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ickly youngest member of the villain family RAW novel - chapter (152)
악당 가문의 병약한 막내님 151화
달빛을 받으며 바람이 흐르는 길을 따라 검으로 공중을 베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심란할 때에는 검술 수련만 한 게 없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검의 궤적을 따라 진동하고 바람이 에반의 검에 공명하였다.
“에반 테일러스.”
오셀로의 목소리가 들려 그를 돌아보았을 때 에반은 알 수 있었다.
형체는 있으나 실체는 없는 그의 모습은, 샤샤가 잠시 묶어 둔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저번에 죽은 하녀를 불렀던 그 능력인가?’
확실히 그때의 하녀가 반투명한 혼만 끌려온 상태라면, 지금의 오셀로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안정적이었다.
“일주일이야.”
에반의 속생각을 안다는 듯 오셀로가 입술을 달싹였다.
“…….”
“내가 샤샤의 곁에 있을 수 있는 날. 이제 닷새 지났고.”
인간이 아무리 큰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죽은 자를 완전히 되살릴 수는 없다.
“그래…….”
에반은 검집에 검을 꽂아 넣었다.
조금 떨어져 마주 보고 있는 둘의 사이에 짙은 정적이 흘렀다.
한참 뒤 오셀로가 형형한 눈빛으로 말을 꺼냈다.
“네가 샤샤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
에반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오셀로를 바라볼 뿐.
“그래서 너에게…….”
오셀로는 눈썹을 굳힌 채 말을 이었다.
“……그 애를 부탁하려 한다. 영 내키지는 않지만.”
오셀로가 에반과 처음 말을 섞은 때는 소년 사냥 대회였다.
건방지게도 제 실력을 숨기고 져 줬었지.
다음 만남이 지하 감옥에서였을 것이다.
오셀로는 짙은 살기를 가지고 에반을 위협했었다.
내 동생 건드리면 죽을 줄 알라고.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되어 마주 서 있었다.
“……스물일곱 회차에서의 당신은…….”
에반은 입을 열었다.
“언제나 악인이었고, 나는 그런 당신을 응징했다.”
그 말에 오셀로가 눈썹을 찡그렸다.
“테일러스 따위가 누굴 감히 응징…….”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는 당신이 벽처럼 보인다.”
이어지는 에반의 말에 오셀로는 흠칫했다.
에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당신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고, 샤샤의 마음속에 박힌 당신의 비석은 비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오셀로는 찡그린 눈썹에서 힘을 풀고, 피식 웃었다.
“원래 살아 있는 놈은 죽은 놈을 이길 수 없어.”
에반은 오셀로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에반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이내 묵념을 하듯 오셀로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당신의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팔짱을 끼고 에반의 묵념을 받은 오셀로는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고마워하라고. 영원히.”
천천히 고개를 든 에반이 말했다.
“물론…….”
에반의 푸른 눈이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샤샤의 마음속에서 당신의 비석과 싸우는 건 많이 불리하겠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 볼 생각이다.”
“흐음.”
“죽을 만큼 그 애를 사랑하는 것은 당신뿐이 아니니…….”
에반의 도전적인 눈빛에 오셀로는 피식 웃었다.
“언젠가는 그 애의 마음속에서, 내가 당신의 비석 위에 앉을 것이다.”
강렬한 도전장이었고, 한편의 위로이기도 했다.
그 슬픔이 잊힐 만큼 샤샤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건방진 녀석.”
오셀로는 쓸쓸한 눈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군.”
에반 테일러스다운, 썩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오셀로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에반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특별히 샤샤 그 녀석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려 줄게.”
* * *
“차이베리 주스, 땅콩이 섞인 쿠키…… 거위 털 쿠션.”
에반은 오셀로가 나를 위해 알려 준 것들을 읊었다.
“자장가로는, ‘안녕 로클랜드’였던가.”
“…….”
나도 모르게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에반은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그는…… 늘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눈물이 고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요즘은 오셀로에 대한 생각을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아직도 그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너를 울리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명계에서 찾아와 내 멱살을 잡는다고 협박을 했었지.”
