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39)
39화 커버 곡이 필요해
광활한 우주, 그중에서도 우리 은하계에만 약 5,000억 개의 별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단 2,500개뿐이다.
그 누구도 발견해 주지 않는 별은 홀로 소멸한다.
“선우 형, 울어?”
연습실 한구석에서 아동 전집을 낭독하던 병철이가 내 얼굴을 살폈다.
나는 눈시울 붉히며 병철이의 손에 들린 《What? 별과 우주》를 응시했다.
“어흑, 왠지 남 일 같지 않아.”
사실 아동 전집이 아니라, 내 일기장인 거 아니야?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특출난 가창력과 춤 실력을 겸비했다고 해서 전부 인기 아이돌이 되는 건 아니다.
“그만한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짧은 눈빛, 가벼운 동작만으로도.
화면 너머에 있는 대중들의 마음을 홀릴 수 있어야만 한다.
선택받은 소수의 아이돌에겐 ‘악마의 재능’ 혹은 ‘천상 연예인’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무척 슬프게도 나는 선택받지 못한 별이었다.
“아냐, 분명 나한테도 숨은 매력이 있을 거야.”
무매력의 대명사 나 한선우.
오늘도 숨은 매력을 발견하기 위해 연습실 거울 앞에 섰다.
손바닥을 턱밑에 가져다 대고 꽃받침을 해 본다.
그러곤 한껏 귀여움을 끌어모아 오른쪽 눈을 찡긋거렸다.
“어때 병철아, 형 귀엽냐?”
“우욱, 그우욱…….”
병철이는 대답 대신 헛구역질을 연발했다.
아무래도 귀여움은 아닌가 보다.
좋아, 다음으론 이거다.
팔근육을 과시하며 치명적인 표정을 지어 본다.
“어때 병철아, 형 섹시해?”
“형, 혹시 내가 뭐 잘못했어?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병철이의 격렬한 반응으로 몸소 깨닫는다.
천상 연예인 칭호는 무슨.
나한테 붙은 건 기껏해야 모기 물림 방지 패치 정도였다.
나는 다크서클이 가득한 눈으로 퀘스트 창을 바라봤다.
[메인 퀘스트 – 블며들다]히든포토 기자를 매료하여 블랙시즌의 조력자로 만드십시오.
실패 시 페널티: 래퍼 피순대의 정체를 히든포토 특종으로 단독 보도
완료 보상: 능력치 강화 카드
악질 중의 악질인 시스템이다.
이래서야 원, 기어이 피순대의 정체를 만천하에 까발리겠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한숨을 푹 내쉬던 찰나.
“얘들아, 빵하고 우유 사 왔어.”
편의점에 들렀다 온다던 멤버들이 돌아왔다.
도겸이 형은 양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내밀어 보였다.
힐끔 안을 들여다보니, 웬일로 간식거리가 가득했다.
“형,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요. 식비 쪼들리는 거 아니었어요?”
“스케줄 잔뜩 잡힌 기념으로 대표님이 용돈 올려 주셨거든.”
“얼마나요?”
하고 묻자, 형은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오, 오십만 원이나?”
“아니, 오만 원.”
김 대표, 이 좀생이 자식.
기왕 올려 줄 거면 좀 화끈하게 올려 주던가.
고작 오만 원에 함박웃음을 짓는 멤버들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다들 앉아.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병철이를 제외하곤 모두 빵 한 조각씩 입에 물었다.
나는 양 볼 가득 딸기 크림빵을 욱여넣으며 멤버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까 행사를 뛰려면 적어도 두세 곡은 있어야 한다는 거죠?”
빽빽한 행사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선 대표곡을 제외한 여분의 곡이 필요했다.
문제는 블랙시즌의 곡이 데뷔 싱글인 《지켜 줄게》 단 한 곡뿐이라는 것.
수록곡? 응, 없어.
물론, 이후로 블랙시즌도 미니앨범과 정규앨범을 발매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꼴랑 데뷔곡 한 곡밖에 없었다.
“응, 그래서 부득이하게 타 아이돌 노래를 커버해야 할 것 같아.”
대부분 이런 경우, 소속사 선배 아이돌의 히트곡을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에겐 선배 아이돌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인기 아이돌의 히트곡을 커버할 수밖에 없는데.
대개 이런 경우는…….
“원목마의 마아에 밈어웅냠민다.”
“한선우, 빵을 처먹든지 말을 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해. 복장 터지니까.”
