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brother ever RAW novel - Chapter 154
사상 최강의 오빠 155화
56장 필연(1)
검은 머리의 마녀, 앨리스가 말했 다.
“이럴 시간 없으니까 그만 일어서 라. 악몽의 끝이 도래하기 전에, 네 오빠 놈의 곁으로 가야 한단 말이 다.” 자신의 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정 소담을 보며 김세정이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망설이지 않았다면, 내가 바보같이 굴지 않았다면… 살 았었을 텐데… 아니, 하다못해 내가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앨리스가 눈을 반개한 채 무미건조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랬어도 변하는 건 없다. 잊지 마라, 이곳은 엄연히 과거이며 저들은 망령에 불과하다는 걸. 그리 고 과거에 그들은 전부 죽었다. 네 가 있었든, 없었든 간에.”
김세정이 비통에 차서 울부짖었다.
“내가, 내가 바꿀 수 있었어! 내 가… 조금만 더 침착했다면, 조금만 더 결단력이 있었다면…!”
“오냐, 그걸 아니 다행이구나. 그렇 다면 지금의 그 감정, 새겨두거라. 그리고 너의 후회 또한 새겨두거라. 그리고, 반복하지 마라. 이 미련함 O ”
“…새겨두라고?”
“그래, 김세정. 이건 그걸 위한 여 정이며, 일종의 예습이니라. 그리 고… 감사해라. 오늘 네 품에 안긴 것이, 네 오빠 놈도, 네 어미도, 네 동료도 아닌. 그저 악몽 속의 망령 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
앨리스가 천천히 뒤돌며 말을 이었 다.
“그러니 이제 바보처럼 구는 건 그 만둬라. 김세정. 이제 A급 헌터가 됐으면… 개미 눈곱만큼이라도 더 성숙해져야 할 것 아니냐?”
앨리스의 말에 눈물이 말라붙은 눈 매를 깜빡이며, 김세정이 고개를 들 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인지했다. 자신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나의 격류를.
“무슨…?”
“솔직히… 중급종만 잡았어도 충분 했겠지. 그런데 상급종이라니… 과 분한 업적이구나. 아니지, 천운이라 고 해야 하나? 상대가 내구 수치가 높지 않은 메커스 토드였다는 것도, 네가 라이트닝 레이저와 마력 폭발 을 얻은 것도. 전부 우연이었으니.”
특히, 마력 폭발을 얻은 것은 실로 천운이라 할 만했다. 단발성이지만, 스텟을 뻥튀기해 주는 마력 폭발 같 은 스킬은 규격 외의 성질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희소한 것은 물론이고, 비록 패널티가 있긴 했으 나, 사용하기에 따라 자신보다 격이 높은 상대를 얼마든지 침몰시킬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만약, 마력 폭발의 스킬북 이 중간계가 아닌 라플레시아에 나 타났다면 수천 명도 넘는 이의 피를 불렀으리라.
그리고 그런 스킬을 참으로 시기적 절하게도 얻었다는 사실에, 앨리스 가 은수실 같은 눈썹을 까딱거렸다.
‘우연이라…? 그럴까? 과연… 신의 잣대에 의해 좌우되는 이 세계에 우 연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까? 아니, 어쩌면 필연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지도… 후우, 아무래도 김세정. 네 여정 또한 순탄치는 않겠구나. 원래 신의 관심을 받는 족속들은 불행해 지기 마련이거든… 그래, 네 오빠 놈처럼….’
김세정의 목소리가 앨리스의 상념 을 깨트렸다.
“앨리스. 가자.”
정소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일 어난 김세정의 얼굴은 아직도 복잡 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기 에, 애써 다부진 척 중얼거렸다.
“모르겠어. 뭐가 뭔지 모르겠고, 지 금도 돌아버릴 것 같을 정도로 머릿 속이 복잡하지만… 그래도 이 거지 같은 악몽의 끝… 끝까지 봐주겠어. 그래서… 이 미친 세계에서 오빠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놓치지 않겠 어.”
“…좋은 각오로다. 오냐, 그럼 가 자. 폐막임과 동시에, 서막이었던… 오늘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천혜수가 경각심에 물든 목소리로 소리쳤다.
