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7
◈ 빙궁으로
빙궁은 시베리아 한복판에 있다.
즉, 정상적인 루트로 가려면 비행기가 필요했다.
이 부분에서 첫 번째 태클이 들어왔다.
“출국 금지 명령?”
“방금 확인하고 왔어. 안나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출국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야.”
“윤무락이 한 거겠죠?”
“아마도.”
정식 루트로는 시베리아로 갈 수 없게 됐다.
박만식은 비공식 루트를, 한서휘는 군과 접촉하여 제재를 풀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해결책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이걸 타고 가자꾸나.”
“……이, 이걸 말인가요?”
“허어. 허.”
천마가 불러온 이무기 한 마리.
예전에 구해준 바 있는 바로 그 이무기였다.
천마의 부름에 냉큼 달려와서는 서해를 긴장시켰다.
그나마 천마가 은형의 술로 모습을 가렸기에 망정이지 해군 함정 등이 뜰 법한 사안이었다.
“레이더 같은 거에 걸리지 않을까요?”
“낮게 날면 되지 않을까?”
“그럼 더 이목을 끌 거 같은데.”
“이무기를 탄 마당에 그런 건 포기해야지.”
현실적인 해결책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이지아와 안기남도 포기하고 그냥 수긍해 버렸다.
이무기를 어찌 타야 하는가.
급하게 마갑 비슷한 걸 만들고 짐을 실을 방법을 궁리하기 바빴다.
“저기, 문주님. 수레 같은걸 이무기 뒤에 올려야 할 것 같은데……”
“음? 신경쓰지 말고 올려라.”
“화내진 않겠죠?”
“쯧쯧. 수행하고 있는 영물 아니더냐. 그런 하찮은 일에 화 낼 존재는 아니다.”
천마가 옆구리를 툭툭 치니 허리를 숙여 주기까지 했다.
고개를 부대끼며 애교도 부렸다.
이무기인지 키우는 강아지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래. 수행이 쉽지는 않지. 부단히 노력해서 용이 되어라.”
그 사이 짐 싣고 사람 탈 공간을 부착했다.
몸이 미끄러워 쉽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모양새는 갖출 수 있었다.
미리 큰 짐부터 올리고 다음으로 한 명씩 올라탔다.
“살다 보니 이무기를 다 타게 되네요.”
“익숙해져야지.”
“혹시 가다가 우리 떨어뜨리는 건 아니겠죠?”
“해도, 해도! 우리 하늘을 날아서 간데!”
“크르릉! 크릉!”
“안 무섭다, 안 무섭다.”
북적거리며 탑승 수속을 마무리 지었다.
한서휘는 군 경계를 위해서, 노복은 저택을 지키기 위해서.
딱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탔다.
“그럼 이제 슬슬 가볼까?”
마지막으로 이무기 머리 위에 올라서는 천마.
바람이 몰아치며 이무기가 하늘 위로 승천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땅이 멀어지고 구름이 가까워졌다.
“바람이 차가워지는 쪽으로.”
전용 이무기.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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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았다.
머리 위에 선 천마가 기막으로 바람을 막지 않았다면 살이 찢길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착은 빨랐다.
직행편으로도 십수 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를 한 시간 만에 주파했다.
하얀 설원이 일행을 맞이했다.
“추워! 추워!”
“누아아, 옷을 두껍게 입어야지.”
“크르릉!”
“치사해! 해도는 털이 따듯하면서. 같이 좀 쓰자!”
“흔들지 마라. 여기서 떨어지면 뼈도 못 추려.”
부산스럽게 떠들며 이무기가 내려앉았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설산의 중턱이었다.
빙궁은 위치가 미묘했기 때문에 날아서 들어가기는 힘들었다.
이곳부터는 도보였다.
“수고했다. 근처에서 쉬고 있다가 부르면 다시 오거라.”
천마가 옆구리를 툭 치자 이무기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빠르게 말도 잘 듣는 전용 탈것이었다.
“극지에 직접 오는 건 또 처음이로군.”
“소싯적에 세외무림은 방문한 적이 없더냐?”
“나야 뭐, 동자문에서만 있었지. 이런 절경을 보니, 그때 그리 처박혀 있던 것이 후회되는군.”
막하금은 경치에 감탄하기 바빴다.
