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50)
250화 Our Season
멤버들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백스테이지로 들어섰다.
그러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의상을 훌훌 벗어 던졌다.
마른 수건으로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대강 훑은 뒤.
흰 티셔츠와 청바지에 팔다리를 뀄다.
“한선우, 물.”
“아, 고마워.”
지호가 건넨 500mL짜리 생수를 통째로 들이켰다.
마른 입안을 적시는 생수가 달게 느껴졌다.
“형, 괜찮겠어? 중간부터 계속 라이브하고 있잖아.”
“괜찮아. 지금 컨디션 최상이야.”
[감회의 시약 사용 중!] [메인 퀘스트의 진행도를 한 단계 되돌립니다.] [메인 퀘스트 ‘잔반 처리 1단계’의 페널티가 무효화됩니다. (지속 시간 2시간)]며칠 전 재하가 쥐여 주었던 시약을 사용했다.
《월영(月影)》 무대 직전에 들이켰으니,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는 걱정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건강이 최우선인 거 알죠?”
“걱정하지 마.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그만둘 테니까.”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 오는 멤버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내디뎠다.
앞서 걷던 도겸이 형이 복잡미묘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어서 가자.”
“네.”
VCR 영상이 재생되는 틈을 타 리프트 위로 올라갔다.
무대 조명이 탕 켜지며 경쾌한 기타 선율이 울려 퍼졌다.
정규 1집 수록곡이자 팬송인 《Our Season》의 무대를 펼칠 차례였다.
지호가 작곡을 도맡았고 작사에는 멤버 전원이 참여했다.
도겸이 형의 독무로 도입부를 열었다.
– 다가와 Our Season
I can’t wait no more
다가와 Our Season
Baby I’ll run to you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레몬색 불빛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도겸이 형의 눈꼬리가 가늘게 휘어졌다.
– 둘만의 Highlight Scene
왜 항상 눈물 보여야 해
(Ready action!) 시작되면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가자
도겸이 형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양옆으로 뻗어 나갔다.
무대 끝자락에 서 있던 병철이가 파트를 넘겨받았다.
– 이 계절을 맞이하기까지
얼마나 긴 어둠을 지나왔는지
노력만으로 다다르진 않았지
(You’re right) 전부 네 덕이야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이 허공에 흩날렸다.
티셔츠 차림이라서 그런지 한결 홀가분했다.
– 잡은 손 놓지 마
먼 곳까지 달려 보자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 영원으로 (Let’s go)
귓가에 들려오는 행복의 종소리 (Ah yeah)
멤버들과 함께 무빙 스테이지 위로 올라섰다.
팬들과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졌다.
– 잡은 손 놓지 마
먼 곳까지 달려 보자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영원으로 (Let’s go)
마침내 가까워지는 마지막 장면 (Ah yeah)
손을 뻗으면 객석에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세차게 손을 흔들어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 다가와 Our Season
I can’t wait no more
다가와 Our Season
Baby I’ll run to you
하준이의 단단한 중저음이 널리 퍼져 나갔다.
그저 응석받이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언제 저렇게 의젓해졌는지 모르겠다.
– 카메라의 Red Light
기다려 왔던 순간이야
어두웠던 날 밝혀 줘
눈부신 봄으로 뛰어 들어가자
랩 파트가 시작되자마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일었다.
메인 보컬 지호가 난생처음으로 랩을 선보였다.
– 우린 별종이라면 별종
울적한 이야기는 질색
우리 장르를 정의하자면
Love Comedy가 제격
발갛게 홍조를 띤 지호와 가볍게 등을 맞대고서 랩을 이어 나갔다.
손끝으로 뺨을 툭툭 두들기며 객석을 향해 웃어 보였다.
– 남들 눈치 볼 시간에
내 얼굴 구경은 어때
네 관심에 목말랐어
(You know) 네 앞에서만 짓는 표정이야
지호와 하준이가 허리에 손을 얹고 눈을 흘겼다.
서로를 할퀴는 시늉을 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잡은 손 놓지 마
먼 곳까지 달려 보자
누구도 아파하지 않는 영원으로 (Let’s go)
귓가에 들려오는 행복의 종소리 (Ah yeah)
이어서 도겸이 형이 병철이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발악도 잠시, 부드러운 포옹으로 변했다.
– 잡은 손 놓지 마
먼 곳까지 달려 보자
누구도 불행하지 않은 영원으로 (Let’s go)
마침내 가까워지는 마지막 장면 (Ah yeah)
꽃가루가 펑 터졌다.
나는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 다가와 Our Season
I can’t wait no more
다가와 Our Season
Baby I’ll run to you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아, 아.”
연달아 세 곡을 끝마친 뒤 마지막 멘트 타임이 찾아왔다.
도겸이 형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핸드 마이크를 들었다.
“못난 리더입니다. 저 스스로도 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그런데도 저는 무대가 좋습니다. 멤버들이 좋고 팬분들이 좋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남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늘 올리고 싶었습니다.”
객석에서 “차도겸 잘나도 너무 잘났는데?” 하는 위로의 말이 돌아왔다.
