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8
8. 박쥐같은 녀석
감독과 면담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팀에 합류한다.
아직 날이 춥기 때문에 경원상고는 근처 실내 야구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고 개학을 하면 학교 전용 야구장에서 주말리그를 대비한 훈련이 시작된다.
“안녕하십니까.”
팀에 합류하면 자기소개는 필수였다.
유행운은 둥글게 모여 자신을 쳐다보는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유행운입니다. 주포지션은 2루수, 야구를 그만두기 전에는 유격수와 3루수도 가끔 봤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유행운은 소개를 마치고 뒤로 물러섰다. 민현웅이 휘파람을 불고 있었고 강수현은 뚱했으며 팀의 주장 강민하는 박수를 유도했다.
“이재현입니다! 선배님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차례로 새로 팀에 합류한 선수들이 소개를 한다. 유행운은 기분 좋게 박수를 쳤다.
현실적인 문제는 일단 해결했다.
돈 문제로 눈물을 짜는 연기까지 감행했는데, 이게 사실상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눈물을 보였다.
고등학생은 아직 미성년자 신분이었다.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원하는 걸 얻어내기 힘든 나이었다.
그의 모친은 아직도 은행원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남편과 함께 이루었던 모든 재산을 잃은 그녀는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대출을 받아 낡은 빌라에 이사를 했지만, 예전 같은 생활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았다.
‘야구는 사치라고 생각하시니까.’
그 이유 탓에 야구를 반대했다.
다른 이유로는 과거 트라우마가 있었다. 남편이 죽은 후에 아들이 해오던 운동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죽은 사람이 생각난다.
그 누구보다도 아들이 야구를 하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 죽은 그의 부친이었다.
“새로 합류한 부원들, 반갑다.”
하지만 유행운의 마음은 후련했다.
누군가에게 현실적인 문제를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포지션은 외야수, 주장을 맡고 있는 강민하라고 한다.”
주장 강민하가 중앙에 섰다.
“우리 주말리그 얼마 안 남은 건 다들 알지? 앞으로 한 달.”
기존 멤버들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지만, 신입은 아니었다. 유행운도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서울권 B조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유행운은 가끔 수업을 빼먹고 고교야구를 보러 다녔다. 멀리 야구를 하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야구에 대한 마음을 다잡기도 했었다.
“첫 대결은 북성고다.”
시작부터 강팀이다.
북성고에는 전국구 투수가 에이스로 버티고 있다. 마운드 싸움에서는 경원상고가 열세였고 이를 극복할 방법은 타격뿐이었다.
“북성고에는 에이스가 확고히 잡혀 있지. 근데, 운 좋으면 그 에이스가 우리 상대로는 등판 안 할 수도 있다. 하더라도 짧게 이닝 먹고 갈 수도 있어.”
이유는.
“우리를 만만하게 볼 테니까.”
경원상고의 스타플레이어는 단 한 명이다.
에이스 백유진도 아니었고 바로 4번타자 민현웅이었다.
“행운아, 네 생각은 어때?”
강민하가 유행운에게 의견을 물었다.
“상대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게 오히려 잘 됐어. 방심하는 순간에 야구는 뒤집히거든.”
유행운의 대답에 강민하가 씩 웃었다.
강민하는 성격이 좋다.
“네 말이 맞아.”
중견수로 활동하는 강민하는 팀 두루두루를 포용할 줄 알았다.
4번타자 민현웅의 뒤를 받치는 강민하는 타격 훈련에 전념하고 있다.
그에게도 올해 성적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주전을 넘어 주장까지 맡게 되었으니 더더욱 의욕을 갖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이주영을 끌어내자.”
이주영.
전국구 투수로 1차 지명을 노리고 있는 북성고의 에이스였다.
이주영은 사이드암 투구폼을 가지고 있었고 긴 팔로 마치 뱀처럼 투구를 한다.
그는 고교시절에는 북성고의 에이스로 활동했고 인천 바이킹스에 입단 후에는 철벽 마무리로 분했다.
KBO에서 이주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사이드암이라는 희귀성과 150km/h 이상을 던지는 강속구 덕분이었다.
“앞으로 잘해보자.”
선수 미팅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유행운은 훈련 시작 전에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 그 옆을 꿰찬 건 다름 아닌 민현웅이었다.
“아이고. 우리 유삼딱 씨 유연한 거 보소?”
유삼딱?
“무슨 소리야?”
