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281)
281화 유죄 인간 한선우 (2)
미즈타니가 일본어로 무어라 말을 쏟아 냈다.
통역사가 곁에 있지 않으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위험해’ 정도였다.
[큰일이야! 굉장한 의미면 어떡하지? 김치 찢어 주기 스킬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미즈타니 씨?”
[위험해! 아직도 이쪽 보고 있잖아! 역시 천연 미남은 무서워!]“예?”
저 반응은 뭐지. 어쩌면 알아듣지 못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른다.
나는 방송용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양푼 갈비 손질에 열중했다.
얼마 안 가,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와 냄비 밥이 올라왔다.
냄비 밥을 미즈타니에게 덜어 준 뒤, 고등어 가시를 발랐다.
“자, 잔가시는 없는지 확인하고 먹어요.”
또 뭐가 문제인 걸까.
미즈타니는 깨끗이 가시가 발린 고등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상에 젖었다.
“처음이야.”
“고등어는 일본에도 있지 않나요?”
“부모님이 아닌 사람이 가시를 발라 주는 건 처음이야. 초등학교 입학한 후로는 혼자 발라 먹었고.”
전혀 궁금하지 않은 정보였다.
나야 숙소에서 병철이나 하준이에게 가시를 발라 주던 습관이 튀어나온 것뿐이었다.
“그렇구나. 저는 멤버들한테 종종 발라 주거든요. 물론 동생들 한정이지만요.”
“서누 군의 동생이 되고 싶어. 이제 그만 입적시켜 줘. 한국으로 입양 갈래.”
“동생이 되지 않아도 미즈타니 씨라면 얼마든지 가시 발라 줄게요. 그럼 됐죠?”
“서누 군은 상냥하구나. 그렇지만 모두에게 상냥해서는 안 돼. 분명 이상한 사람이 따라붙을 거야.”
왜 갑자기 훈계냐. 호적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한테 꺼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불어 현 상황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은 그쪽이라고 말해 두고 싶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아하하…….”
“내가 곁에서 상시 엄호하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그건 좀.
나는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어서 먹어 봐요. 식겠어요.”
“아, 그렇네! 잘 먹겠습니다!”
미즈타니는 넓게 펼친 묵은지에 양푼 갈비와 고등어를 넣고 돌돌 말았다.
입에 넣은 순간, 미즈타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맛있네! 그렇지만 조금 매울지도. 아니 많이 매울지도. 아니 곧 죽을지도.”
“많이 매워요? 쿨피스 마실래요?”
미즈타니의 유리컵이 비어 있었다. 나는 다급히 내 오른편에 있던 유리컵을 집어 건넸다.
쿨피스를 벌컥벌컥 들이켜던 미즈타니가 양손 엄지를 척 추켜세웠다.
“쿨피스에게 구원받았네! 일본으로 돌아갈 때 꼭 사 갈게! 잠깐, 근데 이 유리컵…….”
“응?”
유리컵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미즈타니가 주섬주섬 가방을 펼쳤다.
그러고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와중에 범법 행위를 저질렀다.
“가져가면 안 돼! 한국에서 그건 절도야!”
“일본에서도 절도인걸. 하지만 서누 군이 선물로 줬으니까 챙겨 갈래. 아리가또.”
터무니없는 상황에 안면 근육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은 바로 너래도.
* * *
양푼 갈비가 코로 들어갔는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 코스는 쇼핑. 상수동에 있는 편집샵 거리를 찾았다.
“여기, 인별그램에서 봤어! 들어가 봐도 되려나?”
“잠시만요.”
고개를 빼꼼 내밀고 촬영 협조를 구했다.
편집샵 사장은 흔쾌히 촬영을 허락했다.
“들어가도 된대요.”
“좋았어! 얼른 들어가자!”
이 동네에서 파는 옷은 가격이 무시무시하다는 걸 일러 줘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미즈타니가 호기롭게 외쳤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입어 볼게요.”
“허억!”
제아무리 촬영을 허락했다지만, 이곳은 패션쇼장이 아니라 편집샵이었다.
