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03
◈ 속삭임과 거지
신교의 자치권 행사는 국민 투표로 진행되었다.
재해급 괴이에 대한 대응 기제로 특혜를 준다는 골자였다.
당연히 반발은 엄청났다.
특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특혜를 줘서라도 잡아둬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인천으로 돌진하던 갑삭의 영상이 공개되며 그 의견이 힘을 받았다.
군대도, 능력자도.
높은 곳에 위치한 정치인들도 처리할 수 없을 일.
이를 막아 줄 수 있다면 특혜 정도는 싼값이었다.
“해서, 신교를 자치령으로 구분. 해당 인사들은 외교특사 지위로 인정한다. 범죄에 대한 처분도 모두 신교의 법령에 의거한다.”
“정부에서 잘도 이런 걸 인정해 줬네요.”
“어쩔 수 없었지. 당장 신교가 떠난다고 하면 발등에 불 떨어지는 건 그들이니까. 산과 궁을 공개할 수도 없고, 이렇게라도 잡아두는 게 최선이야.”
“이러면 우리는 이중국적이 되는 건가요?”
“그건 좀 복잡해. 당장 처리될 일은 아니니까, 시간을 두고 보자고.”
표면적으로 처리한 일을 제외하고도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국적은, 면허는, 소유 재산은…….
따지고 들자면 지독하게 많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정부와 신교의 관계였다.
“후후. 그래도 그 콧대 높던 인간들이 숙이는 모습은 보기 좋았어요.”
“저들도 아는 거지. 지금 상황에서 누가 위에 있는지. 게다가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은 상황에서 칼바람 불기에 딱 좋거든.”
“꼭두각시의 반란이라 이거죠.”
“산과 궁을 뒷배에 둔 채 호가호위하던 놈들이 태반이니까. 이제 신교를 뒷배로 두면 입장이 바뀌는 거지. 대통령도 이참에 칼을 뽑아 들려나 봐.”
“대통령도 딱히 다를 건 없는데.”
“최선이 아니더라도 최악만 아니면 되니까.”
대통령은 귀가 얇고 휘둘리기 좋은 타입.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장작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줏대도 있고, 고집도 있었다.
사태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몸 기댈 곳 찾는 요령도 제법이었다.
성군은 아니더라도 암군은 되지 않을 수준.
적어도 천마가 존재하는 한, 주제를 알고 움직일 사람은 됐다.
“문호 개방에 대해서는 협력하겠죠?”
“거부할 이유가 없지. 기존의 세력들이 반발하기는 하겠지만, 꼬우면 덤비든가.”
“흐흐. 기남 오라버니도 태상문주님 닮아가네요.”
“발끝이나마 닮았으면 하는 거지. 그래서 문호 개방에 쓰일 무공 정리는 돼 가고 있는 거냐?”
“태상문주님께서 고생하고 계셔요.”
“그분 성미에 용케 허락해 주셨네.”
“헤헤. 제가 좀 떼를 썼죠.”
천마는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무고였다.
그의 머리에는 수천 개의 무공이 담겨 있었다.
일부만 풀어도 피바람이 불기 충분한 보물들.
이지아는 청월루의 루주로서 이를 그냥 방치해 둘 수 없었다.
“방식은 어떻게 할 건데?”
“명맥을 잇는 이들을 우선해야죠. 그리고 나머지는 행적과 평판 등을 고려해서 전수할 예정이에요.”
“보통 일이 아니겠는데?”
“전력을 다해야죠. 앞으로 산과 궁을 뒷배로 둔 나라들과 싸우려면, 이 정도 준비는 필수적이에요.”
“공개적으로 움직일까?”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아도 은밀하게는 움직이겠죠. 이런 흐름은 그들로서도 당황스러울 테니, 휴식기를 가질 수도 있고.”
공표가 끝나고 시간이 흘러도 산의 반응은 없다.
심지어 황궁조차 공주의 방문을 눈치챘을 텐데, 아무런 행동이 없었다.
신중한 건지, 겁을 내는 건지.
아직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일단 당면한 일부터 확실하게 처리하자.”
“네. 아, 소식을 전하는 걸 깜빡했네요.”
“응? 소식이라니?”
“서휘 오라버니요. 이번에 녹서스의 총책임자로 임명됐어요.”