“암혹도…? 이 미친놈이… 제 생명
을 깎아서 마술을…!” 천혜수의 말이 끝맺기도 전에 암흑 도의 시커먼 날이 그녀의 목덜미를 베었지만, 도끼로 거목을 팬 듯 움 푹 패며 핏물이 터질 뿐, 잘라내지 못했다.
그걸 본 김세훈이 이를 악물었다. 놀랍게도 무력화된 상황에서도 암흑 도의 일격을 거뜬히 견뎌낸 것이다. 하지만, 통증마저 어쩔 수 없었는지 천혜수가 비명을 지르며 저주를 퍼 부었다.
“캬아악! 이 벌레 새끼! 네놈 따위 가 가, 감히… 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검은 안개의 도가 그녀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그러자 다시금 살 조각과 피가 터 져나갔다. 물론, 아직까지는 생채기 보다 조금 더 심한 정도였지만 상관 없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 다고 했듯, 될 때까지 후려치다 보 면 언젠가는 잘라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하아, 하아….”
암흑도를 쥐고 두 번 휘둘렀을 뿐 인데도, 숨이 가빠지고 눈앞이 희끄 무레해졌다. 어쩔 수 없었다. 타 속 성의 마술이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과 달리, 어둠 속성의 마술은 체 력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에, 원래라면 체력 스텟이 6 0에 불과한 김세훈은 LV 6 마술을 전개할 수 없었다.
그래, 부족한 부분을 생명력으로 채워 넣지 않는 이상에는.
그 사실을 일찍이 간파한 천혜수가 안광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조금이다. 조금이면 된다. 네놈도 제 수명을 깎아 마술을 전개하는 만 큼 오래 유지할 수 없겠지. 그때까 지만 버티면…!”
“…걱정 마라. 내가 죽는 것보다 네년이 죽는 게 먼저일 테니.”
도핑 포션으로 30년의 수명이 깎 였고, 암흑도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수명은 짧아지고 있 다.
그리고 분명, 이 암혹도가 시드는 순간이 그의 마지막일 터. 그러니 그 전에 천혜수의 숨통을 끊어야 했 다.
쾅! 쾅! 쾅!
충차가 성문을 들이박는 것과 같은 굉음과 함께, 천혜수의 목에 점차 깊은 상흔이 새겨졌고, 커터칼에 베 인 듯 옅은 혈흔만 자욱하던 그녀의 목 줄기에서 흐르는 핏줄기가 점차 굵어지기 시작했다.
10분의 9, 10분의 8. 10분의 7. 결 국, 천혜수의 목이 이제 막 넘어가 기 직전인 나무의 밑동처럼 덜렁거 리기 시작했다.
김세훈은 기어이, 천혜수의 목을 완전히 떨궈내기 전까지 단 세 번의 공격만을 남겨 놓았으나, 그의 상태 도 정상은 아니었다.
몰골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처럼 피골이 상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지독한 근기(根氣)에 치를 떨던 천혜수가 피거품을 머금고 말했다.
“끄르륵… 아나?… 악어한테는… 악어새가 있….”
천혜수가 무어라 나불거렸지만, 그 녀에게 수작을 부릴 시간을 줄 생각 도, 그럴 여유도 없었던 김세훈은 말없이 다시 암흑도를 휘둘렀다.
쾅!
덜렁거리는 목, 확실했다. 앞으로 두 번. 두 번이면 완전히 끝낼 수 있었다. 그때, 불청객이 찾아왔다.
“멈춰라! 당장 멈추지 않으면… 성 녀의 목숨은 없다.” 상체는 인간 여자와 다를 바 없으 나, 두 팔이 있어야 할 곳에 푸른 깃을 품은 날개를 펄럭이는 인외종.
하피가 하늘을 부유하며, 맹금류의 그것을 닮은 발톱으로 에일린의 어 깨를 쥔 채, 금세라도 그녀를 떨굴 것처럼 위협했다.
하피를 본 천혜수가 목을 덜렁거리 며 말했다.
“끄르륵… 왜 이렇게 늦은….”
“…죄송합니다. 자작님. 성녀의 저 항이 거세서 좀 늦었습니다.”
그 말대로 넝마가 돼 있는 에일린 의 상태와 그 못지않게 깃털이 숭숭 빠져 있는 하피의 상태를 보아, 김 세훈이 천혜수와 혈투를 벌이는 동 안, 에일린 또한 하피와 격전을 벌 였던 것 같았다.