도겸이 형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다음은 우리 지호.”
“사실 역량이 가장 부족한 멤버는 저예요. 데뷔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헤맸는데요. 요즘도 종종 헤매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번아웃에 빠지곤 하는데…… 멤버들 그리고 팬분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언제나 저를 빛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호가 핸드 마이크를 내려놓고서 고개를 푹 떨궜다.
옆자리에 서 있던 병철이가 지호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지호 형이 눈물이 많아요. 돌아보면 지호 형뿐만 아니라 저희 모두가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좀처럼 연습을 따라가지 못해서 이불 덮고 숨죽여 울 때도 있어요. 언제인가는 울고 있는데 하준이가 손을 꼭 잡아 주더라고요. 저도 더 성장해서 멤버들과 팬분들께 의지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평소 무심하기 그지없던 병철이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호에 이어 병철이까지…… 객석은 금세 울음바다로 변했다.
보다 못한 하준이가 핸드 마이크를 들었다.
“에잇, 다들 진짜 울보네요. 가만 보면 제가 제일 눈물이 없다니까요? 슬픈 이야기만 하니까 축 처지죠? 제가 기운 한번 넣고 갈게요. 과분할 정도로 벅찬 관심과 사랑, 여태껏 한 번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받은 만큼 두 배로 보답하는 하준이, 또 블랙시즌 되겠습니다!”
하준이는 핸드 마이크를 꼭 쥔 채로 손을 흔들었다.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먼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정말 많이 사랑한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요.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객석에서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하는 절절한 외침이 돌아왔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네, 죽지 않고 살아가야죠. 이제 겨우 정규 1집인데요. 정규 2집, 3집, 4집…… 계속해서 쭉 나아가야죠. 블랙시즌의 멤버로서 그리고 디렉터로서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블랙시즌의 여정을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감사합니다.”
핸드 마이크를 내려놓자, 멤버들이 하나둘 손을 뻗어 왔다.
나는 멤버들의 손을 꼭 맞잡았다.
“지금까지 저희는 I’ll be your seasons! 블랙시즌이었습니다!”
등을 돌리기 무섭게 앵콜 요청이 쏟아졌다.
멤버들과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 위를 가로질렀다.
– Welcome to my heaven
제멋대로 굴어도 좋으니까
Let’s stay together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자
앵콜곡은 미니 1집 수록곡 《Happy Together》.
뿔뿔이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슬그머니 신호를 보내 왔다.
– Welcome to my world
사랑받지 못해도 좋으니까
Let’s be happy together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자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세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스프링 사랑해요!”
“영원히 함께해요!”
참 이상하다.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르고, 다리가 부서지라 뛰고 또 뛰는데도 지치지 않는다.
– Let’s be happy together
Let’s be happy together
Let’s be happy together
I’ll hug you Um Um Um
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면.
틀림없이 지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콘서트가 끝났다. 대기실로 들어서자마자 상체가 앞으로 기울었다.
온몸에 넘쳐흐르던 힘이 증발했다. 마치 태엽이 고장 난 오르골 같았다.
“한선우 너…….”
“어……?”
지호의 시선을 좇아 인중을 더듬거렸다.
손끝에서 뜨거운 물기가 느껴졌다.
“티슈, 티슈 없어요?”
“고개 뒤로 젖히지 마. 그대로 숙이고 있어.”
멤버들은 소란스럽게 티슈를 찾아 헤맸다.
나는 대기실 바닥에 후드득 떨어지는 핏방울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알림! ‘감회의 시약’의 효능이 모두 소실되었습니다.]때마침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덕분에 죽어도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겼으니까.
[알림! 메인 퀘스트 ‘잔반 처리 1단계’를 실패했습니다.] [퀘스트 실패 페널티를 적용합니다.] [WARNING! WARNING! WARNING!] [플레이어의 성대가 손상되었습니다.]연이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귓구멍에서부터 관자놀이까지 이어지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근육 손상…… 다소 살벌한 페널티에 나는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역시나 몸을 움직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뒤늦게 알아차렸다. 밤낮으로 연습하여 몸에 익혀 두었던 안무가 조금도 떠오르지 않는다.
노래 다음은 춤인가. 시스템에 불응한 대가로 아이돌로서의 가치가 차례로 사라지고 있었다.
[알림! 시스템이 플레이어를 무(無)의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초대에 응하시겠습니까? Y/N]“선우야, 형 얼굴 좀 봐 봐. 어쩐지 너무 무리한다 싶더니만.”
“도겸이 형…….”
[시스템 제어 프로그램이 실행 중입니다.] [시스템이 플레이어를 무(無)의 공간으로 이동시킵니다.]애당초 선택권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발밑에서 넘실거리던 붉은 불빛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발버둥 칠 틈도 없이 내 몸은 무(無)의 공간으로 이끌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끝없이 펼쳐진 공간에 홀로 널브러져 있었다.
“…….”
노이즈와 함께 시스템 창이 펼쳐졌다.
홀로그램이 지지직거리며 새의 형태로 변했다.
다시 홀로그램이 지지직거리며 새로운 형태를 이루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스물여섯의 나, 한선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