나는 미즈타니의 소매 끝을 끌어당겼다.
“다른 가게는 안 둘러볼 거예요? 여기서는 마음에 드는 옷 몇 벌만 입어 보지 그래요?”
“그렇지만 전부 마음에 드는걸. 민폐면 전부 살게. 서누 군도 실컷 골라.”
전부 사겠다고? 이 무슨 재벌 드라마의 한 장면인가.
그러고 보니 도키메키 프린스는 일본 내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보이 그룹이었지.
“들어가서 입고 나와요. 잘 어울리는지 봐줄게요.”
[이 상황 여친하고 데이트하러 온 남친 같지 않아?]“아닙니다. 평범한 게스트예요.”
“에? 서누 군 일본어 트였어?”
역시 회화에는 원어민과의 대화만 한 게 없었다.
듣고 싶지 않은 말까지 듣게 된 게 흠이지만.
“서누 군, 다 갈아입었어. 어때?”
“괜찮은데요? 재킷 핏이 딱 좋아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오늘따라 한국 아이돌처럼 느껴져. 당장 구매할래.”
미즈타니는 자신의 모습에 깊이 심취한 듯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봤다.
나는 넌지시 시선을 피했다. 일본 브랜드의 재킷이라고는 죽어도 말할 수 없었다.
“잔뜩 샀네! 돌아갈 때 캐리어 무게 추가해야 할지도 몰라!”
“마음에 들었다면 다행이에요.”
미즈타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종이 가방 꾸러미를 승합차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이후 다음 가게로 향하던 미즈타니의 두 다리가 우뚝 멈추어 섰다.
“서누 군은 주로 어디서 쇼핑하는 편이야? 스타일이 좋으니까 궁금하네!”
“응? 나?”
기억을 되짚어 가장 최근에 샀던 옷을 떠올렸다.
장 보러 나왔다가 우연히 스파 브랜드 할인 간판을 마주했지.
경량 패딩이 단돈 2만 9천 원! 올겨울 난방비 절감을 위해 머릿수대로 다섯 벌을 구매했다.
수면 잠옷 위에 경량 패딩을 입고 거실 바닥에 누워 있으면, 그야말로 극락이 따로 없었다.
“글쎄요. 패션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요.”
“그럴 리가. 지금 입고 있는 코트도 설원의 왕자님 같아! 서누 군만 괜찮다면 따라 사고 싶어!”
이 영광을 코트 주인인 지호에게 돌리겠습니다.
뺨을 긁적이던 나는 미즈타니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웃지 않을 자신 있어요?”
[우왓, 얼굴 엄청 가까워!]“데려다줄 테니까 따라와요.”
[나, 드디어 천사의 부름을 받은 건가?]미즈타니의 손목을 붙들고서 인근 스파 브랜드로 향했다.
먹색 경량 패딩을 당당히 집어 들자, 미즈타니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정말 이거?”
“응, 정말 이거.”
미즈타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경량 패딩을 만지작거렸다.
자, 봐라. 상상 속 왕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몸부림치는 서민만 있을 뿐.
“기뻐! 서누 군하고 같은 옷이라니 영광이네!”
“응? 실망하지 않았어요?”
“심지어 가격도 저렴해!”
“쓰읍…….”
미즈타니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경량 패딩을 계산했다.
편집샵에서 쇼핑했을 때보다 훨씬 들떠 보이는 얼굴이었다.
* * *
미즈타니가 고른 세 번째 코스는 바로 야경 구경이었다.
남산 타워에 가고 싶다는 말에 내가 제안했다.
“남산 타워는 번잡하거든요. 조용히 구경하기는 힘들 거예요.”
“그래? 서누 군과 함께 서울의 밤을 내려다보고 싶었는데.”
“남산 타워만큼은 아니지만, 괜찮은 곳이 있어요.”
“정말? 그리로 갈래!”
그리하여 낙산 공원에 도착했다.
야경 명소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화려한 맛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찾는 장소였다.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일이지만.
