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rongest He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6
◈ 북으로
안나가 천마의 제자가 되기를 자처하며 상황은 일단락났다.
한서휘도 뒤늦게 합류하여 상황을 그리 전달받았다.
하지만 그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줄로 상황을 정리하기에는 얽힌 세력이 너무 많았다.
“빙궁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뒤에 있는 산도 마찬가지겠죠.”
“또 윤무락 대장을 움직일까요?”
“가장 편한 방법이지. 공권력을 동원해서 압박하면 여론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으니까.”
“시시한 이야기다.”
한서휘와 이지아의 걱정에도 천마는 단호했다.
제자로 받았으면 그만일 따름이다.
여백천에게 전하는 말도 그랬다.
“설아가 혼원태극결을 대성한다면 이를 빙궁에 전파하여 산에 대한 의존을 끊을 수 있다. 사냥개로 사는 것이 편하다면 권하지는 않겠으나, 의지가 있다면 받으라 전해라.”
“그게 마냥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궁은 단순하게 빙정 하나의 이유로 산에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은 선인들이 사는 곳. 이를 동경하는 제자들이 많습니다. 궁 안의 이들도 그러하고, 밖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너희 사정이다. 본좌가 옛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 아이를 제자로 거두었다. 그 이상 해 줄 의리 따위는 없느니라.”
“궁에서 이곳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감히?”
“……”
여백천이 입술만 달싹거렸다.
천마에게는 힘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규격을 벗어나 있기 때문.
결국, 그 이해 아래에서 움직여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숙부, 괜찮아.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
“소주. 궁주님의 성격을 알지 않습니까. 사실을 알면 전쟁을 하려 들 겁니다.”
“그래도 아버지야. 내가 말하면 들어 줄 거야.”
“궁주님 성격을 생각하면……하아. 알겠습니다. 소주의 결정이 그러하다면 전 따르도록 하죠. 먼저 빙궁으로 돌아가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여백천은 선택을 해야 했다.
궁의 기존 방침이냐, 천마가 열어준 새로운 길이냐.
어느 쪽도 확신은 없었지만, 그는 천마 쪽을 택했다.
그를 믿는다기보다는 소주인 안나 때문이었다.
그녀가 있는 쪽이 답이 되기를 바랐다.
“소주, 부디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계세요.”
“안 쳐. 안나는 다 큰 어른이거든.”
“……소주를 많이 부탁드립니다.”
안나를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며.
여백천은 다시 빙궁으로 돌아갔다.
#
안나는 하루에 두 번 천마에게 지도를 받았다.
혼원태극결 자체가 무공이기보다는 요령이었기에 그리 긴 시간은 소요되지 않았다.
냉기를 쏟아내고 다시 제어하는.
천마가 있기에 할 수 있는 수련법이었다.
저택 뜰이 얼고 녹기를 반복했다.
“으으. 너무 힘들다.”
“그만큼 빙정의 기운이 다루기 어려운 거다.”
“이거 얼마나 걸려야 익힐 수 있어?”
“글쎄. 네 노력 여하에 따라 다르겠지. 짧으면 며칠이고 길면 몇 년도 부족하다.”
“몇 년은 너무 길어!”
“그럼 더 열심히 해라.”
천마가 징징거리는 안나를 섭공으로 일으켜 세웠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은 건조대의 빨래였다.
끙, 하고 힘을 쓰더니 냉기로 이를 떨쳐냈다.
“스승님은 익히는데 얼마나 걸렸어?”
“익히겠다, 생각하고 그 요령을 터득하는 데까지는 반년이 걸렸다.”
“스승님도 반년이나 걸렸다고?”
“말이 반년이지 태반은 허송세월이었다. 덧없는 놀이에 시간을 버리니, 결국 때를 맞추지 못했지.”
“때?”
“네 사조 말이다.”
천마가 다시 섭공으로 안나를 움켜쥐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압력에 안나가 끙끙거렸다.
