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hortstop hits a home run too well RAW novel - Chapter 7
7. 홈런으로 갚아
경원상고 야구부는 타 야구부와 비교하면 규율이 빡빡한 편은 아니었다.
두발도 깔끔하게 정리만 하면 자유였다.
유행운은 야구부 합류 전에 머리를 정돈했다.
항상 앞머리를 덥수룩하게 내려왔는데, 이제는 말끔하게 정리하여 한결 시원한 인상을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님.”
이형호 감독은 유행운이 실내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면담을 진행했다.
다른 신입부원은 코치들과 면담을 진행했고 감독과 면담을 하는 부원은 유행운이 유일했다.
“이야, 얼굴에 윤이 나네? 이발했냐?”
“네, 자르고 왔습니다.”
“잘했다. 인물이 훤칠하네.”
흠흠.
이형호 감독이 헛기침을 하며 두 팔을 벌렸다.
“우리 팀에 온 걸 환영한다, 행운아.”
“감사합니다.”
유행운이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일단 유니폼이 받고 싶겠지?”
이형호 감독이 서랍에서 유니폼을 꺼냈다.
자연스럽게 유행운은 그 유니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등번호는 1번이다.”
“1번이요?”
“남은 번호 중에서 이 번호가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유행운은 유니폼을 보았다.
1번이라는 숫자가 유행운의 눈에도 마음에 들었다. 애매한 숫자보다는 간결한 1번이 가장 낫다. 유행운이 유니폼에서 시선을 떼고 감독을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들어요.”
“등번호가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네.”
유행운은 유니폼의 비닐포장을 뜯지 않았다.
오늘부터 경원상고 야구부 훈련이 시작되기에, 당장 입어야 할 유니폼이었다.
무릎에 유니폼을 놓은 채로 유행운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유니폼이 마음에 안 드니? 색이 별론가? 팀의 상징색이 검은색이야. 내가 블랙을 또 좋아하거든. 그래서 어필했지. 여름에는 좀 덥겠지만, 원래 여름은 더우니까.”
이형호가 주절주절 말을 한다.
그는 유행운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에 과묵한 성격과는 달리,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민현웅에게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유행운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무슨 말? 좋은 소식인가? 불길한 말이라면 접어둬.”
“죄송합니다. 후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 행운아. 나 부정맥 있다.”
장난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이형호는 바싹 긴장하고 있었다.
이미 유행운을 주축 선수로 점찍어 놓았다.
신입생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치긴 했지만, 한 차례 테스트를 더 이어갔고 팀의 에이스를 상대로도 홈런을 생산했다.
이런 선수는 당연히 주축 선수로 기용해야 한다.
주전으로 점찍은 선수가 불길한 말을 할 거라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했다.
“감독님, 제가 왜 야구를 그만두었는지 아십니까?”
유행운은 과거로 회귀해 어떻게 야구를 할 것인지, 그 대책에 대해 생각했다.
강하게 야구를 반대하는 엄마에게서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돈 좀 달라고 해도 무시할 사람이었다.
그 상황에서 유행운은 야구 장비를 살 돈도 없었다.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나름 모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순식간에 사라질 먼지 같은 금액이었다.
“부상이라도 입었나? 그래서 그래? 투수는 아니니까 팔꿈치 그런 부상은 아닐 테고, 무릎 십자인대라도 나갔어?”
“그런 차원의 이유는 아닙니다. 차라리 다친 거라면 말끔하게 치료하고 다시 운동했을 거예요.”
유행운이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돈이 없었어요.”
“뭐?”
“집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추락했거든요. 아버지가-”
순간 뜸을 들인다.
서른을 먹은 지금에도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건 굉장한 고통이었다.
“빚을 남기고 자살하셨고요.”
이형호 감독의 눈이 커진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유행운의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묘하게 유행운은 어른스러웠다.
뭔가 굉장히 달관한 태도를 보였는데, 그 모든 이유가 큰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감독은 그렇게 유추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유행운이 또래보다 차분한 건 나이를 서른이나 먹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를 이야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유행운이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도 야구를 계속 하고 싶고 욕심도 있어요. 어머니는 강하게 운동을 반대하시고요. 경원상고 신입 테스트를 받은 건 모두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여기 재학생인 건 아시죠?”
이형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피가 끓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에 꿈처럼 야구부가 생긴다고 하니까, 참을 수가 없었어요.”
후우.
유행운이 깊은 한숨을 쉬며 유니폼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행운아.”
“저는 야구를 할 수가 없어요. 야구는 제게 사치에요······.”
유행운의 목소리가 떨렸다.
