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58)
258화 수납멤버가 돌아왔다 (完)
“이모라고 부르면서 달려오길래 처음에는 병세가 호전됐다고 생각했어요.”
“블랙시즌 데뷔를 기점으로 이전 기억은 모두 되돌아온 건가요?”
“아마도요. 고등학교 친구하고는 활발히 연락하더라고요.”
“왜 하필…… 데뷔 이후 기억이 사라진 걸까요.”
도겸은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흩어졌던 기억의 조각이 제자리를 찾았다. 선우는 이제 공허함에 몸부림치지 않게 되었다.
정규 1집 발매 전후로 나타났던 증세 또한 사라졌다. 24시간 중에서 16시간은 깨어 있었고.
좋아하는 간식을 먹을 때면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좌우로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아마 일시적인 증세일 거예요. 의사 말대로 여유를 갖고 기다려 봐요.”
“……네, 그래야죠.”
도겸의 턱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우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몸이 고장 나서 못 쓰게 되더라도 함께하겠다던 그날의 약속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러니 기억의 부재 정도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입속으로 되뇌며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 《아이돌 전쟁》 출연했을 때 영상인데요. 선우 형 때문에 10초의 기적이라고 불렸어요.”
“내가 무슨 실수라도 저질렀어? 나 때문에 웃음거리로 전락했다면 지금이라도 사과할게.”
선우는 멤버들에게 거듭 고개를 조아렸다. 그 광경을 마주한 도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 선우는 원래 저런 아이였지. 늘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진 않을까 전전긍긍이었다.
그런 선우가 변하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였던가. 데뷔 쇼케이스 무렵이던가.
무슨 심통이 났는지 고집을 부리다가도 돌아보면 멤버들을 이끌고 있었다.
“형, 실수 안 했으니까 사과하지 마. 아, 나하고 《학생 래퍼》 출연한 영상도 있어.”
“안 보고 싶어. 보나 마나 박자도 놓치고 더듬거려서 웃음만 샀을 테니까.”
자존감이 땅에 떨어지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갔다. 선우는 자신의 업적을 철저히 부정했다.
블랙시즌의 정체성, 부동의 인기 멤버, 작사 작곡까지 도맡는 총괄 디렉터.
그 많은 수식어를 외면하며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그럼에도 멤버들은 선우에게 끊임없이 과거를 되새겨 주었다.
“미안한데, 친구가 병문안 오기로 했거든.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면 안 될까?”
“친구 누구? 우리도 아는 친구야?”
“그런 것까지 말해 줘야 해?”
“나도 네 친구잖아.”
지호의 대답에 선우의 눈 밑으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선우는 한숨을 삭이며 중얼거렸다.
“친구는 무슨…… 네가 나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아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할 필요 없어.”
“미리 짚어 두는데, 그건 너 혼자만의 생각이야. 자꾸 땅굴 파지 마. 나도 지쳐.”
“네 입으로 말했잖아. 얼굴 말고는 봐줄 데도 없어서 차라리 없는 게 낫다며.”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했어?”
눈만 마주쳤다 하면 사죄의 말을 되풀이하던 선우가 처음으로 감정을 내비쳤다.
선우의 검은 눈동자에 경계심이 가득 깃들었다.
“이제 보니 나만 기억을 잃은 게 아닌가 보네. 네가 한 말까지 잊으면 안 되지.”
“미안, 내가 아마 그때 생각 없이 입을 놀렸나 봐. 분명 진심이 아니었을 거야.”
“아니, 네 덕분에 결심이 서네. 너희하고 굳이 대화 나눌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대화 나눌 필요가 없다니?”
순식간에 병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선우는 더 볼 가치가 없다는 투로 등을 돌렸다. 멤버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차피 너희 전속 계약도 해지됐다면서. 나도 더는 그 소속사에 있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너희하고 같이 활동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내가 잘못했어. 당장 대답해 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만약 부담스러웠다면 사과할게.”
그때였다. 병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선우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고등학교 친구인 광호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메, 멤, 멤버분들도 같이 계셨구나. 과, 과일 바구니를 더 큰 거로 사, 사 올 걸 그랬나 봐.”