냉기가 주변에서 헛돌아 커다란 냉장고처럼 작용했다.
밖은 덥고 안은 차가웠다.
“그럼 스승님은 그걸 후회해서 이 무공을 만든 거야?”
“군소리는 그만두어라. 힘이 빠진다.”
“끄응. 하지만……궁금하다고.”
안나가 냉기를 극도로 응축해서 밖으로 뿜었다.
섭공의 벽이 깨지고 비죽비죽, 얼음 창이 돋아났다.
그 속도와 기세가 무시무시했다.
“삶에 후회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 본좌 또한 어리고 약한 시기가 있었다. 아마 네 사조를 만났을 때, 무공이 조금 더 깊었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지. 하지만 그 또한 본좌의 삶일 따름이다.”
“후회는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는 거야?”
“그 마음은 온전히 그 시간에 두고 나왔다.”
“그게 가능해?”
“지극하면 남지 않는 법. 너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천마의 손짓에 모든 얼음 창이 녹아내렸다.
미세한 냉기마저 새어나갈 수 없는 힘의 벽이었다.
냉기가 벽 안을 한차례 돌고는 다시 안나에게 쏟아졌다.
“으그그극!”
“집중해라. 냉기가 흩어지고 있지 않더냐.”
“할 수 있어! 안나도 하고 말 거야!”
안나는 한 줌의 열기로 냉기를 이끌려고 했다.
하지만 몇 초도 흐리지 않아 냉기는 열기를 집어삼키고 안나의 품속으로 스며들었다.
쿵, 하고 주저앉는 안나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다시 하겠느냐?”
“……응! 안나도 남기고 싶지 않아.”
“그래. 그런 마음가짐이다.”
연습은 끝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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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가 제자가 되며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
그건 일종의 경쟁이었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어.”
“자존심이 있지.”
“그래도 우리가 원년 맴버인데!”
이지아 등이 경쟁적으로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전에도 충분히 노력하던 이들이었지만 안나가 들어온 이후에는 더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꼴 아닌가.
아무리 모두가 천마의 제자라고 말하지만, 구색 상 못마땅한 건 사실이었다.
“채아야, 너도 같이 수련하자.”
“그래도 괜찮을까? 아직 많이 부족한데.”
“없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야지. 타도, 안나! 원년 맴버의 힘을 보여주자!”
여기에 이제 막 투법을 배우기 시작한 한채아까지 더해졌다.
천마가 안나를 지도할 때면 다 같이 모여서 시위하듯 수련을 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
아침이고 저녁이고 새벽이고, 쉼 없이 단련하는 소리로 저택이 가득 채워졌다.
“클클. 어린 애들에게 좋은 자극이 됐군.”
“또래의 적수만큼 좋은 자극제는 없지.”
천마는 기조에 만족했다.
예전 신교도 경쟁적으로 힘을 겨루곤 했다.
그러다 두엇씩 죽어나가곤 했지만, 결국 그게 힘의 원동력이 됐다.
애초에 무인이라는 족속들은 그런 존재였다.
부딪치면서 빛을 내는.
더 열심히 부딪치기를 원했다.
“오, 저기 네 다른 제자가 찾아왔다.”
“음? 아, 백아로구나.”
“흐흐. 저놈은 검이 매섭던데. 창 쓰는 아이와 겨루려고 온 건가?”
막하금이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슬슬 웃으며 창밖의 한서휘를 바라봤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지고 표정이 확인되었을 때.
막하금도 천마도 표정을 달리했다.
“좋은 일은 아니구만.”
“흠.”
한서휘의 표정은 다급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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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숙부님이 감옥에 갇혀?”
안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군의 정보력을 통해서 알아낸 사실입니다. 빙궁의 주요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고 제압당함. 추후, 처벌을 위해 감독에 가뒀다. 이게 전문입니다.”
“숙부님이 반란을 했을 리 없어!”
“아마 대외적인 공표내용이겠죠. 설득이 실패하고 구금됐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안나는 당장 숙부를 구하러 가야 해.”
