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30)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29화
아카다 마탑의 서재, 고문서를 뒤지던 카실리온은 기지개를 켰다.
남자의 옷을 입다가 다시 드레스를 입으니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윈체스터 저택에 있는 카실리온의 방에 남자용 옷이 걸려 있었다.
몸이 자라자, 하녀들은 그 옷을 더 큰 치수로 준비해 두었다.
누가 이런 것을 명령했냐고 물어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윈체스터 공작인가.’
카실리온의 자주색 눈동자가 일렁였다.
아빠와 딸이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닮았다니까.
몸에 흐르는 피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닌가 보다.
옅은 미소를 띤 카실리온은 책을 다시 꽂아 두고 바깥으로 나왔다.
복도에 모여 있던 아카다의 아이들이 카실리온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
“저 배신자 녀석, 무슨 낯짝으로 아카다의 서재를 쓴다는 거야.”
“윈체스터 공작가의 비호를 받는다고 자기가 윈체스터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나 본데.”
아카다에 있을 때에도 카실리온을 괴롭히던 애들이었다.
카실리온은 굳이 그들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변태 같이 여장이나 하고 다니고.”
“윈체스터 공작은 대체 왜 저런 녀석을 싸고도는 거지?”
아랑곳하지 않고 걷던 카실리온의 발에 무언가가 걸렸다.
콰당-!
카실리온은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다.
누군가 일부러 발을 건 것이다.
“킥킥킥, 넘어지는 꼴 좀 봐 봐.”
“이 자식, 거기서도 계속 괴롭힘당하며 사는 거 아니야?”
“윈체스터의 첫째 공자가 장난감 수집에 진심이라는데, 아마 이 녀석도…….”
카실리온은 손으로 땅을 딛고 서서히 일어섰다.
자신을 조롱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옛날 같았으면 그대로 무시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뭐, 뭐야.”
일어선 카실리온이 몸을 돌려 자신들을 바라보자 아이들은 멈칫했다.
그들의 기억 속 카실리온은 반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약한 아이였다.
“야, 네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아이들 중 제일 몸집이 큰 제드가 나섰다.
제드는 엘리시온의 아들로, 아직 열여섯이지만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었다.
“…….”
그러나 카실리온은 눈썹 한번 꿈틀하지 않고 서늘한 눈빛으로 제드와 아이들을 볼 뿐이었다.
그의 자주색 눈동자가 이렇게 탁했었나, 할 때 카실리온이 입술을 달싹였다.
“사과해.”
“…….”
잠깐의 정적 끝에 제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아이들도 모두 같이 웃기 시작했다.
“야, 방금 쟤가 뭐라고 했냐. 사과하라고?”
“풉…… 풉풉…… 사과하래. 사과 안 하면 울기라도 하게?”
“윈체스터에서 뭘 잘못 먹고 왔냐? 내가 너한테 사과를 왜 해?”
제드가 손을 들어 카실리온을 밀치자, 카실리온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카실리온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 애들을 보다가 입술을 달싹였다.
“너희들은 하나같이 고약한 냄새가 나.”
“뭐?”
“그러니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어.”
그리고 일순간 한 손으로 제 코를 잡고 다른 손으로 안주머니 속에서 유리병을 꺼내 그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쳐 깨트렸다.
그러자 유리병 안에 있던 검은색의 액체가 순식간에 기화했다.
쨍그랑, 소리에 아이들은 흠칫 물러섰다.
“뭐야, 미친놈아. 너 방금 뭐 한 거냐?”
제드가 눈썹을 구기고 카실리온의 멱살을 잡았다.
카실리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5초의 숫자를 센 뒤 코에서 손을 떼었다.
“방금 내가 터뜨린 것은 윈체스터가에 있을 때 개발한 ‘검은 늪의 독’이야. 터뜨린 뒤 5초 만에 증발하지만, 그사이에 조금이라도 들이마신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되지. 증상이 나타나는 데는 10분이 걸리고 일주일에 거쳐 서서히 죽어 갈 거야.”
카실리온의 말에 제드가 눈을 크게 떴다.
“뭐…… 뭐라고?”
다른 아이들도 놀라 우왕좌왕하며 난리가 났다.
윈체스터에 있을 때 개발했다는 말은 어쩐지 카실리온의 말의 신빙성을 높여 주었다.
“미쳤어?”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우리가 죽으면 네가 무사할 것 같아?”
카실리온은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윈체스터에서는 나를 해하려는 자에게는 수 배로 갚아 주라고 가르쳐. 그러니까 너희는 죽어 마땅해.”
제드가 흠칫 놀라 카실리온의 멱살을 놓았다.
“약하다는 이유로 나를 괴롭히고 멸시했어. 그건 영혼을 죽이는 것임에도, 너희에겐 그저 장난이었지.”