“아냐, 어차피 돌아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멤버들은 병실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지금의 선우는 자신들보다 친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다 망쳐 버렸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지호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떨궜다.
과거의 언행이 업보가 되어 돌아왔다. 변명할 여지 없이 모두 자신이 벌인 일이었다.
“물러 보여도 결단력 있는 녀석이니까, 내 얼굴은 두 번 다시 안 보려고 할 거야.”
“지호 네 잘못만은 아니야. 어쩌면 우리 모두가 선우에게 상처를 준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도 몰라.”
도겸의 입매가 씁쓸하게 일그러졌다.
전속 계약 해지까지 이제 보름. 블랙시즌의 결말이 속절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강변역 인근 블랙시즌의 숙소.
도겸은 묵묵히 선우의 짐을 상자 안에 옮겨 담았다. 선우의 이모가 부탁을 해 왔기 때문이다.
원체 검소한 성정의 소유자라 그런지 짐이라고 해 봤자 옷 몇 벌과 잡화 두어 개가 전부였다.
책상 서랍 안쪽에 반듯이 놓인 수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도겸은 수첩을 집어 들었다.
〈블랙시즌 정규 1집 발매 후 계획〉
선우가 수기로 작성한 계획이었다. 도겸은 짐 정리를 멈추고 수첩을 들여다봤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도겸의 안면 근육이 파들파들 경련했다.
소속사 이적 후 블랙시즌이 어떤 행보를 걸었으면 하는지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앨범 컨셉은 물론이고 역할 분담까지 세밀화되어 있었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상한 것처럼.
〈다른 우주에서라도 좋으니 다시 만나자〉
중간마다 낙서처럼 적어 넣은 문장이 있었다. 도겸은 손끝으로 문장을 어루만졌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도겸은 문장을 옮겨적기 시작했다. 이내 멤버들을 찾아 나섰다.
“다들 모여 봐. 선우가 수첩에 남긴 메모인데, 다듬으면 가사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가사로 만들어서 뭐 하게요. 전속 계약 해지까지 겨우 일주일 남았는데요.”
“선우가 우리를 잊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이잖아. 완성하고 싶어.”
“형, 작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작곡은 누가 해.”
쿠당탕.
이층 침대 위층에 숨죽여 누워 있던 지호가 어쿠스틱 기타를 끌어안고 달려왔다.
“내가 할게.”
“일주일 안에 가능하겠어?”
“하고 싶어요. 제가 하게 해 주세요.”
“부탁할게. 꼭 완성해서 선우한테 들려주자.”
작곡은 지호, 가사 수정은 병철이 도맡게 되었다. 모두 수첩에 적힌 선우의 바람대로였다.
밤낮으로 매달리니 전속 계약 해지를 딱 하루 앞두고 완성할 수 있었다.
별다른 믹싱은 거치지 않고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맞춰 노래를 녹음했다.
문제는 선우에게 완성한 곡을 어떻게 들려주느냐였다.
“병실로 찾아가도 안 만나 줄 게 뻔한데, 어떡하죠?”
“방법이 있어. 그 사람이 부탁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지만…….”
도겸은 완성한 곡이 담긴 USB를 손에 꼭 쥐었다.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자존심을 굽힐 때였다.
* * *
해가 저물고 완연한 어둠이 찾아왔다. 선우는 병실 창가에 기대어 밤바람을 만끽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스무 살이 되어 있지를 않나.
평소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멤버들이 몰려와서 헛소리를 늘어놓지를 않나.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건 내가 아니야.’
실은 멤버들을 돌려보낸 뒤, 블랙시즌 관련 영상과 사진을 찾아보았다.
블랙시즌 선우는 찬란했다. 과연 그 사람을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웃는 모습도 말하는 방식도 다르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도 움츠러드는 법 없이 당당했다.
그에 반해 자신은 어떠한가. 얼굴 말고는 봐줄 데가 없다는 메인 보컬의 말이 정답이었다.