하피가 김세훈을 보며 경고했다.
“버텍스! 들어라, 당장 물러서라. 안 그러면 성녀를 죽여버리겠다.”
동시에, 김세훈의 눈과 에일린의 눈이 마주쳤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 가 그녀의 은빛 눈동자를 적시고 있 다.
그리고 피에 물든 달과 같은 그녀 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5번이 넘게 깜빡였다.
신호였다. 그들만의 신호. 마치, 이 런 날이 언젠가 올 거라 예견했던 것처럼, 그녀가 미리 일러두었던 신 호.
그걸 본 김세훈이 실성한 듯 나직 한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
“…내가 물러서면? 그녀도 살려주 고… 나도 살려줄 텐가?”
김세훈의 물음에 하피가 눈에 띄게 당황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말 했다.
“오냐, 살려주마. 어차피 네 몰골을 보아, 살려둬도 오래 못 살 거 같으 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후후… 너희들을… 믿기에… 난 이 세계를 너무 잘 안다. 그래, 지 나치게 잘 알아….”
“뭐? 네놈…! 지금 뭐하려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없는 세상 따 위, 자신에게 의미 없다는 것을. 그 리고 사실 진심은 달랐다.
무릎을 꿇어서라도, 그녀가 살 수 있다면, 얼마든지 꿇을 것이다.
그래, 그녀가 살 수 있다면. 심장 을 내놓으라면 내놓고, 영혼을 내놓 으라면 내놓을 수 있었다.
하나, 그는 저것이 기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김세훈이 힘껏 소리를 질렀다. 다 쏟아내고 나면 울분 따위는 사라질 것처럼. 답답한 감정을 전부 실어 내지르며 암흑도를 휘둘렀다.
쾅!
거의 다 됐다. 이제 한번. 앞으로 한 번이면 끝이었다.
“버텍스으–!”
콰직.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 이윽고 들려오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 그것 만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짐작이 됐다.
그리고 행여라도 그의 의지를 꺾을 까 싶어, 신음 한 번 없이 떠난 그 녀의 마지막도.
용암처럼 뜨거운, 감정이 심장을 타고 솟구쳐 올라, 눈을 타고 흘러 내렸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대체 왜 자 신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다, 평 범한 여인을 만나서, 그렇게 결혼해 서 자식을 낳고 사는 게 꿈이었다. 그래, 그게 전부였다. 그가 바라는 것은.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가 바라는 것 은 평범한 게 아니라, 사치가 돼버 렸다.
그래, 결코 닿을 수 없는 과분한 사치.
‘걱정 마. 누나. 곧 따라갈게.’
하나,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그 의 손에서 검은 안개의 검이 신기루 처럼 사라진다.
온몸의 기력이 사라지고 꺾일 줄 모르던 그의 무릎이 꺾여 바닥에 닿 았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시커먼 핏 덩어리.
“쿨럭….”
메마른 사막의 공기를 들이켠 것과 같은 마른기침과 함께 김세훈이 핏 덩어리를 토해냈다.
잠깐이었다. 하피가 나타난 후 그 잠깐의 망설임.
그것이 그에게서 끝을 마무리할 기 회를 앗아갔다.
마나도, 체력도 전부 없는 그의 머 리카락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 다. 근원이 소실됐다는 징조였다.
“자작님! 이, 이런 개 같은 놈이 감히!”
한달음에 달려온 하피가 끈적거리 는 푸른 피를 목 줄기에서 뿜어대는 천혜수를 보고 분개해선 김세훈의 목을 단매에 치려 했으나 천혜수가 그걸 제지했다.
“끄르륵… 그만… 죽이지 마라.” “네? 하지만….”
“끄르륵… 치료, 치료부터….”
천혜수의 재촉에 하피가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에서 푸른 심장을 꺼내 들었다.
인외종들이 치료 목적으로 제련한 트롤의 심장이었다. 하피의 도움으로 심장을 섭취한 천 혜수의 목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덜 렁거리던 목이 다시 엉겨 붙고, 혈 독에 의해 굳어 있던 신경계와 돌이 됐던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완전히 회복한 천혜수가 백 발이 된 채, 살아 있는 해골이나 다 름없는 몰골로 무릎을 꿇고 있는 김 세훈을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죽을 뻔했다.”