카실리온의 자주색 눈동자가 이렇게 소름 돋도록 형형한 색이었던가.
아카다에서 보던 약한 눈빛이 아니었다.
이는 오히려…… 윈체스터의 느낌에 가까웠다.
“위탁 교육을 가지 않고 여기서 계속 너희와 지냈더라면, 어차피 너희를 죽이든지 내가 죽든지 하나였을 거야. 그러니 미뤄진 죽음이 찾아왔다고 생각해.”
“내 아버지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카실리온에게 말하는 제드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지만 카실리온은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이내 제드의 뒤에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카실리온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네가 그렇게 괴로웠는지 몰랐어. 카실리온, 제발 살려 줘.”
“카실리온, 내가 미안해. 한 번만 용서해 줘.”
“카실리온……!”
울먹이는 소리들이 들렸지만 카실리온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제드도 카실리온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살려 줘. 카실리온…… 내가 잘못했다.”
제드의 말에 카실리온은 눈썹을 꿈틀 움직일 뿐이었다.
“해독제를 줘. 다시는 널 건드리지 않을게.”
그때 복도의 코너에서 나타난 한 여인이 카실리온에게 걸어왔다.
“카실리온…….”
샤샤를 발견한 카실리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 샤샤!”
무정한 눈빛이던 카실리온의 눈동자에 온기가 돌았다.
“콜록, 콜록.”
아이들 중 두어 명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카실리온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샤샤를 바라볼 뿐이었다.
“너…….”
뭔가 말하려던 샤샤는 카실리온의 윙크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실리온은 샤샤를 향해 다가갔고, 잠시 아이들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에, 의사들에게 해독제를 구걸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난 돕지 않을 거라서.”
울먹이며 서로 눈을 마주친 아이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제드는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가장 빠르게 뛰어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던 샤샤는 카실리온에게 물었다.
“거짓말이지?”
카실리온은 어깨를 으쓱했다.
“알러지 유발제야.”
그제야 샤샤는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윙크를 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수가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가짜였다니.
사라지는 마지막 아이의 뒤통수를 보던 카실리온이 개운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죽음을 선사하지는 않아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정도는 심어 줘야 기어오르지 않겠지.”
“윈체스터가 다 되셨는걸?”
“정말?”
샤샤는 카실리온의 어깨를 톡톡 토닥이며 미소 지었다.
“잘했어, 카실리온.”
* * *
알러지 유발제 사건 이후 카실리온을 처벌하라는 혈족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엘리시온은 그럴 수가 없었다.
카실리온의 뒤에 윈체스터 공작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가 고초를 겪고 있다는 것을 듣고 달려왔어요.”
샤샤 윈체스터 공녀가 아카다에 왔다.
“제 약혼자와 함께요.”
그것도 테일러스의 가주와 함께!
이런 상황에서 카실리온을 처벌한다면 이는 윈체스터 공녀와 테일러스의 가주를 무시하는 것이 된다.
– 아버지, 꼭 그 자식을 박살 내 줘야 해요.
멍청한 아들놈은 그런 청이나 하며 무릎을 꿇었다.
– 내가 자식 잘못 키운 죄로 왜 이런 머리 아픈 상황을 맞아야 하지?!
그러다가 엘리시온에게 발로 걷어차인 제드는 사내답지 못하게 질질 울며 물러났었다.
“공녀, 이는 우리 아카다 공작가 내의 일이기에…….”
“아니죠, 가주님께서는 카실리온의 노예…… 아니, 대여 계약서를 쓰셨잖아요.”
몇 년 전, 카실리온은 샤샤에게 가문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했었고 이에 샤샤는 수를 썼다.
카실리온이 윈체스터의 가보를 상하게 했다며, 이것을 아카다가 대신 상환하든지, 아니면 영구히 카실리온을 윈체스터가에서 부려먹겠다고.
카실리온이 진 윈체스터와 사업을 함께하며 많은 돈을 만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엘리시온이었지만 엄청난 금액의 청구서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카실리온은 윈체스터의 소유예요.”
“그…… 그런…….”
“카실리온의 몸을 상하게 하는 건 윈체스터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것. 그러니 카실리온에게 정신적 신체적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들어야겠어요.”
엘리시온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
아이들이 흡입한 것은 그저 1시간 정도 알러지를 유발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신체에 별다른 해도 없었다.
하지만 카실리온은 무릎을 다쳐 상처가 생겼다고 한다.
‘우려했던 대로…… 아주 똑똑하게 자라났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저 표정은 윈체스터 공작을 보는 것 같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샤샤의 옆에 앉아 있던 에반의 질문에 결국 엘리시온은 작은 한숨을 삼켰다.
“원하는 대로 조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