“뭐가?”
“유삼딱, 그게 뭐야?”
“아, 그거.”
민현웅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유행운은 삼번타자가 딱!”
이라는 뜻이야.
“엥?”
유행운은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투였다.
물론 현재 경원상고의 4번타자는 민현웅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유행운 역시도 민현웅과 경쟁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거 출발선이 달랐고 유행운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은 민현웅과 감히 대결을 해볼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고 유행운은 생각했다.
“딱이지?”
“뭐가 딱인데?”
“내 앞에서 네가 밥상만 차리면 돼.”
“자신감이 넘치네.”
“당연하지. 나 민현웅인데?”
유행운이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는다.
몹시 어린애 같았다. 강수현도 그의 눈에는 한참 어려 보였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민현웅은 아예 그냥 애 같았다.
“뭐, 알아서 생각해.”
의미 없는 대화는 잘라낸다.
유행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운동장을 돌며 땀을 낸다.
체온이 오르며 몸 전체가 부드러워지는 걸 느낀 유행운은 이제 낡은 글러브를 손에 끼웠다.
‘새로 사면 좋긴 할 텐데.’
유행운은 중학시절 자주 사용했던 글러브를 보며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되며 성장이 계속 이어졌다.
중학생 때 사용하던 글러브는 슬슬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당장 리그 때 사용할 나무배트에 돈을 쓰면 글러브까지는 힘들었다.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쓸 글러브에 돈을 들일지.
아니면 타격에 포인트를 주고 비싼 배트를 구입할지.
‘차차 생각해 보자.’
아쉬움을 뒤로하고 유행운은 훈련을 위해 내야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연습에 방해나 하지 마라.”
유행운은 2루수조에 속한다.
감독이 유격수 전환을 생각하고 있지만, 시작이었기에 2루수로 출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에는 강수현이 존재했다.
“에휴. 고작 펑고 받는 일에 방해는 무슨.”
유행운이 혀를 찼다.
강수현이 제일 먼저 펑고를 받는다.
그다음 유행운, 마지막은 1학년이었다.
“자, 수현아! 가볍게 가보자!”
“넵!”
지금 강수현은 혼자 주전 경쟁에 심취해 있었다. 덕분에 몸도 마음도 기합이 빡 들어가 있다.
“저렇게 힘 들어가면 빠질 텐데.”
그렇다.
지금 강수현은 심하게 주전 경쟁에 신경 쓴 덕분에 날아오는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글러브 끝에 맞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허무하게 바라본다.
“정신 안 차려!”
깡-
그 말과 함께 다시 공이 구석으로 굴러간다.
불규칙 바운드.
강수현은 급하게 튀어 오르는 타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어깨에 공을 맞았다.
“강수현!”
다행히 부상으로 이어질 수준은 아니었지만, 연속된 실수에 강수현의 멘탈이 갈갈 찢겼다.
입술을 말아물고 유행운을 째려본다.
그 순간, 유행운은 어이가 없었다.
공을 놓쳤다고 해서 비웃은 적도 없었고 훈련을 진지한 태도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5개 더 추가!”
깡!
강수현이 움직인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무릎을 굽힌 채로 백핸드 캐치를 한다.
휙, 공을 던지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달려, 다음 타구를 처리해냈다.
멘탈이 무너진 거 치고는 추가로 실수는 없었다.
“확실히 수비는 늘었네.”
강수현이 백핸드 캐치를 다 할 줄 안다.
유행운은 발전한 실력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예전에는 백핸드 캐치는 물론, 슬라이딩도 제대로 못했다.
지금은 열심히 운동했는지, 제법 부드러운 동작이 나오고 있었다.
“다음, 유행운.”
유행운이 글러브를 챙겨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딱히 강수현을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았다. 경원상고에서 경쟁이 될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민현웅.
유행운은 민현웅을 누르고 팀의 간판타자 자리를 가지고 싶었다.
이제는 욕심을 내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시작된 야구 인생에서는 민현웅과 겨뤄봐도 된다고, 그런 욕심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탁!
유행운이 글러브를 가볍게 치고 자세를 잡았다.
“어디 행운이 실력 좀 보자!”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오른쪽으로 뻗어나간다. 유행운이 바로 타구 위치를 파악했다. 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안전하게 공을 포구한다.
깡!
이번에는 반대 방향이었다.