천혜수가 크게 발을 굴렀다. 그녀 의 발이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며 주변의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 라졌다.
“진심으로! 내가 인간 새끼에게 죽 을 뻔했단 말이다! 너무 무서웠다. 죽는 줄 알고… 진짜… 이 내가, 이 크로커다일이! 공포에 떨었다고…! 이…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새끼 같 으니 라고.”
천혜수가 악독한 눈빛으로 김세훈 을 노려보며 말했다.
“절대 곱게 죽이지 않겠다. 살려서 가지고 놀다, 죽여달라고 애원할 때 죽이겠다. 어차피, 근원이 소실됐기 에 오래 버티지 못하겠지만… 상관 없다. 뭐하느냐? 트롤의 심장이라도 처먹여라. 그럼 며칠이라도 더 살겠 지.”
“네? 하지만… 버텍스는 빨리 죽여 야 한다고. 안 그럼 베히모스가 전 승될지 모른다고 하셨….”
“닥쳐! 이제 그딴 건 아무래도 상 관없다. 베히모스든 뭐든 다 필요 없다. 모르겠느냐? 정말 죽을 뻔했 단 말이다. 빌어먹을, 조금 지리기까 지 했다고! 내… 이 새끼를 곱게 죽 이느니 차라리 작위를 버리고 말겠 다.”
천혜수가 김세훈의 머리채를 잡아 고개를 젖혔다. 그리고 썩은 동태눈 깔처럼 죽어버린 그의 눈을 살피더 니 실망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이놈… 눈깔이 죽었잖아. 흠, 이러면 재미가 없는데….”
고민하던 천혜수가 묘수가 떠올랐 다는 듯 씨익 웃었다.
“일단 트롤의 심장부터 먹여라. 재 밌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죽어버리 면 너무 아쉽잖느냐.”
하피는 영 내키지 않는단 표정을 하면서도 천혜수의 지시를 따랐다.
“…알겠습니다.”
하피가 김세훈의 목구멍에 트롤의 심장을 구겨 넣었다. 그러자, 백발이 었던 그의 머리카락 색이 3분의 1 정도는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이미 암흑도를 시전하느라 근원에 금이 갔기에, 트롤의 심장을 먹여봤 자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꼴이겠 지만, 상관없었다.
천혜수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분 풀이에 필요한 시간이었으니.
이윽고,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온 천 혜수가 김세훈에 고개를 손으로 잡 고 자기가 가져온 것을 억지로 쳐다 보게끔 했다.
“누.. 나?”
이미 숨이 다한 에일린의 시체를 가죽 포대를 끌고 오듯 한 손으로 끌고 온 천혜수가 김세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 들은 바는 있다. 성녀와 버텍스 는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끌린다고. 후후, 서로 사랑하는 사이겠지. 아〜 사랑, 참 그리운 단어로구나. 한때 나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던 때가 있었거늘….”
“…날 농락할 셈이냐? 그럼 소용없 다. 어차피 난 이제 곧 죽는다. 뭐… 그동안 나를 고문하고 싶다면야 좋 을 대로 해라. 인생 하직하기 전에 개새끼 비위 맞춰주는 것 정도야 어 렵지 않으니.”
“호호, 이 앙큼한 새끼 같으니. 곧 죽어도 주둥이는 살아 있구나. 그 래? 그럼… 재밌는 걸 보여주지. 아, 사실 말이야. 나도 이런 연출은 오랜만이라… 떨리는구나.”
그 말을 끝으로, 천혜수는 김세훈 의 앞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뼈가 씹히는 소리, 무언가 통째로 삼켜지 는 소리.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과 귀 로 똑똑히 확인한 김세훈의 눈이 시 뻘겋게 충혈됐다.
그와 동시에 김세훈의 안에서 무언 가가 부서졌다.
그리고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는 천혜수에게 달려들었다. 주먹 으로 식사를 하는 천혜수의 머리를 치고 어깨를 걷어찼다.
하지만, 천혜수는 어린애 재롱을 받아주듯, 여유롭게 그의 앞에서 그 가 사랑하는 이의 모든 것을 남김없 이 먹어치웠다.
뼈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아하하, 이제야 눈빛이 봐줄 만하 구나…?”