하얗게 내린 눈과 웅장하게 뻗은 산맥.
과거의 중원 무림이나 현대의 도심 속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움이 있었다.
“설아야, 빙궁으로 가는 길은 알겠느냐?”
짐 정리에 정신 팔린 나머지를 대신해서 천마가 안나에게 물었다.
“궁은 전체가 진법으로 가려져 있어. 들어가려면 빙궁의 관문을 통과해야 해.”
“관문이라. 우리를 통과시켜 줄 것 같더냐?”
“관문 아저씨들은 딱딱해. 설득될 것 같지는 않아.”
“흐음. 그럼 어쩔 수 없이 힘으로 누르고 지나쳐야겠구나.”
어쩔 수 없다, 라고 말하지만 천마의 목소리는 살짝 들뜬 기색이 있었다.
설산의 선자를 만나기 전, 식전행사로는 적당했다.
“문주님, 채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가시죠.”
“그래. 다들 짐이 산더미 같구나.”
“극지다 보니 좀 과하게 챙긴 것 같습니다.”
안기남 등이 몸만 한 짐을 멘 채 주억거렸다.
비죽 튀어나온 모피만 봐도 무슨 생각으로 이리한 건지 짐작은 됐다.
추위는 기로 보호를 하면 된다.
천마가 한 명이 덧붙일까 하다 그만두었다.
자신도 과거 무림을 넘어 세외에 도착했을 때면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또한 설레이는 경험이지 않을까.
“저기 해도보다 큰 개가 지나간다!”
“크르릉!”
“뛰지 마, 누아야!”
뒷짐 진 채 느긋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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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는 설원에 펼쳐진 대진을 궤에 따라 걸었다.
자연지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진법은 순리대로 풀지 않으면 강한 구속력을 지닌다.
빙궁에 태어난 자는 이를 반드시 숙지해야 했다.
“여기가 첫 번째 관문이야.”
굽이치는 산길을 통과하기를 두어 시간.
일행은 거대한 산성 하나와 맞닥뜨렸다.
관문이라기보다는 성에 가까운 규모였다.
“호오. 제법 단단해보이는군. 사상 사문궤진인가? 진법의 힘이 관문 자체를 강화하고 있어.”
막하금이 가볍게 감탄했다.
빙궁을 아우르는 진법은 그 맞물림이 상당히 유려했다.
하나가 다음 하나를 보조하고, 또다시 다음 진법을 보조하는 형태였다.
눈앞의 관문만 해도 중첩된 힘이 엄청났다.
“흑아야, 이를 힘으로 깰 수 있겠느냐?”
“힘으로 말입니까?”
“그래. 사상궤진은 기본적으로 쌓는 것에 특화되어 있지. 네 창이 이를 뚫어 낼 수 있는지 궁금하구나.”
“미력하지만 시도해보겠습니다.”
안기남이 창을 뽑고 앞으로 나섰다.
관문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그 너머의 기척은 꽤 사나웠다.
이미 일행의 접근을 알고 있는 기척이었다.
“우선은 집주인에게 노크를 하는 것이 예의겠지.”
움켜쥔 창에서 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응축된 경력으로 지면이 가볍게 떨리고 대기가 나선 형태로 꼬였다.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비틀림이었다.
“호오. 저건 악가창법의 나선창 아닌가?”
“비슷하지만 다르다. 나선창보다는 비틀림이 적고 찌르는 세는 강하다. 흑아 저 아이가 십팔로표변창에 나름의 묘리를 더한 거지.”
“그 한서휘라는 아이에게 지고 난 뒤 낮밤 안 가리고 수행하더니. 이런 걸 깨우쳤던가.”
“패배는 언제나 좋은 밑거름이 되는 법이지.”
막하금과 천마의 대화 뒤로 안기남이 창을 뻗었다.
바람이 나선형태로 꼬이며 일격의 뒤를 쫓았다.
그건 마치 나선의 탄환 같았다.
단단한 관문 성벽에 충돌해서는 굉음을 쏟아냈다.
벽의 일부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이리해도 나오지 않는다면 문을 걷어차는 수밖에.”
반응 없는 관문에 안기남이 코웃음 쳤다.
창을 양손으로 고쳐 쥐고는 전보다 더욱 강하게 기운을 집중시켰다.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만! 그만두어라!”