‘이 상태로는 그룹에 합류한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도 안 되겠지.’
그럴 바에야 블랙시즌의 미래를 위해 놓아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소 매몰차게 멤버들을 떨쳐 내긴 했지만, 달리 해결 방안이 없었다.
선우는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병상에 몸을 뉘었다.
잠을 자려는데 툭 튀어나온 휴대 전화 케이스가 만져졌다.
‘안에 뭔가 들어 있어?’
곧장 휴대 전화 케이스를 벗기고 내용물을 끄집어냈다.
작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머지않아 누군가가 남긴 편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열아홉의 나에게〉
잠시 멈칫했지만, 휴대 전화 플래시에 의존하여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2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블랙시즌 멤버로 살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적혀 있었다.
〈이 모든 행복을 너에게 넘겨주고 싶어〉
단순한 기억 상실이라면 어째서 비밀리에 편지까지 남겨 두었단 말인가.
선우는 편지 끄트머리를 움켜쥐었다. 할 수만 있다면 넘겨받고 싶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멤버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병상 위에 엎어 두었던 휴대 전화가 짧게 진동했다.
광호가 메시지 한 통을 보내왔다.
〈지금 《달밤 산책》 주파수 맞춰 볼래?〉
느닷없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 보라니. 선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휴대 전화로 ANB FM 라디오 프로그램 《달밤 산책》을 청취했다.
– 멀어진 인연을 그리워하는 사연자분께 이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 블랙시즌의 미공개 곡입니다. 《Universe》 듣고 올게요.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자, 선우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어쿠스틱 기타 선율에 멤버들의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 My Universe
은하를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고 있어
조금 오래 걸릴지 몰라
– 왜 몰랐을까
변한 건 나였는데
나약했던 나를 버리고
우주가 되어 지켜 줄게
– 영원한 이별은 아니야
(우리 꼭 다시 만나)
여전히 숨결이 느껴져
(우리 꼭 다시 만나)
– 완전한 작별은 아니야
(우리 꼭 다시 만나)
다른 우주라도 좋으니
(우리 꼭 다시 만나)
가만히 노래를 감상하던 선우의 손끝이 움찔움찔 떨려 왔다.
일순간 귀가 아닌 머릿속에서 맑은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알림! 히든 퀘스트 ‘하나의 우주’를 완료했습니다.] [플레이어의 메모리가 동기화됩니다.]병실 블라인드가 거세게 펄럭였다.
밤하늘을 장식한 별들이 형체 없는 반짝임으로 날아들었다.
선우의 고개가 뒤로 넘어가며 검은 머리칼이 사방으로 나부꼈다.
별들의 빛을 고스란히 받아 내던 선우가 파르르 속눈썹을 떨었다.
“아, 아아…….”
선우는 환자복 차림으로 병실에서 뛰쳐나왔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허공에 흩날렸다. 얼마 가지 않아 선우의 두 다리가 멎었다.
병원 입구를 지키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선우는 멈춰 선 채로 멤버들을 바라봤다.
멤버들은 선우를 향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선우는 단걸음에 멤버들의 품에 뛰어가 안겼다.
“보고 싶었어…….”
어스름한 불빛 아래, 다섯 개의 그림자가 하나가 되어 일렁였다.
광활한 우주를 돌아 마침내 다다랐다. 선우는 눈을 감고서 행복을 맞이했다.
* * *
뮤직 스타트. 김 대표가 어깨를 들썩이며 키보드를 두들겼다.
엔터를 ‘탁’ 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골반을 흔들었다.
“워호!”
안녕하세요.
NARAK ENTERTAINMENT입니다.
블랙시즌의 향후 활동 계획에 대해 안내해 드립니다.
블랙시즌은 정규 1집 활동 종료 이후 짧은 휴식기를 갖고자 합니다.
이는 멤버들의 강한 반발로 결정된 사항이며 11월 초에 활동을 재개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블랙시즌이 해체하거나 타 소속사로 이적한다는 소문은 근거 없는 낭설입니다.
당사는 블랙시즌의 성장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블랙시즌의 행보에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