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135
(134)
“끔찍하다.”
“무, 무사히 깨어나신, 것만 해도, 어, 얼마나.”
“얼마나 다행이냐는 거지?”
내 목은 완전히 맛이 가서 꺼끌꺼끌한 목소리만 나왔다.
운이 좋다면 좋은 거긴 한데.
내 몸을 내려다볼 때마다 한숨밖에 안 나온다.
온몸에서 짓이긴 약초의 쓰디쓴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몸은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팔다리 할 것 없이 살을 드러낸 부분이 더 적을 정도였다.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가 설명한 대로 얼려졌다가 녹아서 그런 건지, 가끔은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도 않았다.
잠깐씩 근육이 굳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두 사람 앞에서 죽고 다시 일어나는 광경을 보여주는 것보다야 낫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아멜리아는 내 옆에 앉아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묽은 죽 그릇을 들고 있었다.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 두 사람은 내가 깨어난 후부터 교대로 돌아가면서 나를 돌봤다.
내가 깨어남과 동시에 눈사람은 형태를 되찾았다.
하지만 눈사람은 영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아멜리아가 어렵게 얼음을 구해 몸을 만들어줘도 내내 졸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얼렸던 게 아무래도 힘이 들었던 모양이지.
하루에 두 번은 베르데가 찾아와서 붕대를 갈아주거나 내 상태를 확인했다.
내가 하루 종일 하는 거라곤 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거나 죽을 먹거나 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종종 드림랜드에서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바스트가 다스리는 도시와 오묘한 빛의 하늘, 그리고 도시의 승려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마도서 프나코틱.
내가 꿈꿨던 물건이 어떻게 현실계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그 원리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마도서의 표지는 분명…….
아멜리아가 먹여주는 죽을 받아먹으면서 생각하고 있는데,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계셨습니까. 공작님의 상태는 좀 어떠십니까?”
“시, 식사는, 잘 드실, 수 있네요.”
“의원이 붕대를 풀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동안 마을의 현황에 대해서 좀 알아봤습니다만.”
갤로.
우리가 지금 있는 지역의 이름으로, 거의 도시급으로 큰 마을이었다.
튼튼한 석조건물이 마을 중심부에 세워져 있는 이 마을은, 왕실 대신 영지를 관리하는 대리인이 부재중일 때는 마을의 이장 같은 사람이 행정 업무를 처리한다고 한다.
이제까지 봐온 중소형 마을에서는 이장이니 대리인이니 하는 것들은 없었는데.
아마 이건 여기가 영주 격인 왕이 직접 다스리지 않기 때문일지도.
“왕실 직할령으로 귀속된 이후에 도시 관리구역으로 승격을 앞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 그렇게 커졌나요? 제,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 정도는 아니어, 었던 것 같은, 데.”
“직할령 사이에서도 이쪽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는 경우가 꽤 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마을이 도시로 승격되면 얻는 권리가 많아진다.
타지역과 거래를 자유롭게 할 권리, 왕실 직할령에 속해 있지만 도시로써 특정 부문에 대한 행정적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
그것뿐인가. 각종 길드의 지부를 유치할 수도 있고, 잘하면 학술적 배움을 얻을 기회도 늘어나게 된다.
“그, 그런가요.”
“마을 내부의 구조는 복잡한 편입니다. 다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외부인이 주로 머무르는 중앙의 상점가부터 마을 주민의 주거지역까지 각자 구획이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길을 잃으면 중심부와 가까운 곳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으, 으음. 주, 중심부에서요.”
“물론 저희도 여기, 중심부 근처에 위치한 여관에 있습니다만. 여관 주인에게 듣기로는 처음 들어온 사람은 마을을 돌아다니려다가 길을 잃기 십상이라더군요.”
“그, 그래요? 하, 하지만, 전에는 그러지 않았던, 그, 그다지 특이할 게 없는, 마, 마을이었던 것 같은데.”
아멜리아가 변한 마을이 낯선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지켜보다가 레안드로스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변했다는 소리는 없었어?”
“딱 짚어서 변화한 시기를 짚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아놀드 영애, 영애가 부집사장이셨을 때는 어땠습니까?”