현실적인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동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형호 감독은 유행운을 몹시 신뢰하고 있었다.
테스트 합격 전화를 당일에 받은 유일한 선수가 유행운이었다.
지금도 이형호는 따로 유행운을 부르며 그 신뢰를 다시 확인해 주고 있었다.
“유행운, 너 왜 그렇게 마음이 급하냐?”
이형호가 유니폼을 받아 유행운에게 던졌다.
유행운이 본능적으로 유니폼을 받아낸다.
“결론을 누구 마음대로 내래?”
“······ 예?”
“일단 잘했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걸 미리 말해준 건 고맙다.”
“······.”
“생각 많았을 텐데, 직접 와서 얘기해 준 것도 고맙고. 요즘 새끼들은 빠져가지고 문제가 있으면 혼자 싸매고 고민하다가 자폭하는 놈들이 널렸거든.”
쯧, 이형호 감독이 혀를 차고는 진지한 얼굴로 유행운을 응시했다.
“내가 왜 네 등번호를 직접 고른 줄 알아?”
“1번이요?”
“그래.”
“모르겠습니다.”
“네가 나를 능가할 재능이 있는 선수라는걸, 내가 엿봐서 그래.”
이형호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4년이나 쉬어놓고도 그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너를 보면서 나는 대형 유격수의 향기를 느꼈다. 물론 그냥 향이 코에 스쳐 지나간 수준이야. 네가 지금 대형 유격수가 됐다는 말은 아니고.”
유격수?
순간, 유행운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와 눈이 커졌다.
“내가 요즘 잠도 못 잤거든? 너 유격수로 한 번 키워볼 생각에 잠이 안 오더라. 일단 공백기가 있으니까, 몸이 탈 나지 않게 단계를 밟아가며 팀의 유격수로 키울 생각을 했단 말이다.”
유행운은 이형호의 말에 얼떨떨했다.
“며칠 밤을 새우며 플랜을 짰는데, 지금 고작 돈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미친놈 아니야, 이거.”
“죄, 죄송합니다.”
“경원상고 야구부 재창단하는데, 돈 많은 총동문회가 나섰다. 학교 근처에 있는 테니스장 밀고 야구장 만드는데, 총동문회가 힘썼어. 그 테니스장이 학교 부지긴 한데, 주민들이 사용해서 반발이 좀 있었거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경원상고가 신생팀이지만, 학교 자체가 명문이라 돈 많은 양반들이 좀 있다.”
이형호는 쉽게 유행운을 놔줄 생각이 없었다.
차라리 돈 문제가 나았다.
몸이 아픈 거라면 방법도 없었다. 건강은 누가 찾아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분간은 내가 지원해 주겠다.”
그리고.
“너는 실적 쌓을 준비를 해.”
“실적이요?”
“그래. 주말리그 첫 경기에 총동문회에서 응원 온다. 그 돈 많은 양반들 앞에서 보여주라고.”
“······.”
“당장 나한테 야구 장학금 보내라고.”
“······.”
“시위해.”
유행운은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다.
“장학금을 주신대요?”
“뭐, 마음에 드는 선수 두 명 정도는 지원이 갈 거야. 현웅이는 애초에 거절했고. 걔네 집이 좀 잘 살거든. 또 야구 장비도 지원이 들어올 테고. 현웅이는 더 이상의 지원은 필요 없거든.”
이형호 감독이 잠시 말을 멈추고 유행운을 응시했다.
유행운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유행운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야구를 하면서 믿음이 섞인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이제 야구를 그만두라 말했다.
더 늦게 전에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우냐?”
지금 유행운은 단도직입적으로 지원을 받아볼 생각으로 감독을 찾았다.
모든 건 계획대로 움직일거라 생각했다.
신생팀에서 유행운은 필요했고 감독은 충분히 신뢰를 보여주었다.
감독이 붙잡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자식, 감동 먹긴.”
유행운이 눈물을 손등으로 슥슥 닦았다.
그런 유행운을 보며 이형호가 말했다.
“대신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줘라. 내가 추가 훈련비까지 모두 지원해 줄 테니까, 작은 소원 하나.”
고개를 든 유행운이 이형호 감독을 보았다.
“그 소원이 뭡니까?”
“첫 경기에서.”
“네.”
“홈런 하나 까라.”
“······ 과한 거 아닙니까?”
“쯧, 못하겠냐?”
“해보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가 아니라 하겠습니다.”
잠시 침묵.
유행운이 미간을 좁힌다.
“하겠습니다.”
이미 돌아갈 길은 없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타자로서 가장 큰 인상을 남기는 방법은 역시 홈런이 최고였다.
“반드시 홈런으로 갚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