나는 입안 가득 물고 있던 딸기 크림빵을 꿀떡 삼키며 이야기했다.
“원곡자의 자아에 집어삼켜진다고.”
시리우스와 데뷔곡 체인지를 했던 경우와는 다르다.
인기 아이돌의 히트곡을 어쭙잖게 커버했다간, 비교란 비교는 다 당하는 데다.
그저 커버팀 취급일뿐, 블랙시즌의 정체성과 존재감은 우주의 먼지가 된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자작곡이라도 있어?”
문지호는 톡 쏘아붙였고, 나는 당당하게 엄지를 추켜세웠다.
“당연히 없지.”
“그럼 잔말 말고 커버나 해.”
한동안 상념에 잠겨 있던 도겸이 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우리 연습생 때 연습한 곡 중에서 고르면 어떨까?”
“나쁘지 않은데요? 우린 전부 숙지했으니까, 선우 형만 맞춰 보면 되겠네요.”
그렇군. 또 데뷔 직전에 긴급 투입된 나만 개고생할 예정이군.
나는 입술을 비죽였고, 하준이는 연습생 시절에 연습했던 곡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트와일라잇》, 《문리스 나잇》…… 아! 《와일드 키스》도 있어요.”
어째 죄다 섹시 컨셉 같은데, 기분 탓인가.
“형들, 《와일드 키스》는 어때요? 사실 제 최애 연습곡이었거든요. 흐흐.”
“음, 《와일드 키스》도 나쁘지 않지. 제일 오래 연습했잖아.”
다른 멤버들도 하준이의 의견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오직 나만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노래인지 잘 몰라서 그런데, 한번 불러 줄 수 있어?”
하준이는 머뭇거림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춤을 췄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곧게 뻗은 목과 불거진 울대를 은근히 부각했다.
이윽고 허벅지 안쪽을 손바닥으로 쓸며, 야성미를 강조했다.
– 나쁜 짓이란 걸 알면서도
그 두 눈이 나를 옥죄어
깊이 빠져든다
맘껏 헤집어 놔
가사를 들으니 그제야 기억이 났다.
과거, 블랙시즌이 유성대학교 축제를 비롯한 행사장에서 선보였던 커버 곡이었다.
“컨셉이 붕 떴는데. 안 어울려.”
“네?”
당시에도 같은 생각을 했지만, 말을 얹을 짬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시절 나의 목표는 오로지 ‘뚝딱거려서 멤버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였으니까.
무대 위에서 멤버들이 허벅지 쓸기 춤을 출 때.
나 홀로 세신사에 빙의해 헐레벌떡 때밀이 춤을 췄던 기억이 남는다.
“미성년자만 넷인 그룹에서 어필할 수 있는 컨셉이 아니잖아.”
장장 7년간 묵혀 온 마음을 담아 팩폭을 날렸다.
하준이는 야단을 맞은 강아지처럼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렇게 별로였어요?”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에 뒤늦게 아차 싶었다.
다른 멤버들은 ‘뭐야, 저 꼰대는’하는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양팔을 휘휘 저으며 답했다.
“아핫, 하준이야 평소처럼 잘했지. 다만 컨셉이 너무 어른스럽지 않나 해서.”
그러자 잠자코 앉아 있던 지호가 돌연 언성을 높였다.
“우리 신곡 정하는 것도 아니고, 행사에서 부를 노래 정하는 거잖아. 그냥 대충해.”
마음 같아선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겐 히든포토 기자를 매료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있었다.
우리의 컨셉과 딱 맞는 곡을 골라서 영혼을 갈아 넣은 무대를 선보여도 모자랄 판국에.
뭐, 섹시?
얼굴엔 젖살이 포동포동, 몸은 멸치 그 자체인데. 뭐, 섹시?
퍽이나 먹히겠다.
……라고 말할 순 없었기에, 나는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대충? 나는 매 무대가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어.”
번지르르하게 말했지만, 속마음은 이러했다.
퀘스트 실패하면 나 진짜 X 된다니까?
피순대의 정체가 까발려지기 무섭게 칠리랩이 날 족치러 올 텐데.
난 죽기 싫다고오오!
적선하는 셈 치고 이번 한 번만 살려 주라, 응?
“생각해 보니까 선우 형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목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하준이였다.
하준이의 머리 위로 펼쳐진 홀로그램이 환하게 빛났다.
생년월일: 06. 09. 02(17살)
갱생 가능성: ●○○○○
그래, 각 멤버의 갱생 가능성 항목은 신뢰도와 직결된다고 했었지.
