리원이 박박 긁어 먹을 듯
└ ㄴㄴ 지금 피츠버그도 관심있다고 발표함
└ 피츠버그에 탬파베이… 그 외 이름 안 밝힌 메쟈 구단까지..
└ 그 외는 무슨 이름 안 밝힌 거면 채리원이 언플 때리는 거다 ㅋ
└ 언플이어도 피츠버그, 탬파베이는 확실하단 거잖어 ㅂㅅ아
└ 아 돈독 올랐나 뭔 벌써 리원이야 ㅡㅡ
채리원은 유행운과 계약을 체결하기 무섭게 보도자료를 뿌렸다.
– 리원이 유행운 물었으면… 얘 상품성은 확실한 거네…
└ 구단 돈은 내 돈 아니다
└ 리원이 콱 물은 고급식 고객… 탐난다…!
└ 야 얼마면 돼
└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유행운의 몸값이 실시간으로 쭈욱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