에반의 말에 눈물이 나는 와중에도 풋, 하고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떤 표정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선히 눈앞에 그려진다.
에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중한 이를 잃는 것은, 괴로운 일이야.”
그의 목소리가 가슴에 와닿았다.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을 많이 잃어 본 사람은…… 에반일 것이다.
한 번도 아니라, 두 번, 세 번…… 스물일곱 번이나 모두가 죽어 가는 모습을 봐야만 했었겠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잊히는 것도 아니고.”
“…….”
“세상을 원망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
에반의 목소리에 심장 부근이 아릿해졌다.
종종 내가 하는 생각들을 알아채고 있었구나.
나는 제국을 구한 성녀로 모두에게 기록되었지만, 여전히 오셀로가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원망하게 한다.
“무엇으로도 슬픔은 무마되지 않아. 잠시 몸을 숨기고 있다가, 혼자가 되는 시간에 어김없이 찾아오지.”
어쩐지 에반의 경험이 섞인 조언 같았다.
“그래서 그대가…… 슬픔을 부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에반의 말에 나는 그에게 희미한 미소를 띠고 물었다.
“매일 우는 모습이 보기 싫어질지도 몰라요.”
“그럼 매일 눈물을 닦아 주면 된다. 이렇게.”
에반은 옅은 미소를 띤 채 내 볼의 물기를 닦았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다가 변덕을 부릴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그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져와 기분을 풀어 주면 된다. 나는 알고 있는 것이 많으니까.”
에반의 말에 나는 풋 미소 지었다.
눈물이 고인 와중에도, 그가 나를 웃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에반이 지치면요?”
나는 아마도, 오셀로를 떠나보낸 슬픔을 꽤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모습을 숨기지 않고 겉으로 티를 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사람의 인내심은 길지 않다.
“내 곁을 떠나고 싶어질 만큼.”
내 질문에 에반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곧바로 대답했다.
“나는 스물일곱 번의 회귀를 거쳐 그대를 만났어.”
그리고 내 이마에 제 이마를 대며 눈을 맞추었다.
“명계에서도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지친다고?”
가슴에 뭉클한 따뜻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에반의 낮은 목소리에 나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의 품을 파고들며 다시 울었다.
“나는 그대를 사랑해, 그대가 어떤 모습이건, 어떤 생각을 하건 간에.”
그리고 에반의 위로에, 스스로가 안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슬퍼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에반을 더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다.
“그대의 곁에 있을 거야.”
* * *
“아가씨, 예쁜 얼굴이…….”
어젯밤 에반을 붙잡고 운 탓에 퉁퉁 부운 내 얼굴을 본 마야는 경악했다.
하녀들에게 부기에 좋은 차를 가져오라고 말하고 무릎을 굽혀 내 의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무슨 일 있으셨던 건 아니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또 슬퍼서 우신 거예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야의 눈빛에 나는 거짓을 말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야의 눈에도 금세 눈물이 고였다.
일어선 마야는 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내 등을 토닥였다.
아기 때는 마야가 거인처럼 커 보였는데, 이제는 나와 체구가 비슷하다니.
시간이 너무 빨라서 신기하다.
“이제 괜찮아, 마야.”
“제게 아가씨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세요…….”
마야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의 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 아가씨가 슬프면 제가 슬픈 것은 당연하지요.”
“마야…….”
“슬퍼하셔도 돼요. 하지만 윈체스터의 모든 분들과 저희 같은 한낱 고용인들에게까지…… 아가씨가 정말 소중한 분이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나를 아껴 주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셀로를 잃고도 그가 바라는 대로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좋아하시는 레몬 쿠키 가져왔어요!”
“아가씨, 초콜릿이에요!”
“아가씨, 달콤한 벌꿀 차랍니다. 부기에도 효능이 있어요!”
이내 하녀들이 저마다 얼른 준비해 온 것들을 들고 내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샤샤.”
레카르도가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