타구보다 빨리 자리를 잡고 정면으로 공을 받을 준비를 하는데, 불규칙 바운드로 공이 휙 튀어 올랐다.
유행운은 당황하지 않는다.
허리를 뒤로 젖히며 유연하게 공을 받아냈다.
“굿!”
깡!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유행운은 최대한 정석대로 플레이하려 노력했다. 백핸드 캐치나 맨손 캐치를 자제하고 정면에서 타구를 처리할 수 있도록 타구 파악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다.
“계속 가보자!”
까앙-
이번에는 시원찮은 소리다.
유행운이 정면으로 대시하여 글러브로 타구를 건져냈다.
몸이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체력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었다지만, 펑고를 받는 일은 힘들어야 마땅했다.
오히려 희열이 느껴진다.
유행운은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벅차올랐다.
“라스트!”
깡!!
펑고 훈련에서 유행운에게 실수는 없었다.
그 흔한 백핸드 캐치도 없었다.
타구 판단이 원체 빨라 미리 자리를 잡기 때문에 안전한 포구를 보여주고 있었다.
“설마 이걸 잡겠어?”
일부러 깊은 코스로 공을 보냈다.
쉽게 잡기 힘든 타구였고 현실 경기였다면 안타 코스였다.
하지만.
“으아아!”
우다다다.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내달리던 유행운이 몸을 던져 빠져나가는 공을 붙잡았다.
다이빙캐치.
경기 중이었다면 환호성을 지를 만한 명품 수비였다.
“이걸 잡네?”
일부러 잡기 힘든 곳에 타구를 날린 수비코치가 감탄했다.
추가 횟수를 늘리기 위해 보낸 공이었는데, 당연히 놓칠 법한 공을 몸을 날리며 잡아냈다.
“이야.”
수비코치가 혀를 내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유니폼을 터는 유행운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행운아, 하나만 더 받아보자.”
“네!”
깡!
이번에도 수비코치는 잡기 어려운 코스로 타구를 날렸다.
유행운은 타구 판단을 신속하게 마치고 빠른 발로 타구를 쫓았다.
무릎을 굽히며 부드럽게 백핸드 캐치.
“허, 이것도 잡아?”
우연이 아니다.
다이빙캐치로 공을 잡아낸 것도 우연이 아니었고 지금 백핸드 캐치로 공을 건져낸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모두 실력.
‘감독님 안목은 진짜 대단하다니까.’
경원상고 수비코치를 맡고 있는 그는 유행운의 잠재력보다는 공백기에 집중했다.
공백기가 길었기에 유격 수비보다는 원래 하던 포지션이 더 안전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오늘 움직임을 보면 2루수에 두기에는 아까운 실력이었다.
“유행운.”
이형호 감독은 유행운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와 더불어 수비코치인 그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훈련에서 유행운을 시험해 보라 말했고 지금, 더 보지 않아도 그는 확신했다.
“지금은 흐름 깨지니까, 계속 여기서 훈련하고. 점심 먹고 난 후에는 유격수조에서 훈련해.”
“네?”
“지금 펑고 받는 거 보니까, 너는 유격수가 딱 맞는 옷 같다.”
이미 감독에게서 ‘유격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유행운이었다. 앞서 언질을 받지 않았다면 유행운은 크게 놀랐을 것이다.
‘유격수라고?’
기분은 당연히 좋았다.
사실상 포지션으로 보면 더 주목을 받는 건 단연 유격수였다.
같은 내야수라도 유격수는 달랐다.
포수가 귀한 포지션으로 대우받는다면 유격수는 내야의 사령관이라는 수식어가 있었다.
“할 수 있지?”
“네!”
유행운은 힘주어 대답했다.
새로운 도전은 당연히 환영이었다.
‘미친!’
이 순간, 강수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유행운이 제발로 꺼져주네.’
강수현은 지금까지 혼자만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유행운이 신입 테스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그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칫 잘못하면 주전을 빼앗기고 백업 신세로 전락할 위기였다.
하지만.
“행운아, 만나서 참 반가웠다.”
그 유행운이 알아서 자리를 옮겨준단다.
“너는 유격수를 해도 참 잘할 거야.”
어느새 강수현 발등에서 뜨겁게 불타오르던 불이 사그라들었다.
“잘 가, 행운아.”
어느새 강수현은 유행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싹 바뀐 그의 태도에 유행운은 그저 기가 찼다.
“아쉽지만 널 보내줄게.”
몹시 박쥐같은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