관문 안에서 사람이 튀어나온 건 그 순간이었다.
회색 모피 차림의 중년 남자였다.
“수크라, 아저씨!”
안나가 그를 알아보고는 냉큼 튀어나갔다.
“아이고, 안나 아가씨.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아저씨야 말로 내가 있는 걸 알면서 왜 문을 안 열어주는 거야?”
“어찌 제가 감히 마음대로 행동하겠습니까? 궁주께서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하시니 소인이야 명을 따를 수밖에 없지요.”
“숙부를 잡아두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
“그야 들었습니다만……”
“근데도 날 못 가게 하려는 거야!?”
버럭 외치는 안나에 수크라가 뒷머리를 긁었다.
그도 중간에 낀 입장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곤란하기만 했다.
“생각보다 네 인망이 좋구나.”
“스승님.”
안나 옆으로 천마가 슥 걸어왔다.
그는 관문과 그 위에 선 수크라를 훑어보고는 짧게 말했다.
“곤란하게는 안 하마. 길을 열어라.”
“끄응. 그쪽이 누구인지는 아오. 천마라지. 내, 무력으로는 상대가 안 되는 걸 알지만 관문을 맡은 이상 그냥 보내줄 수는 없소이다.”
“기특하나, 망설이고 있는 이상 의미는 없다.”
“……그래도 물러날 수는 없소.”
“그리 했다 전해라. 곤란하지는 않을 거다.”
천마는 그대로 손을 들어 관문의 한 부분을 뜯어냈다.
진법의 기운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의미 없었다.
자연스럽게 한쪽 입구를 열고는 걸어 들어갔다.
수크라는 깜짝 놀라서 펄쩍 뛰기만 했다.
“수크라 아저씨, 내려오지 마! 그냥 못 막았다고만 해. 그러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거야.”
“아, 아이고 그럼 아가씨는 어쩔 생각입니까?”
“아버지와 담판을 지을 거야.”
“구, 궁주님과 말입니까?”
“응. 안나는 이제 설산에서 벗어나기로 마음 먹었어. 내가 빙궁의 궁주가 되어 그렇게 할 거야.”
“그, 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일행은 이미 관문을 통과했다.
천마의 말대로 망설임이 있는 이상 더이상은 무리였다.
“아이고 아가씨……”
커가는 모습을 자식처럼 봐 왔으니까.
관문을 통과해 지나가는 모습을 수크라는 그저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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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을 통과했다?”
설산의 정상.
백옥을 깎아 만든 옥좌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백색 도포는 눈과 같아, 얼핏 보기로는 산세에 묻어나는 눈발 같기도 했다.
“어차피 그 아이가 섞인 이상 끝까지 막지는 못할 겁니다. 조만간 이곳까지 오겠죠.”
“궁주께서는 꽤 심란한가 보군요.”
“……제 여식입니다. 철부지처럼 날뛰지만, 어디 속이 편할까요.”
그 맞은 편에 앉은 중년 남성.
그가 바로 빙궁의 궁주 바호르카였다.
옛 방식으로는 여운하.
안나의 아버지기도 한 남자였다.
“너무 심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궁주의 여식에게는 손끝하나 대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자, 천마의 위명이 자자합니다. 싸움이 격렬해지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밖의 이들이 강해 봐야 밖의 이야기입니다. 그자의 실력이 제법 출중하여 지금까지는 내버려 두었으나, 이리 방자하게 구니 더이상은 참을 수가 없더군요.”
남자는 설산의 저편, 보이지 않는 곳을 바라봤다.
천마 일행이 있는 부근이었다.
“허면, 궁에서 전력으로 그자를 상대할 생각입니까?”
“아니면 제가 직접 내려왔겠습니까. 게다가 마침 실험해 볼 좋은 무기도 생겼으니……”
“무기라 하면, 저것 말입니까?”
여운하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설산의 정상, 커다란 얼음으로 둘러싸인 생명체가 하나 있었다.
육안으로는 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오랜 시간 빙궁을 도우며 빙정에 대해서 연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결과라 보시면 될 겁니다.”
“빙정을 말입니까……”
“후후. 지켜보시면 알 겁니다.”
남자가 웃음에 답이라도 하듯, 얼음 속 생명체가 낮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깊고 어두워 마치 흐느낌과 같았다.
여운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여운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