일전에 창고에 갇혔을 때, 하준이의 갱생 가능성을 높여 둔 게 도움이 된 모양이다.
“선우 말대로 섹시 컨셉은 우리한테 좀 이르긴 하지. 나 혼자면 또 모를까.”
블랙시즌의 중재자이자, 유일한 성인인 도겸이 형이 내 손을 들어 줬다.
그러자 문지호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섹시 컨셉만 아니면 되는 거야?”
“곡을 고르는 기준을 정해 줄게.”
손가락을 접어 가며 기준을 제시했다.
첫째, 《지켜 줄게》의 컨셉과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둘째, 최근에 발매한 노래는 피할 것.
셋째, 발매한 지 오래된 노래라도 메가 히트곡은 피할 것.
“음, 생각보다 까다롭네.”
멤버들이 내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발전이었다.
과거, 흑화한 멤버들이었다면 ‘수납멤버 주제에 선 씨게 넘네?’하고 비아냥댔을 게 분명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참에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병철이는?”
“계속 헛구역질하던데, 토하러 간 거 아니에요?”
설마 내가 거울 앞에서 귀여운 척 좀 했다고 진짜로 속이 뒤집힌 건 아니겠지.
얼마 안 가, 입가에 물기가 흥건한 병철이가 연습실로 돌아왔다.
“병철아, 속은 좀 괜찮아?”
“응. 한번 토하니까 괜찮아졌어. 근데 뭐 하고 있었어?”
“행사 뛰면서 부를 만한 노래를 찾는데, 쉽지 않네.”
“내가 즐겨 듣는 곡이 있긴 한데.”
병철이는 휴대 전화를 꺼내 들어 노래를 재생했다.
병철이가 즐겨 듣는 노래라니.
귓구멍에 쿵쿵 때려 박히는 힙합인 줄로만 알았는데.
– Hello Wendy
네버랜드에서 나와 밤하늘을 가로지르자
영원히 간직될 Dream, 포근한 찰나의 Memory
저길 봐, 별이야
In your memory, we never get old
“딥 하우스?”
딥 하우스(Deep House).
하우스 음악의 하위 장르로 여름에 듣기 좋은 청량감이 돋보이는 장르다.
“저 이 노래 알아요! 리겔의 《Hello Wendy》 맞죠?”
“응. 발매한 지 5년 정도 됐는데, 지금 들어도 트렌디하더라고.”
리겔이라면 지금은 해체한 6인조 아이돌이었다.
발매한 지 5년이나 지났다면, 시기도 딱 적절했다.
“병철이 너 이 자식, 역시 너드 컨셉이 아니라 진짜 천재였어!”
감격에 겨워 병철이를 와락 끌어안았다가, 반박자 늦게 멤버들의 반응을 살폈다.
설마 반대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확실히 우리한테 어울릴 것 같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데뷔곡 보다 훨씬 퀄리티 높네.”
“저도 찬성이요!”
기적이다.
멤버들이 이토록 단합이 잘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눈물을 글썽였고, 도겸이 형은 내 머리칼을 가볍게 헝클었다.
“행사장에서 커버하려면 원저작자한테 허락 맡아야 하니까, 대표님한테 다녀올게.”
“그럼 저희는 안무 따면서 기다릴게요.”
연습실 내부는 활기로 가득 찼다.
오래간만에 다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라서 덩달아 힘이 샘솟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머리 위로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안무 연습 모드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Y/N]응, 안 해.
오늘은 차근차근 안무를 익히고 싶으니, 가볍게 무시하자.
그러자 내 행동에 분개한 시스템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일일 퀘스트 – 고장 난 목각 인형 수리하기]MISS 없이 안무 연습 모드를 완수하십시오. (완곡 50회)
실패 시 페널티: 행사 커버 곡을 《Wild Kiss》로 변경.
완료 보상: 버프 카드 지급
“으아아아악!”
[안무 연습 모드를 자동 활성화합니다.] [READY!]병철이가 휴대 전화를 두들겨 음악을 재생하자, 마구잡이로 무릎 관절이 꺾였다.
이윽고 나는 한여름에 모기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처럼 허공에 팔다리를 휘둘렀다.
휘적휘적.
“나, 이거 진짜 싫어어어!”
“뭐야, 연습실에 모기 들어왔어?”
병철이는 태연한 얼굴로 나를 향해 에프킬라를 칙 뿌렸다.
아아, 눈이 맵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서 춤 연습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