“여, 여기서 세, 세금을 얼마나 뗐는지는, 그 정도만. 다른 건 별로 기, 기억이 나지 않아요.”
“레안드로스가 말했던 특징조차 포착하지 못했을 정도로 평범했다는 말이군요. 마을이 직할령으로 들어가고 나서 변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글리코에서 일어났던 일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쥐어뜯긴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돼지 인간들이 왜 거기에 있던 거지?
마수의 대비를 위해 고용한다던 용병들은 어떻고?
이게 하루아침에 일어날 일이던가?
의심하면 할수록 의문만 더 커졌다.
그 모든 의문의 끝에는 당연히 유릭 덴 메나디아가 있겠지.
나는 영지의 일부를 되찾으면서 동시에 레안드로스의 명성을 높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회차의 유릭도 아직은 레안드로스를 갈망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유릭 역시 레안드로스에게 수작을 걸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대체 어떤 방식으로.
-모두가 그를 알게 만들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그를 끌어올릴 수 있어.
레안드로스와 유릭은 위성이었다.
서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위성.
각자의 궤도를 달리지만 서로 절대로 만날 수 없고, 그저 상대방에게로 달려가기만 하는.
내가 레안드로스에게 도움을 주지 않아도 이야기는 진전될 것이다.
레안드로스는 유릭을 만나고, 그를 파멸시킬 예정이었다.
그게 그의 운명이니까.
그는 그걸 위해서 이런 세상에 만들어졌다.
만일 유릭 역시 이 세상에 태어난 의미라는 게 있다면.
“……같은 생각을 했네.”
“고, 공작님?”
내가?
유릭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갑자기 구역감이 치밀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거부감이 먼저 피어올랐지만, 동시에 유릭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역겨운 확신이 슬금슬금 머리를 쳐들었다.
내가 레안드로스를 아끼는 것처럼 유릭도 레안드로스를 아꼈다.
우리는 같은 논리로 움직이고, 비슷한 결과를 도출해내고 있다.
막 깨달은 사실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이불을 확 걷어냈다.
말라서 앙상해진 다리에도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자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가 당황해서 일어났다.
“공작님,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고, 공작님, 지, 지금 그렇게 일어나시는, 그러면!”
“이럴 때가 아니야.”
역겹다. 기분이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거울을 봤는데 거기에 유릭이 서 있는 걸 목격한 듯한 감상.
나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베르데를 데려와. 당장.”
* * *
다짜고짜 불려온 베르데는 아멜리아와 레안드로스가 방을 나가자마자 말했다.
“감사 인사나 보상은 됐습니다.”
“뭐?”
“아니, 보석이라도 좀 쥐여주시려고 절 부른 게 아닙니까? 아니면 말고.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으세요?”
떡진 녹색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껄렁하게 대꾸하는 모습이 제법 신선하게 보였다.
지금까지 공작님 공작님 하면서 떠받드는 사람들만 봐와서 그런가.
한국에서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래서 적응이 무섭다는 거군.
“어디가 아픈 건 아니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어. 레안드로스와 아멜리아가 폐를 끼쳤군. 나도 그대가 아니라면 깨어나지 못했겠지.”
“뭐 그런 정도로. 공작님 몸 상태만 좀 더 면밀히 검사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그대는 용병단에 소속된 자라고 들었는데. 혹시 개별 의뢰를 받는 건가?”
“단체로 움직이라고 규정된 건 아니거든요. 제가 좀 눈칫밥 같은 걸 먹고 있기도 하고.”
“그럼 내 의뢰도 받아줄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
“그건 좀.”
“왜?”
“귀찮습니다. 지금 몸이 이 상태니까 계속 돌보라는 의뢰 같은 거 하실 거죠? 그냥 잘 먹고 잘 자세요. 그게 최곱니다.”
“그런 의뢰는 안 받는다고?”
“뭐 귀찮게 그런 걸 받아요? 거참 요새 젊은이들은 자가수복력을 못 믿는다니까. 쯧. 그 나이면 의원 부르는 돈이 아깝지.”
베르데는 하품을 하며 돌아섰다.
전혀 관심이 없는 태도였다.