“결국에는.”
안기남이 피식 웃으며 먼 곳을 응시했다.
그리 짐을 얹고 나아간다 싶더니 결국 원하던 바를 쟁취했다.
“축하하러 갈까요?”
“됐다. 일에 치여서 바쁠 텐데 귀찮게 굴 수는 없지.”
“섭섭해하지 않을까요?”
“그놈이? 굳이 말로 안 해도 전해지는 게 있는 법이야.”
창을 뽑아 한쪽을 겨누며 안기남이 중얼거렸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더 강해져 있어라.”
남자 대 남자의 약속이었다.
“저기, 핸드폰으로 해도 되는데. 영상통화도 있고.”
“……”
“뭐하면 꽃다발이라도.”
안기남이 말없이 돌아섰다.
#
갑삭은 구부정하니 고개를 내렸다.
천마가 발을 딛고 타게끔 자세를 취한 것이다.
거대한 머리는 다리가 되고, 그 위에 탄 천마는 조종사가 되었다.
“주변이 시끄러우니, 잠을 자기도 쉽지 않겠구나.”
천마가 짧게 혀를 차며 갑삭을 다독였다.
갑삭이 당도한 인천항 주변은 취재진과 시위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죽여야 한다니, 몰아내야 한다니, 집값 내려간다니.
사람이 많은 만큼 말도 많았다.
밤낮으로 시끄러우니 갑삭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남들 보기에는 다 같아 보여도 천마의 눈에는 아니었다.
“영성이 트였으니 푹 쉬며 본질을 다듬어야 한다.”
“그우우우……”
“뒤는 내가 도와주마.”
갑삭은 독기를 벗어던지며 완전히 영물이 되었다.
본래부터 영물이었던 놈이나, 동래선인의 장난질 때문에 완벽하진 않았다.
이를 독기가 눌러 두었으니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천마는 갑삭이 편히 쉬며 영성을 깨우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우우우.”
“네가 누굴 걱정하는 것이냐. 몸이나 잘 추스르거라.”
갑삭의 울음에 천마가 가볍게 웃었다.
몸이 정상이 아님은 맞지만, 남을 걱정시킬 생각은 없었다.
갑삭이 구르륵, 울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사람들과 조금 멀어져, 바다 위에 터를 잡자꾸나.”
갑삭은 서해로 빠져나와 몸을 웅크렸다.
수심이 깊고 사람도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출렁이던 바닷물이 와류로 변해서 주변을 둘러쌌다.
강한 영기가 자연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러운 변화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운무로 가득한 섬, 폭풍이 몰아치는 절벽 등은 모두 이런 과정의 연장선이었다.
“네 영기는 굉장히 상서롭구나. 앞으로 이 바다에서는 모든 것이 풍족하겠어.”
뿌리 내린 갑삭은 수호령의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산을 지키는 호랑이, 바다를 수호하는 용 등.
예로부터 상서로운 영물은 존재해 왔었다.
갑삭이 그런 위치에 도달한 것이다.
“수련에도 적합하겠어. 네 상서로움에 천지의 기운이 운집되고 있으니. 이곳에서 수련하면 다른 곳에서의 몇 배나 되는 효과가 있겠군.”
“그르릉.”
“그래. 네 위를 본좌의 터로 삼아야겠다.”
수호령은 그 자체로 천지간의 기운을 모은다.
갑삭은 일대의 기운을 끌어모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천마도(天魔島)라 부르자꾸나.”
이날, 새로운 섬이 하나 생겼다.
#
태우민은 쫓겨나듯 나와야 했다.
정부가 노선을 정한 이상 그는 불편한 존재였다.
“빌어먹을 놈들. 감히 내가 누군데……”
산을 뒷배로 두고 있을 때는 함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떠받들기 바빴다.
이런 취급은 지독할 정도로 굴욕이었다.
“흥. 어차피 그분들께서 다시 오시면 돌아올 일이야.”
그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공개된 접선지역을 찾았다.
궁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지역이었다.
물리적으로 산과 가까워, 어떤 면으로는 출입구라 불려도 족한 곳이었다.
“문지기를 뵙습니다.”
지역을 지키는 건 두 명의 문지기.
한 명, 한 명이 생사경 바로 아래에 위치한 고수였다.