성벽을 따라 걷다가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면 가슴 안쪽이 일렁이곤 했다.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미즈타니 씨도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작업 멘트 미쳤다! 이거 나 꾀려는 속셈 아니야?] [응, 그런 거 아니에요.]“일본어 수준급이네!”
미즈타니와 나는 따뜻한 커피를 쥐고서 걸음을 맞췄다.
남산 타워와 비교하면 한적한 편이라서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역시, 서누 군하고 동행한다고 하길 잘했네. 실은 엄청나게 고민했거든.”
“저도 출연 제의가 들어와서 놀랐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미즈타니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배려도 겸손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유하자면 털을 바짝 세운 야생 동물 같았다.
[잠깐 카메라 좀 꺼 주시겠어요? 10분이면 돼요.] [알겠습니다.]미즈타니의 말에 카메라 감독은 저만치 거리를 뒀다.
답지 않게 머뭇거리던 미즈타니가 힘겹게 목소리를 짜냈다.
“MOC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난 뒤로 사무실이 뒤집혔거든. 실제로 사무실 선배들이 MOC와 유사한 컨셉으로 컴백하기도 했고. 전부 말아 먹었지만.”
“아.”
미즈타니는 조금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서 미즈타니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뮤직 샤워》에서 블랙시즌과 마주쳤을 때는 압박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줄곧 사과하고 싶었어. 진지하지 못한 태도로 임해서 죄송합니다.”
“미즈타니 씨, 이럴 필요 없어요!”
미즈타니가 깍듯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일으켜 세우려고 애써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블랙시즌에 대해서 많이 찾아봤습니다.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키메키 프린스는 이 이상 나아갈 수 없어요.”
“아, 정말이지…….”
내가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하자, 그제야 미즈타니가 고개를 들었다.
미즈타니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서누 군의 팬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쭉 응원할게요!”
“그게…….”
갑작스러운 외침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이윽고 스태프 무리에 다가가 물었다. 도움을 구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미즈타니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저도 당신의 팬이 될게요.] [큰일이야. 이제 환청까지 들려.]“일본어로 뭐라고 말하는지 물어보고 왔어요. 발음은 별로라도 알아들었죠?”
미즈타니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나는 그런 미즈타니의 손목을 이끌었다.
“아래 한번 내려다볼래요? 야경은 전망대보다 여기가 훨씬 예쁘거든요.”
[진짜네. 아름다워…….]미즈타니의 입술 사이로 뿌연 입김이 솟아올랐다.
야경이 제법 마음에 드는지 미즈타니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얼레, 뭔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은 기분인데.’
* * *
〈긴급 상황 발생! 미즈타니 측에서 촬영 중단 요청?〉
〈심상치 않은 공기에 제작진 전원 얼어붙고 마는데!〉
그럼, 그렇지.
방송국 놈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악마인 게 분명했다.
미즈타니의 고백은 음성만 추출되어 그대로 송출됐다.
그 결과, 방영과 동시에 한국어 자막이 추가되어 온갖 커뮤니티에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미즈타니 저 사람, 상황이 좀 위험해진 거 아니에요?”
“멘탈이 장난 아닌가 본데. 본계로 악플러들하고 싸우고 있어.”
mizutani_DMP ⓥ
아앙? 내가 일본의 수치라고?
일본의 수치는 너희들이잖아
앨범도 안 사는 주제에 훈계하지 마
방구석에서 열 낼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어때?
mizutani_DMP ⓥ
탈퇴하라는 DM이 쇄도 중입니다。
탈퇴하면 신오쿠보에 양푼 갈빗집을 차릴 예정입니다。
김치는 결대로 찢어 먹어야 제맛이라는 명언을 잊지 않았어요。
다만 고등어 가시는 손님께서 직접 발라 드셔야 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이게 다 유죄 인간 때문이지 뭐. 하하.”
“슬슬 집행하자.”
아아, 이게 나의 최후인가.
멤버들이 양팔을 결박하고 있었기에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사형수 한선우,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는가?”
“…다음 생에는 자중하겠습니다.”
도겸이 형이 손수 만든 사약이 입에 가까워졌다.
훅 끼쳐 오는 정어리 냄새에 나는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