“전 갑니다. 의뢰는 못 들은 걸로 합죠.”
“사람에 대해 연구하게 해주지.”
문으로 걸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가 삐걱거리는 듯한 매끄럽지 않은 동작으로 뒤를 돌아봤다.
“뭐라……고?”
“연구를 하게 해주겠다고. 사람에 관한 연구를 하려면 죽은 사람이 필요할 테지? 하지만 여기에서는 시체를 훼손시키는 게 금지되어 있잖아. 목적이 무엇이든, 사체를 건드렸다가 들킨다면 벌금으로는 끝나지 않고.”
베르데는 입을 다문 채로 눈만 크게 뜨고 있었다.
내가 누워있을 때, 아멜리아는 베르데에게 내가 얼어붙었다는 설명을 해야만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시큰둥하던 베르데가 바로 의뢰를 받아주었다고.
베르데는 괴상한 성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누가 얼어붙은 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을 연구하겠다고 히히덕거리며 달려와?
그건 그냥 미친놈이지.
베르데는 현대로 치면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불렸을 거다.
그래도 지금 나에게는 그런 베르데의 성격이 기껍기만 했다.
나는 호기심과 지식욕을 추구하는 의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끼를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죽어도 다시 살아 나.”
이 몸은, 아렌하이트의 몸은 죽어도 죽지 않고 되살아났다.
오직 유릭에게 죽을 때만 신체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내 정신과 기억은 다시 이야기의 시작으로 회귀했다.
그것에 대한 원인도,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이 세상 자체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설정된 것 같다는 인상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거래를 레안드로스나 주변인에게 들킨다면 이전과 똑같은 루트가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밀만 지켜진다면 이 몸 정도는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다.
이 이야기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면.
그래서 동생을, 나를, 이 짓을 완전히 매듭지을 수 있다면.
“내가 죽을 때, 나를 연구하게 해준다는 조건이 있어. 내가 되살아날 때까지 며칠간의 유예는 있으니까, 그 사이라면 얼마든지.”
베르데는 멍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침대에 앉아서 붕대를 둘둘 두른 채 까슬한 목소리로 말하는 초라한 청년.
그게 나일진대, 그는 마치 커다란 금맥을 발견한 사람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그는 겨우 말했다.
“그,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 죽어도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건 거짓말이야.”
“거짓말일까?”
“거짓말이야, 아무렴, 거짓말이겠지! 그냥 나를 속여넘기려고 그러는 거지?”
흥분했는지 존대까지 잊어버린 베르데는 더듬거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를 보다가 일어났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상관없었다.
“한 가지 당부를 해두지. 지금부터 아래층에 주문해서 음식을 많이 올려보내라고 하는 게 좋을 거야.”
“뭐? 왜? 어째서요?”
“아니면 깨어난 내가 그대를 잡아먹게 될 테니까.”
문자 그대로 말이야.
그렇게 덧붙인 나는 탁자 옆에 놓여있던 컵을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도기 파편이 산산조각으로 튀었다.
그중 가장 큰 조각 하나 골라 들었다.
손가락에 닿는 감촉이 까칠했으나, 이것만큼 효과적인 무기도 없었다.
“잘 봐.”
단 한 번의 고통.
쇠약해진 몸은 경악한 베르데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새긴 채 스러졌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어두웠고, 내 곁에 베르데가 혼자 서 있었다.
그는 눈을 뜬 나를 보고 손목을 잡아 내 맥을 쟀다.
그 직후 그는 침대 옆에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나는 돼지 인간들에게 쥐어뜯긴 상처도, 스스로를 자해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새로운 몸으로 그를 굽어다 내려봤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웅얼거렸다.
손가락 틈새로 엿보이는 그의 눈에는 욕망과, 공포와, 두려움과, 덫 속의 먹이를 눈앞에 둔 작은 짐승과 닮은 갈등이 떠올랐다.
“무,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물론 아무리 고민해도 그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겠지만.
“별거 아니야. 내가 그대에게 부탁할 일은 굉장히 사소한 거야…….”
내가 속삭이는 내내,
그의 머리 위로 붉은 숫자가 일렁였다.
【75/75】