안나가 허둥지둥 자리를 뜨려 했다.
“진정해라.”
그걸 제지한 건 천마였다.
“네 숙부라는 자는 궁의 핵심이다. 의견이 틀어졌다고 한들 그리 쉽게 죽일 수는 없어.”
“하지만……!”
“앉아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해.”
어느새 안나 주변이 냉기로 뒤덮여 있었다.
천마가 막지 않았다면 모조리 얼어붙었을 것이다.
그제야 안나도 힘을 거두며 물러났다.
“백아야, 다른 소식은 더 없더냐?”
“빙궁 쪽에서는 없습니다. 다만……”
“다만?”
“군부. 정확하게는 윤무락 대장 부근에서 묘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한서휘가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축였다.
이다음 할 말은 그다지 확신이 없었다.
“빙궁 일로 설산의 선인이 직접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인이? 직접 말이냐?”
“네. 윤무락 대장 측근에 심어 둔 첩자로부터 얻은 정보입니다. 선인을 맞이하기 위해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거 재미있게 되어가는구나.”
천마는 턱을 괸 채 웃었다.
궁에 대한 반응으로 산이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설마 선인 중 하나가 직접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 선인은 왜 내려오는 거래요?”
이지아가 슬쩍 끼어들어서 질문했다.
“빙궁의 일. 그러니까 핵심 인사의 이탈 건으로 징벌을 하려는 것 같아.”
“안나가 빙궁을 떠났으니 벌을 내린다, 이건가요?”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 채아가 환락궁을 떠났을 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원의 이탈이었어. 이번 빙궁처럼 소주가 떠난 건 아니었지. 사안을 심각하게 다루는 분위기야.”
“하지만 고작 체벌 때문에 선인이 온다는 건 좀 납득하기 어렵네요.”
“보여주기 위함이겠지.”
마지막 답은 천마가 대신했다.
한서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빙궁의 소주가 산을 저버리고 이탈한 건 큰 사건입니다. 산의 권위에 금이 갔다고도 볼 수 있죠.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결국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일벌백계란 말이로군.”
“그 시작은 여백천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여백천이 구금된 이유가 설명된다.
산에 의한 징벌대상.
배신의 대가를 사람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스승님, 스승님. 숙부를 구해주면 안 돼? 응?”
안나가 바닥을 기듯이 다가와 천마의 소매를 당겼다.
그녀는 가진 힘에 비해서 아직 너무 여렸다.
“제자의 부탁을 저버릴 수는 없지. 허나, 이걸 기억하고 있거라. 본좌가 개입한다는 건 신교의 행보라는 의미와 같다. 선택을 한 이후, 빙궁은 더이상 과거의 빙궁이 될 수 없다.”
“……빙궁이 갈라지거나 사라질 수 있다는 거지?”
“옳다. 산과 본좌가 대적하면 결국 선택을 강요받게 될 터. 그 과정에서 네가 알던 이들이 떨어져 나갈 수 있다. 그걸 감수하겠느냐?”
“응. 그게 힘들다고 해도 숙부를 포기할 수는 없어. 게다가 스승님이 말했잖아. 지극하여 남기지 말라고. 안나도 어중간하게 굴 생각은 없어.”
어쩌면 더이상 여리지 않을지도.
힘 꼭 쥐고 답하는 안나는 빙궁의 소주라는 직책과 어울리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는 확실하게 인지한 얼굴이었다.
“백아야, 군의 동향은 네게 맡기마.”
“네, 문주님.”
“청아는 독아와 손을 잡고 주변 움직임을 잘 지켜보거라.”
“네, 태상문주님.”
“흑아와 화아. 그리고 적아는 채비를 갖추거라.”
“명을 받듭니다.”
“네, 문주님.”
“맡겨 주세요.”
일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마음을 먹은 이상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는 법.
천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을 응시했다.
“어디, 찬바람이나 쐬어 보자꾸나.”
북으로.
행선지가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