김세훈은 언어를 잃은 짐승처럼 울 부짖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천혜 수의 발길질 한 번에 다리가 부러진 채 나동그라졌다. 그는 생각했다.
-만약, 나에게 모든 상처를 한 번 에 회복할 수 있는 재생력이 있다 면.
천혜수의 주먹질 한 번에 흉부의 뼈가 박살이 난 채 바닥을 구르며 생각했다.
-만약, 나에게 태산도 부술 만한 힘이 있다면.
천혜수의 발아래 머리가 짓밟힌 채 김세훈이 피를 토해냈다.
-만약, 나에게 그런 기회가 온다 면.
김세훈이 메마른 말을 토해냈다.
“전부… 죽여 버리겠다. 너희들, 인 외종들을 전부… 깡그리 몰살시키 고… 너희를 만들고… 나를 이렇게 만든… 세계… 신… 전부… 없애버 리겠다.” “깔깔깔, 아, 버텍스. 어리석은 버 텍스여. 미쳐 버렸구나. 미쳐 버렸 어…! 그래, 네 눈. 네 목소리. 모든 게 날 즐겁게 하는구나. 그래, 바로 그 눈빛이다. 내가 원하던 것이!” “전부… 전부…!”
– 늦었나.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와 함께 열 풍이 김세훈과 천혜수 사이를 가로 질렀다.
그리고 그 일격에 대지가 갈라지 며, 시커먼 아가리를 쩍 벌렸다.
천혜수는 김세훈의 사이에 깊은 절 벽을 만든 존재를 찾아 헤맸다. 그 리고 이윽고 그녀는 숲의 너머에서 우직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중년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사막의 모래를 닮은 거친 피부와 바람에 나부끼는 찢어진 흑색 깃발 과도 같은 긴 머리카락.
40대가 넘었음에도 새치 하나 없 는 흑발에 깔끔히 정돈된 콧수염. 붉은 무복에 새겨진 황금 독수리.
그자가 누군지 알아본 천혜수가 턱 을 덜덜 떨며 뒷걸음질 쳤다.
“베, 베히모스…?”
마(魔)에 속한 자 중, 그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을까.
중간계의 주민들에겐 세 가지 불문 율이 있었다.
-불식(不食) 그의 앞에서 식인하지 말라.
-불살(不殺) 그의 앞에서 살인(殺 人)하지 말라.
-불설(不舌) 그의 앞에서 혀를 놀 리지 말라.
3금(三禁)의 규율을 세운 자.
중간계를 4분하는 사황(四皇)중 한 명이자, 마(魔)들이 이르길 짐승의 왕. 인간이 이르길, 대적자(對敵者).
그를 칭하는 수많은 미사여구가 있 으나 기실,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베히모스. 이 네 글자만으로도 충 분했으니.
-아잉, 베히모스. 거기 좀 더 만져 주면 안 돼? 웃흥, 그래, 거기. 손잡 이의 그 부분이 내 성감대라서 거기 만져 주면 좋….
중년 남자가 마검, 레기오스의 칭 얼거림이 듣기 싫다는 듯 땅속 깊이 마검을 박아버리고선 말했다.
“신명(神命)을 받은 뒤, 쉬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으나, 결국… 성녀는 죽었나….”
마검이 저 스스로 땅속에서 쏙 튀 어나오며 말했다.
-킁, 신들이 성녀와 베히모스를 동 시대에 살려둘 리 없다는 것. 잘 알 잖아? 너도 잃었고, 그 전전대도, 베히모스들은 전부 잃었으니까. 아 마… 모르긴 몰라도 그 둘이 같이 있으면 껄끄러운 모양이야. 그러 니… 성녀가 죽는 건 필연이었달까?
“필연이라… 쯧, 선택할 수 없는
운명만큼 가혹한 게어디 있을까
한숨을 쉰 중년사내가 돌연, 레기 오스를 걷어찼다. 그리고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아 허공을 날아간 레기 오스가 김세훈의 바로 앞에 내리꽂 혔다.
자신의 앞에 우뚝 꽂힌 검은 마검 을 황망히 바라보는 김세훈에게 중 년 사내가 말했다.
“네가 당대의 버텍스라면, 증명해 봐라. 너에게… 전승자(傳承者)의 자 격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