태우민의 접근에 육중한 창을 내밀어 경계했다.
“테우민이 접견을 신청합니다.”
“사안은?”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입니다. 이대로 두면 궁의 영향력도 점차 작아질 겁니다. 지금에야 한국 하나뿐이지만, 후에는 또 어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당장 움직여야 합니다.”
문지기 둘이 시선을 마주하더니 잠시 침묵했다.
이 둘은 산과 소통할 별개의 방법이 있었다.
이내, 답변이 끝난 건지 문지기가 양쪽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희미한 파열음과 함께 전면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백색의 공간과 계단이었다.
“직접 올라오라는 겁니까?”
“선자께서 부르신다.”
“아, 알겠습니다.”
역할을 오랫동안 해 왔지만 직접 올라가는 건 처음이었다.
태우민이 마른침을 삼키며 계단에 발을 올렸다.
무언가 ‘올라간다’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이미 그의 몸은 낯선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여, 여기는……”
“어서 오라, 속세의 아이야.”
“헉! 소인 태우민이 선자를 뵙습니다.”
백색 휘광을 두른 선인에 태우민이 냉큼 고개를 박았다.
힐끔 봐도 ‘선인’임을 알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고개를 들라. 그대의 노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
“아, 아아……! 감읍하옵니다. 미천한 제 행동을 선자께서 지켜보고 계셨다니.”
“우리가 어찌 속세의 모습을 지켜보지 않을까. 비록 중대한 역할이 있어 나설 수는 없으나, 그대들의 노고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다네.”
태우민이 감동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연락책으로 활동하기를 수년이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신자로서 선자의 감사를 듣는 건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대의 이야기는 전해 들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겠지. 선자 된 입장에서 비통함을 감추기 어렵다네.”
“어찌 선자께서 그러십니까. 이건 다 그 천마 놈의 잘못입니다! 그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 모든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어요.”
“그래. 그 사실은 우리도 알고 있다. 해서 속세의 아이인 너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노라.”
“부탁이라니요. 그냥 명령하세요.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약속할 수 있겠느냐?”
“제 목숨을 걸고 약조하겠습니다. 무엇을 시키든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선자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태우민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연신 끄떡이기만 했다.
“그럼……”
그런 그의 귀를 간질이는 선자의 목소리.
한참을 묵묵히 듣던 태우민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저, 정말입니까?”
이리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
링이 안절부절못했다.
이상하게 천마 앞에만 있으면 그랬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그녀이지만, 천마만큼은 무서웠다.
“그래. 생각을 저리하고 온 것이냐?”
“응. 대군과 이리저리 유랑하면서 생각을 많이 해봤어.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황궁의 공주라는 게 얼마나 허무한 이름인지를 알게 됐어.”
“어차피 궁 자체가 산의 도구일 뿐이다.”
“응. 그 사실을 아바마마도 알았으면 좋겠지만……”
몇 번이나 접촉을 해봤다.
하지만 황궁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링은 결국 혈연이라는 것도 권력 앞에서는 쓰기 좋은 도구라는 걸 깨달았다.
“그보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셈이더냐?”
순간, 천마가 허공의 한 부분을 응시했다.
“역시. 명불허전이로군, 천마.”
그러자 공간이 찢어지며 한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름한 복장에 허리춤에는 호리병을 찬 거지였다.
“네가 이 아이에게 산의 내막을 알려준 인물인가?”
“처지가 불쌍하여 몇 마디 했을 뿐이네.”
“그런 것치고는 관심이 많군. 감히 본좌의 처소까지 따라오고.”
천마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거지의 옷이 거칠게 펄럭였다.
“무리하지 말라고, 천마. 몸도 정상이 아닌데.”
“……”
“날 속일 수는 없어. 이래 봐도 하늘 아래에 눈만큼은 가장 좋다고 자부하는 몸이거든.”
씩 웃는 거지에 천마가 잠시 말을 아꼈다.
자신의 몸 상태를 간파하는 건 보통의 재주로 불가능하다.
경맥이 다친 것도 아닌, 심상의 상처였기 때문.
“재주 좋은 거지로군.”
“흐흐. 자네 기준으로 얘기하자고. 개방 방주 초요립이네.”
허리춤을 툭 치며 웃는 초요립.
너른 뜰을 닮은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